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22화 (122/153)

122. 움직이는 사파.

뭘까.

처음 보는 상자 속 물건에 정문은 고개를 가로 기울였다.

검정 무복.

아주 평범한 무복이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한 벌 정도는 가지고 있음직한 그런 검정 무복이며, 별다른 장식이나 상징이 각인되어 있지 않은, 그런 무복이었다.

보검 역시 평범하다.

날이 조금 예사롭지 않게 날카롭다는 특징이 있었지만, 잘 관리된 보검이야 다 그렇지 않나.

그저 주목할만한 보검의 특징이라면.

검이.

아주 깔끔하게 절단되어 있다는 점.

그게 전부일 것이다.

검루와 검갑에는 아무런 상징이 각인되어 있지 않았고, 도검을 만든 대장장이의 이름 역시 적혀있지 않다.

마치.

하급 무사나 이름 없는 무인이 쓸 법한 그런 검처럼.

검을 내려놓고 시선을 옮기는 정문. 정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작은 목걸이에 닿는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익숙한 기운이 뿜어지던 물건은 다름 아닌 이것. 무복이나 검을 만질 때 보다 훨씬 더. 정문은 목걸이에서 진한 그리움과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고 있다.

목걸이는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장신구가 달려있다. 가죽 줄에 달린 작은 쇠 이음새와 그를 통해 가죽에 매달린 흑요석 장신구.

‘흠···. 조금 깨져 있네.’

금이 가 살짝 벌어진 흑요석. 한 조각 정도의 작은 파편이 비어 모양이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처음 흑요석을 봤을 때는 일전에 스승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리며 무언가 또 고통이 몰려오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정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목걸이를 만져보니.

별다른 공능이나 고통. 그런 건 없는 모양이다.

‘흑요석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란 말이지···’

여전히 이것들이 뭔지는 모른다. 그저 짐을 챙기던 자신에게 명화가 정문의 것이라며 건네주었던 상자.

정문은 영문도 모르고 그 상자를 마차에 실었을 뿐이고.

그저.

원래 이정문이 자주 입던 옷과 장신구. 그리고 보검인 모양이다.

정문은 아무렇지 않게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걸어본다. 딱 맞는 크기로 조절된 목걸이가, 정확히 정문의 가슴 위쪽에 흑요석을 늘어뜨려 놓았다.

‘잘 맞네.’

별다른 의미나 의도는 없다. 그저 원래 이정문이 하던 거라면. 자신도 하는 게 맞을 테니까. 정문은 그렇게 생각하며 별다를 것 없이.

방을 정리했다.

* * *

“어, 사형?”

평소처럼 맹 내의 집무실에 도착한 정문을 보며 명화가 고개를 기울인다.

“오랜만이네요, 그 목걸이.”

“응?”

반갑다는 명화의 반응과 정문의 갸웃하는 표정. 둘을 본 진명 역시 고개를 집어넣고 정문의 목을 살핀다.

정문의 목을 타고 내려오는 가죽 줄에 달린 작은 흑요석 구체. 진명 역시 그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척을 해본다.

“한동안 안 하고 다니시더니, 다시 차시는군요.”

저마다 입을 보태는 사제들.

마치 이게 무엇인지, 공동의 도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런 분위기다.

“뭐, 그럴 때도 됐죠. 이제 당당히 차도 되는 사람이니까. 오히려 너무 늦었을 수도 있고요.”

“······.”

다들 반기는 반응을 보여준다. 딱. 사풍만 빼고.

정문 역시 눈치가 있는 사람. 아마 이건.

장문인이나 대제자, 그런 것과 관련이 있는 물건인가 보다.

“흠, 뭐. 명화가 챙겨준 상자에 들어있길래. 검은 무복이랑 부서진 보검이랑 같이.”

“아, 그게 거기 있었어요?”

“나머지 것들은 다 뭐냐? 처음 보는 옷이랑 보검이던데.”

“···기억이 거기도 안 나시는 모양이네요.”

“기억?”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날도 굳이 포함하자면, 그 2년에 포함되는 날이니까요.”

명화의 저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정문은 자신이 상장에서 발견한 것들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이나 닿게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저 짐들은.

“사형께서 조천문에 돌아오셨던 날. 그날 입고 있었던 옷과 들고 있던 보검, 그리고 장신구예요. 나머지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사숙들 역시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너무 기분 나빠 하진 마십쇼, 사형. 원래 추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니···, 혹여 안 좋은 일을 겪었을 수도 있고···”

사제들은 정문이 혹여나 자신의 물건과 행적을 역추적했다는 말에 기분이 나쁠까 조심스레 말을 꺼내고 있다.

뭐, 기분이 나쁘진 않다.

역추적을 한다고 해도.

거기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다 자신이 아닌.

원래 이정문의 움직임이었을 테니까.

“해서, 좀 나온 건 있었고? 난 기억이 없어서···”

“······?”

조금은 빤히 보는 듯한 눈빛으로 정문을 바라보는 사제들. 잘 버텨왔는데, 이제야 실수라도 한 걸까.

그런 고민이 정문을 스치려 할 때.

“처음이군요.”

진명이 따스한 표정을 지으며 정문에게 다가온다.

“응?”

“사문을 나가셨던 동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지 않습니까?”

“그야 뭐···, 내가 잘한 짓도 아니고···”

또, 모르니까.

아는 게 없는데 말을 할 수가 있나.

그저.

늘 어렴풋이 무언가 떠오른다는 말과 기억이 없다는 말로 어물쩡 넘어가기도 좋았고.

“아시긴 하는군요. 잘한 건 아니었지요.”

벽에 기댄 채 대화를 듣고 있던 사풍이 팔짱을 풀고 끼어든다. 명화와 진명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풍에게 말을 들으라는 표정을 지어본다.

아.

그제야, 머리에 빛이 스치는 정문.

지금은 몰라도, 당시에 자신의 뒷조사는.

사풍이 가장 열중했을 것이다.

“그래, 우리 사풍이.”

“그, 그렇게 부르지 마십쇼!”

“내가 공동산까지 오는 길. 역추적했지? 안 했을 리는 없잖아? 어떻게든 응? 뒤를 파서, 확! 하려 했을 테니까? 응?”

정문은 노골적인 표정을 지어가며 사풍의 앞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기분 나쁘게 하려는 게 아니다. 이제는 함께하는 사풍이.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당황하는 그 모습이 재밌는 정문일 뿐이다.

“칫! 저리 좀 가십쇼. 그럼···, 말을 해볼 테니···”

퉁명스러운 녀석.

어차피 말할 생각이었으면서.

정문은 살짝 고개를 물리며 사풍을 향해 손을 튕겼다. 말을 해보란 뜻이다.

“아시다시피. 말이 없었다는 건, 별다른 행적을 찾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알지. 개방도 또···”

흑시창도 찾지 못했던 행적이다. 사풍이 전부 쫓았을 거란 생각 따위는. 정문에게도 없다는 뜻이다.

“주로 평량과 육반촌, 그리고 연지하를 따라다니며 사형이 입었던 검정 무복, 그리고 신장과 용모파기를 대조했습니다만···”

“호오.”

이건 제법이었다.

정문은 사풍에게 이런 칭찬을 전해주고 싶었다.

누군가를 추적할 때는 추적의 대상이 친근하게 여기는 것들을 위주로 뒤를 쫓아야 한다.

그런 면에 있어서 개방과 흑시창보다.

어쩌면 사문의 문도들이 더, 정문을 잘 쫓았을지도 모르겠다.

“없더군요. 아무것도.”

“응? 그게 전부···?”

“그저···, 동북쪽에서 왔다는 사실 외에는.”

!

“동북···?”

“예, 감숙에서 위로는 아무도 흑색 무복을 입은 무인을 봤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육반촌 역시 마찬가지구요. 무인 자체가 드문 곳이라 봤다면 이를 기억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테지요. 또··· 환현 쪽에서 검정 무복에 비틀거리는 무인을 봤다는 초자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

“환현?”

“예···, 뭐, 섬서까지 계속해서 수색을 넓혀보려 했지만, 중간에 산을 탔는지 아무런 행적이 나오진 않더군요. 그게 끝이었습니다.”

환현이라는 말에 정문은 그만 입을 닫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사문을 나간 무인은 중원을 떠돌 것이라, 사람들은 그렇게 예상한다. 하남과 안휘, 호북과 섬서까지.

흔히들 작은 의미로 부르는 그 중원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중원을 떠돌던 무인이라면.

환현이 아닌, 섬서의 동천을 지나거나, 바로 평량의 남쪽에서 공동산으로 들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평량에서 환현으로 나가는 방면의 길은 오로지 한 용도로만 쓰였는데.

황도. 즉, 감숙에서 북경 쪽으로 향하거나 북경에서 감숙으로 오는 이들이 주로 드나드는 도시가, 환현이었다. 몽골 사막으로 가는 길도 있었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그리로 가는 이는 없었고.

‘또 황궁인가···’

이 몸의 과거가 점점 황궁과 가까워지고 있다. 예단하지는 않는다. 경우야 모두 따지고,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결론을 내리는 게 정문이니까.

하지만, 일전에 묵룡자를 죽인 후, 달뢰라마가 불어 넣어준 불기로 토해낸 사령충 역시 금의위에서 사용하던 고독의 일종이다.

이정문이라는 무인의 과거를 쫓으면, 쫓을수록.

점점 황궁에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거북한, 정문이다.

‘아니지, 아니지. 환현이 꼭··· 북경만 가라는 법도 없고···, 그래 몽골 사막···도 있고, 그래···’

자신의 머리에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을 지우려 애써 머리를 터는 정문. 사령충의 사례가 있어 자신이 환현을 황궁과 연관시킨 거라, 그렇게 생각하며 정문은 생각을 가다듬는다.

“그게 전부인 거지?”

“예. 거기까지 알아보던 즈음에···”

“산화사괴가 나타났던 거군.”

“맞습니다.”

자신이 얼른 사풍을 꾀어내지 않았다면, 사풍이 조금 더 이정문의 과거 행적에 다가서진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정문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과거보다는.

지금이 중요하니까.

“더 알아보라고 하시면···, 지리에 익숙한 사제들에게 연통을 넣어보겠습니다.”

“아니, 됐다. 기억이야 차차 돌아오겠지. 그걸 찾는다고, 지금 크게 달라질 건 없잖아?”

“···예, 사형.”

사풍은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선다. 이미 바뀔 건 다 바뀐 다음이니. 공동의 누구도, 아니. 지금의 정문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정문이 사라졌던 그 2년에 관심을 주고 있지 않으니까.

‘나중에 따로 알아봐야겠군.’

정문 본인만큼은 이 일에 관심이 분명 있다. 하지만, 이는 공개적으로 찾는 것보다, 흑시창이나 개방을 통해 따로 수소문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이득일 것이다.

사제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적당히 사무를 보는 대형을 갖추는 사제들. 무인들에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아 이들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려던 무렵.

- 드르르륵. 탁.

정문의 집무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등장한다. 그것도, 둘씩이나.

“소가주···, 아니지. 이제는 맹천검대(盟天劍隊), 대주라고 불러야겠군요.”

“아직 어색합니다. 편히 불러주시지요.”

한 명의 무인은 정문과도 제법 관계가 좋은 검수,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수룡이다.

수룡은 정문과 자정을 도와 맹에 남기로 했다. 남궁세가 출신의 무인들이 제법 다루기 어려웠기에, 수룡은 이들을 맡아 무림맹 무사대의 대주가 되었다.

물론, 다른 의도도 있어 보였지만.

“야, 양도장께서도 오랜만입니다···”

“어머, 남궁 대주. 우리 어제도 봤는걸요?”

‘우리··· 라고 했다···’

일시에 붉어지는 수룡의 얼굴. 수룡은, 요즘 들어 명화의 얼굴이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거리는 중이다.

“···매, 매일 뵈어도··· 반갑습니다···!”

!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수룡의 말이 명화에게 수줍게 향하던 그때.

“수룡 오라버니. 좀 비켜봐요!”

거칠게 수룡을 밀며 집무실로 들어오는 다른 인물이 있었으니, 사천당문의 여식, 당소정이다.

“무정검! 잘 지내셨죠?”

소정은 무림맹 내에서 첩보와 죄인 신문, 그리고 암기술 및 독을 다루는 무사대에 조언하며 무림맹에 상주하고 있다.

“당소저···, 여전히 밝으십니다. 오늘은 또 어쩐 일로···?”

무림맹을 열며 이미 서로 인사를 나눈 사이인 정문과 당소정. 정문은 그저 당문의 여식이니 예를 갖춰 당소정을 대하려 했으나, 그녀의 성격과 마주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예비 신랑?

정문을 보며 까딱하는 고개로 당소정이 처음 뱉은 말이다. 일전에 조천문에서 봤을 때는 공식적인 자리라서 얌전했던 당소정.

그런 그녀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정문과 인사하자, 다짜고짜 저런 말을 꺼내며 정문의 말문을 막았던 것이다.

천기를 읽고 무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정문이다. 그런 정문에게도 저런 여인의 태도와 속내는.

감히 읽기 어려운, 무지의 경지였다.

“각시가 신랑 찾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요, 뭐. 놀러 왔죠.”

!

“그, 가, 각시란 말은! 신랑도···!”

“뭐 어때요? 예.비.를 붙이면 그만인데. 나중에 안 할 수도 있는 거죠.”

당신 혼삿길은 생각하지 않냐는 말을 당소정에게 뱉어주고 싶었지만, 이 역시 창의적이고 직설적으로 뱉어낼 소정이기에 정문은 꾸욱 참기로 한다.

“···도사에게···”

“공동은 비혼도(非婚道)였나요?”

소정은 눈치가 빠른 여인이다. 적어도 사람의 관상이나 태도를 보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빠르게 알아내는 시선을 가졌다는 말이다.

그런 소정의 눈이 향한 곳은.

올곧기로 유명한, 진명이었다.

“가능은 합니다만···, 여기 제 사제의 조부님께서 태상장로시기도 하시고···”

“그럼 됐네요. 뭐가 문제죠?”

“······.”

보통 이럴 때는.

유일한 여성인 명화가 나서서 이들을 지켜줘야 한다.

하지만, 명화는.

“맞아요! 당 언니! 아무-! 문제없어요! 언니 같은 분이랑 혼인하면 사형은 복 받은 거죠!”

이미 당소정에게 넘어간 지 오래다.

어린 나이에 도문에 보내져 사내들과 지내왔던 명화다. 맹 내에서도 젊은 여자가 별로 없는 상황에 둘이 가까워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명화는 말도 참 이쁘게 하지. 명화야. 나중에 언니 방으로 오렴. 본가에서 짐을 보냈더구나. 장신구가 너무 많아. 명화에게 어울리는 걸 같이 찾아볼까?”

“와아! 좋아요! 당 언니 최고!”

아무래도 당소정이 당문 내에서도 최고라던 그 ‘기술’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이든, 사람을 다루는 기술인 모양이다.

“그저, 식사 후 가벼운 차담이나 나눌까 하는 마음에 찾았습니다. 시간이 허락하신다면, 함께 하시지요.”

수룡은 소정과 정문의 대화를 지켜보며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정문에게 보내준다. 자신 역시 다 겪어봤던 일. 그런 수룡이 요즘 부쩍.

가깝게 느껴지는 정문이다.

“물론···, 양 도장, 아니. 사제분들도 같이···”

아. 이놈도.

목적이 순수한 놈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 무림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고수들이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다들 바쁠 무림맹 내에서 누군가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당연히, 정문의 방 역시 마찬가지.

- 다다다다다다다.

- 드르륵. 탁!

“급보입니다! 무정검···! 남궁 대주도 계셨군요. 잘됐습니다.”

“뭡니까? 발소리가 제법 많던데.”

“다들 중진들을 향해 달려가는 중일 겁니다. 전서각에 날아온 서신이 예사롭지 않아···”

예사롭지 않은 소식이란 말에 일시에 변하는 무인들의 표정. 조금 전 농담을 주고받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제법 진중한 표정이 이들의 얼굴을 채운다.

“말씀하시지요.”

정문은 담담한 표정으로 얼굴을 고치고 보고를 듣는다. 손으로 서신을 하나 건넨 무인이 무릎을 꿇더니 거친 목소리로 보고를 뱉었다.

“사파 놈들이 움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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