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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23화 (123/153)

123. 사천련.

“맹주님!”

정문과 남궁수룡, 그리고 당소정이 맹주실로 뛰어들며 자정을 바라본다. 급보를 받고 그대로 달려온 이들의 안색이 그리 편하지는 않다.

“무정검. 그리고 남궁 대주와 당 소저. 다들 급한 일인 건 알지만, 예의들은 지키시게. 여긴 맹주실이네.”

그런 그들을 꾸짖는 건 무림맹에서 정보를 다루는 중책을 맡은 개방의 장로, 오봉학이다.

“예를 갖추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파라는 말에 그만···”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후기지수들이 저마다 자정을 향해 포권하며 고개를 숙인다. 오봉학이 일러줘서 느꼈지만, 자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무례였다.

“다들 고개 드시게. 맹의 일을 중히 생각해서 그런 것들이니.”

자정은 이들의 고개를 들게 하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무언가.

심각한 표정이 자정과 오봉학의 얼굴을 오간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사파 놈들이 움직였다니요?”

“흠-. 자네도 예상했지 않나? 이즘에서 저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만해문(瞞害門), 악영방(惡影幇), 금의파(金意派), 초산주가(楚山周家), 수화도(秀花島) 등 다수의 사도 문파의 중진이 모습을 감췄네. 그것도 한날, 한시에.”

!!

정문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대형 사도 문파의 이름에 눈을 크게 뜨고 만다. 강남 내에서도 세력이 작지 않은 이들의 중진이 한날한시에 사라졌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문이 모르지 않는 것이다.

“회합입니까···?”

“역시 총명하군.”

오봉학은 자정의 앞에 놓인 보고 서류를 정문에게 건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확실하진 않네. 그저 강남 쪽에서 들려오는 풍문에 중경에서 사파인들의 회합이 있을 거라는군.”

“중경이라···”

중경이란 말에 머리를 돌리던 정문이 눈을 크게 뜬다. 무언가 불안한 이름이, 그의 머리를 스친 탓이다.

“사천련···?”

사천련(肆天聯).

한때는 마교와 함께 정도 무림을 궁지까지 몰아넣었던 그 이름을 말이다.

“역사에도 해박하니···, 늙은 거지가 할 일이 없어지는군.”

“잠깐만요! 무정검. 그리고 노개. 사천련이 뭐죠?”

당소정은 많은 단어를 생략하고 대화를 나누는 오봉학과 정문 사이를 끼어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 둘이 나누는 대화의 맥락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흠-. 이제는 그 이름이 잊혀질 시기가 된 것인가.”

“정마대전보다 먼저 있었던 정사대전입니다. 아는 게 신기한 것이죠.”

정문은 무심코 오봉학에게 장단을 맞췄으나, 오봉학의 시선은 그럼 너는 어떻게 아냐는 듯한 눈빛으로 변했다. 뭐, 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사천련은 한때 정사 대전을 이끌었던 사도 무림의 연맹체일세. 간단히 말하면···, 사파인들의 무림맹이라 보면 되겠군.”

“아직 확신할 순 없는 거 아닌가요? 그저 그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당소정은 확신하듯 말하는 오봉학을 보며 조금은 조심스러운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다른 곳에서 나온다.

“중경을 향한다는 풍문 역시 함께 있지 않소? 중경은···, 정사 대전 당시 사천련의 본부가 있던 곳이오.”

“그, 그럼···? 정말 사천련인가 하는 단체가 세워진다는 뜻인가요···?”

“당 소저. 아직 정해진 건 없소. 그저··· 모든 정보가···, 한 곳을 가리킬 뿐.”

정문은 표정을 굳히고 오봉학과 눈을 맞췄다. 전해진 모든 정보가. 둘의 머리에서 같은 결론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사라진 이들의 수는 어떻습니까?”

“적지는 않네. 가장 많은 이들이 움직인 곳은 만해문. 나머지는 그저 중진들일 뿐이지.”

“중진들이 한시에 움직였다라···”

“관부 역시 이들을 찾아 나선다는 말이 있으니, 믿어도 좋을 정보일세.”

사파 역시 무림의 문파 중 하나이다. 관무불침에 따라 당장에 그들을 사파란 이유만으로 잡아넣는 관부는 아니지만, 언제나 시선은 그들에게 고정하고 있는 법.

관부 역시 움직였다면, 이들이 어디론가 모습을 감춘 것이 사실일 것이다.

“무정검.”

“예, 노개.”

“이 늙은 거지의 생각으로는 움직여야 한다고 보네만.”

“···저 역시 그러는 것이 좋다고는 생각합니다. 다만···”

정보가 너무 적다. 정문은 그런 말을 하며 생각할 시간을 벌고 싶었다.

“노개. 혹, 움직이신다는 말씀은 전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수룡은 적절히 맥락을 따라가며 둘이 나누는 이야기가 풍기는 분위기를 잡아냈다. 저 둘이 하는 말은. 곧 무사들을 움직여 중경으로 향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말일 것이다.

“꼭 전쟁은 아니더라도···, 맹 차원에서 압박은 있어야 한다고 보네.”

“압박이라시면···?”

“무력시위겠지.”

오봉학은 눈썹을 굳히며 덤덤하게 말을 끝냈다. 정갈하게 굳힌 그의 눈빛이, 곧 출정을 앞둔 무인에게 퍽, 잘 어울렸다.

“맹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룡은 그런 오봉학에게서 시선을 떼어내 자정에게 시선을 둔다. 의견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맹에서 모든 결정은. 자정의 손을 타야만 한다.

“위험이 될 요소는 줄이는 것이 맞다고 보네. 서역과 서장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니. 서역이 중원을 침공하기 전에 서장을 노렸던 이유를 생각해봐야겠지.”

“후방에 적을···, 견제해야 하는 거군요.”

“그게, 내 생각일세. 물론 정문의 생각도 들어보고.”

자정은 마지막 말을 하며 진하게 미소를 띤다. 마치, 정문의 생각이 곧. 자정의 결정이 될 것처럼.

“흠, 독이랑 이것저것 챙겨야겠네요. 말씀들을 들어보니···, 꼭 해야 하는 일 같기도 하구요. 이참에 확! 쓸어 버리자구요!”

당소정은 여러 말을 듣더니, 이내 무림맹이 중경을 견제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한 것 같다. 조금은 살벌한 그녀의 눈빛이 방 안을 채웠다.

“우선···. 조금 더 시간을 벌 수는 없는 겁니까?”

“무정검. 아쉽게도 시간이 얼마 없네. 저들이 사천련을 만들든, 그렇지 않든. 우선은 그에 맞춰 우리 역시 중경 근처에 자리를 잡아야 일이 쉽지 않겠나?”

“강남 쪽 정보 수집에 어려움이 있으시다더니, 사실인 모양이군요.”

“부끄럽지만 그렇네. 무림맹이 창설된 이후로는 특히나 어려움이 많다네.”

원래라면, 이런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될 정문이다. 강남 쪽 정보야 개방보다 흑시창이 앞설 거고, 흑시창은 정문에게 정보를 잘 전달해 주는 이들이니까.

하지만, 요즘 흑시창이.

예전 같지 않다는 문제가, 정문의 발목을 잡았다.

‘조륜이 자리를 비웠다던데···’

조륜은 정문이 무림맹으로 떠나기 전 평량을 떠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흑시창의 감숙 지부 역시 약화된 것이 사실.

무림맹의 본부가 있는 곳이니, 개방에게 자연스레 밀려난 것이겠지만, 정문은 한동안 흑시창의 정보를 받지 못해 불편함을 겪고 있다.

정보를 다루는 자는 한정된 정보 아래에서 가장 큰 고민을 하는 법이다. 정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이런 상황에 놓이는 것.

모인 정보는 한곳을 향해간다. 이는 좋은 움직임일 것이다. 다만, 모인 정보가 너무 적다는 사실에. 정문은 쉬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밑져야 본전이 아니겠나? 어차피, 서역과 충돌하기 전에 한 번쯤은 강남 지역에 엄포를 놓아야 함도 분명하고.”

오봉학은 그런 정문을 차분히 설득한다. 맹주와 자신의 뜻이 맞은 상황에서, 정문만 결단을 내린다면, 당장에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

“···좋습니다. 우선 중경 말고, 섬서로 가시지요. 맹의 병력은 섬서와 중경의 경계에 두는 거로 하고요.”

“흠-. 좋네. 그리고 난 후에는? 진격할 준비를 마치라 명을 내릴까?”

“우선은 대화로 푸는 방향도 생각해야 합니다. 온전한 병력을 남겨 서역에 대항하는 것이 일차 목표이니.”

“저들이 대화를 하려 하겠어요? 무정검. 생각보다 평화적인 분이시네요?”

당소정은 대화를 논하는 정문을 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본다. 그간 강호에 떨쳤던 그의 명성이 제법 살벌했던 것을 상상하면, 의외의 결정이긴 할 것이다.

“저들이 움직이는 이유를 생각하면, 당연한 안배일 것이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저들은 우리 때문에 움직이고 있소. 생각해보시오, 그간 반목하고 서로를 헐뜯기만 하던 사파 놈들이 갑자기 연합을 이루려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소?”

“무림맹이 생겼기에···, 대항한다?”

“그렇소. 전쟁을 원한다면, 더 빨리 뭉쳤을 이들이오. 이제야 뭉친다는 말은, 저들 역시 덩치를 불려 우리와 체급을 맞추겠다는 뜻. 대화란···, 크기가 비슷해야 가능한 일이니.”

맞는 말이다. 소정의 머리에 처음 든 생각은 그러했다. 하지만, 정파의 무인이 뱉기에는. 조금은 불손한 말이라는 생각도 소정의 머리에 함께 스쳤다.

“당문과 무당, 화산과 종남에 연통을 넣겠네. 그들 역시 무인들을 중경 쪽으로 배치해달라고 말일세.”

“좋습니다. 우리 쪽 수가 많을수록, 저들에게는 압박이 될 터이니.”

“맹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 분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맹약이든, 전쟁이든. 등 뒤에 적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본도의 생각이니.”

“그럼, 이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준비가 마치는 대로. 맹주께서도 바로 움직이셔야 할 겁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오봉학은 자정을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방을 나선다. 각 문파에 연통을 넣고 무사대를 정비해 출정을 준비하려는 오봉학이다.

“흠, 저들이 대화에 응할지가 문제겠군요.”

수룡은 오봉학이 나간 방에서 고민이 깊은 얼굴로 정문을 향해 질문하듯 혼잣말을 속삭였다.

들으라는 말인 만큼.

정문은 바로 그 말을 귀에 담았고.

“만약 모든 정보가 사실이고···, 또 사천련의 발호가 사실이라면. 대화는 쉬이 끝날 겁니다. 저들 역시 큰 충돌은 바라지 않을 거고 많은 문파들이 압박에 힘을 보탤 것이니.”

“각 문파에 연통을 넣는 이유도 그것이군요.”

“예, 어쨌든 위세가 제일 중한 것이니.”

“저도! 저도 연통을 넣을게요! 걱정 마요! 사위가 부탁한다는데, 가주님이 통 크게 지원하지 않겠어요?”

“가, 감사하오만···, 사위는···”

“크흡-!”

당문의 여인 입에서 나온 사위라는 말에, 자정이 크게 기침하며 말을 끊어 버린다. 공동의 대를 끊고 싶지 않은, 자정이다.

“해서···, 정문은 일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표정이 영 좋지 않구나.”

“모은 정보가 적은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시기가···”

적절하다.

정문은 그렇게 말하려 했다.

정보는 시기와 만나 그 신빙성을 높이곤 했는데, 지금 시기가 딱. 사파가 움직이기 좋은 시기인 것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정도 무림이 무림맹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만들었고 이들은 대부분 장강 이북에 위치한 문파들로 이루어져 있다.

당장에 그 맹의 맹주라는 무인도 사파의 인물을 베어 명성을 떨친 이들이고, 또 맹주의 문파는 청해의 사파와 전쟁을 벌여 명성을 높인 이들이다.

사파인들이 긴장해 움직이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시기란 말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도 맞습니다. 오장로의 말씀처럼요. 지금은 움직여도 잃을 게 없습니다.”

“맹을 비우며 서역 쪽에 더욱 방비를 단단히 하라 일러야겠구나. 혹시 모를 일이니.”

“그거면 충분할 겁니다, 맹주님.”

정문은 적은 정보임에도 적절히 맞물리는 이 시기에 뜻을 두어보기로 한다. 정보를 더는 수집할 시간도, 인력도 없는 지금.

정보와 맞아떨어지는 시기만이, 이를 검토할 유일한 증좌일 테니까.

“돌아가, 준비를 마치거라. 준비가 끝나는 대로, 맹을 떠나 섬서로 향해야 할 것이다.”

자정은 근엄하게 결의를 다지며 이들을 물린다.

문을 닫고 맹주의 집무실을 나서는 이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집무실로 향하는 정문의 눈으로 난주 저 멀리, 동북 방향의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다. 그렇게 애써 생각을 고치는 정문.

아무래도 이런 시기에 감숙을 비우고 잠시 떠나는 것이 영 마음이 편치 않은 정문이다.

걸음을 멈춘 정문이 시선을 거둬 앞으로 향한다.

그래, 괜찮을 거다.

자신과 맹이, 그리고 자정이 감숙을 비워도.

감숙에는, 공동이 있으니까.

정문은 그렇게 생각하며 집무실로 걸음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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