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26화 (126/153)

126. 금의위 위사.

평화로운 나날이다.

평소처럼 갑자기 대문을 걷어차고 들어와 집합을 시키는 도인도 없고, 또 그런 도인이 일으키는 사건 역시 이곳과는 무관한 그런 평화로운 나날.

개방의 육결개이자, 호연신개(浩然新丐)라는 이명으로도 유명한 거지, 홍구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에 몸을 누였다.

자신은 어쩌다 이곳, 감숙성의 평량에 와서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홍구는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하며 가끔은 신세 한탄에 가까운 말을 내뱉고 있는 와중이다.

차기 방주 후보로까지 거론되며 개방의 실세 오봉학의 밑에 있었던 홍구였다. 새롭게 문을 여는 개방의 평량 분타에 그가 오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고.

하지만, 자신을 키워주겠다던 오봉학은 어느새 무림맹에 중책을 맡아 난주로 떠나버렸다.

개방의 분타가 사라진 것도 그쯤.

늘 평량에서 사건 사고를 기획하던 인물 역시 난주로 떠났으니, 평량에 더는 분타를 둘 이유가 어디 있겠나.

그래도 평량은 무림맹의 중추를 맡은 공동파가 있는 곳이다. 개방은 별다른 목적 없이, 그저 연락소의 용도로 작은 거지촌만 하나 남겨둔 채, 평량에서 손을 떼어 버렸다.

끈 떨어진 연.

그런 신세가 되었다는 홍구의 말이 홍구의 입을 자주 탄 것도 그쯤이다.

뭐, 애를 쓰면 또 무림맹에서 거둬줄지 누가 알까. 주변에서는 노력을 해보라는 말을 자주 했었으나, 어디 노력하면 그게 거지인가.

홍구는 그런 생각에 그저 이런 평화로운 나날을 즐기며 거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중이다.

뭐가 가장 거지 다운 일일까.

오늘 홍구는 그저 길가에 누워 등을 땅에 대고 쪽박을 앞에 늘어놓았다.

길가에 드러누운 거지라.

이게 가장 거지다운 자세가 아닐까 하는 그런 낭만적인 생각과 함께.

땅은 침상이고 하늘은 이불이니.

여기가 거지의 집이고, 거지의 집은 만평이라.

그런 노래를 부르며 안빈낙도에 빠져 배나 긁던 와중.

해가 어스륵 진 저녁에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신형이 하나 지나간다.

홍구는 사람이 골목을 지나감에도 아무런 구걸도 없이 그저 쪽박이나 발로 한 벌 스윽 밀어보고는 그대로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 쩔그렁.

제법 묵직한 돈 소리가, 홍구의 쪽박에서 들려온다.

“말씀 좀 묻겠소.”

영업을 알리는 소리.

돈 소리와 함께 들리는 저 질문은, 개방의 영업을 알리는 소리가 분명했다.

“뉘슈?”

아직도 적선할 인물이 평량에 있었나.

이미 평량 시내의 사람들은 다들 얼굴을 알기에 적선 대신 다른 걸 홍구에게 나눠준다.

돈을 쪽박에 넣는 사람은.

외부인이라는 말이다.

홍구가 몸을 일으킨다. 그의 눈앞에는 제법 고급스러운 피풍의(避風衣)에 삿갓을 눌러쓴, 칼 찬 무인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그의 기도가. 제법이다.

홍구는 허리에 묶인 포대를 슬쩍 뒤로 밀며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는다. 쪽박을 내려다보는 홍구의 눈.

역시나. 기대했던 것 이상의 수입이 홍구를 향해 손을 흔든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대협.”

일시에 바뀌는 그의 말투. 한때는 개방의 차기 방주라 불렸던 인물의 영업력이. 예사롭지 않다.

“공동파 태청궁의 개폐시간이 어떻게 되오?”

무인은 별다른 인사말도 없이 그대로 자신의 물음을 던진다.

홍구는 그런 무인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태청궁의 개폐시간이야, 개방을 통하지 않아도 평량의 누구나 아는 것. 그걸 굳이 개방까지와 돈을 주고 사다니.

어쩌면, 세상 물정 모르는 무인이 하나 걸린 게 아닌가. 홍구는 그런 생각에 속으로 웃고 있었다.

아.

겉으로도.

“히히···. 크흡.”

흐르는 침을 겨우 닦으며 표정을 갈무리하는 홍구. 그가 잔뜩 어깨를 펼치고 근엄한 표정을 한 번 짓더니 이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구파일방의 정보라···. 과연 묵직한 대가를 치른 이유가 있었구려. 흐읍. 뭐, 이게 아무에게나 주는 정보는 아니외다만···”

“그럼, 다른 곳을···”

무인은 말을 끄는 홍구의 앞에서 쪽박으로 손을 향했다.

“대협께는 꼭 드리겠다는! 그런 말씀이지요. 허허허.”

그제야 서둘러 답하는 홍구. 삿갓으로 가려진 무인의 얼굴이 왜인지 찡그려졌을 것만 같다.

“묘시에 열어 술시에 닫습니다. 그 외에는 출입이 불가하고.”

“도인들 역시···, 그 시간에는 출입을 금하는 거요?”

“정확하오. 평량에 내려온 도장들 역시 그 시간에는 산으로 돌아간다오.”

“그렇군···.”

무인은 삿갓으로 가려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무인의 면면을 살피는 홍구.

“흠-. 맹에 지원하러 온 무인이오? 형장의 기도가 제법이구려.”

홍구는 그를 향해, 평범한 거지나 해볼 만한 그런 말을 건넨다.

“제법이라···. 어떻게 한자리 얻을 수 있을 거 같소?”

“역시! 공동산에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구먼!”

사내는 삿갓 아래로 보이는 입으로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무인들이 많다더니, 사실인 모양이다.

“글쎄. 청탁을 쉬이 받는 이들은 아니라서 말이오. 차라리 맹에 직접 가보는 건 어떻소? 거기 무정검이라는 놈이 나랑 형, 동생 하는 사이인데. 뭐···, 내 잘 말해줄 수도 있고.”

“무정···검?”

“무정검은 아시는 모양이오? 참. 허. 하기야 놈의 명성이 제법이라는 말은 나도 들었소이다. 그게 다 내가 가르친 건데 말이지.”

홍구는 세상 물정 몰라 보이는 사내를 향해 허풍을 잔뜩 떨어본다. 그리고 그런 홍구의 허풍을 듣는 사내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

진하게 웃는 사내의 입꼬리. 삿갓에 가려져 입술 위로는 보이지 않으나, 진하게 웃고 있음이 분명했다.

“무정검과 친한 모양이오?”

“아. 아주 친하지. 놈의 명성이 칠 할은 내 덕이니. 허허허. 어찌, 쪽박이 조금 더 무거워지면···, 내 소개장 정도는 써주리다.”

자신 있게 말하는 홍구의 앞에서 사내가 주변을 살핀다. 아무도 없는 거리.

지금 칠까. 그런 생각을 하려던 그가. 잠시 단념하고 말을 더 묻는다.

“헌데, 개방의 분타가 이 근처에 있다던데?”

“허, 개방에도 연을 대실 생각이오?”

“그건 무리겠소이까? 연도 대고···, 또 급히 보낼 전서가 있어서. 형제께서 안내해주시겠소?”

“아쉽게도 분타는 없소이다. 난주에 원래 쓰던 분타가 있기도 하고, 무림맹도 있으니. 난주와 가까운 평량에 분타를 또 두어 뭣 하겠소? 그저 연락소만 남겨두었소.”

“흠, 그렇소?”

“아, 그렇다 말다! 해서 내가 분통 터지는 거지! 응? 평량 분타가 있을 때만 해도 잘나갔는데 말이지. 지미럴. 무림맹이 갑자기 뭐람.”

“연락소는 어디 있소?”

“거, 안내는 해드릴 수 있는 데···”

연락소가 어딨냐는 말에 홍구가 몸을 일으킨다. 쪽박을 꼭 품에 챙겨 자리를 터는 홍구.

“같이 갑시다. 내 안내하리다. 대신···.”

- 탁탁.

홍구는 손으로 동그란 모양을 만들며 쪽박을 탁탁 치기 시작한다. 뼛속까지 영업력이 가득한. 그야말로 거지의 모습이다.

해가 지고 달이 밝히는 평량의 거리를 거지와 사내가 함께 걸어간다. 거지가 조금 앞서서 길을 안내하는 모양새지만, 강호에서는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풍경이다.

“헌데 말이오. 형장은 무림맹에 어떤 자리를 지원할 생각이오?”

“···그것까지 아셔야 하오?”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외다만. 알면 또 내가 힘을 써줄 수 있지 않겠소?”

“···그저 무사대. 무사대면 그만이오.”

“무사대라···. 보자아. 흠. 근본은 어디 가지 않나 보오.”

- 씨익.

홍구는 그런 무사대란 말에 입을 찢으며 웃어 보인다. 멈춰 선 홍구의 옆으로, 사내가 지나간다.

무사대는 무인의 근본.

그런 뜻일까.

사내의 머리가 잠시 그런 고민을 할 때.

삿갓 너머로 담벼락이 끝나는 풍경이 사내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건, 개방의 연락소로 가는 길이 아니다.

사내는 이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산으로 향하는 흙길이. 그저 사내의 발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거지가 산에···?’

동냥하는 거지가 시내가 아닌 산에 산다라.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는 사내다.

- 척.

사내는 피풍의를 휘날리며 뒤로 돌아섰다.

“속였구나!”

뒤로 돌아선 사내의 눈에는. 이미 쪽박을 내려두고 허리에 손을 올려 죽봉을 뽑아 든 거지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 턱! 턱!

홍구는 죽봉을 든 손으로 연신 주먹 감자를 날리며 사내를 조롱한다.

“금의위 놈에게 자리를 줄 무림맹이 아니다, 이놈!”

!!!

“어, 어찌?”

“지미! 개봉에서 오 년! 북경에서 칠 년을 동냥한 몸이시다. 어찌 금의위 위사놈들의 암행복을 모를까! 이런 무식한 변화도 없는 수구(守舊) 놈들! 나름 명문 거지의 길을 걸어온 이 몸에게 그런 위장 따위! 또 거지새끼들이 연락소가 어딨느냐? 븅신-. 거지가 그대로 연락책이지. 아주 무림인이 아니라고 소리를 치고 다니거라!”

- 휘이익!

홍구는 말과 함께 죽봉을 휘두르며 전투 준비를 마친다. 한 손으로 검결지와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 명치에 올리고 죽봉으로는 바닥을 짚으며 상대와의 거리를 재는 홍구다.

“그래···, 과연 개방은 개방이라 이건가···?”

“어디 금의위 위사 놈도 ‘과연’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구나. 이놈! 황궁의 개가 무슨 일로 평량에 들었느냐? 개방과 공동파는 왜 염탐질이고!”

“···그래, 어차피.”

사내는 자신을 향해 악을 쓰는 홍구를 보며 입술을 질끈 물었다. 조금은 홍구의 말빨이. 그의 귀를 귀찮게 하는 모양이다.

“다 죽일 생각이었다.”

말과 함께, 검정 피풍의 사이로 사내의 검이 빛을 발한다.

- 쇄애애앵!

- 깡! 깡! 깡!

자신을 향해 죽일 듯이.

정말 말 그대로 죽일 듯이 달려드는 검초를 홍구는 철심이 박힌 죽봉으로 막아낸다.

개방의 절기인, 타구봉법(打狗棒法)이 검로를 막아선다.

‘일반 위사는 아닌 거 같은데···’

홍구는 몇 번의 공격을 주고받으며 상대의 무위를 가늠한다. 절제된, 그리고 정확히 급소만을 노리는 금의위 특유의 살초가, 홍구의 명줄을 노리고 들어왔다.

‘타구봉법(打狗棒法) 악견난로(惡犬攔路)!’

몸을 뒤로 접은 홍구가 품에서부터 짧은 타법으로 봉을 뿜어낸다. 그리고 뻗어진 봉은 이내 수많은 가지로 변하며 상대를 난타하는, 그런 투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좌, 우.

상, 하.

무공을 모르는 자가 본다면, 그저 난타로 보일 초식이 위사의 변화무쌍한 검과 부딪힌다.

- 까아앙!

결과는 동수.

사내의 변초는 홍구의 타구봉법을 뚫지 못했다. 그럼에도.

“허억···, 허억···.”

“······.”

물러선 두 무인의 모습은 제법 비교가 된다.

“몸이 무공을 못 따르는군.”

“지랄!”

홍구는 위사의 말에 흥분한 듯 몸을 앞으로 날린다. 흥분한 건 아니다. 그저, 개를 잡으려면, 개를 속여야 할 뿐.

홍구의 봉이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떨어진다. 그리고 왔던 길로 회수되는 봉. 봉은 다시금 반대로 비스듬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全)이라는 글을 쓰듯 봉식을 펼치는 홍구. 그의 봉이 반대 방향으로 다시 내려오려 할 때.

- 탓! 탓!

위사는 그런 전자결(全字結)의 가운데로 몸을 던진다. 철심이 박힌 죽봉이. 사내의 얼굴, 바로 앞을 스친다.

‘이, 이 미친놈이!’

쇠봉이다. 겉은 죽봉이라도 그 본질은 쇠봉이라는 말이다. 헌데, 그 쇠봉이 움직이는 투로에 머리를 집어넣다니. 금의위 위사는 목숨이 두 개란 말인가.

‘에라, 그냥 죽어봐라!’

홍구는 여전히 전(全)자의 가운데에 있는 위사를 향해 죽봉을 휘두른다. 여기서 봉을 거둔다면 자신이 다칠 것이다. 홍구는 그런 생각에 눈을 딱 감고는 그대로 봉을 내리쳤다.

하지만.

- 까아아앙!

- 푸욱!

홍구의 봉은 수박을 깨트리는 소리를 발하지 못한다. 무언가 경쾌한 소리를 기대했던 홍구의 귀에는. 조금은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눈이 봉 끝에 닿는다. 봉은 그대로 땅을 때렸고, 그래서인지 손끝이 저릿하다.

그리고 느껴지는 또 다른 건.

무언가 뜨뜻한 기운이 자신의 복부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딱 몇 번.

살면서 몇 번을 느껴본, 그런 뜨뜻한 기운이다.

아마, 아래를 보면 시뻘건 물도 묻어 있으리라. 홍구는 그렇게 생각하며 찬찬히 고개를 내렸다.

역시나.

이제는 입으로도 나오겠지.

- 주륵.

홍구의 하복부는 위사의 검에 찔려 시뻘건 피를 내빼고 있었다.

“지미-. ‘과연’ 금의위구나.”

홍구는 자신의 코앞에서 복부에 박힌 검을 쥐고는 비릿하게 웃는 사내의 얼굴을 바라본다. 삿갓 아래로 보이는 그의 얼굴이 잘생기진 않았다.

“죽여, 시펄-. 쿨럭.”

“다른 거지들은···, 어디 있지?”

“말-. 하겠냐?”

“말하면 살려주마.”

“······.”

“그저 연통을 끊으려는 것이다. 무인도 아니고 군인이니. 약속은 지키겠다. 그저 조용히 산다고 다짐만 하거라.”

진심일까.

홍구의 얼굴에 고민이 아린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보며 또 비릿하게 웃는 사내.

고개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진 홍구의 입이,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거지들의 위치를 말하려는 것일까.

사내가 승리를 확신하려 할 때.

홍구의 고개가 들린다.

그리고 열리는 홍구의 입.

“퉤에에에에엣!”

잔득 끌어모은 홍구의 가래침이 사내의 얼굴을 향했다. 내기가 조금 실렸지만, 위협적이진 않을 정도.

사내는 너무나 역한 그 가래침에 얼굴을 적시기 싫어, 한 손을 들어 이를 막고 말았다.

“뒈져라, 이 새끼야!”

홍구는 사내의 손이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 우수를 들어 장법을 사내에게 날린다. 죽봉을 바닥에 내려놓아 비어있는 홍구의 우수였다.

- 쿠오오오오오오오!

용이 울부짖는 것과 같은 파공음이 사내를 덮친다. 귀까지 조금 따가울 정도의 그런 기파.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의 항룡유회(亢龍有悔) 초식이 사내를 향했다.

- 쩌어어어어어어어어엉!

사내는 가래침을 막아낸 손이 아닌, 검을 쥔 손을 놓고 겨우 그 장법을 받아낸다.

강렬한 두 장법이 부딪히는 소리가, 평량 전체를 울리는 것만 같다.

- 스스스슷.

사내의 몸이 두 걸음 정도.

딱 그 정도 뒤로 밀려난다.

얼른 고개를 들어 앞을 보는 사내.

그의 눈앞에는.

장법이 부딪히는 반탄력을 이용해 십 보가 넘게 날아간 홍구의 비릿한 웃음만이 돌아온다.

어느새 위사의 검은 홍구의 몸에서 빠져, 자신과 홍구의 중간에 놓여있다.

‘저렇게 밀려날 정도의 내력은···’

싣지 않았다.

상대의 내력도 충분했고.

속은 것인가.

그런 생각이 사내의 머리를 스칠 때.

- 탓! 탓! 탓!

홍구의 발은 어느새 산을 향해 줄행랑을 치고 있다.

“어딜!”

위사는 서둘러 홍구가 달려간 숲속으로 뛰어간다. 핏자국이라도 남을 것이고, 또 숲길이라도 도심과 가까운 위치니 깊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하지만.

수풀을 뚫고 들어간 위사의 눈앞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았다. 그저 우거진 수풀과 나무들이 그를 반길 뿐.

홍구는 평량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미 이곳의 지리에 익숙하다. 산길이야 다르겠는가. 그간 무정검의 심부름을 하려 공동산을 뛰어다닌 시간만 얼마인가.

홍구는 거리를 조금 벌린 뒤, 서둘러 자신이 아는 길로 걸음을 내달렸다.

‘싯펄-! 졸라리 쎄네, 금의위!’

시리다. 아프고. 헌데, 거지가 어디 아픈 게 한두 번인가.

일전에 평량에 살던 모 도사에게 맞았을 때는 이런 칼침에서 느끼는 고통의 배는 느꼈던 홍구다. 어찌나 잘 때리던지.

이런 칼침 정도야.

홍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을 움직였다.

우선은 거지들을 챙기고 또, 다음은 무얼 해야 할까.

아니, 어디로 피해야 할까.

공동산? 난주?

홍구의 얼굴에 의문이 아릴 때.

- 평량이 개판되는 순간에 아주 개방 거지들 쪽박 깨지는 거야.

배에 난 검상보다 더 아픈 기억이 누군가의 목소리로 홍구의 머리에 울려 퍼진다.

‘마, 만약에 공동산에 알리지 않는다면···’

적어도 무정검은 지금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을 향한 피의 복수가 뒤따를 터. 홍구는 그런 생각에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달리던 산의 정상을 바라본다.

높이 솟은 취병봉.

아무래도 칼 맞은 몸으로.

저기를 올라야 할 거 같은 홍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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