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27화 (127/153)

127. 해보라지요.

“호연신개였나···.”

저릿해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금의위 위사는 중얼거리듯 말을 뱉었다.

이미 신형을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달아난 호연신개. 확실하게 명을 끊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금의위 위사였다.

- 스스슥.

“조장.”

그런 위사의 뒤로.

그와 복색이 비슷한 이들이 몇 명 더 신형을 나타낸다. 홍구가 악에 차 부르짖은 것처럼. 이들의 암행복이, 모두 닮아있다.

“모두 모였느냐?”

“예, 금의위 돌격조 조장 풍혁 휘하 사(四)인. 전원 평량에 모였습니다.”

“만해문의 무사들은?”

“평량 외곽에서 대기 중입니다.”

“어떻더냐?”

“장로 몇몇에 제법 고수라는 자들이 섞여는 있습니다만···”

“막내랑 비교하면?”

“감히 비할 바가 못됩니다.”

“흥. 그렇겠지.”

풍혁이라 불린 조장은 자신들의 무위에 자부심이 있는지, 한껏 건방진 태도로 콧방귀를 꼈다.

“해봤자 동네에서 칼 차고 거드럭 거리기나 하던 놈들이 무림인이다. 군부에 비할 바가 아니지.”

“맞습니다, 조장. 방금도 개방의 무림인이 꼬랑지를 말고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음···. 해서 일이 조금 복잡해졌다. 아무래도 도망친 놈이 개방의 후개, 호연신개인 모양이더구나.”

“호연신개라···. 일이 퍼질지도 모르겠군요.”

“서두른다. 하루 정도를 미루려던 것도 안 되겠구나. 당장에 일을 진행한다.”

“예, 조장.”

풍혁은 삿갓을 누르며 피풍의가 휘날리도록 몸을 돌렸다. 그를 따르는 넷 정도의 같은 복색의 무사들. 그들이 평량 외곽으로 가, 한 무리의 무림인과 조우한다.

“만해문의 무사들이오?”

“만해문의 장로, 고낙봉이라 합니다. 대인.”

비열하게 생긴 초로인이 올라간 입꼬리로 금의위 조장, 풍혁을 맞이한다. 고낙봉의 뒤로 준비된 만해문의 무사들을 살펴보는 풍혁.

나름 고르고 고른 선발된 무인들이 잔뜩 살벌함을 뿜어내며 전투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금의위에 비할 바는 못되겠지만, 흔히들 말하는 사파의 정예 정도는 되어 보이는 이들이다.

“일대제자와 이대제자. 그들을 맡아주면 되는 거요. 장로들은 우리 금의위가 맡을 것이니.”

“여부가 있겠습니까. 크크큭. 무정검과 맹주가 없는 공동파 따위야···”

“건방은 떨지 마시고. 개방의 호연신개가 변고를 알아챘소. 당장에 서둘러야 하니, 바로 일을 시작하겠소.”

“명을 내려주시지요.”

“오늘 밤···, 공동을 지우겠소.”

수상한 검영들이 공동산을 올랐다.

* * *

“오 장로를 뵙습니다.”

진명과 사풍의 고개가 동시에 내려간다.

정문이 자료를 처음부터 다시 보고 있는 그 방 앞에서 번을 서던 두 사제. 그런 사제들이, 정보를 싹 쓸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오봉학을 맞이하고 있다.

“처음부터 다시 살핀다지? 무언가 이상한 게 있는 건가?”

“저희도 잘 모릅니다. 그저 사형께서 분부하신 대로 자료를 가져다드렸습니다.”

“흠···, 들어가 봐도 되겠나?”

“상관은 없지만, 시간을 조금 달라는 말씀은 하셨습니다.”

이상한 일이다.

오봉학이나 되는 이가, 이립도 되지 않은 젊은 무인의 방에 들어설지 말지를 한참을 고민하니.

이는 알력이나 권력, 또는 누군가의 위세 때문이 아니다. 오봉학은 무정검의 머리에서 무언가 나오기만 한다면. 그게 무림맹에 이득이 되는 일을 알기에 이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 그뿐이었다.

“이거 참···, 이제 와서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무정검이 수상하다 여겼다면, 필시 무언가는 있는 것이다. 그게 무엇일지는. 전혀 감도 잡히지 않지만.

그렇게 오봉학이 정문의 방앞을 조금 서성거리고 있을 무렵.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놈들!”

!!

“방금 뭐라고···?”

“사형께서 뭔가 중얼거리시는 거 같습니다.”

“화를 내는 거 같았는데?”

“웃는 거 같기도···”

들은 이들의 반응이 저마다 엇갈려 갈 때.

“푸하하하하하하하! 이런 미친놈들!”

명확한 정문의 목소리가 똑 부러지는 발음으로 방문을 타고 넘는다.

“미친 거지! 암! 미친놈들이야!”

이제는 실성한 것처럼 대놓고 소리를 질러대는 정문. 오봉학은 더는 참지 못하고 정문의 방문을 열어버린다.

“미안하네만!”

- 덜컥!

“무정검!”

오봉학이 들어선 정문의 방안은 어지럽다. 우선은 수많은 서류가 책상과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또 커다란 지도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실성한 듯 고개를 숙이고 웃고 있는 정문까지. 오봉학은 서둘러 방안을 살피며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의 눈에 들어와 버리고 마는 커다란 지도.

!!!!!!!!

평범한 지도였다면 오봉학이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여러 지역이 표시된 그런 지도였다면.

하지만, 오봉학은 지도를 보는 순간 눈을 크게 떠버리고 말았는데, 그 지도에는 정문이 붓으로 손수 그은 기다란 선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해문에서 호북···, 호북에서 섬서···, 그리고···!’

평량.

공동산이 있는 평량에서 까만 먹은 그 명을 다하고 아래로 주욱 그어져 있을 뿐이다.

오봉학은 바보가 아니다. 눈치에 있어서는 강호에서도 한 손에 꼽힐 인물이 바로 오봉학.

정문처럼 정보를 다루던 자였으며 개방은 강호의 모든 소식을 쓸어 담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정보를 관리했던 오봉학의 머리는.

정문이 그려놓은 저 선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하, 함정인가···?’

함정.

제일 처음 떠오른 단어는 함정이다.

중경이라는 이곳에 모인 사파의 인물들과 사천련이라는 좋은 먹잇감. 그리고 지금이라는 딱 맞아떨어지는 시기까지.

이건, 잘 짜여진 함정이라.

오봉학은 본능적으로 이를 알 수 있었다.

“무, 무정검···, 설마···?”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 혹시나 아닐 수도 있지 않나. 그리고 자신의 기우가 사실이라면. 무정검이라는 저 걸출한 무인이 가만히 있겠나.

“···크크크크. 예, 노개. 설마가 맞습니다. 크크큭.”

아.

오봉학의 고개가 일시에 아래로 떨어진다. 무정검의 저 반응은. 오봉학의 머리에 스치던 그 불안한 생각이 맞다는 확인이 아닌가.

“구, 군사를 돌리세! 어서!”

공동산으로 가야한다. 오봉학의 머리는 그렇게 말했다.

안다. 대의를 위해서는 소의를 희생해야 함은.

무림맹과 정도 무림. 더 나아가 중원을 위해서는 군사를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여기에 있어야 함을.

하지만, 오봉학은 현실적인 시선 역시 함께 가진 인물이다. 만약 지금 공동파가 당해버린다면. 무림맹 역시 오래가지 못할 곳임을 오봉학은 알고 있다.

‘지금 무림맹 명성의 육 할은 공동의 명성! 이걸 잃는다면···’

당장에 무림맹의 창설과 운영을 누가 맡아왔나. 다른 누구도 아닌 공동파의 무정검과 자정이었다.

그런 이들이 사문으로 적을 둔 곳이 무너진다면.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림맹에서 발을 뗄 수밖에 없음을 오봉학은 아는 것이다.

무림맹의 구성 역시 그러하다. 남궁과 당문, 화산과 소림은 무정검에 의해 연줄을 대고 이렇게 긴밀하게 이어졌다.

오랜 시간 정도 무림 내에서 알력을 다투던 이들이, 서로 한발을 물러서며 누군가의 뒤에 서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이가, 바로 공동의 무정검이라는 말이다.

‘이건···, 고민할 가치도 없군. 서둘러야 한다. 다른 문파라면 몰라도···’

다른 문파라면 걱정이 심하진 않을 것이다. 만해문이라는 문파가 크기가 제법이긴 하나, 구파일방에 속하는 문파 역시 그 규모가 작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공동은 다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동과 비슷한 구파의 말석에 속했던 문파들은 다르다. 오봉학의 진심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요즘 강호에는 누구도 공동을 무시하지 못한다. 이건 누구나 인정하는바.

하지만, 그런 공동의 명성도. 무시하지 못한다는 공동의 위상도. 모두.

무정검이라는 무인이 공동을 이끌 때야 가능한 말임, 역시. 오봉학은 모르지 않았다.

‘하다못해 자정 도장이라도 있었다면···’

실력에 의심은 많았던 도인이다. 공동의 장문인, 자정자. 허나, 그는 그런 의심을 섭혼검이라는 사파의 거두를 베어버리며 말끔하게 지워버렸다.

무정검이 자리를 비웠을 때, 그라도 있다면 안심이나 했겠으나, 지금은 둘 모두가 자리를 비운 와중이 아닌가.

오봉학의 표정에 진한, 그리고 아주 묵직한 근심이 자리했다.

군사를 돌리자는 오봉학의 말에도 정문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이상한 표정으로 미소와 비슷한 무언가를 짓고 있을 뿐.

오봉학은 그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

“크크크큭.”

어두운 표정의 오봉학 앞에서 정문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실성한 것일까. 오봉학이 조금은 불안하게 정문을 바라볼 때.

“크크크크크크크크큭!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정문은 그대로 고개를 들고 크게 웃기 시작한다. 마치, 광인처럼.

“무, 무정검.”

“이 새끼들이···, 고작 한다는 생각이···!”

“지, 진정하시게···. 우선 가까운 지역과 문파에 전서를 보내 지원을 요청하고··· 또, 서둘러 회군하면···”

오봉학은 이를 꽉 물고 말을 뱉는 정문을 향해 양손을 뻗으며 그를 진정시킨다. 서둘러 눈치를 보는 오봉학. 만약 무정검의 감정이 격해져 폭주라도 한다면, 그를 말릴 수 있을 만한 무인은 맹 내에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서, 서둘러 맹주님을···!”

오봉학은 자신을 수행하는 무사를 시켜 얼른 자정을 모셔오라 전했다. 정문을 그나마 말릴 수 있는 이는 자정일테니까.

“뭐···? 공동을 그대로 노려? 크크크크킄! 공동을?”

“자자, 회군. 회군부터···!”

오봉학의 설득이 통해서였을까. 정문은 온몸에 내기를 끌어 올리던 것을 조금 진정하고는 크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후우우우우.”

“그렇지. 그렇지. 우선은 숨을 고르고···”

조금은 화가 내려가서일까. 정문은 얼굴에서 감정을 지우고 눈만 부릅뜬 채 오봉학을 바라본다.

“무사들의 태세는 어떻습니까?”

“당장에 진격할 준비를 마치긴 했었네만···, 하루 정도면 서둘러 회군할 준비로 돌릴 수 있을 걸세. 너무 걱정 마시게! 암!”

이미.

일전에 서녕까지 홀로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봤던 오봉학이다. 이번에야 다르지만, 또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어떻게든 이곳에 묶어두고 함께 움직이리라.

오봉학은 그런 생각에 정문의 곁으로 다가섰다.

“하.”

정문이 가볍게 고개를 턴다. 무언가, 생각을 굳힌 이의 모습이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래, 그럴 필요가 없지. 암···, 잠깐. 뭐라고?”

“회군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

“무, 무정검 그게 무슨 말인가?”

“무사들을 재정비하긴 해주십시오. 대신, 회군이 아닌···, 진군을 염두에 두시구요.”

!!

“···자네, 미친 건가···? 한시가 급하게 사문을···”

“공동은 괜찮습니다.”

“그게 무슨···?”

“이 새끼들이 또···, 공동을 무시했다는 말에 조금은 화가 났습니다만···, 공동이 쉽게 당할 곳은 아닙니다.”

“······.”

이건 또 무슨 감정의 변화란 말인가.

오봉학은 갑작스레 차분해진 정문의 태도와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 공동은 강한 문파다.

이전까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정검이라는 걸출한 무인이 있고 자정이라는 훌륭한 장문인이 함께할 때를 뜻하는 말이다.

아, 제법 괜찮은 다른 무인들도 있다. 진명과 사풍, 명화와 묵환이라는. 진명과 사풍은 그 유명한 혈영쌍살을 잡은 후기지수가 아닌가.

섭혼검을 상대로도 고전했지만, 잘 버텨줬고.

허나, 그런 무인들은 지금 공동산에 남아 있지 않다. 다른 도인들이 최근 강호행을 통해 제법 명성을 쌓았다지만, 그 역시 일부가 아닌가.

“···비관은 좋지 않네만···, 너무 낙관하는 것도···”

“저들은 우리의 회군을 예상하겠지요. 적은 병력으로 온 것도 그런 이유···, 그렇게 저들이 안심하고 있을 때···”

정문이 자리에서 일어서 붓을 집어 든다. 그리고는 자신이 지도에 그렸던 선을 무시하고는 지금 무림맹이 진을 친 곳으로 붓을 옮기는 정문.

그의 손에 들린 붓이.

거침없이 중경이라 적힌 곳에 두 줄을 그어버린다. 교차한, 두 줄을.

“우린 중경을 쓸어 버릴 테니.”

!!

복수일까.

이미 늦어버려서.

지금 회군해도 늦을 거라 그런 생각에.

무정검이 그저 피의 복수나 하려는 것일까.

오봉학이 그런 생각을 하려던 즈음.

“무림맹이 자리를 비운 사이 공동을 친다? 해보라고 하십시오.”

“으응?”

- 씨이익.

비릿하게 올라가는 정문의 입꼬리.

마치 재밌다는 듯, 그의 입이 거침없이 반원을 그린다.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공동이 쉽게 당해주진 않을 테니.”

정문의 붓이 내려지며 중경에는 먹물이 까맣게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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