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42화 (142/153)

142. 배후를 밝히다.

“오셨습니까?”

신궁의 궁주, 국문소가 고개를 적당히 내리며 한 노인을 맞이한다. 이미 서신으로 이곳에 닿을 거라 말을 전했던, 북경의 하늘, 수보 조숭이다.

조숭의 뒤로는 심상치 않은 기도를 뽐내는 금의위 호천대(護天隊)의 무사들이 절도있게 도열하고 있었다.

“음.”

조숭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신궁에서 마중 나온 이들을 살핀다. 서장과 전쟁을 위해 반대 방향으로 나섰던 이들이, 모두 돌아온 것인지 살피는 모습이다.

“6성의 성주는 모두 귀환하셨소?”

“모두 귀환했습니다. 서역은···, 준비가 끝났습니다.”

고창신궁은 서역에 널리 분포했던 여섯 개 부족의 무인들이 힘을 합쳐 세운 곳이다. 당연히 이들만의 힘이 아닌, 북경의 지원이 더해졌지만, 원래 취지는 여섯 부족의 연합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들을 휘어잡아 신궁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모이게 만든 걸출한 우두머리가 바로, 국문소.

한때는 서역 지역을 지배하던 고창국의 머나먼 후손이라는 그가, 다시금 서역의 부흥을 위해 이들을 모아 만든 것이 바로, 신궁이다.

“좋군.”

조숭은 준비가 끝났다는 국문소의 말을 듣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전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무림맹이 국경 밖에 본진을 두고 서서히 신궁을 압박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궁의 위치까지 완벽하게 파악한 무림맹은, 서서히 이들을 조여오며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 번에 진격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모습이,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는 그런 모습에 가까웠을 뿐.

국경 안으로 신궁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무림맹 최선의 목표임을, 이런 방어선을 구축한 인물은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신궁 안에 준비된 회의실로 조숭이 들어선다. 자연스레 상석을 찾아 그곳을 차지하는 조숭.

양옆으로 앉아 있는 신궁 성주들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

“크흡.”

“······.”

명백한 태도다. 상하를 나타내려는 노골적인 태도고. 행동 하나하나에 담긴 정치가의 의미심장한 태도가, 무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현재 전방에는 누가 나가 있소?”

“백타성주, 구양종입니다.”

“백타산의 독인이라···.”

백타산은 오래전부터 독을 사용한 무공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곳을 기준으로 부족을 형성했던 구양 씨(氏)의 후손인 백타성주는, 독공으로 당문에도 밀리지 않을 독인이었다.

“퇴각하라 전하시오.”

!!

“···그냥 돌아오라고 말입니까?”

“흠, 그리고 전선 역시 뒤로 조금 물려야겠소.”

조숭은 회의실로 들어선 지 일각도 지나지 않아 신궁의 모든 전술을 뜯어고치려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 손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독선이, 신궁의 무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별다르게 목소리를 내는 무인은 없다. 국문소가 이미 이들을 단속하며 북경의 인물들과 부딪히지 말 것을 명해뒀기 때문이다.

이제 있을 중서대전(中西大戰)이 끝나게 된다면, 이들과는 곧바로 병장기를 섞어야 할 처지에 있는 신궁이다. 미리 트집이 잡혀서 좋을 건, 없을 테니까.

“물린다고 하시면···, 어디까지를 말씀하시는지?”

“흠···.”

조숭은 차분히 회의실에 펼쳐진 지도를 살펴본다. 무림맹이 가진 것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기록된 서역의 지도. 협곡과 절벽, 황야와 초원이 적절히 표시된 지도 사이를 조숭의 눈이 빠르게 오갔다.

“철환아.”

“예, 대인.”

“저들···, 무림맹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인물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무림맹 ···내에서 말씀입니까?”

“음, 그래.”

조숭은 무림의 정보와 사건에는 통달해도 무인의 강함에까지 도통한 것은 아니다. 무인의 우위는 오로지 무인만이 알 수 있는 일.

철환의 역할은 단순한 호위가 아닌, 이런 조언 역시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화산의 매화고검(梅花高劍) 운양은 무시 못 할 검수입니다. 무당의 충산 역시 마찬가지지요. 뇌검(雷劍) 남궁걸과 독나찰(毒羅刹) 당천정 역시 강합니다. 백미권존(白眉拳尊)이 왔다면 몰라도, 그가 없다면. 이들이 가장 강한 이들일 겁니다.”

“흐음, 그렇더냐?”

조숭은 턱을 쓰다듬으며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각 무인이 이끄는 부대가 표시된 위치를 눈으로 기억해 두는 조숭이다.

“궁주께서는 어떻소?”

“···무엇을 말씀이신지?”

“궁주께서는 저들 중 어떤 무인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 같냐는 말씀이외다.”

적당히 배려하는 척을 하려는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알고? 조숭은 국문소를 보며 철환에게 물었던 것과 같은 말을 물었다.

“···굳이 한 명을 꼽자면···”

“흐음.”

“무정검이 아닐지.”

“무정검···?”

조금은 의외의 이름이었기 때문일까. 조숭은 국문소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정검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당금 강호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나. 허나, 조숭은 직접적으로 무림과 얽히며 살을 맞대어 온 이가 아니다.

간접적으로 일을 겪으며 보고만 들었을 뿐.

그런 인물에게는 아직.

무정검이라는 이름이 크게 와닿지 않아 보였다.

“무정검이라면···, 새파란 애송이가 아니외까?”

“강호에서 무정검을 그리 평가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그자가 그리 강하오?”

“강하다라···. 예, 강하지요. 허나, 강하다는 말 외에도···, 그를 포장하기에는 다른 말들이 너무도 많을 겁니다.”

“흐음. 궁주께서 그자를 높이 평가하시는 모양이구료.”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 보이는 조숭을 향해 국문소는 그저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소귀에, 경을 읽어 무엇하겠나.

“대인, 일전에 중경을 향한 진격을 지시한 이 역시, 무정검이라고 합니다.”

그런 국문소와 달리, 조숭을 보좌하는 철환이 조금 더 부연 되는 설명을 조숭에게 전했다.

“호오? 오봉학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는 오봉학이 맞습니다만···, 현재 무림맹의 두뇌 역할을 하는 이는 실질적으로 무정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큼직한 일들과 결과는 바로바로 보고를 받는 조숭이다. 허나, 세세한 것. 그리고 인물 하나하나에 관한 것까지는 자세히 보고를 받지 않기에, 조숭은 아직 무정검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묵룡자를 이겼고, 또 혈영문 사태를 주도적으로 일으킨 인물입니다. 그전까지 본다면···, 논검회에서 우승한 이력까지 있지요.”

조숭은 무인이 아니다. 무림의 정보 역시 그저 자신에게 득이 되는 선에서만 받아들일 뿐. 그런 조숭에게 누가 누구와 싸웠고 누가 이겼느니 하는 말은 아무런 흥미가 없는 요소일 것이다.

조숭은, 그런 소식을.

오늘 처음 접했다.

“묵룡자라···, 삼존(三尊)에 가깝다는 이가 아닌가.”

묵룡자는 오래도록 강호에서 활동했던 고수다. 조숭 역시 묵룡자에 대해서는 아는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달뢰라마 때도 공동이 크게 개입을 했다더니, 무정검인가?”

“그렇습니다, 대인.”

“번번이 신궁의 앞을 막아선 젊은 무인이라···”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일을 방해한 무인이다. 하지만, 조숭은 실패한 일은 자신의 일로 보지 않으니, 저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궁주의 말씀을 새겨들어야겠군.”

진심인지는 모른다. 조숭은 그런 말을 남기고는 지도에 다시금 눈을 옮겼다.

“주변의 지형이 좋지는 않소. 오로지 신궁이 있는 이 협곡을 빼고는 말이오.”

“허나, 저들이 이곳까지 오려 하겠습니까?”

“만들어야지. 오도록.”

“······?”

“유인책을 쓸 것이오. 교전은 계속하시오. 허나, 계속해서 져야 하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또, 조금씩. 신궁은 저들의 공세에 밀려나 결국에는 이 협곡까지.”

조숭은 찬찬히 말을 뱉으며 지도를 가리키기 시작한다. 무림맹의 본진이 있는 주변에서 조금씩 지휘봉을 뒤로 물리며 결국 신궁의 바로 앞, 협곡까지 닿는 그의 지휘봉.

“그리고 이 협곡에서. 저들의 본대를 박살 내고, 신궁은 국경을 넘는 거외다.”

무림맹의 방어선을 뚫을, 조숭의 계획이 점차 완성되어 갔다.

* * *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진(二陣)에 속한 이들 역시 모두 도착했네.”

“소림과 남궁, 무당과 팽가, 청성 그리고 중소 문파의 지원병이 도착했습니다.”

“흠···, 이제는 제법 대(大)군세군요.”

“이 정도면···, 곧바로 신궁으로 들이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전략 회의가 한창이다. 오봉학과 정문, 그리고 몇몇 군사를 비롯한 이들이 상황을 정리하며 차후 진행할 무림맹의 전략을 짜고 있다.

“당장에는 힘듭니다. 신궁이라는 곳이···, 공성은 불가한 곳입니다.”

정문은 신궁이라는 곳을 직접 눈으로 보고 왔다. 궁주까지 만나고 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밀. 정문이 분명 얻어 온 것이 있으나 당장에 밝힌들 득이 되는 건 없을 것이다.

공성이 불가하다는 정문의 말은 궁주와 대담을 나눴고 제법 괜찮은 조건을 들고 왔기에 그런 것이 아니다.

정문이 직접 본 신궁이라는 곳은.

정말로 공성은 불가능해 보였으니까.

자연적으로 생겨난 해자(垓字)에 협곡이 본궁의 역할을 하는 괴석을 둘러싸고 있다.

전쟁에서 만전을 기해도 뚫기 힘든 것이 공성전이다. 변변찮은 장비도 없는 무인들이 섣불리 공성에 도전했다가는. 대패(大敗)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저들이 궁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야겠군.”

“아마 저들이 우리를 유인하려 할 겁니다.”

“궁으로 말인가? 설마 공성전으로 유도하려···”

정문은 궁으로 자신들을 유인하냐는 오봉학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탁상 위에 놓인 하나의 지형에 손을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 툭.

“협곡.”

“협곡?”

“신궁은 주변이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마 저들이 우리를 유인하려 한다면···, 필시. 이곳으로 우리를 유인할 겁니다.”

정문의 손은 신궁의 앞으로 펼쳐진 웅대한 협곡의 초입을 가리키고 있다. 여러 갈래로 나눠진 길에 위로는 절벽이 위치해 앞뒤 외에는 나아갈 길이 없는 곳.

그래서,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절대 들어서는 안 되는 곳을.

“절대 유인에 넘어가서는 안 되겠군.”

“전···, 유인당하는 것이 나을 거라 봅니다.”

“어째서?”

“협곡의 길은 신궁에서 나오는 길도, 밖에서 들어가는 길도 똑같은 너비고 똑같은 갈래입니다. 우리가 대규모로 들이치지 못하는 곳이라면···, 저들 역시 대규모로 나오지는 못할 거란 뜻이지요.”

“허나, 이는 모험이네. 신궁에서도 너무 가깝고. 마치, 최후의 결전에나 사용할 전술 같네만? ···굳이 그런 모험을 해야겠나?”

해야 한다. 정문은 당장에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신궁을 막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신궁을 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아니란 대답이 나왔을 정문이지만.

이번 일에서 우선시 되어야 할 일은.

전쟁도, 신궁도 아닌, 다른 일이니까.

“······.”

“자네의 생각에 모두 이유가 있음은 알고 있네. 허나···, 이번 일에는 설명이 필요할 거 같군.”

소수의 무인을 움직이는 일이 아니다. 많게는 정도 무림 전체가. 적게는 하나의 문파가 움직여야 하는 일이 이번 전쟁이다.

이런 전쟁에서까지 그저 무정검이라는 이름과 지난날의 행적만을 보고 전적으로 믿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해서 말입니다만, 노개.”

“그렇게 부르니, 겁부터 나는데.”

“모두에게 전할 말이 있습니다.”

“모두···?”

“이번 전쟁에 나서는 문파는 알아야겠지요.”

정문은 결심이 조금 아린 눈으로 오봉학에게 중대한 말을 전한다. 이제는 숨길 수 없다. 숨겨서도 안 되고. 그렇기에 정문은 무림맹의 모두에게 밝힐 생각이다.

“무엇을 말인가?”

“각 문파의 수장을 불러주시겠습니까?”

“전부를?”

“가능하다면요.”

“······.”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집이야 어렵지 않네. 전시니. 허나···, 이번에는 알고 모아야겠네. 도대체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오봉학에게는 미리 말을 전해도 괜찮을 것이다. 말이 전해지고 몇몇이 이탈을 주장하려 할 때도, 오봉학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정문에게는 있었으니까.

정문은 그런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오봉학과 눈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이번 전쟁의 배후를 밝히고자 합니다.”

!!!

회의를 위한 막사로, 각 문파의 대표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