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변한 건 없다.
“조숭이라···”
정문에게 이번 일의 배후를 들은 각 문파 수장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들은 이름이, 제법 컸기 때문이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 그런 자와 싸워야 한다는 거군.”
“···흠.”
별다른 격렬한 반응은 없다. 이미 공동파가 공격당했을 때부터 관부의 인물이 개입했을 수 있음을 눈치챘던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예상에도.
조숭이라는 이름은 제법 크다.
“허면, 협곡으로 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숭이 배후인 것과···, 협곡은 별 상관이 없어 보이네만.”
오봉학은 그런 정문의 말을 모두 듣고, 조금 전 나눴던 군사 회의에서 나왔던 말을 꺼낸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협곡 안에는···, 이번 일의 원흉이 있을 거기 때문입니다.”
“원흉···?”
원흉이라며 고개를 갸웃하던 오봉학. 그런 오봉학의 머리에 빛이 스친다.
“조숭이···, 서역에 있다는 말이군.”
“정확하십니다.”
조숭이 북경이 아닌 서역에 있다. 이 말은, 그가 배후라는 무정검의 말에 대한 증명이자 그가 이번 일에 사활을 걸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
반대로, 무림맹은 반드시. 협곡에 들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잡으러 가야 한다는 말인가.”
“맞습니다. 조숭을 잡아야···, 이 전쟁이 끝날 겁니다.”
조숭을 잡아야 이 전쟁이 끝난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몰라도, 정문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정문이 만난 신궁의 궁주, 국문소는 전쟁을 길게 이어갈 인물이 아니었다.
약속을 받은 것은 아니기에 여기서 밝힐 순 없지만, 무림맹이 조숭을 치고, 물러만 난다면. 저들 역시 전쟁을 멈추겠다는 장담을 받기도 했고.
“신궁은···, 조숭이 죽으면 그대로 물러나겠나?”
“저들의 관계는 무림맹처럼 맹약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닙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종의 조건이 걸린 계약 관계. 한쪽이 없어진다면. 한쪽 역시 단념할 수밖에요.”
"흠, 서장과 전쟁도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이게 최선이라. 정문은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둘러댔다.
“결국···, 배후를 알아내도 바뀌는 건 없다는 말이군.”
대화를 듣고 있던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걸이 끼어든다. 굳은 그의 표정이, 결국에 무인은 검을 들고 싸워야 함을 말하는 것만 같다.
“맞습니다. 배후를 알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당초 계획처럼 싸웁니다. 그리고 이겨야 합니다.”
“암! 그래야지! 조숭이든 누구든! 감히 무림을 건드리는 이를 어찌 두겠나!”
당천정은 정문이 사기를 북돋는 말을 하자 맞장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과장된 그의 모습이, 퍽 우습다.
“···관의 인사를 상대하는 게 퍽 편한 일은 아닙니다. 허나! 먼저 무림을 건드린 건 명백히 관!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선 안 됩니다.”
화산의 운양 역시 조금은 노기가 띈 눈으로 다짐하듯 말을 뱉는다. 늘 지켜지던 관무불침이 어겨진 것이. 그의 투지를 불태운 모양이다.
“아미타불-. 위정자(爲政者)의 손속이 무인보다 매섭습니다. 과연 칼과 정치가 사람을 죽임에 무엇이 다를지(無以異也)···. 생사를 가름에 정치와 칼이 다를 게 없다면···, 소림은 그 칼을 막아야겠습니다.”
소림 역시 조숭의 악독한 술수와 무림에 대한 개입에 치를 떤다.
다행히 이들은 조숭이라는 관리와 대적하는 것에 두려움은 없어 보였다. 당연한 말이다. 무인이란 싸우는 자. 정치인처럼 계산하는 이가. 아니니까.
회의는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조숭이 있다면, 유인책이라도 그를 잡으러 가야 한다. 몇 번의 교전을 반복하면 필시 사상자는 계속해서 나올 터. 그런 교전을 최소화하고 또, 일시에 저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정문의 말처럼 유인에 당하는 척을 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일 것이다.
회의를 마친 정문이 자신의 막사로 돌아온다. 정문의 책상 위에는 이번 일을 정리한 책자가 놓여 있다.
‘후우-.’
긴 하루였다.
오래 미루었던 일을 처리한 하루고.
이제는 무림맹의 누구나 이들의 적이 조숭임을 안다. 홀로 이를 간직하던 정문의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내려갔다는 말이다.
‘아아. 혼자는 아니지.’
슬쩍 혼자라는 생각을 떠올렸던 정문이 이내 자신의 마음속으로 말을 고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섭섭해할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 스윽.
정문이 책자에 꽂힌 다른 종이를 꺼내 든다. 흑색으로 장식된 작은 서신. 그리고 그런 서신의 아래에는, ‘륜(輪)’이라 적힌 서명이 한 장. 꽂혀 있었다.
* * *
해가 뉘 엿 넘어가면, 황야에는 제법 장관이 펼쳐진다. 뜨겁게 내리던 햇빛도 옅어지고 기온 역시 조금 떨어지는 무렵. 그래서 더욱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그런 무렵에, 정문이 기지개를 켜며 막사를 나왔다.
“끄으으응!”
군영의 제일 끝, 저 멀리 신궁 방향의 석림이 보이는 정문의 막사 뒤로는 평지와 석림만이 펼쳐진다. 멀리서 오는 파발과 주변의 지형을 살피려는 정문의 안배였다.
정문은 큰 회의를 두 개나 겪었고 서류도 제법 처리했다. 이제는 몸을 조금 쉬어 줄 시간. 그런 생각에 검을 잡으며 수련에나 나서려 밖으로 나온 정문이다.
황야를 향해 걸어가려던 정문. 그런 정문의 발이,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걸음을 멈춘다.
“묵환?”
정문은 자신의 막사 뒤로 펼쳐진 황야, 그리고 그 사이로 솟은 석림 위에 홀로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묵환을 목격했다.
“끙차!”
단숨에 뛰어올라 묵환의 곁으로 다가가는 정문.
“사, 사형!”
묵환은 조금 전 정문이 부른 것도 듣지 못했는지, 약간 넋이 빠진 모양이다. 정문은 그런 묵환의 옆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뭐 하냐, 여기서?”
“그, 그저 바, 바람을 좀···!”
어리숙한 사제다. 마음도 여리고. 겉모습만 보고 나서야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냐만, 곁에서 지켜본 묵환은 그런 사제였다.
“녀석, 오늘 수련은 했고?”
“해, 했습니다! 아, 아침에!”
“막히는 곳은? 없어?”
“어, 없습니다!”
대답은 곧잘 한다. 묻는 말에 옳은 답이고. 헌데도 정문은 이상하게만 느껴지는 묵환의 모습에 고개를 가로 기울였다.
묵환은 평범해 보이려 애를 쓰는 모습이다. 그저 그 애를 쓰는 모습이 너무도 선명해,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일 뿐.
초점을 잃은 그의 동공이, 석양이 지는 방향을 향한다.
“뭐 보냐?”
“그, 그저! 서, 서역 땅을 보고 있습니다!”
묵환은 뭘 보냐는 정문의 물음에 석양이 아닌 서역의 땅을 보고 있다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정문은 묵환의 상태가 왜 이런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녀석···’
묵환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정문의 결론은 그러했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이는 중원인이다. 당장에 묵환을 지긋하게 바라보고 있는 정문 자신부터. 그리고 검을 휘두를 무인의 팔 할, 아니 구 할까지도 모두 중원인이란 뜻이다.
그리고 그런 중원인이 모인 이 자리에. 묵환은 그 중원인이라는 묶음에 들지 못하는 사람이다.
누가 뭐라 해도 묵환은.
이민족이었으니까.
“회족(回族)이라는 거 같더라···”
!!
정문은 그런 묵환을 보며 나지막한 말을 남긴다. 원래라면 지금이 아닌, 나중에 조금 전쟁이 잠잠해지고, 또 이들이 공동산에 간 후. 그때. 그때 알려주려던 말을.
“사, 사형···?”
“고력강 잡았을 때. 그때 물어봤다. 너처럼 생긴 애들. 출신이 어디냐고.”
!!
묵환은 늘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이를 밖으로 표 내진 않았지만, 늘 함께했던 정문이나 다른 사형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해서, 묵환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맞서야 하는 저자들. 신궁이라 불리는 이민족들. 어쩌면 자신과 같은 출신일지도 모르는 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회, 회족 말씀입니까?”
“알고 있냐?”
회족을 아냐는 물음에 묵환은 고개를 세차게 저어버린다. 이제까지 만났던 이민족 중에는, 회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녕하(寧河) 쪽 출신이라더라. 몽고까지도 가고.”
“그, 그럼?”
“그래, 여긴 아니란 말이지.”
정문은 마치 묵환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깊게 웃으며 여기가 아니란 말을 전했다. 아마 이보다, 묵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정문의 말이 통해서일까. 무릎을 꽉 안고 석림에 앉은 묵환의 표정이 조금은 펼쳐진다.
회족.
출신도 모르던 자신에게.
이제는 아는 출신이 생겼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
이런 기분이, 출신을 알아서인지.
아니면, 이토록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형 덕분인지.
묵환은 아직 알 수가 없다.
“사, 사형!”
“왜?”
“사, 사형께서는···, 이, 이민족을, 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금 기분이 좋아져서일까. 묵환은 밝은 표정으로 이민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을 묻는다.
좋다. 나쁘지 않다. 그런 말을 기대하는, 묵환의 눈치다.
“어떻게 생각하냐라···. 글쎄···. 매우 좋지 않게 생각한다.”
!!!
- 휙!
묵환은 서둘러 고개를 돌려 정문의 표정을 살핀다. 이게 농인지, 아닌지. 묵환은 말로만 알기에 너무 어려웠다.
“중원을 노리고 있지 않냐. 뭐, 누가 등을 밀었다고는 해도···, 칼을 잡은 건 쟤들이니까.”
“그, 그렇군요···, 중원.”
“중원 때문이 아니야.”
그런 묵환을 한 번 바라본 정문. 정문은 시선을 다시금 석양에 던지고는 말을 조금 쉽게 풀어주려 한다.
묵환에게, 어려운 말은.
말 그대로 어려우니까.
“그, 그럼···?”
“중원을 노리면···, 제일 먼저 어딜 치겠냐?”
“가, 감숙입니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 묵환은 그리 말하듯 크게 소리쳤다. 묵환의 머리를 쓰다듬는 정문. 위로 뻗어 쓰다듬는 모양이 이상하지만, 뭐. 상관있나.
“그래, 감숙이지. 그럼, 감숙에는 누가 있고?”
“가, 감숙에는···?”
감숙에는 누가 있냐.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너무도 많아 묵환이 조금 망설일 때. 정문은 묵환의 가슴에 그려진 ‘칠(七)’ 자를 살짝 눈짓했다.
“고, 공동파! 공동파가 있습니다!”
“그래, 공동파.”
“······?”
“묵환아. 내가 지키려는 건 중원도 감숙도 아니다. 그저 공동파. 공동파만 지키면 되는 거야.”
“그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이민족 이야기를 잘하다가 왜 그러냐. 묵환은 그렇게 물으려 했다. 하지만, 다음에 나오는 정문의 말이, 묵환의 입을 막았다.
“공동파를 노리니까 싫은 거다. 공동파를 노리는 놈은 중원인도, 황제도 싫다, 나는. 이민족이라서 싫은 게, 중원인이라서 싫은 게 아니라.”
차별적인 말이다. 누군가가 싫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그 누구보다 뜻은 차별적이지 않은 말이 정문의 입을 탔다.
공동파에 해를 끼친다면 누구든 싫다는 말. 어쩌면, 그 어떤 차별도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기준이, 묵환의 귀를 향했다.
“너도 인마. 뿌리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 그게 아니라···”
“공동파면 족하지 않냐?”
!!!
공동파면 족하다. 늘 자신을 중원이과 이민족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던 묵환의 머리가 한 방에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고, 공동파···”
“출신이야 어떻든···, 얼굴도 모르는 부모, 또 알지도 못하는 뿌리. 그런 거 신경 써서 뭣 할래?”
“그,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묵환이 그런 말을 하려 하자.
“누가?”
- 쩌저적!
누가 그렇게 묵환을 보느냐. 그런 말이 정문의 살기와 함께 묵환을 향했다. 조금씩 갈라지는 석림이, 정문의 살기를 버티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런 새끼···, 아니. 사람 있으면 언제든 데려와. 단전을 조각내서 아주 두 개, 세 개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 슝! 슝! 슝!
정문은 말을 하면서 계속 주먹을 허공에 날린다. 칠상기가 가득한, 살벌한 권풍이 하늘을 향했다.
“사, 사형···.”
별다른 말은 아니다. 조금 살벌한 말. 하지만, 그 살벌한 분위기와 말이, 앞에 정문이 했던 말들과 만나, 묵환에게는 더욱 따스하고 더욱 확실한 증명이 되어 버렸다.
정문 사형은, 대사형은.
묵환을 정말 이민족이 아닌 그저 사제로 대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너무 기죽지 말고 또 고민도 하지 말라고. 넌 저 서역 애들이랑 아무 관련도 없어.”
혹시나 이해를 못 했을까. 정문은 마지막까지 묵환을 이해시킬 말을 뱉었다. 하지만.
“그, 그게 아, 아닙니다! 사, 상관없으니, 싸, 싸우는 게!”
묵환은 얼른 정문의 말을 반박한다.
“으응?”
“저, 저들이! 고, 공동파를 노리니까! 저, 저도 싸워야죠!”
아무래도, 묵환이 제대로 이해를 한 모양이다.
“그래. 맞다. 정확해. 그래야···”
“공동의 무인이죠.”
"공동의 무인이지."
- 씨익.
짙은 미소 두 개가 가운데서 마주한다. 아무런 말도 없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는 둘. 석양이 이제는 완전히 고개를 넘어가려 한다.
서역 땅을 보던 묵환의 시선이 석양에 향했다.
둘은, 같은 곳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