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45화 (145/153)

145. 개전(開戰).

깃대를 높이 세운 두 무리의 군세가 서로를 응시한다.

한쪽에는 ‘맹(盟)’이란 글자가 바람에 나부끼고, 반대에서는 ‘궁(宮)’이란 글자가 나부낀다.

중원과 서역을 대표하는 두 무리의 정예가. 신궁의 바로 앞, 협곡에서 마주했다.

협곡은 생각보다 넓었다. 아마 이를 보고 난 후, 조숭이 이곳을 결전지로 삼은 게 당연하겠지만, 결전에 어울리는 장소, 그 자체였다.

앞뒤로는 작은 길이 있어 대규모의 군세가 빠져나가기 쉽지 않아 보이고, 중간에는 넓고 마른 계곡이 있어 마치 벌판처럼 대전을 일으키기 좋아 보이는 지형이다.

두 무리의 군세는 서로 거리를 두고도, 정예를 모두 협곡 안에 들일 수 있었다.

아직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허나, 격렬하게 부딪히는 눈빛들.

투지를 비롯한 여러 감정이 얽힌 무인들의 눈빛이 협곡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서로가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살벌하다. 다들 한 가닥은 할 것 같다. 두렵다. 후회된다. 집이 그립다 등. 저마다 전장에서 떠올릴 법한 잡념들이 가득한 무인들이, 그렇지 않은 척 자세를 한껏 잡아 본다.

“조숭은···, 보이지 않는군.”

오봉학은 신궁의 무리를 보며 누군가를 찾고 있다. 아마 무림맹에서 그자의 얼굴을 본 사람이라면 오봉학이 유일할 터.

아니, 어쩌면.

다른 인물도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이곳에는 없을 겁니다.”

“흠···, 전장을 이탈했으려나?”

“주변에 있을 겁니다. 제 눈으로 보지 않고는 참지 못하는 인물이니. 그를 찾는 것이···, 시작이겠지요.”

정문은 마치 조숭을 잘 아는 것처럼 오봉학의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내었다. 오봉학 역시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무정검과 대화를 나눌 때면. 이를 따지는 게 더욱 머리 아프니까.

“찾을 수 있겠나?”

“찾을 겁니다.”

찾겠다. 아직 모르기에 찾아보겠다는 말을 정문이 뱉는다. 하지만, 정문은 이미 알고 있다. 조숭이라면, 이런 전장에서, 어디에 있을지를 말이다.

“자네만 믿겠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네의 손에···, 이번 전쟁의 경과가 달렸으니.”

전쟁에는 저마다 맡는 역할이 있는 법이다. 누구는 보급을 맡고 누구는 좌익을, 또 누구는 우익을 맡는다.

그리고 그중에는 아무런 역할도 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이들 역시 있는 법인데, 이번 전쟁에서 그런 별동대의 역할은.

정문이 맡게 되었다.

한 문파의 수장도 아니다. 하지만, 강함은 그 이상. 상징적으로 전장에 있지 않아도 되고, 따로 움직이면 그 효율은 배가 되는 무인. 거기에 전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혜안까지.

정문이 아니면, 그 누구도 맡지 못할 역할이 바로, 별동대일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별동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조숭을 잡는 것. 그리고 전쟁을 끝내는 것. 그게 유일한 그들의 특명이다.

“전쟁이 시작되면···, 바로 움직일 거다. 다들 준비하라 이르거라.”

정문이 자신이 이끌 별동대에 속한 이들을 다독인다. 그들은 다름 아닌 정문의 사제들. 공동의 일대제자로 구성된 부대가 각자 맡은 역할을 상기하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역시.

자신들이 이번 전쟁에서 큰 역할을 맡게 됨을 이미 알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시작하려나 보군.”

오봉학의 시선이 앞으로 향한다. 두 무리의 군세를 이탈하듯 앞으로 나아가는 두 개의 신형.

각 진영의 수장으로 보이는 두 무인이.

서로 등을 돌리고 각자의 진영을 바라본다.

전투가 있기 전, 사기를 돋으려는 움직임이다.

“중원은···!”

시작은 신궁의 궁주, 국문소.

내력이 가득 실린 중원이란 말이 협곡의 석벽을 크게 울린다. 사기를 올리는 내용과 함께, 수장의 내력 역시 뽐내는 자리일 것이다.

“중원은 늘 우리 서역의 강토를 짓밟아 왔다! 이를 모르는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 쿵! 쿵! 쿵!

국문소의 말에 맞춰 땅을 구르는 신궁 무인들의 발. 웅장한 군세의 발소리에 맞춰 대지가 진동하는 것 같다.

“그런 중원인의 오만방자함이 이제는 관(官)의 담을 넘어 무림에까지 번지고 있다! 서역 무림을 침범한 저 중원 무인들에게! 신궁은 오늘 천벌을 내릴 것이다!”

- 쿵! 쿵! 쿵!

- 와아아아아!

발 구름과 함께 일시에 터지는 함성.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신궁의 사기가 무림맹 병사들의 어깨를 떨리게 했다.

하지만, 자정 역시 한 문파의 수장이자 한 단체의 수장. 이런 심리전에 밀리지 않는, 자정이다.

“정도(正道)란 무엇인가!”

자정은 내력이 가득 실린 창룡후(蒼龍吼)로 떨리는 무림맹 무사들의 어깨를 부여잡는다. 정순하고 강대한 내력이 깃든 자정의 목소리에, 무림맹의 떨림이 멎었다.

“정도란! 사마외도(邪魔外道)를 벌하는 자들이다! 타인에게 해악을 끼쳐 자신의 배를 불리는 짓을 중원에서는 사마외도라 부른다! 서역이 패악(悖惡)하여 모든 잘못을 중원에 떠넘기니! 중원 정도의 상징인 무림맹이 이를 어찌 참겠는가!”

- 쿵! 쿵! 쿵!

무림맹의 무사들 역시 자정의 말에 맞춰 발을 구르기 시작한다. 협곡의 안에서 밖으로 향하던 진동이, 이제는 안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오늘 무림맹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타인을 해치는 사마외도를 벌한다! 모두 검을 들어라! 우리가 걷는 길이 정도(正道)이니!”

- 와아아아아아!!

- 정도! 정도! 정도!

국문소는 중원에게 핍박받던 서역의 서러움을, 자정은 정도 무림인 마음속의 협의심을 자극했다. 서로가 막상막하인 기선제압.

두 세력 모두.

각자의 정의가 공존한다.

국문소와 자정이 서로 돌렸던 등을 반대로 한다. 멀리 서 있지만 마주하는 둘의 눈빛.

서로가 정의를 가지고 있고, 서로에게 대의가 있다면.

무인은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는 법이다.

둘 모두의 명분이 옳다면.

이기는 자가.

정의가 되는 곳이, 무림이니까.

- 처억!

- 처억!

둘의 양손이 위로 향한다. 서로에게 보일 듯 보이지 않게 포권하는 두 수장의 모습. 전쟁에 나서기 전, 예의는 이걸로 충분할 것이다.

둘은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무인들의 중앙을 점유하는 수장들.

무어라 말이 몇 번 더해지더니, 이내 양쪽 무사대에서는 기력을 끌어올리는 기음(氣音)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소리가 절정을 향해 갈 때.

“신궁···”

“무림맹···”

두 수장의 입이 동시에 열린다.

“돌격-!”

양측 무인들의 신형이 중간에서 마주친다.

병장기 울리는 소리로 가득 차는 협곡.

마른 계곡에, 붉은 냇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 * *

- 챙! 챙! 챙!

- 스윽! 컥!

- 쳐라! 와아아아아!

조용한 긴장감만이 감돌던 고창의 협곡 안. 그런 협곡 안은 어느새 금속성의 소리와 기합, 그리고 비명이 가득한 곳으로 바뀌어 있다.

수장들의 호령에 맞춰 뛰어들었던 각 세력의 무사들. 무사들은 서로를 마주하며 평생을 갈고 닦은 자신의 무학을 펼쳐 내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그리고 그런 전장을 유심히 살피며 조금은 뒤로 빠져 있는 한 무리의 무사들. 특명을 받은 무림맹의 별동대, 공동의 일대제자들이다.

정문이 눈에 불을 켠다.

조숭은 어디 있을까.

이곳에 있을 리는 없다.

조숭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문은 그렇게 판단했다.

‘분명 전장이 잘 보이지만 안전한 곳···, 그리고 신궁 놈들도 모르는 곳···’

조숭이라면 분명 이렇게 움직일 것이다. 정문은 그런 생각을 하며 조숭의 행적을 좇고 있다. 조숭과 닮았다는 말에 버럭 화를 냈던 그였지만. 반대로 그를 쫓을 때는, 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정문이다.

정문의 눈에 호천대 무사들이 들어온다. 몇몇은 이미 참전했고 몇몇은 뒤로 물러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아직은 구체적인 명이 내려질 때가 아니기에. 그들은 대기하는 것이다.

정문은 그대로 호천대의 곁을 지나쳐 협곡의 옆, 높게 솟은 절벽을 바라본다. 자신이 신궁을 살필 때 올라섰던 그 절벽.

신궁으로 향하는 길이 잘 보이고 또, 주변에서 닿기가 힘든, 그 절벽을 말이다.

찬찬히 절벽을 따라 움직이는 시선. 절벽의 위로 향하는 작은 샛길의 입구가. 정문의 눈에 들어왔다.

!!!!

그리고 이내.

정문의 눈은 동공을 확장하고 말았는데.

정문이 살피던 그 샛길의 입구에는.

다른 이들이 아닌, 호천대의 무사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이 서역 놈들에게 호위를 맡길 리도 없고···’

대열에서 크게 어긋나는 모양새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 인위적인 모습의 호천대가. 샛길 앞에 도열해, 마치 그곳을 지키는 분위기를 풍기는 건 사실이었다.

강한 의심이 정문을 유혹한다.

절벽 위는 전황을 전체적으로 살피기도 좋고, 샛길이 있어 호천대에 말을 전하기도 좋다. 그리고 마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전령처럼 대열 속에서 샛길을 지키는 호천대까지.

저곳에 조숭이 있다.

정문은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이건 아니지···. 아무것도 모르는 문사 놈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자신에게 뱉는 말일지도. 정문은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절벽의 위를 응시했다.

“사형!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주변이 전쟁 소리로 가득 차자, 조바심에 먼저 쫓기는 건 사제들이다. 별동대는 이런 것에 흔들려서는 안 되는 법. 하지만, 훈련되지 않은 이들에게 그런 것까지 바라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다들 긴장하거라. 조바심내지 말고. 당장에 싸우지 않을 뿐, 이번 전쟁에서 제일 큰 역할을 맡은 우리다. 이를 명심해야 한다.”

“알고 있어요. 조숭. 잡아야죠.”

“명만 내려주십시오.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

“누, 누구라도! 싸, 싸울 겁니다!”

“일단 시작되면 다 때려 부수는 거야!”

“언제든 명령만 내리십쇼!”

“칠상권 마렵습니다!”

사제들은 기다리는 것에 영 소질이 없다. 더는 시간을 끌 수 없는 정문. 정문은 사제들을 위한 판을 만들어 주려 한다.

“안 그래도 찾았다.”

!

“어디···?”

“측면에 작은 샛길 보이느냐?”

“금의위 놈들이 서 있는 곳 말씀이군요.”

“저깁니까? 북경의 개놈들이 지키고 있는 곳.”

“응. 아마 거기까지 가야 할 거 같은데.”

“뚫어야겠군요.”

“흥. 그게 무슨 일이라고.”

- 스릉. 스릉. 스릉.

가야 할 곳을 찾았다. 그곳은 저기다. 단순한 정문의 말이 끝나자, 공동파 사제들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서게 되는 이들. 무림맹에서 지내며 정든 이들은 이미 피를 보고 있다. 그런 이들이 나서는 곳을 지켜만 보는 것도 고역.

이제는, 이들 역시 저곳으로 향한다.

“쉽진 않을 거다.”

“가야 하는 길이라면, 가야지요.”

“가능하겠느냐?”

평소답지 않다. 평소라면 해내라며 말을 전했을 정문이 이제는 되려 사제들에게 말을 묻고 있다. 정문 역시 긴장은 되는 모양이다.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

“명령만 내리십쇼.”

“공동이 가지 못할 곳은 없습니다.”

“언제는 말 되는 거만 시켰습니까?”

그런 정문의 긴장을.

사제들의 든든한 반응이 풀어준다.

“그래. 맞다.”

뚫는다. 답은 그뿐.

결연한 사제들의 앞에서 정문 역시 미리 검을 뽑아 들었다. 가야 할 방향을 향해 뻗어가는 정문의 검.

“적이 있다면 뚫는다. 그리고 전쟁을 끝낸다. 이게 우리의 수일이다. 해서-.”

“진일보한다!”

“진일보한다!”

“가자.”

한순간의 외침과 함께 진한 회색빛 검진이 앞을 향해 뛰어나갔다.

* * *

“막아라!”

누란성의 성주, 호원타(胡員咤)가 신궁의 좌익을 통솔하며 무림맹의 무사들과 맞서고 있다.

높은 콧대에 굽이진 수염이 빛나는 호원타의 장창이 무림맹 무사들을 꿰뚫는다.

- 촤아아!

- 푹! 푹! 푹!

쓰러져 가는 무림맹의 무사들. 좌익은 멀쩡하리라. 호원타는 그런 생각에 다른 전황을 살피려 고개를 들었다.

다른 진영 역시 일진일퇴의 상황이다. 그야말로 한발 나서면 한발 물러나야 하는 호각의 지세.

전쟁의 결판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호원타가 돌아선다. 자신이 있는 좌익이 더 활약해야 신궁 쪽으로 승기가 기울 터.

그런 생각에 호원타는 기력을 끌어 올려 전장으로 뛰어들려 했다.

호원타의 창이 빛을 뿜으며 다른 무사 하나 정도를 저 멀리 날려 버렸을 때.

- 콰콰앙!

거친 기파음과 함께

- 끄아아악!

하는 누란대 병사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좌익은 별다른 문제 없이 적들을 잘 막아 내고 있었던 상황. 무언가 전선에 변화가 생긴 거라, 호원타는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

“새로운 부대입니다!”

“새로운 부대?”

호원타는 땅을 차며 서둘러 병사들을 넘어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좌익에서도 절벽에 붙은 끄트머리. 군진을 이루며 무림맹의 진격을 막아서던 누란대의 일익이.

일시에 무너져 가고 있었다.

“저게 무슨···?”

전쟁에 있어서 진격이란 별다른 의미가 아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 이름에 있어서 패도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그저 한 발을 내딛는 것도 진격이란 뜻이다.

허나, 지금 호원타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한 무리의 회색빛 도인들이, 하나의 검진을 이루며 말 그대로 거칠게 나아가는, 진격(進擊). 그 자체를 형상화한 모습이었다.

“고, 공동의 무인들이라고 합니다!”

“공동···?”

또. 또 공동이다. 일전에 달뢰라마를 잡기 위해 중원 출신 무인들을 파견했던 누란성주 호원타는 공동이라는 이름이 또 들리자 얼른 얼굴에 인상을 지었다.

‘마침 잘 걸렸다!’

그래, 이번 전쟁에서 마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다. 부러 욕심을 내어 저들을 치러 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만나기만 한다면 혼쭐을 내주리라. 그런 생각에 이를 갈던 호원타.

달뢰라마 때 일이 실패해 신궁 내에서 신망이 떨어진 것과 더불어 신궁 자체가 고역에 처한 지금이다.

호원타는 그 원수를 갚아 주겠다는 생각에 창을 잡은 손에 힘을 꾸욱 주었다.

“본대의 무인 몇은 나를 따르거라! 공동을 막는다!”

호원타가 있는 좌익의 본대에는 누란대의 정예가 모여있다. 구석진 일익이 아닌 중앙의 정예. 호원타는 이들을 몇 이끌고는 공동이 진격하는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 타타타탓!

땅을 박차며 날아오르는 호원타. 공중에서 크게 원을 그리며 빙글 돌던 그의 창이, 정확히 한 무인을 노려 크게 내려찍어 버린다.

- 후우우우웅!

- 쩌어어엉!

앞에 있는 누란대의 무사를 밀어내고 얼른 검을 들어 창을 막는 공동의 무인. 선두에 서서 적을 밀어내던, 무정검이라는 젊은 검수다.

“네놈이 공동의 대장이냐?”

“대장···? 저급한 말투하고는···.”

“이놈! 서역인이 저급하다는 뜻이더냐!?”

호원타는 호방한 목소리와 모습답게 성격 역시 막무가내다. 우뚝 솟은 콧대만큼 서역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그에게, 저급하다는 말은 서역인을 욕하는 말인 모양이다.

“내가 언제!”

바쁘다. 무정검은 그런 생각에 서둘러 검을 들어 호원타에게 휘둘렀다.

- 깡! 깡! 깡!

정문의 쾌검을 모두 막아 내는 호원타. 신궁에도 여섯뿐이라던 육성의 성주 실력이, 만만치는 않다.

‘젠장···.’

당장에 모든 기력을 끌어 쓰기에는 뒷일이 걱정된다.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잡아먹기도 힘든 상황. 당장에 본 실력을 내보일까 고민하던 정문의 눈에, 중간을 치고 오는 누란대 정예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쳇. 병사들까지···?’

공동의 진격은 여기서 막히고 마는 걸까. 조금은 주춤해지는 이들의 움직임에 정문이 인상을 찌푸리려 할 때.

“앞으로는 가지 못한다!”

호원타의 창이 거칠게 기력을 뿜으며 정문을 향해 날아온다.

“쳇···, 정말 가지가지 하네···.”

어쩔 수 없다. 천검(天劍)을 만나기 전까지 기력을 아끼려던 정문은 단전을 풀어 내력을 뽑을 준비를 했다.

조금은 누란성주라는 자와 놀아 줄 준비를 정문이 마치려던 그때.

- 쩌르르릉! 쩌어엉-!

우레가 내리치는 소리가 절벽을 때리더니, 이내 한 줄기 섬광이 정문의 앞으로 나려 호원타의 창을 밀어낸다.

- 까아아앙!

- 스스스슷!

거칠게 밀려나는 호원타의 신형. 창을 땅에 박은 상태로도, 호원타는 크게 몸을 뒤로 빼고야 충격을 상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섬뇌(閃雷)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남궁세가의 소가주, 신뇌검(新雷劍) 남궁수룡이었다.

“신뇌검···.”

“무정검.”

수룡은 어깨너머로 정문을 힐끗 보고는 검을 들어 옆을 가리켰다. 지나가라는 수룡의 말. 정문은 그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뽑으려던 기력을 다시 집어넣었다.

“여긴, 맹천검대가 맡습니다.”

수룡은 가볍게 검을 털고는 호원타를 향해 눈빛을 발했다. 수룡의 뒤로 달려오는 맹천검대 소속 무사들이 누란대의 정예를 밀어낸다.

“믿고···, 가겠습니다.”

믿고 간다. 정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그뿐이다. 당장에 시간이 촉박하니. 정문은 그렇게 수룡의 등을 한 번 더 보고는 서둘러 발을 뺐다.

“어딜-!”

호원타는 그런 정문을 놓치지 않으려 서둘러 창을 뻗는다.

하지만.

- 깡! 깡!

다시금 마주하고 마는 젊은 남궁세가 소가주의 검.

호원타는 정문을 놓치고 만다.

수룡과 맹천검대가 만들어준 길을 통해.

정문과 공동의 도인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호원타의 살벌한 눈빛이 수룡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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