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특위사.
매화가 흩날리고 태극이 춤을 춘다. 반대편에서는 화염이 치솟고 짐승이 우는 소리까지.
그야말로 진풍경이라는 말과 수라장(修羅場)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 협곡의 아래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너무도 여유롭게.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는 한 노인.
북경에서 수보란 이름으로 불리는 한림원의 대학사, 조숭이다.
검기가 튀어 오르고 암기가 날아드는 현장이다. 당장에 높은 절벽 위에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 공격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위치.
그럼에도 조숭은 아무런 걱정이 없이, 평안한 표정이다. 그의 뒤에 선 무인이, 무언가 기막과 같은 조처를 해둔 덕분이다.
“쯧. 별동대인가?”
전황을 살피던 조숭의 입이 열린다. 자신이 보내둔 호천대가 공격받는 모습을 목격한 직후였다.
“조금 전···, 길목을 지키던 이들 역시 지원하러 뛰어갔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지원이라···? 제법 골치를 썩이는 모양인고.”
“잠시일 겁니다. 군인은···, 전쟁에서 무인에게 밀려도 지는 법은 없습니다.”
조숭의 뒤에 선 무인 철환은 자신이 군인이어서 그런지 제법 군인에게 편향된 발언을 내뱉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당장에 승부를 보는 대련이나 비무에서는 무인이 유리할지 몰라도, 이런 단체 전투에서 시간만 충분하다면, 지구력으로는 군인이 앞설 테니까.
“우선은 버티고···, 별동대를 잡은 후 행동에 나서야겠구나.”
“그게 옳은 줄로 압니다.”
“뚫릴 걱정은 없는 것이고?”
“뚫린들 전장의 복판입니다. 혹여라도 유사시에는···”
자신이 나서겠다. 철환은 그런 의도로 허리춤에 검을 조금 고쳐 잡았다.
“클클클. 그래, 그래. 네놈이 나서면 해결이 되는 것이지.”
조숭 역시 철환이 나서면 된다는 표정. 철환의 일신에 지닌 무공에 대한 믿음이, 두터운 조숭이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누군가 이곳을 노리진 않을까, 그런 걱정이 있습니다.”
“누가 말이더냐? 신궁이? 아니면 무림맹이?”
“저들이 호천대를 노리는 모습이 수상합니다. 아마···, 무림맹 쪽이 아닐지.”
“클클클. 노린들.”
조숭은 그저 간단한 말로 걱정된다는 철환의 말을 일축했다. 맞는 말이다. 노린들, 철환이 있는 이곳에 무슨 위험이 있겠나.
“샛길을 지키던 이들이 빠진 곳···, 그곳에서 대기하겠습니다, 대인.”
그래도 철환은 못내, 걱정되는지, 조숭을 향해 자신이 조금 밑에서 대기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당장에 검을 휘둘러도, 무공을 모르는 조숭이 없는 곳이 안전할 것이다.
“되었다. 두거라.”
“허나···, 대인.”
“이미 그림자를 보내두었느니라.”
!!
“그림자라면···?”
“북경에서 두엇 달고 왔다 하지 않았느냐? 클클클. 샛길은 놈들이 지킬 것이니, 걱정을 거두거라.”
철환은 조숭이 말하는 그림자를 모르지 않는다. 금의위 내에서도 오로지 조숭만을 위해 암약하는 이들, 금의위 특위사.
아마 그들이 조숭을 향해 오는 샛길을 지키고 있는 거라. 철환은 조숭의 말을 단박에 이해했다.
‘특위사라면···’
쉽게 뚫릴 일은 없을 것이다. 철환 역시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닫고 조숭의 곁을 지키기로 한다.
절벽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더욱 가까워져 왔다.
* * *
- 채채챙!
- 채애앵!
일시에 날아드는 두 자루의 검. 하나같이 급소만을 노리는 두 자루의 검이 동시에, 정문을 향해 날아들었다.
미리 검을 빼고 달리던 정문은, 서둘러 검을 들어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낸다.
- 스슷.
뒤로 밀려나는 정문의 몸.
검을 갈무리하며 고개를 드는 정문의 앞에.
온몸을 검정 천으로 휘감은 까만 무인 둘이 살벌한 기운을 내뿜으며 정문을 노려보고 있다.
‘저놈들은···!’
익숙한 모습이다.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정문에게는 더더욱. 누구라도 자신이 죽기 전에 본 모습은, 언제나 뇌리에 남는 법이 아니겠나.
정문은 이전 생이 마치는 순간.
바로, 저런 차림을 한 무인과 함께 있었다.
“특위사··· 인가?”
“······.”
“······.”
열리지 않는 특위사들의 입. 인형처럼 겨우 반응하는 이들의 모습이 괴랄하기 그지없다.
“꼭두각시 같은 놈들···”
그저 받은 명만 수행한다. 정체도, 실체도, 또 존재도. 대외적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들은.
오로지 조숭의 명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 스윽.
- 스윽.
정문의 비난에도 특위사들은 반응이 없다. 어쩌면 감정이라는 것. 그 자체가 이들에게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정문이 검을 들어 올린다. 자신을 죽였던 이들. 아니, 그때와 같은 인물은 아닐 것이다. 정문 역시 예상하는 바는···, 있으니까.
보이는 저들의 검은 무복과 평범한 보검이. 공동파 도관 안, 자신의 방에서 보던 것과 닮아 있어, 더욱 그런 예상이 강해지는 정문이다.
그래서일까. 정문은 별다른 긴장을 하지 않는다.
저들이 가진 무위야 금의위 내에서도 어떤 이들보다 뛰어남을 알면서도 말이다. 저들은 살인에 특화된 살인 기계들.
그리고 아마, 저들이 쓰는 무공은.
정문이 이미 알고 있는 무공일 것이다.
- 타타탓!
- 타타탓!
특위사 둘의 발이 땅을 찬다. 동시에 좌, 우로 뛰어오르며 정문을 향해 검을 뽑는 둘. 아무런 감정도, 변화도 배제한 그저 살인만을 위한 검식이, 정문을 향했다.
익숙한 검술이다.
정문도 익히고 있는.
살검(殺劍)이라는 그 검술.
- 슈슈슛!
- 슈슈슛!
해서, 정문은 당황하지 않았다. 예상한 바니까. 대신 정문은 손에 쥔 검을 고쳐 잡고는 자신이 준비한 바를 선보이려 한다.
살검이라 부르며 자신이 즐겨 썼던, 마치 무적과 같이 보이던, 그 검술에 대한, 파훼(破毁)를.
- 위이잉!
정문의 검에 강기가 아린다. 기회는 한 번뿐. 감정이 배제된 이들은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기에 파훼를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다면, 단 한 번의 빈틈에 저들을 무력화해야 한다. 정문은 그렇게 판단하고는 눈빛을 가다듬고 땅을 박찼다.
- 콰앙!
거친 진각과 함께 특위사 둘의 사이로 튀어 나가는 정문. 둘의 검이 겹쳐지는 그 사이로 정문은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죽으려는 걸까. 마치 적의 검을 향해 동귀어진을 노리고 뛰어드는 이처럼, 정문은 특위사들의 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교차하며 날아오는 두 자루의 검. 두 검은 모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문의 목을 노리고 있다.
- 슈슈슛!
- 슈슈슛!
검이 빠르게 바람을 가르며 목을 찔러간다. 정문은 여전히. 그런 검의 기세를 향해 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검이 정문의 목에 닿으려던 순간.
- 처억!
회색빛 소매가 휘날리더니, 이내 특위사의 시야를 가리고 만다.
- 푸푹!
튀어 오르는 시뻘건 핏물. 이는 부정할 것도 없이 정문의 핏물이다. 검 끝에 전해지는 살을 뚫는 느낌 역시 특위사의 손에는 그대로 전해졌다.
이대로 무정검이라는 무인은 죽은 걸까. 감정도 없는 특위사들이, 그저 결과를 궁금해하며 고개를 갸웃할 때.
살랑이는 바람에, 이들의 시야를 가렸던 소맷자락이 내려온다. 그리고 그런 소맷자락의 뒤로.
- 씨익.
거칠게 반원을 그리는 정문의 입꼬리.
!!!!
“뒤··· 로···!”
처음으로 열리는 한 특위사의 입. 하지만, 그 말이 전부 마쳐지기도 전에.
- 휘이이익!
- 서걱!
정문의 검이 이들과 같은 살검을 그리며 그대로 우측 특위사의 목을 베어버리고 만다.
좌수를 들어 소매로 이들의 시야를 가리고 팔뚝으로 검을 받아낸 정문의 파훼가, 제대로 먹혀들었다. 오로지 급소만을 노린다는 이들의 초식이, 되려 파훼의 단서가 된 것이다.
이들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목이 있는 곳만을 노렸을 테니까.
우측 특위사의 목을 벤 정문의 검이 멈추지 않는다. 연달아 펼쳐지는 또 다른 살검의 초식.
- 슈슛!
- 푸욱!
이들이 펼쳤던 것과 같은 초식이, 그대로 좌측 특위사의 목을 꿰뚫고 만다. 우측 특위사를 베며 한쪽으로 기울었던 검이, 회수(回收)의 동작 없이 그대로 찌르기를 택한 것이다.
“끄얽-!”
괴상한 소리와 함께 핏물이 새어 나온다. 연신 뻐끔거리는 입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정문은 알 수가 없다.
- 쉬익!
정문의 검이 특위사의 목에서 뽑힌다. 한 번 크게 털어 핏물을 날리는 정문의 모습에, 아무런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다.
‘역시···, 특위사였군.’
역시 특위사였다. 자신을 향해 던지는 말에 정문이 내심으로 가지고 있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중이다.
정문은 일전에 묵룡자와의 혈전에서 달뢰라마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살심(殺心)이 가득 차올라 억제하지 못하는 와중에 달뢰라마의 도움으로 겨우 토해내었던 독충이 바로, 사령충(使令蟲).
이는 금의위에서 주로 쓰던 고독(蠱毒)의 일종으로 살심을 동하게도, 또 억제하게 만들 수 있는 독충이었다.
거기서 시작된 금의위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정문의 과거에 대한 의심. 그런 의심이 유독 살기가 강한 살검(殺劍)과 엮이니, 이내 정문은 특위사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금의위에 속한 일반 무인이나 다른 황군 소속이었다면, 살검이라는 무공을 정문이 모르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정문이 모르는 무공에, 황궁의 독충, 그리고 살기라면. 이는 특위사밖에 없을 거라. 그게 정문의 결론이었다.
해서 정문은 이를 대비했다. 명화가 우연히 보았다던 정문의 새로운 검술이 바로 이 살검에 대한 대비. 급소만을 노리고 오는 살기 짙은 검술에 대한 파훼를 정문은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었다.
조숭을 도모한다면, 이들과는 필시 부딪힐 테니까.
왼손을 조금 다쳤지만, 이는 싸게 먹힌 것이다. 저들과 계속해서 싸웠다면, 승리를 가져가도 몸이 지금 이상으로 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
정문이 쓰러진 특위사의 시신을 바라본다. 무언가를 살펴볼까. 아니면, 이들을 살렸어야 했나. 하는 그런 생각으로.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절레 젓는 정문.
이들에게서 나올 것은 없다. 이들은 그저 명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들. 진정한 답은, 이들의 시신을 넘어 보이는 저 절벽 끝에 있을 것이다.
팔의 상처를 질끈 묶은 정문이, 결연한 표정으로 절벽을 올랐다.
* * *
- 짝!
“오! 그래야지! 암! 그래야 맹주지!”
절벽 위에서 전쟁을 지켜보던 조숭이 손뼉을 치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무림맹의 맹주 자정과 신궁의 궁주, 국문소가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다.
지지부진했던 전쟁의 상황.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접전의 와중에.
두 세력의 수장이, 전장의 중심에서 손을 섞고 있다.
군인의 수장은 전장에서 지휘를 맡는다. 전장의 중심에 뛰어들어 병기를 드는 일은 일선 병사들의 몫. 허나, 무인은 다르다.
무인은 제아무리 그 세력의 수장이라도.
이렇게 일선에서 적의 수장과 마주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느 한쪽이든 수장이 죽으면 일이 편해진다. 조숭은 그런 생각에 기뻐하며 얼른 몸을 일으켜 목을 쭉 빼고 둘의 격돌을 감상했다.
조숭의 감탄사는 절벽 아래까지 닿지 않는다. 거리도 멀지만, 철환이라는 무인이 펼쳐놓은 기막이 제법 두텁기에, 이곳의 소리와 기도가, 절벽 아래까지는 닿지 않는 덕이다.
“철환아! 와서 좀 보거라! 누가 이길 것 같으냐? 아무래도 궁주 쪽이더냐?”
“···무인의 결투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조숭의 들뜬 감상에도 뒤에 선 천검, 철환은 부동을 유지하며 멀리서 눈알만 움직여 이들의 충돌을 힐끗 훔쳐볼 뿐이다.
호위무사라는 본분에 충실하는, 철환의 자세다.
“옳지! 얼른 결말을 보자꾸나! 얼른!”
전쟁이 점점 절정을 향해 가는 덕일까. 조숭은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감정을 표하고 있다.
매사에 냉철한 그의 모습이, 이럴 때는 마치 어린아이 같아 익숙하지 않은 철환이다.
‘모든 일이 뜻대로 풀려서인가···’
서역과 중원의 전쟁을 촉발시켰고 저들이 정면으로 맞붙게 했다. 결과는 한쪽의 몰락이고, 그마저도 잠시 후면 공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무공 한번 익혀 본 적이 없는 칠십이 넘은 노인의 계략.
무인보다는 군인이 강하다는 철학을 가진 철환도. 정치가나 학사라는 이름 앞에서는, 왜인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것 같다.
“클클클! 재밌어지는구나! 재미있어!”
조숭은 계속해서 고개를 빼고 절벽 아래를 감상한다. 아무런 걱정도, 자신의 실패도 떠올리지 않는 조숭의 태도. 자만에 가까운 그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려 할 때.
“대인.”
철환의 묵직한 말이, 조숭의 어깨를 부여잡는다.
“왜 그러느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답하는 조숭. 그런 조숭에게, 철환이 아무런 답이 없다.
“철환···?”
조숭은 자신의 물음에 답이 없는 철환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재차 말을 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조숭이 마주한 건.
“······.”
묵묵하고 듬직한 철환의 등.
자신을 향해 등을 돌리고 선 철환의 모습이, 조숭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철환의 등과 어깨너머로는 조금 전과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아무도 없어야 할 이 절벽 위에.
한 젊은 도인이 옆으로 검을 눕힌 채, 조숭이 있는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한 회색 도복을 입은 도인의 가슴에.
‘칠(七)’이란 글자만이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