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천검.
- 쩌어어어엉!
두 개의 손바닥이 마주하며 큰 굉음을 만들어낸다. 큰 기파가 전장에 몰아치며 주변에서 병장기를 휘두르던 무인들의 몸이 기울기 시작했다.
끝이 아니다. 연달아 소리는 더욱 크게, 협곡을 채워나갔다.
- 쩌엉!
- 쩌엉!
- 쩌어어어엉!
격렬하게 격돌하는 두 개의 신형. 서로가 펼치는 오묘한 장법 속에서 묵묵한 두 고수의 표정만이 서로를 가늠할 뿐이다.
“과연···. 그 제자에 그 스승이십니다.”
“제자라···, 정문을 말하는 것이오?”
서로를 향하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주고받는 공방 속에서 오가는 대화까지도. 아직은 여유가 가미된, 두 수장의 공방이다.
“뭐···, 워낙에 유명하시니.”
“제자에게 밀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오만.”
전황은 더디게 나아가는 척을 하며 아무도 모르게 가속하고 있었다. 점점 뜨거워지는 전장의 열기가. 신궁과 무림맹. 두 수장의 격돌을 야기했다.
이미 수십 합을 주고받은 두 무인이, 서로를 인정하며 계속해서 손을 뻗는다.
자정의 어깨 위로 검은 기운이 뿜어지기 시작한다. 색은 검지만, 기운만은 정순한 검은 기운. 공동의 비전 절기이자 장문인 고유의 무공, 통천신공(通天神功)이다.
국문소 역시 내력을 끌어 올려 이전과는 다른 기운을 뿜어대기 시작한다. 열기를 가득 담은 그의 내력이, 마치 사막의 지열처럼 찬찬히, 몸으로 뿜어지기 시작했다.
- 파아아앙!
두 사람의 장력이 다시금 부딪혔다. 크게 밀려나는 두 수장의 몸. 서로 다섯 걸음은 뒤로 물러나고 나서야, 두 무인은 겨우 자신들의 옷매무새를 갈무리할 수 있었다.
서로를 노려보는 눈.
당장에 승부를 보려는 두 무인은 아니다. 각자가 서로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같은 목적으로 두 무인은 시간을 끌고 있다.
정문이라는, 무정검이라는 무인이.
얼른 조숭을 잡아주길 바라는 그런 마음으로.
그렇다고 승부를 대충 벌일 생각도 없다. 부딪혔다면, 빈틈이 보인다면. 이들은 서로를 잡아 승기를 가져오려는 노력을 마다하진 않을 것이다.
자정과 국문소의 손에 내력이 깃든다. 수강(手强)과 수강의 대결. 그들이 서로의 빈틈을 노리며 발을 떼려는 순간.
- 콰콰아아아아앙!
!!!!!
둘이 만들던 소리보다 더 큰, 산이 무너지는 것과 흡사한 소리가 전장을 울리기 시작한다. 소리가 시작되는 곳이, 이들이 서 있는 협곡보다는 조금 위에 있는, 절벽 쪽이다.
고개를 돌리는 둘.
둘 모두, 머리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드디어 시작인가···?’
시작이다.
아마 지금 있는 이 전장에서 가장 강한 두 무인의 충돌.
그리고 이 전장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두 무인의 충돌이 절벽 위에서 시작된 거라. 자정과 국문소는 필연적으로 그 싸움이 시작되는 소리를 알아챘다.
변하는 건 없다. 조금의 기대감과 승부가 나지 않아도 좋을 수 있다는 그런 생각과 함께.
국문소와 자정의 신형이 가운데서 겹쳤다.
* * *
- 콰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그에 어울리는 기파가 퍼져나간다. 아무런 무공을 익히지 않은 노인, 조숭은. 그저 등으로 자신을 막아주는 철환의 뒤에서 두 무인의 겹쳐짐을 감상하고 있다.
강맹한 두 무인의 격돌에도, 조숭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현장에서 여유로운 자세였다.
자신을 막아주는 이의 무위를 의심치 않아 보이는 조숭이다.
“누구냐···?”
철환은 조숭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들던 젊은 도인을 향해 말을 묻는다. 검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에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둘이다. 아니, 철환만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누굴 거 같냐?”
“······.”
검에서 검으로 전해지는 기력이 만만치 않다. 자신과 마주한 도인의 실력을 가늠한 철환의 평가는 그러했다.
회색 도복이 눈에 들어온다. 이글거리는 눈빛에서 느껴지는 분노의 이유는 몰라도 단단히 화가 난 모습과 회색 도복에 새겨진 상징, ‘칠(七)’이란 글자. 요즘 들어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바로, 그 문양이다.
“공동···?”
공동파. 지금 바로 밑에서 자신의 부하들인 호천대와 검을 섞고 있는 이들. 그들 중 한 명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무인이 이곳에 있다는 말은.
‘특위사 둘을···?’
조숭이 길목에 새워뒀던 특위사 두 명을 무찌르고, 이곳에 닿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공동에는 특출난 고수가 많지 않다. 적어도 자신이 알기에는 그렇다. 고수라고 해봐야 지금 무림맹의 맹주인 자정 정도가 있을 것이고, 그는 지금 저 아래에서 신궁의 궁주, 국문소와 맞붙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딱 한 명이 남는데.
마침 나이도, 또 무공의 경지도.
딱 하나 남은 그 무인과 이 젊은 도인이 일치하고 있다.
“무정검이군···.”
“이거 영광인데. 천하제일검이 알아봐 주시고.”
“날···, 알고 있나?”
“모를 수가 없지. 유명하신 분인데.”
철환이 물은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사실 실상만 놓고 보자면, 이 자리에서 철환과 조숭을 알아보는 것이 이상하다.
호천대라는 금의위의 무사들이 자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 북경에서도 황제보다 위에 있다는 조숭과 그 조숭을 지키는 철환이 와 있으리라고, 누가 예상을 할 수 있었겠나.
“···이렇게 검을 겨눈다는 말은···”
조숭을 노리는 것이다. 철환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조숭을 노리는 이유는 단 하나.
이 젊은 무인, 무정검은 이번 일의 모든 배후에.
수보 조숭이라는 이가 관여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죽이거라! 죽여야 한다!”
검을 맞대고 서로 힘을 겨루던 둘 사이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뒤에서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던 조숭의 목소리. 오랜만에 듣는 기분 나쁜 목소리에 정문이 썩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언제 들어도 기분 나쁜 목소리군···”
“네 이놈! 어디까지 알고 온 것이냐!”
조숭은 철환과 대치하는 젊은 도인을 향해 노성을 뿜었다. 철환의 물음과 젊은 도인의 대답. 그리고 모든 상황이 가리키는 하나의 방향을, 조숭 역시 읽은 것이다.
- 채애앵!
두 개의 검이 각자가 날아온 방향으로 크게 젖혀진다. 조금씩 물러나는 두 무인. 철환은 여전히 조숭의 앞을 지키고, 정문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둘을 향해 강한 눈빛을 보낸다.
“다 알고 온 것이렷다?”
정황상 보이는 건, 대부분 맞는 법이다. 뒤따르는 각자의 이유와 사연이 그 속에 녹아는 있겠지만, 정황으로 보이는 결과만큼은 확실한 법.
정황상 이곳까지 노기를 가지고 다가온 무인이 있다면. 그는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일을 알고 온 것임을, 조숭은 모르지 않았다.
“영감님 여전하시네···, 그 목소리. 그건 어떻게 안 되나 봐?”
무정검은 마치 조숭을 잘 안다는 듯 수려하게 말을 뱉는다. 행동에서 나오는 그의 모습이, 조숭을 안다는 말이 허세나 거짓으로 보이진 않았다.
“대인을···, 아는 것이냐?”
“글쎄···, 어떨 것 같아?”
알고 있다. 이건 분명 아는 이의 반응이다. 철환은 그렇게 확신했다. 허세를 부리려거든 더욱 강하게 말했어야 한다. 그런 허세가 없는 저런 태도는. 확실한 정보에서 오는 자신감이다.
그렇다면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흘러간다. 저 젊은 도인은 철환도 알고 있고 조숭도 알고 있다. 그저 이들의 존재를 아는 것이 아닌, 마치 만난 적이 있다는 듯한 그런 모습.
허나, 자신의 기억에는 저 젊은 도인은 존재하고 있지 않기에, 철환의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어르신···, 아는 자이옵니까?”
“···기억에 없는 자로구나.”
“······.”
원한이야 이번 일을 꾸민 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모든 걸 알고 왔다면, 일전에 공동산에 금의위를 보낸 것으로 충분하겠지.
원한을 차치하고도 저 젊은 도인을 마주한 뒤 이상하게 느껴지는 기시감에, 철환은 괜스레 불길함이 몰려오고 있다.
“뒤로 물러서 계십시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흠. 오랜만에 좋은 구경을 시켜다오.”
조숭은 그저 좋은 구경을 시켜달라는 말만 남기고는 철환의 뒤로 조금 물러섰다. 철환이 싸우는 모습은 흔치 않은 광경. 어쩌면 아래에서 벌어지는 국문소와 자정의 대결보다 재미난 구경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저 아이가 그만한 실력이 있다면 말이지만.”
“······.”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기는 말이지만, 철환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한 번 검을 맞대본 그의 감상은, 조숭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작별 인사는 그게 다인가?”
젊은 도인의 혓심이 거칠다. 도인이라는 신분과 젊은 나이라는 두 수식어에 모두 맞지 않는 그런 혓심이다.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뭐, 그쪽이 뱉은 말도···,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 보이진 않던데?”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그런 여유라···?”
“잘 알지. 누구인지.”
정문은 이름을 거론하며 거들먹거리는 철환을 향해 이죽이는 표정을 한번 지어준다.
“저 영감님이 아끼는 개새끼.”
- 콰앙!
“네 이놈!”
정문의 말이 마침과 함께 철환의 몸이 크게 떠오른다. 언제 뽑았는지 알 수도 없는 그의 보검이 강기(强氣)를 가득 두르고는 정문의 정수리로 향했다.
- 까아앙!
검을 들어 철환의 일격을 막아내는 정문. 무릎이 조금 굽혀지는 정문의 자세가, 철환의 공격이 약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천경무의검(天鏡無意劍)···?”
“몰라도 되는 걸 많이 아는 군···, 그런 자들은. 단명하는 법이지.”
천경무의검(天鏡無意劍)이란, 천검(天劍)의 칭호를 잇는 이들이 익히는 무공으로 선대 천검에게서 후대의 천검에게 이어지는 일인전승의 무공이다.
천검이란 칭호가 천하제일검에게 붙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나, 천경무의검이라는 이름과 이 검술이 후대에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 치치징! 까앙!
정문이 철환의 검을 밀어낸다. 그리고 시작되는 두 검수의 격렬한 공방.
검기에서 검강으로, 다시 검기로. 서로가 수를 읽지 못하도록 변화하는 강약의 조절 속에서 무학의 정수가 빛을 발한다.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땅의 파편, 그리고 날아다니는 검기. 주변에서 둘의 격돌을 감상하던 조숭도 어느새 바위 뒤로 숨어 몸을 피하고 있다.
정문은 자신이 가진 검술 중 가장 강한, 아니 가장 실용적인 검술을 펼쳐낸다. 기존에 가진 실질적인 초식에 통천신공(通天神功)의 기운을 더한 살검식(殺劍式).
군인이라는 실전에 강한 인물에 맞춤형으로 꺼내든 무공이었다. 철환이 이 살검을 익혔을 거란 걱정은 없었다. 철환은 특위사가 아니다. 살인만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나 꼭두각시는 아니라는 말.
주변인에게도 믿음을 전부 주지 않는 조숭이, 철환이라고 그 살인에 특화된 검술을 알려줬을 거란 생각은, 정문의 머리에 스치지 않았다.
하지만 정문은 검이 계속해서 맞부딪히는 때마다, 절로 느끼고 있었다.
철환에게는 살검 같은 기술이 없더라도.
정문이 쉬이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아니란 것을.
맞잡은 검 사이로, 점점.
정문의 손이 떨려온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상대를 깔보며 정문을 무시하지 않는다. 자만에 빠져 검에 여유가 흐르지도. 그저 강대한 기운과 완성된 검법만으로, 철환은 조금씩, 정문을 잠식해가고 있다.
- 캉! 캉! 캉! 캉!
분명 서로가 검을 젖혀 가운데서 만나는 격돌임에도 정문의 검이 더 크게 밀려난다. 단전은 이미 두 개를 모두 열었다. 아니, 애초에 처음 격돌부터, 정문은 두 개의 단전을 모두 연 상태였다.
그럼에도, 철환을 상대로.
승기는커녕 버티는 것이 전부인, 정문이다.
‘결단···을 내려야 하나···’
각오하지 않은 일은 아니다. 정문 역시 예상했던바. 당금 무림에서 정문뿐 아니라 철환을 상대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무인은 없을 것이다.
삼존(三尊) 중 하나가 직접 왔다면 모르지만, 삼존은 이미 강호에서 발을 뺀 상태. 그나마 소림의 방장인 권존(拳尊) 공초 역시 이번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운양이 왔다면 달랐을까, 아니면 충산? 자정도 좋은 상대였겠지. 하지만, 정문은 알고 있다. 아니, 방금 격돌로 알게 되었다.
그들이 직접 왔었다고 해도.
정문보다 나은 상황은 아니었을 거라고.
이미 정문과 그들의 경지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철환의 공격이 계속된다. 실체를 가진 수 개의 검기로 발하는 철환의 검.
천경무의검법 중 다천무의(多天無意)의 초식이 정문을 덮친다. 환검의 일종으로 보이는 철환의 검식. 정문은 환검에 숨은 실초를 찾아 검을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 퓨퓨퓩!
이내 정문의 살을 베고 가는 철환의 검. 허초라 여겼던 수 개의 검은, 그대로 실초가 되어 정문의 살을 베어버렸다.
- 턱!
뒤로 물러선 정문이 검을 땅에 대고 몸을 기댄다. 방금 베여간 살들이, 제법 깊게 파였다.
이번 검상만으로 정문이 이렇게 지친 건 아니다. 계속해서 부딪히던 검들, 그리고 그런 검을 잡고 있었던 정문의 팔까지.
뼛속으로 파고드는 철환의 강기공에, 정문의 몸은 이미 기력을 다해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나···’
예상했던 만큼 힘에 부친다. 예상했던 만큼 무리가 있고. 허나, 그런 모든 말 앞에 붙는 예상이 있었다면. 정문이 대비를 해두지 않았을 리도 만무했다.
경지가 다르다. 철환을 떠올렸던 정문은 그런 생각을 떠올렸었다. 그렇다면, 제일 간단한 답은, 그 경지를 정문 역시 넘어서면 그만인 것.
허나, 경지는 동네 장원의 담벼락이 아니다. 자신이 넘고 싶다 한들 쉬이 넘을 수 있는 것이 경지라면, 강호에서 경지란 말이 왜 힘을 가지겠나.
꾸준한 수련과 기연, 그리고 타고난 신체. 그리고 깨달음까지. 모든 박자가 맞춰줘야 넘을 수 있는 게 경지이다.
정문이 실성을 한 것일까. 그런 경지를 한 번에 넘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당연히 그런 것은 아니다.
‘딱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지.’
딱 한 가지. 딱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는 정문의 믿음. 그게 정문이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 스윽.
정문이 몸을 일으킨다. 앞에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철환의 모습이 있다. 여유로운 걸음. 자만해서가 아닌, 그저 만전을 기하는 철환의 걸음이 정문에게 시간을 벌어준다.
정문의 시선이 내려간다. 특위사에게 당해 피로 얼룩진 자신의 좌수(左手)를 내려다보는 정문.
그리고 이내 정문의 좌수에는 한 줄기 도기(道氣)와 함께 불기(佛氣)가 함께 맺히며 불꽃의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도박인가···’
정문은 도박을 하지 않는다. 애초에 도박에서 돈을 잃지 않는 방법은 자리에 앉지 않는 거라. 그런 믿음 때문에. 또 정보를 기반으로 정확한 계책을 세우는 자는 확실하지 않은 확률에 승부를 걸지 않는 법.
정문은 둘 모두에 해당하는 자로, 절대 도박을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허나,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고. 당장에는 이 작은 도박이 없다면, 정문은 또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고 죽고 말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이들이 죽는 모습을 보기 전에 정문이 먼저 죽을 것이란 것. 조금은 위로가 될지도 모르는, 이전과는 다른 상황에 정문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해보자. 안 되면···, 죽기밖에 더하겠어?’
경험은 확실한 자산이 된다. 이미 죽어본 정문에게, 죽음은. 두렵지 않은 존재다.
- 솨아아! 촤악!
정문의 우수가 기력을 가득 담은 손으로 자신의 하복부를 때린다. 단전이 있는 그 하복부. 다른 이들이라면 정확히 단전의 중심이 있을 그 부위에는 끝을 세운 정문의 손이 닿아있다.
하지만, 이곳은 정문이 가진 단전의 중심부는 아니다. 정문은 단전이 두 개인 무인. 다른 이들이라면 단전의 기초가 있을 이 자리에 정문은.
두 개의 단전을 가르는 자그마한, 그리고 남들에게는 없는. 하나의 벽을 가지고 있다.
“쿠훅!”
내기가 역류하기 시작한다. 그저 건드렸을 뿐인데도. 고통은 경험이란 말로 전부 덮을 수 없는 걸까. 살을 타고 몸을 지지는 고통에 정문의 눈이 뒤틀렸다.
하지만, 끝낼 수는 없다. 자신만을 기다리는 절벽 아래의 사제들. 그들을 위해 정문은 이를 꽉 깨물고는 벽에 닿은 자신의 손을 그대로 돌려버렸다.
- 꽈지직!
터지는 짧은 파격음.
무언가, 확실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
정문을 향해 다가오던 철환 역시 분명히 들은 소리. 그저 상처를 부여잡나 하며 바라보던 철환은, 점점 변하는 정문의 기도에 슬쩍, 발을 멈춰버렸다.
- 쿠오오오오오오오.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무정검이라는 무인의 몸속에서.
그리고 잠시간 정신을 잃은 무정검이라는 무인의 어깨 위로. 분명히 실체를 가진, 한 줄기의 불꽃 같은 기력이 솟아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