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조숭.
드디어 미친 걸까.
늘 미친 영감, 미친 영감.
그렇게 불렀더니, 꿈이 이루어진 건 아닐까.
정문은 그런 생각에 조숭의 얼굴을 다시 살펴봤다.
바뀌는 건 없다.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의 조숭이.
정문을 반기고 있다.
“······.”
자신을 죽이겠다며 칼을 들고 뛰어든 무인의 앞이다. 당장에 모든 사태의 주범이 자신이고. 눈앞에서는 자신을 지키던 호위무사까지 쓰러지지 않았나.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저 노인은 저리 여유로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정문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클클클. 겁먹길 바랐느냐?”
“···너무 겁이 없으시니, 놀랍기는 하네.”
“이놈. 어딜 감히.”
조숭은 상황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정문을 꾸짖었다. 허세라 여겨지던 정문의 반응도, 점차 당혹으로 바뀌어 갔다.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놈. 본노를 죽이기라도 하려 했더냐?”
“못 할 거 같아?”
정문은 말과 함께 그대로 발을 내디뎌 조숭의 앞으로 다가섰다. 절벽의 바로 끝, 그 조금 앞에 선 조숭의 목이, 정문의 손에 들려 버린다.
- 꽈아악.
그리 큰 힘을 준 것은 아니다. 적당한 아귀의 힘으로 조숭의 작은 체형을 높게 들어 올리는 정문. 아무런 무공을 익히지 못한 조숭은, 그대로 몸을 들려 허공에 떠 있을 뿐이다.
“내려놓거라···. 숨쉬기 힘이 드니.”
여전히 명령조의 말이 조숭의 입을 탄다. 정문은 이제 당황하는 걸 넘어, 조금은 짜증이 나려 하고 있다.
“이 영감이···”
조숭을 들어 올린 손을 그대로 절벽 밖, 허공으로 가지고 가는 정문. 조숭의 발아래에는 전쟁이 한창인, 협곡 아래가 보일 뿐이다.
“놓으려 더냐? 클클클. 놓아 보거라. 얼른.”
조숭의 허세가 통할 걸까. 아님, 그저 호기심이 동해서? 정문은 조숭을 잡은 손을 쉬이, 놓지 못한다.
“그만두거라. 내 네놈이 뛰어남은 인정하는 바이니.”
조숭은 그런 정문을 향해 인정한다는 말을 뱉는다. 무언가 정문을 물리칠 방도는, 따로 없어 보이는 조숭이다.
“네놈의 승리니라. 내 인정하마.”
“···영감이 죽어야 끝나는 걸···, 모르는 건가?”
“본노가 죽어야 끝이 난다···, 무엇이 말이더냐? 이 전쟁이? 정말 그리 생각했더냐?”
“······.”
“쓸데없는 곳에 힘을 빼고 싶지 않구나, 얼른 놓거라.”
정문은 무림맹의 회의 때도, 국문소와의 대담 때도. 계속해서 조숭이 죽어야 이번 전쟁이 끝난다는 말을 해왔다.
조숭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정문의 말과는 조금. 다르다.
“본노가 죽으면···, 전쟁이 절대 끝날 수 없음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총명해 보이던 모습과 반대로···, 행동은 둔하구나. 클클클.”
조숭이 죽으면 전쟁이 끝날 수 없다. 조숭은 왜 정문과 다른 말을 하는 걸까. 그리고, 왜 망설이는 정문의 표정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조숭의 발, 바로 아래에 펼쳐지는 풍경. 공동의 도인들과 검을 섞으며, 어느새 동수에 근접하게 그들을 막아내고 있는 호위대, 호천대 때문이다.
“본노가 죽으면···, 누가 호천대를 물리겠느냐? 호천대는 군부에 속한 자들. 명이 없으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법이니.”
군인은 명이 없다면 퇴각하지 않는다. 이는 명백한 사실. 다른 이들보다 훨씬 충성심이 뛰어난 금의위의 무사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지금이 정당한 명령에 따라 참전한 것인지 아닌지는 호천대 말단 병사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아니, 그들은 그런 것조차 알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들의 머리에 각인된 한 가지는.
상부의 명이 없다면, 퇴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전부니까.
호천대가 퇴각하지 않으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무림맹은 물론이고 저들과 같은 전선에 선 신궁 역시 저들을 처리할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분위기에 휩쓸려 신궁과 무림맹은.
계속해서 전쟁을 이어 나가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호천대를 모두 죽이는 것도 상황이 애매하다. 누군가는 남아서 조숭이 사적으로 이들을 끌고 왔고, 또 이들을 무림인의 사전에 개입시킨 걸 증언해줘야 할 것이다.
조숭이라는 인물은. 그저 그랬다는 말만으로 탄핵하고 신분을 끌어내릴 수 있는, 그런 일개 관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문이 철환을 물리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숭이 죽은 후 호천대를 호령해 이들을 퇴각하게 할 수 있는 사람.
조숭 다음으로 호천대에 입김을 가진 사람이, 바로 철환이었으니까.
정문이 어깨너머로 철환의 신형을 바라본다. 바닥에 붙어 바스락거리는 게 전부인 철환은, 호천대를 호령하지 못할 것이다.
정문이 조숭과 눈을 맞춘다. 정문 역시, 이런 상황을 모르진 않았던 걸로 보인다.
“안으로 놓거라. 네놈이 이긴 건 인정하마. 이 조숭. 승패를 모르는 이는 아니니.”
“······.”
“허나···, 건곤일척의 승부에도 체급이라는 게 법이다. 무림인은 감히···, 이 조숭을 도모하지 못함이야.”
“···때로는 그런 걸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텐데···?”
“클클클. 그래, 그런 놈들도 있겠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두와 같은 자들. 허나···, 네놈은. 그렇지 않지 않으냐?”
무인은 상대의 기도를 가늠하고 정치가는 상대의 본성을 가늠한다. 무림인 모두가 폭두라 생각했던 정문을. 정치인인 조숭은, 다르게 보는 모양이다.
“네놈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하는 놈처럼 보이는구나. 이리 나서는 것도···, 무모한 짓을 하는 것도 전부. 계산에 들어 있는 것들이지. 아니더냐?”
“······.”
“해서. 네놈은 본노를 절대 죽일 수 없느니라. 네놈이 아무리 강한들. 네놈이 아무리 총명한들. 무림인의 한계란···, 그런 것이다.”
관리와 일개 무림인의 차이. 한 때는 관부에 속해 금의위를 호령했던 정문은 이 차이를 모르지 않는다. 무림인이 제아무리 협명을 날리고 민심을 얻든, 그들은 그저 일개 세속인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무턱대고 조숭을 죽이면 속은 시원할 것이다. 허나, 훗날 불어올 후폭풍 역시 무림이 정면으로 맞을 터. 무림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진 관부의 인물이라면. 조숭과 관련이 있든 없든. 언젠가는 이 일을 트집 잡아 무림에 철퇴를 내리려 할지 모른다.
정치가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용하는 자들. 정치가 조숭은, 이런 자신의 상황을 담보로 목숨을 보장받으려 한다.
“······.”
입을 다문 정문이 턱을 들어 올린다. 경지를 넘었어도, 무림맹을 호령해도, 신궁과 대화를 나눴어도. 결국에는 정치가를 넘어서지 못하는 무림인의 한계에 부딪히는 걸까.
턱을 들어 자신의 손에 들린 조숭의 어깨 위를 살피는 정문. 여전히 맑고 황량한 하늘이 정문을 반긴다.
하늘은 변한 게 없는 걸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 가지 변한 건 있다. 이전에는 새 한 마리 없이 황량하던 서역의 하늘에.
지금은 한 마리의 새가 노닐고 있었다.
- 끼이이이이익!
하늘을 노니는 새는 거칠게 울음을 토한다. 절벽 아래에서는 병장기 소리에 이 울음이 묻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절벽 위에서도 허공에 매달린 노인 역시 마찬가지.
허나, 정문은.
서둘러 시선을 던져, 거칠게 우는 새를 주목한다.
부리를 제외한 모든 부위가 까만 한 마리의 매가 계속해서 협곡의 상공을 선회한다. 마치 정해진 목적이 있는 것처럼 주변을 맴도는 새.
그 새의 모습을 보자, 정문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 씨익.
‘웃어···?’
정문의 짙은 웃음을 보고 당황하는 조숭. 무정검은 지금 저런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그게 조숭의 생각이었다.
무정검은 지금 상황에 분노해야 하고 통탄해야 하며 억울해하며 몸을 떨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패배감의 끝에 관리와 무림인의 차이를 여실히 깨닫고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일의 배후인 조숭 자신을 알아채고 별동대를 움직여 이곳을 직접 타격할 생각을 할 정도로 총명한 무인이다. 그런 무인이기에 조숭 자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 확신했었고.
그런 무인이, 마치 실성한 것처럼 상황에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자, 조숭은 살짝,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친··· 것이냐···?”
최대한 감정을 절제해, 지금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유도하려 말을 꺼내는 조숭. 조숭은, 정문이 이런 상황에서 웃는 이유를 알고 싶다.
“드디어 왔나.”
!!
조숭의 외침과 당황에도, 정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정문의 반응이라곤, 조숭의 어깨너머를 바라보며 왔다는 말을 남겼을 뿐.
왔다라.
누가 왔다는 말일까.
또, 무정검을 웃게 만든 저 새는 무엇이고.
조숭은 온갖 불안감이 자신을 휘감는 걸 느끼며 찬찬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를 살폈다. 정문이 잡은 손에 힘을 세게 주지 않아 옆으로 고개를 돌릴 수 있었던 조숭.
조숭은, 자신의 어깨 뒤, 저 반대편 절벽에서. 거세게 일어나는 한 줄기의 모래바람을 목격할 수 있었다.
!!!
‘모래바람···?’
무언가가 온다는 말과 모래바람. 두 가지가 연상시키는 건 그리 유쾌하지 못한 결과다. 무언가, 무정검이 준비한. 다른 수가 또 있다는 뜻이니까.
조숭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절벽 반대편을 바라보자, 정문은 조금 친절을 베풀기로 한다. 손에 힘을 슬쩍 풀고 조숭의 고개를 반대편으로 향할 수 있게 해주는 정문.
그의 의도가. 마치, 반대편을 잘 보라는, 그런 행동으로 보였다. 모래 바람은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치솟는다.
조숭은 그런 모래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를 일으키는 이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모래에 가려져 그림자로만 보이던 이들의 모습이 뚜렷해진다. 갑주에 투구를 쓴, 무림인이 아닌 군인에 가까운 모습. 그리고 그들이 세운 깃대에는.
‘안(安)’이라는 글자가, 바람에 펄럭이며 기세를 더하고 있다.
“아, 안왕···!?”
“나이치고 눈이 좋으시네.”
“네놈···, 네놈···! 대체 무슨 짓을···!”
평온했던 조숭이다. 여유로웠던 조숭이고.
그런 조숭이.
드디어 발악을 시작하며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놓거라! 얼른! 아니, 놓아다오! 제발! 내···, 무림맹의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겠느니라. 허니 제발···! 서역도 물리고···! 금의위 역시 얼른···!”
조숭의 발이 허공을 구른다. 정문의 손에 목이 잡힌 채 그대로 허공을 달리듯 발을 내젓는 조숭. 그의 발이 빨라질수록. 얼마나 그가 급박한 상황에 부닥쳤는지가, 증명될 뿐이다.
“그거야 영감님 죽으면 전부 알아서 해결될 일들인데. 거래를 하고 싶으면···, 다른 조건을 거셔야지.”
“그, 그렇지! 오, 오냐! 내 모든 걸 주마! 내 너에게! 아니지···. 공동! 그래, 공동파에게! 내 이름을 걸고 후원을 약속하마! 무림, 무림 문파의 성세에 북경의 힘이 더해지면···! 결과를 알지 않느냐?”
“이미 충분한데, 공동은. 구파일방이 뭐가 아쉬워서?”
“구, 구파일방! 그래! 구파일방의 정점에 설 수 있게 해주마! 화산도! 무당도 아닌 공동이! 내 수보의 자리를 걸고 약속하마!”
이렇게 못난 사람이었나. 조숭을 보는 정문의 눈가에 그런 생각이 아렸다. 무서웠다. 두려웠고. 한때는 자신도 이기지 못했던 인물이 조숭이 아닌가.
그런 인물의 무너짐을 보는 정문의 표정이.
유쾌하다.
“영감님이 뭘 잘 모르시네···.”
“무슨···?”
“이미 공동은 이룰 거 다 이뤘는데 말이지. 화산도, 무당도 부럽지 않게.”
“그, 그 이상을! 그 이상을 주겠다는···”
그 이상을 주겠다. 뭐든지 가지는 것보다 그 이상이 있기에 조숭은 그를 제안하며 무정검을 회유하려 했다. 하지만. 비릿한 웃음에 이죽거림이 가득한 무정검의 표정을 보자.
이 모든 말이, 통하지 않음을 이제야 알아챈, 조숭이다.
“쯧쯧. 적당이라는 말이 있거늘. 당신은 늘 그 이상을 바라다 이렇게 되는 거야. 적당히 사람을 믿고···, 적당히 사람을 이용했어야지.”
이건 과거의 강찬이 하는 말일까, 아님 무정검이 하는 말일까. 결과는 알 수 없다. 허나, 두 상황을 모두 관통하는 말임은. 분명했다.
“···제발···, 살려만 다오···! 무정검···! 내, 다시는 공동을···!”
살 수만 있다면. 권토중래든 와신상담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숭은 그런 생각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숨을 구걸했다.
조숭의 구걸에도 불구하고 절레 돌아가는 정문의 고개. 정문은 단호하게 고개를 돌리며 조숭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안왕부의 무장 조금 옆으로 돌리는 정문.
“보이는 게···, 안왕이 전부는 아닐 텐데?”
말을 뱉는 정문의 표정에 의미심장함이 가득하다.
살기 위해서일까. 조숭은 정문이 가리키는 방향을 얼른 바라보며 빠져나갈 구멍을 궁리한다. 정문이 옮겨준 그의 시선 끝에는.
안왕부의 무장 옆을 달리는, 그들과 모양새가 조금 다른,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있다. 그들의 복색이, 모두 검정색이다.
그리고 그런 무인들의 선두에서 달리는 한 사람이 조숭의 눈에 들어온다. 여인이 뒤에서 말 고삐를 잡아줘 겨우 말을 모는 한 사내.
흑색 장포에 금색 자수를 놓은 그의 눈이. 백태가 가득해, 장님이 분명했다.
그의 뒤로, ‘창(廠)’이라 적힌 깃대가 흔들린다.
“흑시창···? 어찌 흑시창이···?”
흑시창은 천검 철환이 직접 호천대를 이끌고 궤멸시킨 곳이다. 그런 흑시창이 어찌 살아서 이곳에 등장한다는 말인가. 조숭은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살아남았지. 애초에 흑시창이 꼬리를 잡힌 거···, 그 일 자체가 이번 계략에 모든 시작이었으니.”
- 씨익.
흑시창의 창두 조륜은 누구보다 정문을 잘 알고 정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조륜은 마지막 싸움이 될 중서대전에서 흑시창이 요긴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스스로 그 존재를 지웠다.
조숭에게 일부러 꼬리를 노출해, 마치 흑시창이 그 꼬리를 잡힌 것처럼 꾸민 것이, 모두 조륜의 계략이었다는 말이다.
정체를 감춘 흑시창은 조용히 대기했다. 정문에게만 슬쩍 연통을 넣고, 그들이 쓰일 날을 기다리며.
그리고 정문은. 그런 흑시창에게 안왕을 이곳으로 데려올 것을 부탁했다. 조숭이 죽고 모든 상황이 끝나갈 즈음. 호천대를 수습해 북경에서 조숭을 탄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안왕이었으니까.
“말도···, 말도 안 되는···!”
조숭은 어느새 모든 걸 포기한 듯 힘을 풀고 이제는 발도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읽힌 것. 자신이 패배한 것. 그리고 자신이 잃게 될 모든 것에서 조숭은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내가 말했잖아.”
“······?”
무슨 말을 했다는 걸까. 오늘에야 처음 얼굴을 맞대는 젊은 무림인의 말에 조숭은 그저 의문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내 마지막 검. 당신이 찾지 못한 그 검이···. 결국 당신의 목을 노릴 거라고.”
!!!!!!
“네, 네놈···! 설마···!!?”
“이번에는 발치···, 그 이상에 닿은 것 같네. 유언은 남기지 맙시다. 살아온 당신 방식이···, 유언이니.”
조숭은 머리에 한 이름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자신이 아꼈던, 그리고 자신이 버렸던. 한 젊은 학위사의 이름이.
“가···, 강··· 찬···?”
한때는 자신이 불렸던 그 이름을 듣는 정문의 얼굴에 후련한 미소가 자리한다. 아마. 이제는 저 이름을 듣는 것도 마지막이라. 그런 생각일 것이다.
“오해는 마시고. 복수는 아니니까. 그저 이번 생에도···, 더럽게 엮였을 뿐.”
“···차, 찬아···!”
무어라 조숭이 더 말을 뱉기도 전. 정문의 얼굴이 밝게 펴진다. 진한 미소와 들리는 그의 턱. 그가 마치 지금을 만끽하는 듯한 표정을 한 번 짓더니, 이내.
- 파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기력이 잔뜩 실린 그의 손이 주먹을 쥔다. 조숭의 목을 쥐고 있던, 바로 그 손이.
한 줄기 핏물이 높게 허공으로 튀며 곡선을 그린다. 나쁘지 않은 풍경이다. 정문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떴다.
그리고 이내 바닥에 떨어지는 작은 구체.
- 톡! 톡토도도독!
시뻘건 물을 흘리며 바닥을 구르는 작은 구체가, 정문의 발에 부딪혔다.
오랜 악연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