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153화 (완결) (153/153)

153. 공동파. (完)

중서대전(中西大戰)이 끝나고 5년이 흘렀다.

그간 많은 것이 바뀐 중원의 정세.

제일 많이 바뀐 건 아마 북경일 것이다.

북경은 조숭이라는 이름을 철저히 외면했으며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찾아 역모란 이름을 씌웠다.

무림인의 전쟁보다 더 진한 피비린내가 나는, 정치인들의 정쟁이었다.

안왕은 조숭을 역적으로 발표했고 그의 잔당을 처벌했다. 여전히 완료되지 않은 정쟁이지만, 대세는 안왕에게 넘어가며 안왕은 현 황제의 숙부로서 모든 걸 바로 잡겠다고 만민에 약속했다.

관무불침에 대한 그의 약속이나 의지 역시 마찬가지. 그는 사적으로 몇몇 무림의 인사들과 관계는 텄으나, 따로 이를 자신의 정치에 이용하지는 않았다.

이제야 완전히 갈라진, 무림과 관이었다.

무림 역시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평이 많았던 무림맹은 확고한 정파의 연합체로 자리했으며 그간 무림맹에 발을 담그지 않았던 문파들 역시 이제는 무림맹의 문을 두드렸다.

역적 조숭을 직접 처단한 무정검이라는 무인이 있는 무림맹은, 이제 정도 무림을 넘어 중원 무림 전체를 대표하는 하나의 걸출한 상시 기구가 된 것이다.

신궁은 어떻게 됐을까. 역적 조숭에 가담한 죄를 물어 북경의 황군이 이들을 짓밟진 않았을까.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신궁은 조숭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무림맹이 직접 소명했고, 안왕은 이를 인정했다. 적당한 거래가 포함된 협상이었지만, 딱히 정도에서 벗어난 협상은 아니었다.

덕분에 신궁은 무사히, 서역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뿐만이 아니다. 무림맹은 차후 있을 분란을 막기 위해 신궁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당연히 이런 제안을 건넨 건 무정검이라는 무인.

그는 철저히 계산된 제안을 보내며 신궁과 무림맹의 화친을 성사시켰다.

무림맹은 서역을 통하는 상행을 주기적으로 보내고 신궁은 이들에 대한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 신궁이 중원이나 다른 세력을 침범하지 않고도 자생할 수 있는 장치를, 그가 만든 것이다.

중서대전이 끝나고 5년간은 이런 평화가 유지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런 큰 흐름에 중심에 있는 곳은 다른 곳이 아닌 감숙성 평량의 공동파.

공동은 이제 무림 내부의 평가가 아닌 중원 만민 모두에게 화산이나 무당, 그리고 소림과 동수. 어쩌면 그 이상 가는 문파라는 평을 받고 있다.

공동에는 이번 전쟁을 끝내고 천하제일검을 꺾었으며 역적을 직접 처단한 걸출한 영웅, 무정검 이정문이 있었으니···

“제법 주관적인 평가다. 그죠?”

!!

붓을 열심히 놀리던 정문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올린다. 홀로 웃으며 열심히 붓을 놀리던 그가, 잠시 기감을 거둬둔 탓이다.

“며, 명화야?”

“이야. 직접 걸출한 영웅이란 말을 쓰시다니···. 참 두꺼워요? 그죠?”

“뭐, 뭐가?”

“낯짝!”

“······.”

정문은 허리에 손을 올리며 비웃는 표정을 짓는 명화를 보며 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마치 치부를 들킨 이의 표정이 정문의 얼굴에 아렸다.

“···트, 틀린 말은 아니지!”

“예. 맞죠. 뭐. 근데 스스로 그러기는 좀···”

추하다. 정문은 명화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왜인지 귓가에 그런 단어가 떠도는 것만 같았다.

“왜! 왜 왔어? 어? 사형 방에 아무런 기별도 없이 말이야! 이거, 이거 사문의 법도가!”

“법도를 제일 안 지키는 사람이 꼭 법도를 따지긴! 몇 번이나 불렀었거든요!”

“···끄응.”

“그나저나, 잊은 건 아니겠죠? 오늘이 바로 약속한 그날이라구요!”

“그날?”

“다들 모여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어요.”

정문은 그날이라는 명화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아! 하는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그렇게 됐나···.”

“이봐, 이봐. 모르실 줄 알았어요! 얼른 준비해요. 중대에서 다들 기다리니.”

“준비해서 금방 갈게. 먼저 가 있거라.”

“늦지 마요! 진짜!”

명화는 정문을 향해 한 번 더 강조를 주고는 겨우 방에서 물러섰다. 서둘러 쓰던 글을 마무리하는 정문. 지나간 중서대전에 관한 서책을 남기는 정문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전부 적지 못한 것들도 많다. 하지만, 충분히 남겼으리라. 정문은 그렇게 생각하며 책장을 덮었다.

정문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옆으로 모셔두었던 검을 집어 드는 정문. 정문은 의복을 조금 정리하고 머리를 고쳐 묶은 후 방문을 나섰다.

“스승님. 어디 가십니까?”

방문 앞에서 정문을 맞이하는 어린 도사. 공동의 이대제자, 그리고 그중 맞이인, 한때는 혈영문의 독에 중독된 적이 있는 무성이 정문을 맞았다.

이대제자들은 정문을 사숙이라 불렀다. 아직은 사승관계를 맺지 않은 관계상 사부(師傅)보다 위에 설 수는 없기에 사숙(師叔)이란 칭호를 썼던 이들의 관계.

허나, 정문은 중서대전이 마무리되고 공동으로 돌아온 뒤 정식으로 후계자의 계를 받고 이들과 사승의 관계를 맺었다.

조금은 정식 후계자, 그리고 누군가의 스승 같은 말들이 부담스럽던 정문이, 이제는 이를 온전히 받아들인 것이다.

- 이제는 네가 진짜 이정문이니까.

누군가의 목소리가 정문의 머리에 울린다. 아마,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정문이다.

“약속이 있는 걸 깜빡해서. 오늘 수련은 다들 조금 미루자꾸나.”

“예, 스승님. 사제들이 풀어질 수도 있으니, 제가 따로 수련시키겠습니다.”

“녀석. 적당히 해두거라.”

정문은 무성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전각을 나섰다. 이제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편안한 풍경이 정문을 맞이한다. 공동산. 취병봉(翠屏峰)이 내려다보고 아래로는 연지하(胭脂河)가 굽이치는 곳.

‘집’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을 정문이 밝은 미소와 함께 걸어 나갔다.

- 하압! 합! 합!

- 다시!

- 허엇! 헛! 헛!

황성각의 아래에 있는 집무실에서 나와 중대를 향해 걸어가는 정문. 그런 정문이 지나는 자리에서, 동대(東垈)에 있는 연무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런 연무장에 울려 퍼지는 일정한 구령 소리. 선두에 선 젊은 도인의 구령에 맞춰 유독 어린 모습을 한 도사들이 연달아 주먹을 뻗고 있다.

“칠상권은 단전에 꽂아야 적이 제일 아픔을 느껴! 다른 곳보다 우선해서 단전! 공동이라면 단전부터 노리는 게 기본이야!”

“예엡!”

어린 도인들을 향해 열심히 공동파 무학의 묘리를 풀어내는 한 여도사. 달뢰라마를 서장으로 데려다주며 인연을 맺은 월아문의 여식, 화난설이다.

난설은 공동의 이대제자다. 나이야 이대제자 중 대제자인 무성보다 많은 난설이지만, 항렬로 본다면 난설은 이대제자 중 막내에 속할 것이다.

그런 난설이 가르치는 어린 도인들이라니.

누구나 알 수 있듯, 공동은 새로이 삼대제자를 받았다. 중서대전이 끝난 후 공동의 명성은 하늘을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당연히 입문을 희망하는 자들 역시 많아졌고, 공동은 재정적으로도, 인적으로도 충분히 이들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성장했다.

다른 문파라면 이런 상황에서 고르고 골라 선별한 인재만을 제자로 받을지도 모른다. 문파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들어오는 제자들의 수준도 높아야 하지 않겠나.

허나, 공동은 그러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은 감숙 출신의 아이들만 입산시켰으며 그들의 배경을 보지 않았다. 이민족 출신이건, 고아건, 명문의 후손이건.

공동은 그저 감숙의 아이라면, 산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공동은 무정검이라는 한 명의 뛰어난 무인을 배출했다. 허나, 그게 공동의 전부는 아닌 법. 공동은 한 사람의 뛰어남이 아닌 여럿의 만남이 만든 곳이다.

공동은 뛰어난 이들을 받기보다는 인연을 만들어갈, 함께 취병봉을 이룰 제자들을 받으려 애를 쓰고 있다.

감숙과 공동을 사랑했던, 원래의 이정문이라면 이렇게 했을 거라. 지금의 정문은 그렇게 여겼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난설이 외치는 구호가 들려온다.

“계속해서 수일(守一)한다! 해서, 진일보(進一步)한다! 그게 바로!”

“공동의 무인!”

“공동의 무인!”

앳된 목소리로 이를 후창(後唱) 하는 공동의 삼대제자들. 정문은 언제 들어도 좋은 그 구호를 만끽하며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저 멀리 아래로는 태청궁의 지붕이 보인다. 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분주함이 느껴지는 태청궁. 높아진 공동의 위상만큼, 태청궁의 업무 강도 역시 높아졌다.

이제는 남들이 조금은 공동을 무시해줬으면 좋겠다는 태청궁주 자명의 울음소리가, 정문의 귓가에 선선하다.

‘아직은 어림도 없지. 암.’

조금은 더 자명을 골려주고 싶은 정문. 정문은 그런 재미난 생각을 하며 미소를 가지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저 앞에서 중대의 연무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법 많은 이들이 몰려 있는 중대의 연무장.

태청궁이 문을 열었고 이대제자들과 삼대제자들은 따로 수련하고 있다.

즉, 공동파 전체의 행사는 아니란 뜻인데,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 정문의 눈에. 중대에 모인 인물들의 면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셨습니까?”

“여기요, 사형!”

“쳇, 빨리빨리 좀 다니십쇼! 태청궁에 가봐야 한단 말입니다!”

“느, 늦으셨습니다!”

“아주 태평하십니다?”

“오늘 각오하십쇼.”

제일 먼저 보이는 건, 강호를 함께 누볐던 공동의 사제들. 진명과 사풍, 명화와 묵환을 비롯한 공동의 일대제자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무복과 칼을 차고, 정문을 기다리고 있다.

중대에 모인 이들은 사제들이 전부가 아니다.

“무정검. 오셨군요.”

이제는 신(新)이란 글자를 떼어버린 남궁의 소가주, 뇌검(雷劍) 남궁수룡의 모습이 보인다. 청색의 남궁가 무복을 잘 차려입은 그가, 머리에는 영웅건까지 두르고 정문을 맞이했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끝나고 한잔하시죠.”

수룡의 뒤로 정문을 맞이하는 건 화산의 백경과 무당의 허륜, 그리고 종남의 냉겸으로 정문의 의형제들. 중서대전에서도 함께한 이들이, 오랜만에 정문을 찾아 왔다.

화산은 최근 운양이 장문인의 직을 이어받아 항렬이 조금 바뀌었다. 은거에 들었던 전대 장문, 자하검존(紫霞劍尊) 여백이 홀연히 돌아와 운양에게 장문직만을 넘기고 다시 살아진 게 2년 전의 일이다.

“정문 형니임-! 저도 왔습니다! 하하하하하!”

의형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문의 다음으로 의형제 중 둘째인 주일도가 크게 소리친다. 여전히 밝은 모습의 주일도.

주일도 역시 최근 강호에서 명성이 높게 올라, 점창이 점점 예전의 위세를 찾아가고 있다.

주일도로 인해 점창이 다시금 비상하리라는 정문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밝은 이들 사이로 차분한 모습을 한 승려가 모습을 나타낸다. 소림의 나한오승(羅漢五僧), 그중에서도 첫째인 무각이 반장을 하며 정문에게 고개를 숙였다.

소림은 백미권존(白眉拳尊) 공초가 방장에서 내려오고 철견권승(鐵肩拳僧) 고암이 새로운 방장에 올랐다. 무각은, 곧 그 뒤를 이을 것이다.

- 후웅! 후웅! 훙!

거친 장법이 바람을 가르며 누군가 몸을 푼다. 다른 이들의 고급진 의복과 다르게 넝마로 된 옷을 걸친 무인.

평량을 지키는 개방의 거지, 이제는 명실상부한 개방의 차기 방주, 호연신개(浩然新丐) 홍구였다.

그의 허리에 여덟 개의 포대가 달려있다. 정식으로 임명된 팔결개, 즉 후개(後丐)의 상징을 달고 있는 홍구. 오봉학의 혈압이 조금 높아진 원인은 이것 때문일 것이다.

“형님, 오랜만에 손을 섞습니다. 제가 이제 제법 하는 건 아시죠? 오늘 지면···, 서열 다시 정하는 겁니다?”

“잠깐, 잠깐. 이기면 뭐 얻는 게 있는 거였어요? 그럼 나도!”

홍구의 말에 누군가 얼른 끼어들며 말을 붙인다. 당문의 여식, 당소정이다.

“내가 이기면 하산(下山)하는 거예요! 당가타로 가서! 알죠?”

사천의 당문은, 아직 정문을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다. 여전히 비워진 데릴사위의 자리가 정문을 노리고 있다.

걸출한 정도 무림의 후기지수들이 모두 한곳에 모였다. 이들은 무얼 하려는 걸까. 다들 몸을 풀며 연무장에 선 모습이 마치 비무에 나서는 무인들의 모습과 같다.

“쯧. 그렇게들 당하고도 아직 정신들을 못 차려서야.”

후기지수들의 모습을 보며 밝게 웃는 정문. 말투는 퉁명해도, 그의 표정이 영 싫은 표정은 아니다.

“매년 이맘때쯤에는 시간을 내주시기로 하셨잖아요? 말 바꾸지 마요.”

“거, 언젠가는 이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수행이지요. 아미타불-.”

정문은 중서대전의 후처리를 끝내고 계속되는 이들의 도전을 받아주었다. 말이야 도전이지만, 일종의 지도 대련과 같은 이들과의 비무.

이들은 그간 쌓은 인연을 빌미로, 무정검이라는 강호에 더 없는 고수에게 일 년에 한 번씩 지도를 받는 것이다.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라고 너무 유세 떠시는 거 아닙니까?”

“허허, 유세를 좀 떠셔도 되는 일이지.”

“하기야, 뭐. 천하제일검에게 이렇게 배우기가 쉽나.”

“인정하고 갑시다. 대신 나중에 한 대라도 때려주면 되는 일이죠.”

천검(天劍) 철환을 쓰러트린 정문의 앞에는 새로운 칭호가 추가되었다. 철환이라는 이가 가지고 있던, 천하제일검이라는 새로운 명칭이.

“영광으로들 알라고.”

- 씨익.

이 자리가 싫지 않은 듯 밝게 웃는 정문. 정문의 시선이 이곳에 모인 무인을 하나씩 훑는다.

그간 자신이 속가행과 강호행, 그리고 수많은 모험을 다니며 쌓은 인연들.

그 인연들을 바라보는 정문의 표정이 만족으로 가득하다.

천천히 올라가는 정문의 손.

“다들 방식은 알지?”

정문은 올린 손을 까딱이며 검루에 손을 올렸다.

“덤벼. 한꺼번에.”

정문의 입이 마지막 말을 뱉자,

“조져!”

라는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무인들의 발이 땅을 때린다. 높게 뜨는 무인들의 신형. 저마다 몸에 익힌 절기를 한 번에 뿌릴 준비를 마친다.

주먹과 검, 그리고 내력이 난무하는 공동파의 연무장.

연이어.

- 콰과과아아아앙!

하는 익숙한 소리가, 공동산(崆峒山)에 울려 퍼졌다.

-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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