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보건곤-5화 (6/61)

제 5 장      쉽 지 는    않 을 거 야

1

흙은 거무틱틱한 빛을 띄고 있었다.

괴이한 장소였다.

주변의 경치는 여타 산(山)들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었다. 단지

흙의 색깔만이 기이할 정도로 거무스름할 뿐이었다.

나무나 풀 한 포기 보이지 않고 오직 검은 땅만이 백 여장이나

뻗어 있는 모습은 을씨년스럽기 조차 했다.

언제부터인지 노인 한 사람이 그 검은 대지(大地)의 중앙에서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땅은 색깔과는 달리 입자가 부드럽고 고왔다. 노인은 두 손을

이용해 부드러운 땅의 흙을 깊게 파냈다. 마침내 사람 한 명이

충분히 묻힐 만큼 땅이 파이자 그는 땅을 파내던 손을 멈추고

한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시체 한 구가

나뒹굴고 있었다.

시체의 전신에는 그야말로 크고 작은 상처가 셀 수도 없이

많이 나 있었다.

왼쪽 눈은 휑하니 구멍이 뚫려 있었고, 가슴에서 아랫배까지는

길게 그어진 상처가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시체의

양손은 아랫배를 감싸안은 자세로 굳어 있었는데 그 열

손가락조차도 모두 부러져 있었다.

옆구리에는 검이 뚫고 나간 흉터가 생생하게 나 있었고, 두

다리도 상처투성이였다.

무엇보다도 시체의 몸에서 눈을 끄는 것은 목에 박혀 있는

유엽비수였다.

섬뜩한 빛을 뿌리는 그 유엽비수는 길이가 거의 한 자쯤

되었는데 시체의 목 중앙을 거의 관통하고 있었다.

처참하다 처참하다 해도 이렇게 처참한 시체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시체의 목에 박혀 있는 유엽비수를 내려보더니 신중한

동작으로 그 유엽비수를 움켜 잡았다.

그의 눈에서 노인답지 않은 신광(神光)이 흘러나오는 순간,

슥!

그는 너무도 수월하게 시체의 목에서 유엽비수를 뽑아 들었다.

유엽비수가 뽑혀 나간 목에서 선혈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는 재빠른 손길로 유엽비수가 뽑힌 구멍 부근의 혈도 몇

군데를 점했다. 피가 점차 멎어지며 보기 흉한 구멍이 시체의

목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손가락 두 개가 들락날락거릴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쩍 벌어진 채 시뻘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는데도

노인은 눈쌀조차 찌푸리지 않은 채 시체의 몸을 번쩍 안아들고

구덩이에 눕혔다.

그런다음 시체의 양 손을 옆구리에 가지런히 늘여 뜨렸다.

아랫배를 움켜쥐었던 양 손이 풀어지자 가슴부터 아랫배까지

그어졌던 상처가 쫘악 갈라지며 금시라도 내장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노인은 시체의 몸을 반듯하게 편 다음 품에서 대나무로 된

죽통과 솜뭉치를 꺼내 들었다.

그는 굳게 다물어진 시체의 입에 죽통을 물려 세웠다.

죽통이 빠지지 않고 반듯하게 세워진 것을 확인한 뒤 노인은

솜으로 시체의 콧구멍과 양쪽 귀를 틀어 막았다. 그런다음

부드러운 검은 흙으로 다시 시체를 덮기 시작했다.

시체를 묻는 일은 채 일각(一刻)도 소요되지 않았다.

잠시 후, 대나무 죽통만이 땅위로 삐쭉 올라왔을 뿐 시체는

완전히 땅속으로 묻혀 버렸다.

노인은 대나무 구멍이 막히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

다음 천천히 시체가 묻힌 자리 옆에 이상한 모습으로 주저

앉았다.

노인의 앉은 모습은 몹시 특이했다.

두 다리를 구부리지 않고 쭉 편 채 비스듬히 몸을 누이는

것이다. 몹시 불편해 보이는 자세였으나 노인은 조금도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더니 이내 코를 골며 잠에 빠져 들었다.

*                  *               *

당노오랍산(唐努烏拉山)일대의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언제부터인지 하나의 전설같은 기이한 소문이 전해져오고

있었다.

치명적인 덫에 걸린 짐승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다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갈쿠리같은 덫에 오른쪽 다리가 거의 반이나 잘려져 나간

승냥이 한 마리가 한 달이 지난 다음에도 계곡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을 직접 본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냥꾼은 또 다른 경험담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화살을 날려 토끼가 화살에 관통당한 것을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토끼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끼의

시체를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며칠 후에 그 토끼가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배에는 여전히 그

화살을 꽂은 채로 말이다.

죽창에 아랫배를 찔려 거의 배가 반이나 갈라진 곰 이야기도

들렸다.

죽창으로 곰을 찌른 사냥꾼은 그 곰이 틀림없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이틀동안 그 시체를 찾아 계곡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가 결국 그 곰을 만났는데 곰은 전혀 다치지 않은 것처럼

팔팔했다고 한다. 결국 그때 그 사냥꾼은 곰이 후려갈기는

앞발에 맞아 얼굴의 반이 달아나고 말았다.

처음 그런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치거나 그들이

잘못 보았을거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이

되고 목격자가 늘어나자 무작정 그 소문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만도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늙은 사냥꾼이 아주 기이한 일을 목격함으로

해서 그 소문의 진위(眞僞)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어느 해이던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겨울에 그는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평생을

당고오랍산에서 살아온 노련한 사냥꾼답지 않은 실수였는데 그도

자신이 왜 그때 그런 실수를 하게 되었는지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아뭏든 그때 그는 길을 잃고 미친 듯이 산을 헤메다가 어느

이름모를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아래로 구르게 되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깨어 났을 때 그는 자신의 종아리에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아주 커다란 상처가 난 것을 발견하고

사색이 되었다. 그 상처로는 도저히 산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이 몹시 기이한 곳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은 커다란 협곡과 협곡의 사이에 위치한 백 여장 너비의

아주 은밀한 분지(盆地)였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었는데도 이상하게도 그곳에서는 눈을

찾아 볼수가 없었다. 나무도 없었고, 풀 한 포기 나 있지 않은

메마른 땅이었다.

게다가 더욱 괴이한 것은 땅의 색깔이 여느 곳과는 달리 검은

색을 띄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육십 년이상을 살아오면서 별의별 해괴한 일을 보고

겪었지만 아직 검은 색의 땅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가 다리의 고통도 잊고 멍하니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동안에 더욱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어디선가 사슴 한 마리가 분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사슴은 늑대에게 당한 듯 옆구리가 길게 찢어져 거의 내장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사슴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용케도 분지안으로 들어오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더니 자신의 갈라진 옆구리를 땅에 마구

비벼대는 것이다.

사냥꾼은 사슴이 죽기 전에 마지막 발악을 하는가 보다 하고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었는데 사슴은 네 다리를 마구 움직여

바닥의 땅을 파헤치며 자신의 상처난 부위를 그 땅속에 묻으려고

애를 썼다.

별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잠시 후에 사슴이

부시시 일어나더니 태연하게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냥꾼이 눈을 부릅뜨고 보니 놀랍게도 사슴의 옆구리에 있는

상처가 거의 아물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사냥꾼은 영문을 몰라 그저 멀거니 눈을 뜬 채 사슴이 유유히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괴이한 일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얼마 후에는 다리가 덫에 걸려 찢어진 이리 한 마리가 분지로

들어왔다. 이리는 성한 다리로 검은 흙을 후벼파더니 자신의

다친 다리를 그 안에 넣고 다시 흙으로 덮었다.

잠시 후에 이리는 언제 다쳤느냐는 듯 활기찬 동작으로

분지밖으로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사냥꾼은 하도 이상해서 무의식중에 자신도 손으로 땅을 팠다.

땅은 보기와는 달리 흙이 너무도 부드럽고 고와서 맨 손으로도

쉽게 파졌다. 사냥꾼은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땅을 파내고는

자신도 다친 다리를 그 땅에 묻고 흙으로 덮었다.

한동안은 별다른 느낌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친 종아리부근이 점차 후끈한 열기로 뒤덮히기

시작했다.

열기는 점차 강해져서 종내에는 불로 덴 듯 화끈거렸다.

사냥꾼은 움찔 놀라 자신도 모르게 급히 다리를 땅에서

빼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분명히 뼈가 드러날 정도로 찢겨졌던 종아리부위의 상처가

거의 아물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피부가 약간 붉으스름하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다치기 전의

상태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발목을 까닥거려 보았는데 전혀

다치지 않은 것처럼 원활하게 움직였다.

사냥꾼은 하도 신기해서 바닥에서 일어나 깡총깡총 뛰어

보았다.

전혀 아프지가 않았다.

결국 사냥꾼은 흥분을 가누지 못하고 허겁지겁 그곳을

빠져나와 산을 내려갔다.

다음날 그는 반신반의하는 마을사람들을 데리고 그 분지를

찾아 산을 올라왔다. 하나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

검은 색의 흙이 펼쳐진 분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다녔던 길을 하나 하나 되새기며 몇 번이나 산을

이잡듯이 뒤지고 다녔는데도 자신이 떨어졌던 그 절벽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사냥꾼은 허탈한 걸음으로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그 사냥꾼은 십 여년을 더 살다가 죽었는데, 죽기 전에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 이 산 어딘가에는 분명히 산신(山神)이 내린 축복받은 땅이

있다. 그 땅에 가면 아무리 심한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도 단번에

완치될 수 있지. 내 말은 절대로 거짓이 아니야...제발

믿어줘...

사람들은 그 늙은 사냥꾼이 실성한 거라고 쑤근거렸다.

하나 한 사람만은 그 늙은 사냥꾼의 말이 한 치의 틀림도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젊은 시절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때 그

땅에 가서 상처를 완치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독고무정(獨孤無情)이라고 했다.

*              *            *

독고무정은 한 달동안 무덤옆을 지켰다.

그동안 그가 한 일이라고는 대나무 죽통이 막히지 않도록 가끔

그 안을 들여다 보는 일과 하루에 두 번씩 우유빛 액체 몇

방울을 죽통 안으로 떨구어 준 것밖에는 없었다.

한 달이 지나자 독고무정은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시체는 금세 밖으로 나왔다.

이상하게도 한 달이나 흘렀는데 시체는 조금도  지 않았다.

아니,  기는 커녕 오히려 전신에 나 있던 그 많은 상처들이

거의 아물어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독고무정은 시체에 묻은 거무스름한 흙을 대충 털어내고는

시체의 코와 귀를 막았던 솜구멍을 떼어 냈다. 제일 마지막으로

그가 시체의 입에 박혀 있던 대나무 죽통을 뽑아냈을 때 돌연

시체가 번쩍 눈을 떴다.

하나뿐인 시체의 오른쪽 눈에서 흘러나오는 안광은 섬뜩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독고무정은 놀라기는 커녕 오히려 히죽 웃으며

시체를 내려보았다.

"이제 정신을 차렸군. 하지만 아직 몸을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시체의 하나뿐인 외눈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도저히 필설로는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빛을 띄고 있었다.

독고무정은 그 눈을 빤히 들여다 보며 느릿느릿한 음성으로

말했다.

"외상(外傷)과 부서진 뼈는 대충 아물었지만 네 몸 구석구석에

퍼져 있는 죽은 피를 뽑아내려면 다시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다.

너는 물론 참을 수 있겠지?"

시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무정은 희미하게 웃었다. 마치 유령의 미소를 연상케 하는

웃음이었다.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시체를 옆구리에 끼더니 몸을 날려 어디론가로

사라져갔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보기 싫게 파헤쳐진 흙구덩이만이

뎅그마니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2

차가운 안개가 자욱하게 뒤덮힌 곳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신선하게 느껴질 법한데도 이곳의 안개는

이상하게도 칙칙하고 무거웠다.

다른 곳에서는 선명하게 떠오르는 아침해를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해조차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공기중에

느끼한 비린내같은 것이 섞여 있어 깊은 숨을 한 번만 들이켜도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원인은 간단했다.

독장(毒障)때문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나뭇잎과 동물의 시체가 고여  어 있는

늪지에서 뿜어나오는 독기가 공기에 섞여 흩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독고무정은 시체를 겨드랑이에 낀 채 짙은 안개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늪지의 바닥은 질퍽질퍽했고, 이름모를 수초와 나뭇가지들이

자욱하게 늘어져 있어 한 치 앞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앞으로 갈수록 안개는 짙어졌고, 안개속의 비린내도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늪지는 더욱 깊어져 거의 허리까지 빠질

정도였고, 나무 덩쿨은 한 걸음만 내딛어도 온 몸을 칭칭 감아

버릴 정도로 빽빽했다.

그런데도 독고무정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태연히 나무덩쿨을 한 손으로 헤치고 늪지의 위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짙은 안개속을 두 시진이나 지난 다음에야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의 늪지는 여타 지역과는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도 늪지라면 항상 있는 수초나 나무덩쿨들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늪지의 물이 깨끗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탁하고 더러워서 제아무리 안력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치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독고무정은 그 늪지를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곳에는 시질(豺蛭)이라고 하는 아주 기이한 놈들이 살고

있지."

시(豺)란 승냥이를 가리키고, 질(蛭)이란 거머리를 뜻한다.

시질!

승냥이 거머리!

듣기만 해도 왠지 섬뜩해지는 이름이었다.

견문이 넓은 사람이라면 시질이라는 말을 듣고 안색이 변한 채

두려움에 몸을 떨 것이다.

시질은 거머리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일종(一種)이었다. 크기는

새끼손가락의 마디 하나 정도밖에 안되는데도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그 놈 한 마리가 개 한 마리의 몸에 있는 피를 몽땅 빨아

먹어도 양이 차지 않는 족속들이었다.

그 모양이 꼭 굶주린 승냥이같다고 해서 시질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독고무정은 힐끗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시체는 그의 말을 듣고 있는지 안 듣고 있는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독고무정은 시체의 무표정한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느릿느릿 말을 계속했다.

"이 놈들이 네 몸속에 고여 있는 죽은 피를 해치워줄거다.

물론 네가 피를 빨리는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면 말이지."

독고무정은 품속에서 고무마개를 몇 개 꺼내 벌거벗은 시체의

몸에 뚫린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틀어 막았다.

유일한 예외라고는 먼저번처럼 입에 쑤셔 넣은 대나무 죽통

뿐이었다.

그런 다음 시체의 몸을 끈으로 대충 묶더니 늪지의 중앙으로

집어 던졌다.

풍덩!

시체는 시커먼 흙탕물을 뿌리며 늪속으로 떨어져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독고무정은 시체의 몸이 늪속으로 잠겨 완전히 보이지 않게될

때까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체의 입에 물렸던 죽통이 거의 반이상이나 늪지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그는 시체의 허리를 묶었던 끈을 근처의 나무에

동여 매어 더 이상 빠지지 않게 했다.

그런다음 예의 특이한 모습으로 그 옆에 주저 앉아 그대로

잠속으로 떨어졌다.

*                *              *

피를 빨려본 적이 있는가?

피를 빨리면 우선적으로 그 부위가 가렵다. 그러다가 점차

가려움이 몸속으로 전해져서 아무리 긁어도 시원하지 않게 된다.

좀 더 심하게 빨리면 피부가 아니라 살 속이 가려워서

종내에는 칼로 살을 후벼 파고서라도 긁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시초에 불과하다.

가려움은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씩 그 부위가 쓰라리기 시작한다.

그 쓰라림은 보통때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과는 전혀

다르다.

바늘로 피부를 찌르는 것 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침(針)이 살을 뚫고 들어와 뼈속을 찌르는 것처럼

둔하고 아릿하게 느껴진다. 곰곰히 생각하면 이게 정말 쓰라린

것인지 의문이 들기조차 하다.

하지만 분명 쓰라린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쓰라림은 무엇으로도 멈출 수 없이 계속된다.

바늘로 찌르는 것이라면 바늘을 뽑고 살을 문지르면 통증이

덜해지지만 뼈속을 찌르는 듯한 이 쓰라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없어지거나 덜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살을 문지르고 주먹으로 쾅쾅 쳐도 쓰라림은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칼로 그 부위를 도려내도 역시

마찬가지다.

왠만한 사람은 이쯤되면 아예 그 부분을 통째로 잘라버린다.

하지만 쓰라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쓰라림이 점차로 뼈를 타고 번져나가 팔 전체가 저리거나 몸의

상반신이 둔한 통증에 짓눌리면 그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

몸을 갈기갈기 찢어서라도 그 쓰라림에서 벗어나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다.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쓰라림을 멈출 수는

없다.

쓰라림이 몸 전체로 퍼져나가면 사람의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오직 이 쓰라린 고통에서

벗어나기만을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그때쯤되면 손가락으로 스스로의 살을 후벼파고 귀나 코를

잡아뜯기 시작한다. 그래도 쓰라림이 가시지 않으면 닥치는대로

자신의 몸을 짓이긴다. 물론 쓰라림은 가시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죽음만이 이 쓰라림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 아직 아무도 죽음이 그 쓰라림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죽은 영혼(靈魂)에게 쓰라림이 가셨냐고

물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영혼은 과연 무어라고 대답을 할까?

*                 *               *

독고무정이 그 늪지에서 다시 시체를 끌어올린 것은 십 일 이

지난 후였다.

시체의 전신은 미세한 붉은 반점(斑點)으로 뒤덮혀 있었다.

안력이 예리한 사람이라면 그 반점이 거머리가 붙어서 피를

빨아먹었던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시체의 몸에는 단 한 마리의 거머리도 붙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둘 중의 하나를 뜻한다.

늪지의 거머리들이 배가 부르도록 먹어서 더 이상 피를 원하지

않던지, 아니면 시체의 몸에 더 이상 빨아먹을 피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고무정은 시체를 늪지에서 끌어 내어 바닥에 눕힌 다음

고무마개를 떼어 냈다.

시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눈까풀도 움직이지 않았고, 숨결조차 제대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독고무정은 오른손을 시체의 가슴에 갖다 대었다.

미약하나마 가슴이 뛰고 있기는 했다. 하나 그것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처럼 힘없고 불규칙적인 것이었다.

독고무정은 품에서 하나의 항아리를 꺼내들었다.

항아리의 뚜껑을 열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항아리속에는 물이 잔뜩 들어 있었다.

물은 붉었다.

너무도 붉은 빛이 선명해서 얼핏 보기에는 피를 모아 놓은 것

같기도 했다.

하나 피는 아니었다.

핏빛 혈수(血水)에서 은은한 약향(藥香)이 감도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핏물이라기 보다는 약수(藥水)에 가까웠다.

그렇다.

이것은 천하제일의 약수였다.

죽은 피를 살리고,  은 살에 새 살을 돋게 한다는

취수혈정(聚髓血精)이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많은 피를 흘린 사람이라도 단 한 방울의 취수혈정만

마시면 잃었던 피를 복원할 수 있다. 취수혈정은 그 탁월한

효과만큼이나 구하기가 어려워서 인세(人世)에서는 거의

보기드문 영약으로 손꼽고 있었다.

독고무정은 시체의 입에 꽂은 대나무 죽통에 조심스럽게

취수혈정을 붓기 시작했다.

도중에 몇 차례나 시체의 목에 있는 혈도를 집어 취수혈정이

저절로 시체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한 동아리나 되는 취수혈정이 모두 시체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독고무정은 빠른 손길로 시체의 전신 혈도를 짚기 시작했다.

파파파팍!

그의 손길은 어찌나 빠른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숨 한 번 내쉴 동안에 그는 시체의 전신에 나 있는 삼백 육십

이개의 크고 작은 혈도를 모두 점해 버렸다.

그것은 실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누가 만약 단 일수(一手)에 인체의 모든 혈도를 짚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모두들 코웃음을 치고 말았을 것이다.

막 삼백 예순 두 번째의 혈도를 짚자 시체의 몸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붉은 반점이 가득해서 흡사 혈인(血人)과도

같았던 시체의 피부에 하얀 빛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하얀 빛은 이내 전신으로 확산되더니 순식간에 붉은 반점을

모두 없애 버렸다.

시체의 몸은 이제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그러다가 조금씩 다시 붉은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시체의 피부는 다시 원래의 살색을 되찾았다.

그와 함께 시체의 가슴이 심하게 울렁거리더니 시체가 심하게

재채기를 했다.

"쿨룩...쿨룩..."

재채기를 할 때마다 시체의 입에서 거무스름한 흙탕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한참이나 흙탕물을 토해내던 시체가 서서히 눈을 떴다.

번뜩이는 외눈이 독고무정을 올려다 보았다.

독고무정은 그 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내가 해 줄 일은 없다. 지금부터는 네 혼자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

시체는 멀거니 그를 올려보더니 바둥거리며 일어나려고 했다.

하나 그것은 단지 생각일 뿐 실제로는 손가락 하나 움직여지지

않았다.

혈맥이 뒤틀리고 근육이 굳어져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뒤틀리고 굳어진 근육을 풀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끊임없이 움직여서 근육에 자극을 가하는 길 뿐이다.

독고무정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체가 일어나려고

기를 쓰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손을 내밀어 도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누가 돕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오직 스스로의 노력으로 몸을 움직이고 근육을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시체의 몸에서 축축한 땀이 흘러나왔다.

비록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으나 시체의 얼굴은 쉴새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독고무정은 필사적으로 일어나려는 시체의 모습을 묵묵히

내려다 보았다. 지금 시체가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 어떠한

고통을 참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독고무정 밖에는 없을

것이다.

갈가리 찢겨진 상처는 그런데로 아물었지만 근육의 태반은

뻣뻣하게 굳어지고 신경도 군데군데가 끊겨 있었다. 두 달

가까이 땅속에 묻히고 늪에 잠겨 있었던 신체는 이미 반

이상이나 세포의 활동이 중지된 상태였다.

그런 몸을 다시 움직이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고통'이라는 두

글자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전신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견딜 수 있는

극한의 인내력과 집념, 살아야 겠다는 불꽃같은 투지와 강인한

체력이 결합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사(必死)의 각오(覺悟)가 있어야 한다.

독고무정이 시체에게서 바라는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실로 너무도 오랫동안 이와같은 인물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낙타와 같은 지구력과 강인한 육체, 어떠한 고통에도 견딜 수

있는 끈기와 집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사의 각오를 지닌 자를....

시체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것은 삼일 후였다.

앉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다시 오일 이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십 일째 되는 날, 마침내 시체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시체가 휘청거리는 몸으로 간신히 일어섰을 때 처음으로

독고무정은 시체를 향해 물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시체는 전신을 땀으로 목욕을 하다시피 한 채 이를 악물었다.

그는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했으나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성대의 반이 유엽비수에 달아나 음성이 새어나오지 않는

것이다.

한참후에 그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마치 쇳덩이로 바위를 긁는 것처럼 거칠고 쉬어버린

듯한 음성이었으나 독고무정은 알아들었다.

"노(路)....독(獨).....행(行)...."

시체에게는 그 세 단어를 내뱉는 것이 죽음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독고무정은 번쩍이는 눈으로 시체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독행이라...좋은 이름이군. 이제 너는 떠날 준비가

되었느냐?"

시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하나뿐인 외눈이

독고무정을 바라보며 묻고 있었다.

- 어디로?

독고무정의 얼굴에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북해(北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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