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북령원(北靈院)
무더운 여름, 뙤약볕이 따갑게 내리쬐어 땅이 뜨겁게 달궈지고, 버드나무의 가지와 잎은 축 늘어졌다.
버드나무 가지와 잎 사이로 빛이 들고 있는 공터에는 수백 개의 그림자가 가부좌를 한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풋풋한 모습을 지닌 소년과 소녀가 진지한 얼굴로 토납(*吐納: 입으로 더러운 기를 뱉고 코로 신선한 기를 마시는 호흡법) 호흡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운율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몸에서 육안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옷이 나풀거리는 것이 장관을 보는 듯했고, 수백 개의 그림자 앞에는 하나의 바위가 놓여 있었다.
그 바위 위에도 역시 한 개의 그림자가 가부좌를 한 채 조용히 앉아 있었고, 그는 열 손가락을 교차한 두 손을 몸 앞에 모으고 두 눈을 꼭 감고 있어 마치 어떤 수련에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그는 부드럽게 헝클어진 검은 머리에 아직 앳된 얼굴을 띠고 있었고, 다소 야위어 보였지만 왠지 모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그때 소년의 온몸에서 한 줄기 빛이 퍼져 나오며, 품고 있는 오묘한 에너지가 그의 몸에서 밀려 나오고 있었다.
바위 아래에 있던 소년들은 몰래 눈을 뜨고, 소년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쳐다보았다. 한데, 소년들의 얼굴에는 부러워하는 기색이 다분했다.
그들의 소곤거림에 고요함은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목형은 진짜 대단해. 우리는 겨우 천지 영기를 감지하고 있는데, 저 형은 벌써 영동(靈动) 경지에 들어섰네, 역시 우리 동원(東院) 지계(地届)의 일인자다워.”
“하하, 그건 당연한 거지. 내가 생각하기에는 동원은 말할 것도 없고, 북령원(北靈院)을 통틀어 같은 연령대 중에서 목형과 견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앞의 회색 옷을 입은 소년은 바위 위에 있는 소년과 매우 친한 듯 보였고, 소년들의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목형은 ‘영로(靈路)’에 선발되어 참가했던 사람이야, 우리 모든 북령(北靈) 경지를 통틀어 목형만 참가할 수 있었어. 너희들도 ‘영로’에 참가하는 것이 어떤 변태(变态)들인지는 잘 알고 있지? 당시 우리 북령경은 이 일로 한동안 들끓었는데, 거기 나온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오대원(五大院)’에 예정된 사람들이었잖아.”
“오대원?”
소년들에게 그 이름은 매우 눈부신 것으로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동경의 눈길을 보냈다.
‘오대원(五大院)’은 모든 소년들의 꿈이자 최종 목적지였다.
그러나 오대원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은 매우 엄격해 천재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곳에 들어간다면 그의 미래는 무한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목형은 정말 대단해! 하지만 목형도 아마 1년만 참가했을 거야. 듣기로는 목형이 ‘영로(靈路)’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쫓겨난 최초의 사람이라는데…….”
그때 한 소년이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재빨리 다른 말을 덧붙였다.
“목형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우린 다 알잖아. 영로에 온 사람들도 모두 천재 괴물들이래. 그러니 목형이 결코 뒤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지. 추방당한 건 불공평한 대우를 받아서 그런 걸 거야!”
소년과 소녀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 사건은 북령원 심지어 북령경(北靈境) 전체에서 그다지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일에 유감을 표함과 동시에, 무슨 이유로 목형이 ‘영로’에서 퇴출됐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때 회색 옷을 입은 소년이 입을 삐죽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치, 분명히 ‘영로’에 있는 누군가가 목형을 질투해 목형을 몰아냈겠지. 어쨌든 상관없어. 목형의 능력으로 머지않아 오대원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어, 그때가 되면 자연스레 다 알게 될 거야.”
그 말에 소년들은 사색에 잠겼다.
목형이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오대원 역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영로에서 1년밖에 수련하지 않았기에 수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 영로 출신의 천재 괴물들과 견주어 보았을 때 조금은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퍽!
그들이 얘기하는 사이, 갑자기 바위 위에서 나뭇가지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나뭇가지가 회색 소년의 이마에 맞자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소릉, 너희들은 내가 장식품 같지? 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모사님한테 말해서 다음 방학에는 너희들 모두 동원에 남아서 수련하게 하라고 한다.”
소년과 소녀들이 급히 고개를 들었을 때, 돌 위에서 수련 중인 소년은 이미 두 눈을 뜨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눈동자는 마치 밤하늘 같으며, 그 속에는 영기가 가득해 보였다.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햇살처럼 부드러운 그 웃음은 마치 화룡점정과 같아 소년의 모습을 더욱 멋들어지게 만들어주었다.
“목진(牧尘) 형, 그러지 마세요. 모처럼 방학인데 집으로 돌아가서 휴가를 좀 즐기고 싶어요. 만약 우리 아버지께서 제가 이렇게 창피한 짓을 한 것을 아시면 분명 가만두지 않으실 거예요.”
회색 옷을 입은 소년이 이마를 가리며 실실 웃었다. 그 말에 주변 소년, 소녀들은 폭소했고 분위기는 더욱 왁자지껄해졌다.
“너도 너희 아버지가 무섭다는 걸 알고 있으니, 3개월 안에 다시 영동경에 진입하지 못하면 맞을 준비나 해”
목진이라 불리는 소년은 고개를 내저으며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
“영동경이 그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야? 나는 목 형처럼 마음대로 ‘영로’에 참가할 수 있는 변태가 아니야.”
소릉은 입을 삐죽거리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비록 이 사건이 북령경 전체에서 그리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고 목진 본인 또한 이 일에 대해 회피하려 하지 않았으나, 추방이란 것 자체가 어쨌든 영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목진이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웃었는데, 표정에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다만 고개를 살짝 들어 반이 잘린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눈빛에 그리움과 복잡함이 담겨있었다.
‘영로라……. 그 녀석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모든 수련을 다 마쳤겠지? 그렇다면 아마 그 녀석들은 머지않아 오대원에 들어갈 수 있겠구나. 그리고 그녀는…….’
목진은 입을 오므리며 사색에 잠겼다.
순간 기다란 검은 검을 항상 짊어지고 다니는 얌전한 모습에 차가우면서 예쁜 외모를 지닌, 검은 치마를 입은 소녀의 모습이 그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아름다운 자태로 춤을 추면 은하수같이 반짝이는 눈부신 은발 또한 춤을 추었다.
그녀는 신비로우면서 차가웠지만 수련할 때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소녀였다. 그곳에서 목진은 그녀를 한 번 구해준 일이 있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마지막에 그가 강제로 쫓겨나는 그 순간에,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 그의 앞을 막아선 유일한 사람 또한 그녀뿐이었다.
평소에는 감정이 별로 없으나, 화수급(祸水级) 잠재력의 작은 얼굴에서 드러난 강렬한 살의를 생각하면 목진도 정신이 약간 멍해졌다.
정말 그립구나.
“허허, 우리 북령경에서 유일하게 영로에 참가하신 목형이 아니신가요? 또 사람들을 데리고 수련하시는군요? 모사님(莫师)은 정말 목형을 신임하시는 것 같네요.”
목진이 복잡한 심경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평온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고,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 수십 개의 그림자가 느릿느릿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유철, 서원(西院) 사람들이 뭐 하러 우리 동원까지 온 거야? 맞고 싶어서 온 거냐?!”
소릉이라 불린 소년이 그 무리를 보고 가라앉은 음색으로 차갑게 말했다.
그때 공터에 있는 수백 명의 동원 학생들도 동시에 일어나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 무리를 바라보았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기세 있어 보였다.
북령원은 동원과 서원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둘 사이에서 여러 경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러나 대체로 서원이 동원보다 강했고, 서원 앞에서 동원의 학생들은 대부분 그들을 피해서 돌아갔다.
하지만 목진이 있고 나서부터 1년 사이에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3개월 전, 양서원의 비무 시합에서 서원에서 3등을 차지하고 있는 설동(薛东)이 목진에게 패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동원 학생들의 한을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서원의 위풍당당한 기세를 한풀 꺾어 놓았다.
그런데 지금 서원 놈들이 동원에 와서 목진을 도발하니, 소릉과 다른 동원 학생들은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하, 동원은 갈수록 잘난 척만 하네. 목진이 있다고 우리 서원이랑 상대가 되는 줄 아느냐?”
동원의 세력을 보고도 유철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삐죽거리며 손가락으로 그리 멀지 않는 언덕을 가리키곤 씩 웃으며 말했다.
“너희 감당할 수 있겠어?”
소릉과 그 무리는 유철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언덕엔 몇 개의 그림자가 보였는데, 그 그림자가 미소를 지으며 소릉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낯익은 얼굴을 보자 소릉과 그 무리는 얼굴빛이 변했다.
“서원 천계(天届) 선배들…….”
북령원은 동원과 서원으로 나뉠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 두 개의 계(届)로도 나뉜다.
목진과 그 무리는 지계에 속하며, 지금 언덕에 있는 이들은 서원 천계에 속하는 선배들이었다. 그들은 목진과 그 무리에 비해 훨씬 대단한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때 언덕에 있는 천계 선배들은 높은 곳에서 웃으며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쟤가 동원의 목진인가? 저렇게 어린 나이에 영동경에 진입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네. 영동경 초기이긴 한데, 천계로 올라올 수 있는 자격이 있으니 정말 대단해.”
“그런데, 앞으로 저 아이가 동원 천계에 진입하면 우리 서원 천계가 약간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저 녀석이 ‘영로’에 선발되었다고 하던데. 왜 쫓겨났는지 모르겠지만, 좀 부끄럽겠어. 이런 이야긴 처음 들어봤어.”
“사람을 잘못 고른 게 아니라, 내팽개쳐진 거 아니야?”
“하하”
그들 무리에는 빨간색의 옷을 입고 있는 소녀가 있었는데, 눈처럼 뽀얀 살결에 달걀형의 얼굴은 보기에도 무척 여성스러웠다.
그녀는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어 날카로운 눈으로 공터의 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곧 그녀의 시선은 목진이라는 소년에게 멈추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눈빛이었다.
“허허, 홍비단, 너 목진이랑 아는 사이 같다?”
천계 선배 한 명이 웃으면서 말했다. 멀리서 보면 그녀가 무리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네, 목진의 아버지는 북령경 역주(域主) 중 한 분이시고, 저희 아버지와도 친분이 있으십니다. 어린 시절엔 같이 논 적도 있어요.”
홍비단이라 불리는 소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듣자 하니, 원래 목진이 너를 좋아했었다고 그러던데…….”
홍비단은 날카로운 눈을 깜빡거리며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좌를 한 채 올곧게 앉아 있는 목진을 바라보았고, 그때 한 줄기의 빛이 버드나무의 가지와 잎을 뚫고 지나갔다.
그 빛은 소년의 준수한 얼굴 위로 떨어져 은은한 빛을 내었는데 참으로 보기 좋았다. 이를 본 그녀는 잠시 넋을 놓았다.
그리고는 곧 어렸을 적 그녀의 뒤를 쫓아다니던 작은 사내아이를 어렴풋이 기억해냈다.
다만 그때의 그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그녀 역시 많은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이 소년이 북령경에서 유일하게 ‘영로’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의 목진은 이 북령경에서 가장 절정이던 때였고, 영로에서 쫓겨난 후에야 그 기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일인데, 좋아하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홍비단은 무심한 듯 웃었지만 맑은 두 눈동자로 목진을 여러 번 훑어보았다.
지금의 목진은 북령원에 들어가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비록 목진이 북령원의 일인자는 아니지만, 이렇게나 우수한 소년의 짝사랑 상대가 된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설령 그녀가 이러한 소문이 유언비어라는 사실을 알지언정, 이 나이 또래의 소녀는 결국 다 어느 정도 허영심이 있었기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하하하, 홍비단, 너 눈이 아주 높구나! 목진이 이렇게나 훌륭한데, 그조차도 홍비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니. 넌 임수(林修)가 실패한 것도 못 봤어? 그래도 우리 북령원 통틀어서 7위나 되는 대단한 사람이야. 지금 영동경 중기에 접어들었는데, 목진은 그에 비하면 조금 밖에 차이가 나지 않잖아.”
“보아하니 우리 북령원에서 홍비단의 눈에 들어올 사람은 류모백(柳慕白) 형님밖에 없네.”
류모백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천계 선배들의 눈빛이 다소 굳어졌다. 류모백이라는 이름이 그들에게 적잖은 압박을 주는 것 같았다.
북령원 전체를 통틀어 일인자의 자리에 있는 류모백, 그의 부친은 북령경 제 1대역(大域)의 역주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외모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배경으로 보나 북령원에서 여성들의 환호를 불러 일으킬만한 이름이었다.
서원(西院) 수련생들의 눈에는 류모백과 홍비단이 가깝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지금까지 서원(西院)의 오만함을 꺾지 못했지만, 꺾이는 건 곧 시간문제일 것이다.
만약 목진이 ‘영로’의 수련을 무사히 통과했다면 ‘오대원’에 들어갈 자격을 얻어 그 명성이 당연히 류모백을 압도할 수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어찌된 일인지 벌써 추방을 당했다.
이렇게 되었기에 만약 누군가가 두 사람을 함께 놓고 비교를 한다면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