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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화 (2/1,000)

2화. 영로에서 쫓겨난 소년

소릉과 그 무리는 언덕 위에 있는 서원 선배들을 바라보며, 잠시 기세가 약해졌다.

특히 홍비단이라는 여자아이를 보았을 때, 눈빛이 뜨거워졌다가 다시 움츠러들었다. 홍비단은 북령원의 진정한 유명 인사였고, 동원에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었다.

“목형, 저기 서원(西院)의 홍비단 선배가 있어. 목형이 어릴 때 홍비단을 좋아했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소릉은 목진에게 다가가 낮은 소리로 헤헤거리며 웃었다.

목진은 그 말을 듣고는 저도 모르게 소릉을 흘겨보았다. 그가 어렸을 적에 홍비단과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나이에 좋아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단지 같이 놀 상대를 찾고 싶었을 뿐이지.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목진의 아버지와 홍비단의 아버지 사이가 나빠지면서 그들의 사이도 한층 더 멀어졌다. 목진이 홍비단을 좋아한다는 헛소문이 언제 퍼지게 되었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그를 도발한 유철을 바라보았다. 목진은 몸에서 은은한 빛을 내며 두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할 말 있으면 빨리 말해.”

목진의 시선이 멀지 않은 언덕 위의 몇 사람을 한 번 스치곤 가녀린 그녀의 모습에 잠시 멈추었다가 이내 거둬들이며 말했다.

“내가 널 때리려 한다면 저들이 나를 막아서겠지. 너도 한번 고통을 느껴봐.”

서원(西院) 녀석들의 오만방자한 태도에 그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너!”

유철이 목진의 말을 듣고는 눈빛이 분노에 휩싸여 호통을 치려고 했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목진은 본래 온화하고 밝은 얼굴 이었지만, 돌연 냉담한 분위기가 풍겨 나왔고, 마치 살을 에는 듯이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그 느낌은 마치 구름 사이에서 근심하며 요동치는 경칩과 같았고, 자신도 모르게 날카로운 무언가가 표출된 것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렇게 어린 소년이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유철은 저도 모르게 호통을 그대로 멈추고, 놀란 채 냉기를 뿜어내는 목진을 바라보았다.

목진의 실력에 유철은 확실히 두려움을 느끼고는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저번에 목진이 서원 지계의 설동과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 유철이 그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허, 너 확실히 미쳤구나.”

언덕 위의 서원 천계 선배들도 이 말을 듣고 눈썹을 치켜세웠다. 체면이 안 섰을 뿐더러 홍비단이 지켜보고 있었다.

홍비단 역시 의아하게 목진을 바라보았다. 온화해 보이는 소년에게서 저렇게 강한 면모가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홍비단이 알던 그때의 소년과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옆의 서원 천계 선배들은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뒤척이며 언덕에서 내려와 느릿느릿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소릉과 무리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고, 경계하는 태세를 갖추었다.

홍비단도 상황을 봤지만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결국 서원 사람이기도 하고, 그녀 눈에 평범하기 그지없던 소년이 어린 시절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정말 눈부신 빛을 지니고 있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동 형.”

유철은 서원 천계 선배들이 자신한테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목진과 그 무리를 득의양양하게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목진은 미간을 찌푸렸고, 그의 표정에는 어떠한 거리낌도 없었다. 비록 그들이 천계 선배지만, 실력은 아직 영동경 초기에 속할 뿐이었다. 만에 하나 정말 먼저 손을 쓰더라도 반드시 그들이 이득을 얻는 것은 아니었다.

맨 앞에 있던 동형이라 불린 자가 고개를 끄덕이곤 곰곰이 생각하는 눈짓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말하려고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동관(童冠), 너희 서원 천계 사람들이 우리 동원에 와서 지계 학생들을 괴롭힌다는 건, 우리 동원이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냐?”

갑자기 호통치는 소리에 모두가 넋을 잃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10개 정도의 그림자가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맨 앞에는 키가 큰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시커먼 현의(玄衣)를 입고 늘씬한 각선미를 뽐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곱고 맵시가 있었으며, 검은 머리는 말꼬리처럼 길게 묶었는데, 그녀의 미모는 홍비단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이때 소녀는 곱디고운 얼굴로 한기를 내뿜으며 동관과 그 무리를 바라보았다. 동관의 뒤에 있는 그 무리는 낯빛이 변했다.

“천아(芊儿) 선배야!”

소릉과 그 무리는 현의(玄衣)를 입은 소녀를 보곤 극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부 소년들의 앳된 얼굴은 빨개지기 시작했다.

천아라 불리는 소녀와 홍비단은 북령원의 간판이자 꽃이었기에, 그 추종자가 셀 수도 없이 많았는데 오늘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허허, 천아구나.”

동관 또한 현의를 입은 소녀를 보고 역시나 얼이 빠졌으나, 곧 표정이 바뀌었다. 북령원에 당천아(唐芊儿)를 쫓아다니는 사람이 많을뿐더러 실력도 영동경 중반에 접어들어 북령원 천계에서 제법 우수한 축에 속했다.

당천아라 불리는 소녀는 목진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예쁜 눈썹을 찌푸리며 동관을 훑어본 후, 언덕 위에 있는 홍비단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 둘은 마치 눈에서 불꽃이 튀듯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계속 흘겨보았다.

“너희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당천아는 시선을 거두며 차갑게 물어보았다.

“말하는 것 좀 봐? 비록 우리는 서원(西院) 사람이지만, 서원도 북령원의 일부야. 우리가 여기 온 게 불법은 아니잖아?”

동관은 어깨를 으쓱하곤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당천아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가녀린 두 손으로 목진의 어깨를 토닥이며 뾰족한 턱을 높이 추켜올렸다.

“목진은 우리 동원 사람이다. 너희가 또 다시 귀찮게 한다면, 그땐 나에게 뭐라고 하지도 마.”

그녀의 늠름하고 씩씩한 자태가 큰 누이 같았다.

“보아하니 너 여자 복이 꽤 좋아 보이네.”

동관은 목진을 보며 조롱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비웃음과 질투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동관은 당천아에 대해 그리움이 있어 보였지만, 당천아는 그에게 좋은 낯빛을 보인 적이 없었다.

“여자 복이 있는 것도 실력의 일부야.”

목진은 마치 동관의 말 속의 비아냥거림을 듣지 못한 듯 웃어넘겼다. 영로에 있는 그 녀석들과 비교했을 때, 동관은 확실히 더 순해 보였다.

언덕 위에 있는 홍비단은 목진을 슬쩍 엿보았다가 실망이 가득한 마음으로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역시 예전과 같이 비겁하고 나태한 건가?

“됐어, 오늘 너 귀찮게 하려고 찾아온 거 아니야. 너한테 뭐 좀 알려주러 온 거야.”

감당할 수 없는 목진의 분노를 보자, 동관도 재미가 없어졌는지 유철에게 손을 흔들었다. 유철은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목진, 난 류양 형님을 대신해서 뭐 좀 전하러 왔어. 열흘 후, 서원 동원 비무 시합에서 선배가 자신의 상대로 너를 선택한대.”

“류양?”

류양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소릉과 그 무리는 낯빛이 변했다. 류양은 사실 서원 지계에서 일인자로, 얼마 전 영동경을 돌파했다고 했다.

“아 맞다, 한 가지 더 알려줄 사실이 있어. 3일 전 류양 형님이 시험 중에 자신의 몸에 영맥(靈脉)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 물론 인급(人级)이긴 하지만…….”

유철은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듯 목진을 바라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인급(人级) 영맥(靈脉)?!”

그 말에 소릉과 그 무리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고, 당천아도 미미하게 동요했다.

북령원 전체를 통틀어서 영맥을 가진 수련생은 절대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았다. 그러니 류양이 영맥을 지니고 있을 거라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인급 영맥이라…….”

동관은 혀를 차며 동정하는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았다. 류양도 영동경 초기 실력이지만 인급 영맥을 더한다면, 아마 영동경 중기인 사람들조차 그를 쉽게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번엔 목진이 정말 재수가 없어 보였다.

“류양 형님은 네가 대결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하셨다. 다만 그날 하루 눈에 띄지 않으면 된대. 그 형님도 너를 너무 난처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

유철이 비웃으며 말했다.

만약 정말로 목진이 그날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마 그의 명성이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너희 그만 놀려!”

당천아가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천아 선배, 우리를 탓하지 마. 사람이라면 좀 겸손할 줄도 알아야 해. 운으로 ‘영로’ 자격을 얻었다고 해서 자만하면 안 되지.”

유철이 입을 나불거렸다.

“너!”

당천아는 화가 나서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누군가가 그녀의 하얀 손목을 잡으며 막아섰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그녀를 막아선 목진의 앳된 얼굴에서 밝은 웃음이 피어 올라왔다.

“응, 돌아가서 류양한테 전해. 내가 기다리겠다고.”

“박력 있네! 그럼 우린 너의 활약을 기대할게.”

유철은 목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입에 미소를 머금고 크게 웃으며 돌아섰다. 그 모습은 열흘 후의 대결 결과를 이미 예상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가 떠나자 유철, 서관과 그 무리가 잇따라 떠나갔고, 언덕 위에 있는 홍비단도 그들을 힐끗 보더니 돌아섰다.

“목형, 정말로 류양의 도전을 받아들일 거야? 그 녀석 정말로 영맥이 있는 거면 상대하기 힘들 텐데.”

소릉은 서관 무리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약간 걱정되는 톤으로 말했다.

“최선을 다해봐야지.”

목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야, 너 정말 바보니? 걔네들이 너를 도발하는 거잖아. 이런 도전은 받아들이지 않아도 돼!”

당천아가 화를 내며 말했다.

“천아 선배 걱정하지마, 나 사리 분별은 할 줄 알아.”

목진이 웃으며 말했다.

당천아는 눈썹을 찌푸린 채, 앳된 얼굴을 한 그 소년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목진은 환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흥, 어차피 그때 창피를 당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뭐.”

당천아는 콧방귀를 끼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천아 선배, 나한테 굉장히 관심 많은 것 같다?”

목진은 짜증을 내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곤,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죽든 말든 상관 안 해.”

당천아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내 목진을 향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나는 네가 그때 죽을 때까지 얻어맞으면 우리 동원의 체면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거야.”

목진은 크게 웃었다.

당천아의 아버지도 북령경 역주 중 한 분이셨고, 목진의 아버지와 사이가 좋아 평소에도 두 집안은 왕래를 자주 했다. 때문에 목진과 당천아의 사이는 매우 친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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