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류양
모원이 그만두지 않고 그들을 향해 다가오자 소릉과 무리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바로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목진과 붙어봐!”
“붙었어!”
소릉 무리도 아직 혈기가 있는 소년들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구경하고 있는데 한 번도 반항하지 않는다면 너무 창피한 일이 될 것이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자마자 모원을 향해 돌진했다.
“영동경에 들어가지도 못한 놈들이, 감히 나한테 손을 대시겠다? 주제넘는 짓이네.”
모원은 그 광경을 보고 비웃으며 두 손을 맞대었다. 그러자 희미한 영력이 솟아올랐다.
쿵-!
그가 발을 세게 구르자 몸이 화살처럼 튀어 나가 자신에게 돌진하는 몇 개의 그림자 위를 그대로 뛰어넘었다. 그는 놀란 기색이 역력한 소릉 앞에서 냉소적으로 웃으며, 거센 바람을 동반한 주먹으로 소릉의 얼굴을 강타했다.
소릉은 엄청나게 빠른 권풍(拳風)을 보고 있었지만, 도저히 막아낼 수 없어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음속으로는 이번에 며칠간 누워있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아…….”
소릉이 눈을 감았을 때, 주변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소리가 눈앞에 울려 퍼졌다. 강한 충격으로 인해 그의 얼굴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상상한 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그는 살짝 눈을 뜨고 잠시 멍해졌다. 뽀얗고 가는 손바닥이 보일 뿐, 누군가 그의 뒤에서 몸을 내밀어 모원의 강력한 권풍을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소릉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편안한 미소를 머금은 야윈 소년이 있었다.
“목형!”
“정말 잘했어, 우리 동원의 체면을 살렸어.”
목진은 소릉을 향해 가볍게 웃고는 낯빛이 살짝 변한 모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의 자신감은 내가 줬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모원 삼인방은 앞의 웃음을 띤 소년을 보고 낯빛이 변했다. 원래 냉소적인 눈빛이 더 냉소적으로 변했다. 목진을 마주한 이들의 기색에 두려움이 어렸다.
“흥, 정말 자신만만한 말투구나.”
모원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목진을 쳐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는 7일 전 영동경 초기에 들어섰으며 설동, 소곤도 곧 영동경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진이 어찌할 도리가 있겠는가?
옆에 있던 설동과 소곤도 같은 생각인지 흉흉한 눈빛을 내었다. 그들은 마음속 한편에 있던 공포심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그저 조금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여기 북령원에서는 우리 서원이 얘기할 때 너희 동원 사람들은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이야.”
모원이 손뼉을 치고는 목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너 또한 마찬가지야. 내일부턴 너도 이런 말은 못 하게 될 테지.”
기세등등한 모원을 쳐다보며 동원의 수련생들은 마음속에 화가 쌓였지만 차마 말할 용기가 없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모원은 손을 흔들며 설동과 소곤을 데리고 떠나갔다. 오늘 이렇게 기세를 뽐냈으니 동원 녀석들의 기가 죽었을 것이다.
소릉은 분하다는 얼굴로 씩씩댔다. 주먹을 꽉 쥐었으나 상대방의 기세가 너무 대단해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 없었다.
“그…….”
뒤쪽에서 소리가 전해지자 모원 3인방은 잠시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소릉 앞에 있는 소년이 화사하게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희들 사과도 안 하고 갈 셈이냐?”
주변이 조용해지며 그곳에 있던 이들이 웃음을 띤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미소는 화사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얼음 같기도 했다.
소릉과 사람들은 잠시 멍해졌으나 곧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목진이 그들을 위해 앞장선 것이었다.
“사과?”
모원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며 조롱하듯 웃었다
“내가 왜?”
모원은 북령원의 미치광이인데 그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다니. 그놈은 머리를 다친 게 아닐까?
“더이상 말할 것도 없겠구나.”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모원 삼인방을 향해 걸어갔다.
모원 삼인방은 어두운 기색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목진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섬뜩한 눈빛이 가득했다.
목진은 설동을 이긴 일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모든 북령원의 지계 수련생들은 목진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 오만불손한 모원 마저도.
모두가 목진을 두려워했다. 영로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멈춰!”
모원의 입에서 낮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영력이 자신의 양쪽 어깨로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모원은 발을 한번 세게 구르고는, 가장 먼저 목진을 향해 달려갔고 설동과 소곤 또한 양측에서 빠르게 따라왔다. 뜻밖에도 호흡이 잘 맞아 보였다.
주변에서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모원 삼인방이 이렇게 합이 좋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세 사람 모두 서원 지계의 흉악스러운 놈들이었다.
세 명 중 모원의 실력이 가장 강했다. 영동경 초기에 들어섰기에 공세가 가장 맹렬하며 영력이 양손 가득하여 장풍은 마치 칼 같았다. 그는 사납게 목진을 밀어붙였다.
그 맹렬한 장풍이 목진을 쪼개려 할 때, 목진은 발걸음을 가볍게 놀려 왼쪽으로 반보 이동해 모원의 몸을 비켜 갔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는데, 그 모습은 마치 칼로 베는 듯했다. 원래의 부드러운 얼굴이 순간 차갑게 변했으며 공격적인 얼굴이 되었다.
목진은 직접 모원을 공격하지 않고, 대신 모원을 지나쳐 모원 뒤에 있는 설동과 소곤을 향했다.
칠흑색의 영력이 그 손가락 끝에 맴돌다 다섯 손가락을 펴자 설동과 소곤을 향해 나아갔다. 영력이 솟구치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설동과 소곤은 목진의 공격에 깜짝 놀랐으나 그들 또한 피할 수 없었기에 온몸의 힘을 끌어올려 주먹을 내질렀다.
목진을 한순간만이라도 잡아둘 수 있다면 모원이 바로 돌아와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목진을 둘러싸고 협공을 할 수 있었다.
설동과 소곤은 서원 지계에서 높은 등수를 가질 자격이 충분했으며 평범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눈앞에 있는 소년의 실력과 노련함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놓치고 있었다.
목진의 손바닥이 두 사람의 맹렬한 권풍과 부딪쳤다. 그 순간 목진은 손바닥으로 그들의 주먹을 막아내고는 온 힘을 다해 끌어당겼다.
설동과 소곤 역시 주먹이 앞으로 향하긴 했으나 몸이 앞으로 쏠려서 안정적이지 못했다. 목진의 장풍이 두 사람의 손목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영사가 굴을 나온 것처럼 그 장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들의 가슴에 와 닿았다.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설동과 소곤의 몸은 경악스러운 눈빛 속에서 거꾸로 날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가슴 앞의 옷가지가 모두 뜯겨 나간 채 그들은 울부짖었다.
그저 한 수일 뿐인데 설동과 소곤이 무참히 패한 것이었다.
설동과 소곤의 소리가 들려오고 난 후에야 주변에 있던 수련생들은 정신이 돌아왔다. 그들의 입에선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건 너무 빠르잖아?
“목진!”
뒤에서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원은 그 모습을 보면서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화가 났다. 모원은 목진이 그를 피해 먼저 설동과 소곤을 공격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염장!”
모원의 양손에서 맹렬한 붉은 영력이 폭발하며 상승했다. 불꽃 같은 영력이 주변의 공기마저도 뜨겁게 달궈놓았다.
그 모습에 주변의 수련생들 모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이것이 서원 지계 이인자의 실력인가?
목진 또한 몸을 돌려 흉흉한 기세를 뿜는 모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섯 손가락을 꼭 쥐어 주먹을 만들었다. 이는 도망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칠흑의 영력이 주변에 퍼지고 뒤이어 권술이 나타났다.
권장(拳掌)의 힘이 한곳으로 모여 부딪히며 폭풍이 발산되었다. 붉은 영력과 칠흑 영력이 뒤섞였다. 그 순간 모원의 얼굴이 피로 빨개지더니 몸이 격하게 흔들렸다.
이내 울컥하는 소리가 들리고 입에선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몇 발자국이나 뒤로 밀려나더니 결국 엉덩이가 바닥 위로 떨어졌다.
한 수만에, 승자와 패자가 갈린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영동계 초기이지만 분명한 것은 목진의 영력의 기세나 응련도가 모원보다 훨씬 높았다.
먼저 땅에 쓰러졌던 설동과 소곤 또한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원은 영동계 초기의 실력자인데 어떻게 목진의 한 수도 받아내지 못한 거지?
“어떻게!”
모원 역시 땅바닥에 볼썽사납게 주저앉고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는 것조차 까먹은 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목진형, 진짜 대단해!”
소릉과 주변에 모여 있던 이들이 놀라며 서로를 바라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목진이 1대 3의 상황에서 이렇게 압도적으로 승리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목진은 얼굴은 오히려 평온했다. 모질게 모원을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다.
“이제 사과할 수 있겠지?”
모원의 안색이 변하며 이를 깨물고 말했다.
“꿈도 꾸지 마!”
목진은 모원이 이렇게 말할 걸 진작 알았는지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이고 모원을 향해 걸어가며 양손에 칠흑의 영력을 끌어올렸다.
모원은 목진의 웃음을 바라보는 순간, 뼛속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한기를 느꼈다.
목진이 모원에게 다가오자 손의 칠흑 영력이 더욱 진해졌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이 모원의 앞에 섰을 때 한쪽에서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영로에 참가했던 사람답군. 그런데 이런 행동들은 우리 서원을 무시하는 태도가 맞는 거겠지?”
목진은 머리를 돌려 무리를 가르고 나타난 사람을 바라보았고, 그는 웃음을 띠며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의 수련생들은 뒤로 한걸음 물러났으며 그들의 눈에는 공포가 어렸다.
그는 멋진 자태를 갖고 있었지만 입이 조금 튀어나와 고집스럽고 오만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마치 호랑이가 사냥감을 발견한 것처럼 조용히 목진을 바라보았다.
서원 지계 일인자 류양.
“류양.”
목진은 팔짱을 낀 소년을 바라보았다. 얼굴엔 놀란 표정이 전혀 없었다. 그는 평안한 안색으로 말했다.
“하루 종일 지켜만 보더니, 결국 나왔구나?”
모원과 설동 삼인방은 류양을 보고 기쁨이 넘쳐 흘렀다. 다급히 류형을 부르고 다시 목진의 시선을 봤을 땐 이미 살의가 넘쳐 보였다.
목진은 북령원 지계에서 명성이 자자하고, 또 앞서 삼인방을 제압했지만 눈앞의 지계 일인자와 비교를 한다면 아직 실력의 차이가 분명했다. 류양이 나타나자 그들은 더이상 목진이 무섭지 않았다.
류양은 나자빠진 모원 삼인방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차가워진 시선으로 목진을 주시했다.
“목진, 오늘의 일은 우리 서원에게 넘겨주지 않겠나?”
“넘겨줘?”
목진은 서원 지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소년을 보며 웃었다.
“그놈들이 우리 동원 사람들을 아무 이유 없이 괴롭힌 것이니, 이 일은 내가 해결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주변의 수련생들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입이 벌어졌다. 그들은 북령원 지계의 최고의 인물들이었다. 내일에나 두 사람의 승패를 겨루는 대결을 볼 수 있었으나, 오늘 이곳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다.
류양은 두 눈을 깜빡였고, 두 눈엔 한기가 담겨있었다.
북령원 지계에서 이렇게 자신을 개의치 않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목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북령원 지계의 일인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