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담청산(譚靑山)
류양은 멀리서 목진을 쳐다보다 그의 옆에 있는 당천아에게로 시선을 옮겼고, 이어 그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다시 목진을 바라볼 때, 눈에서는 엄청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화근이야.”
목진은 그의 이러한 미세한 변화를 모두 그의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당천아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북령원 사람들은 류양이 당천하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류양은 아직 그녀의 호감을 얻지 못했다. 심지어 목진 또한 류양이 이렇게 자신을 적대하는 것이 아버지들끼리의 은원 관계뿐만 아니라 당천아가 자신과 가까이 지내는 것에 질투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널 귀찮게 하는 거라면 난 가겠어.”
당천아는 예쁜 얼굴로 정색하며 말했다.
목진은 참지 못하고 웃으며 당천아를 쳐다보았다. 소년의 밝은 시선을 받은 소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하지만 억지로 목진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류양이 하는 말, 하나도 거슬리지 않아.”
목진이 웃으며 말했다.
“흥, 큰소리치기는. 일단 류양부터 이기고 다시 얘기해.”
당천아는 입을 삐죽였다. 아름다운 눈동자로 경기장을 살피더니 천천히 안색이 변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녀석도 결국 왔구나.”
목진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고, 잠시 멍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동원 좌석에 있는 모든 사람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 시선의 끝엔 서원의 한 좌석에 있는 열일곱 혹은 열여덟 살 되어 보이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른 지계 수련생들보다 조금 더 커 보였다.
이들은 난간에 걸쳐 연무장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비웃듯이 웃었다. 경기장에 비무 시합 같은 것을 보러 온 게 아닌 것 같았다.
특히 두 개의 그림자가 가장 주목받고 있었다. 일남일녀, 여자는 화려한 붉은 옷을 입었고 복숭아 꽃 같은 눈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바로 서원의 홍비단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흰색의 옷을 입었는데, 몸이 꼿꼿하며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는 담담히 동원의 구역을 살펴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동원의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금세 조용해졌고, 기세에서 압도당한 듯했다.
“아이고! 류모백이구나. 류모백마저 올 줄 몰랐어.”
소릉은 침을 깊게 삼키며 바짝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류양 앞이라 한다면 조금이나마 전의가 생기겠지만 이들은 류모백 앞에서는 싸울 의지나 용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류모백이 진정한 북령원의 일인자였으며, 그가 북령원에 들어오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 그의 1위 자리는 아무도 건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반짝이는 흰색 옷을 입은 사람을 바라봤다. 검은 눈동자와의 시선 교환, 거리는 멀었지만 마치 압박감이 주변에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네 개 눈동자의 시선 교환, 목진의 눈에는 다른 수련생들과 같은 두려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평온한 시선 교환에 오히려 그 백의의 사내가 놀란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하, 저놈 매력 있잖아.”
류모백 옆에 있던 서원 천계의 선배들이 겁먹지 않은 목진을 보고는 놀라워했다.
홍비단의 아름다운 눈동자 또한 류모백과 마주 보고 있는 목진을 향해 있었고, 소년의 얼굴은 앳되어 보였지만 마음을 안정시키는 차분함이 있었다. 그런 느낌은 마치 북령원에서 진정한 일인자가 나타나도 그 어떠한 충격도 줄 수 없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얼떨떨했다. 당시의 그 겁이 많고 약하던 사내아이가 정말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형님!”
멀지 않은 곳에서 소리가 전해졌다. 류양이 크게 웃으며 이곳을 바라보았다.
류모백은 류양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으로 난간을 잡았다. 류모백의 기세에 동원 지계는 활기를 잃었지만, 반면 서원은 이를 계기로 기세가 더 거세졌다.
이것이 류모백이 서원 경기장에 온 이유였다. 또 다른 이유는 북령원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비록 동원에도 천계의 선배가 있지만 그는 누구도 그와의 대결을 원하지 않았다.
류모백이 자신의 기세로 경기장을 제압할 때,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제야 수련생들은 정신을 다잡았다.
드디어 비무 시합이 시작하려고 했다.
맑은 종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자, 뜨거운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비무장의 정방향에는 세 사람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제일 왼쪽에 있는 사람은 바로 어제 본 막사였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매우 마른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매우 긴장된 얼굴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비무장을 쳐다봤다.
“허허, 이번 원내 시합은 예전의 어떤 시합보다도 더 뜨거운 것 같소.”
두 사람 사이에 있던 백발노인이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비무장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예전의 비무 시합은 대부분 승패를 알 수 있었지만, 오늘 시합은 정말 예측하기가 어렵군요.”
막사가 웃으며 말했다.
“예측하기 어려울 게 뭐가 있습니까? 류양은 영동경의 초기이고 인급의 영기를 품고 있습니다. 지계의 학생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천계 학생들과 비교해도 실력이 꽤 우위에 있습니다. 물론 목진의 실력도 꽤 괜찮지만, 류양과 비교했을 때는 아직 멀었습니다.”
오른쪽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막사의 말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는 서원의 스승이었기에 당연히 서원의 학생이 가장 좋은 성적을 얻기를 바랐다.
“석사, 영로의 자격을 얻은 사람을 너무 얕잡아 보지 마시오.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소.”
막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쉽게도 그건 영로의 수련을 통과한 사람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소.”
그 말에 날카롭게 생긴 중년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논쟁을 듣고 있던 백발노인은 두 사람의 모습이 이미 익숙한 듯했다. 백발노인의 흐릿한 눈빛이 동원의 좌석에 앉아 있는 목진에게 향했다.
“조금 아쉽군요. 북령경은 10년 동안 영로의 자격을 획득한 아이가 나오지 않았소. 목진은 자격을 얻었지만 중간에 추방당했고. 마지막 관문 하나를 남기고 추방당했으니, 목진의 1년간의 수련이 전부 헛일이 되고 말았소.”
막사도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영로에 들어가 수련할 때는 영력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마지막 관문까지 수련한다면 영력관정(灵力灌顶)을 얻을 수 있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자라면 영륜경(灵轮境)에 진입할 수도 있다. 심지어 신백경을 익히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만약 목진이 영로 수련을 통과했다면 아마 지금쯤 북령경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오대원에 들어갔을 것이고, 주변 사람 누구도 목진에게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류모백 같은 인물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추방이라는 변고를 예측하지 못했다. 목진은 결국 영로의 귀한 영력관정을 얻지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다.
“소 원장(萧院长), 목진이 영로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추방된 것인가요? 저놈에게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심성도 매우 훌륭해 절대로 성적 때문에 쫓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어요.”
막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막사는 목진이 영로에서 큰일을 저질렀다는 것만 막연히 알 뿐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다.
막사의 물음에 중년의 남자도 북령원의 원장을 쳐다봤다. 그도 막사와 똑같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소 원장은 가볍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오. 그러나 전해 들은 바로는 영로에서 목진이 큰일을 저질렀다고만…… 그 일로 인해 오대원의 고위층에 있는 분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고 들었소.”
막사와 날카롭게 생긴 중년인의 눈동자에 똑같이 의혹의 빛이 서렸다. 그들은 목진이 사람들을 경악하게 할 만한 일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지요. 종이 울렸으니 비무를 시작합시다.”
소 원장은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이에 막사가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나 비무장을 둘러봤다.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모든 학생의 귀에 크게 울려 퍼졌다.
“시간이 됐다. 시합을 시작해라. 같은 학원 사람끼리 서로 배우고 연구하기 위함이니, 절대로 위험한 살수(杀手)를 쓰면 안 된다. 반드시 기억해라!
규칙에 대해서는 너희들도 모두 잘 알 것이다. 비무장에 오른 사람은 오직 한 번의 도전 기회가 있다.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에게 맞는 적수를 선택해야 한다.”
“네!”
비무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막사가 고개를 끄떡이며 손짓했다.
“시작해라!”
둥!
막사의 손짓에 따라 맑은 종소리가 북령원에 울려 퍼졌다.
와와!
순식간에 비무장이 혼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계속 비무장 위로 올라오더니, 그들의 고함소리가 비무장에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유웅, 나와라. 진즉부터 네가 마음에 안 들었다!”
“진통, 너도 나와라. 이번에야말로 지난번의 복수를 하겠다!”
“…….”
목진은 비무장이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지자 참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시합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목진의 시선이 서원의 류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침 류양도 차가운 눈으로 목진을 보고 있었다.
북령원 학생들은 이미 류양이 목진을 선택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목진에게 도전하지 않았다. 게다가 서원의 학생들도 목진의 실력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원 지계에서 목진의 적수는 오직 류양뿐일 거라고 여겼다.
동원과 서원 지계 중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것은 역시 두 사람의 시합일 것이다.
목진은 류양의 차가운 시선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때때로 옆에 있는 당천아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이런 목진의 행동은 류양이 이를 갈며 화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비무장의 열기는 점점 더 뜨거워졌고, 가장 사람들의 흥미를 끈 것은 지계에서 순위가 높은 학생들의 시합이었다.
“저 아이는 우리 동원의 담청산이에요. 역시 그가 나왔군요…….”
옆에 있던 소릉이 갑자기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의 시선도 소릉을 따라갔다.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 검은 옷을 입은 소년 하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년은 매우 말랐고, 얼굴은 조금 창백했다. 그러나 입술을 깨물고 있는 표정에서 강한 의지가 보였다. 그는 마치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 얼굴이 굳어 있었다.
“담청산…….”
목진은 검은 옷의 소년을 보고 순간 멍해졌다. 그는 검은 옷의 소년과 아는 사이였다. 담청산은 목진이 북령원의 동원에 오기 전 동원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지계의 학생 중에 상위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담청산도 목진의 시선을 느낀 듯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맞췄다. 담청산의 굳은 얼굴에 살짝 담담한 미소가 떠올랐다.
“힘내.”
목진이 웃으며 말했다. 비록 특별히 친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동원의 학생이고 담청산에 대해 아무런 적의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담청산이 고개를 끄떡인 후, 몸을 날려 비무장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담청산이 누구에게 도전할까…….”
사람들은 속삭이면서 호기심을 드러냈다. 서원에서 담청산의 적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류양.”
담청산의 시선은 서원의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고, 그는 곧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담청산의 호명에 사람들은 순간 야단법석이 났다.
“담청산이 류양에게 도전한다고?”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담청산이 비록 지계에서 성적이 좋지만, 류양과 비교하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담청산이 류양에게 도전할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서원에 앉아 있던 류양도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곧 눈빛이 어두워졌다. 목진이 아직 그에게 도전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지명을 당했으니 사람들은 류양이 목진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분수도 모르는 자식.”
류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류양의 어두운 기운에 서원의 학생들은 놀라 한기가 들 지경이었다. 지금 류양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