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삼라사인(森罗死印)
목진은 영결실 안에 가장 끝에 있는 구석으로 가 걸음을 멈췄다. 목진 앞에는 돌로 만든 책상이 있었고, 책장에는 여기저기 옥간이 흩어져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모두 보통의 범급 영결이야. 설마 이런 영결을 원하는 거야?”
당천아가 옥간을 들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목진은 미소를 머금고 긴 손가락을 이용해 차가운 벽면을 만졌다. 그리고 책장의 어두운 곳에 손을 깊숙이 넣더니, 안에서 검붉은색의 옥간을 꺼냈다.
“이건?”
옥간은 보더니 당천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영결 중에서 이런 색의 영결은 모두 특수한 명칭이 있었다. 바로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영결이다.
위험성이 있는 영결이라는 뜻은 이런 종류의 영결을 수련할 때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른다는 뜻이다. 심지어 수련하는 사람에게 심한 부상을 입힐 수도 있었다.
“보여줘.”
당천아가 손을 뻗어 목진의 손에서 옥간을 뺏어갔다. 그리고 옥간 표면에서 한기가 나오는 글자를 쳐다봤다.
범급 상품, 삼라사인.
“삼라사인?”
당천아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화난 표정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너 뭐야? 이런 영결을 수련하려는 거야?”
당천아도 삼라사인의 이름을 들어봤다. 비록 범급 상품의 영결이지만, 북령원에서도 이 영결의 악명은 매우 높았다.
이 영결이 대단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예전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학생 두 명이 이 영결을 수련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경맥이 끊어지면서 하마터면 폐인이 될 뻔했다. 그날 이후로 어떤 사람도 이 영결을 선택하지 않았다.
“예전에 이 영결을 연구한 적이 있어. 사실 이 영결은 매우 대단해. 단지 수련할 때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매우 강한 영력이야. 예전에 수련한 두 명의 선배는 체내의 영력이 영결이 원하는 수위에 이르지 못해서 실패한 거야.”
목진이 설명했다.
목진이 지금 익히고 있는 대부도결의 영력은 절대로 일반적인 영력이 아니었다. 패도가 넘치는 영력이라 분명 삼라사인의 수련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안 돼!”
당천아가 인상을 쓰며 목진을 노려보았다.
“게다가 너는 아직 이 영결을 볼 자격도 안 돼.”
영결실에서 열람할 수 있는 영결은 규율이 있다. 만약 보통의 범급 영결이라면 어떤 학생이라도 열람해 볼 수 있지만, 이 영결은 선생의 허락이 필요했다.
비록 삼라사인이 범급 상품처럼 보여도 위험성이 있는 영결이었다. 이런 종류의 영결은 천계에서 반년간 공부한 학생에게만 볼 수 있었다. 목진은 이제 승급했기 때문에 자격이 부족했다.
목진이 미소를 짓고 당천아를 쳐다보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래서 내가 누나를 데리고 왔잖아. 나 대신 영결을 빌려줘.”
당천아의 아름다운 미간이 놀라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목진을 보며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너를 도와달라고? 꿈 깨!”
“천아 누나, 도와줘.”
목진이 몸을 앞으로 기대면서 잘생긴 얼굴을 당천아의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댔다. 목진의 숨결이 당천아의 볼을 어루만졌다.
저녁노을처럼 붉어진 당천아는 깜짝 놀라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부러끄러움에 목진에게 화를 냈다.
“이 무뢰한!”
목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검은 눈동자로 당천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정말 이 영결을 수련하고 싶어. 절대 무슨 일이 안 생길 거니까 믿어줘. 응?”
그 말에 당천아가 입술을 깨물며 잠시 망설였다. 이 영결은 너무 강력하고 흉악해서 만약 목진이 예전 선배들처럼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응? 목진 너도 여기에 있었어?”
당천아가 망설이고 있을 때,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목진과 당천아가 고개를 돌리자 붉은 치마를 입은 홍비단이 서 있었다.
목진은 홍비단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목진이 북령원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먼저 목진에게 인사를 한 거였다. 비록 어렸을 때는 친하게 지냈지만, 그 후에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관계가 소원해졌다.
지금은 낯선 느낌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홍비단 선배.”
목진도 살짝 미소를 지으며 홍비단을 선배라고 불렀다. 당천아는 목진의 태도에 얼굴이 서서히 편안해졌다. 목진의 이런 호칭은 분명 친밀감은 없었고, 예의 바른 태도만 보였다.
홍비단의 아름다운 눈빛이 당천아가 손에 쥐고 있는 붉은색의 옥간으로 향했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왜? 이 영결을 빌리려고? 내 도움이 필요해?”
목진은 당천아를 보며 두 소녀가 전부터 서로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목진이 차가운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선배의 호의에는 고맙지만, 당천아 누나가 이미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말에 홍비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목진의 잘생긴 얼굴을 쳐다보며 속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당시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던 소년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알았어. 그럼 방해하지 않을게.”
홍비단은 더는 머물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 홍비단의 날씬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녀가 나가자 사람들은 목진에게 질투 어린 눈빛을 보냈다. 북령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소녀가 모두 목진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언제 너를 도와준다고 했어?”
홍비단이 멀리 떠나자, 당천아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럼 할 수 없이 홍비단 선배에게 부탁해야지.”
“네가 감히!”
당천아가 황급히 외쳤지만, 목진의 장난스러운 얼굴을 보고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도와줄 수는 있어. 그러나 나에게 이것만은 꼭 약속해줘. 만약 이상한 것이 있으면 즉시 수련을 멈춰야 해!”
목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또.”
당천아의 눈을 크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름 후에 북령지원(北灵之原)에서 수행할 때 넌 우리 조에 들어와야 해.”
“북령지원(北灵之原)의 수행?”
목진은 당천아의 말에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북령지원은 북령경에서 매우 험한 곳으로 유명했다. 그곳은 매우 광할하고 주변에 사나운 영수가 언제라도 대열을 공격할 수도 있어서 영수도 사냥해야 했다.
게다가 북령지원에는 귀한 영약의 재료들이 많아서 보물 창고 같은 곳이기도 했다. 당연히 이런 영약을 가지려면 그에 합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물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 것이다.
북령지원에는 자원이 풍부해서 목진의 부친도 종종 수하들을 데리고 들어가곤 했다.
“맞아. 우리 북령원 천계는 일정한 시간 동안 학생을 모집해서 북령지원에 수행을 가. 오직 실력으로만 싸워야 하기에 수련 효과가 뛰어나지.”
당천아가 고개를 끄떡이고 웃으며 말했다.
“이런 수행은 두 사람이 한 조가 되는데, 만약 성적이 3등 안에 들면 특별한 상을 받아.”
“무슨 상? 뭔데?”
“듣자 하니 이번에는 온령단(蕴灵丹)이라고 하더라고.”
“온령단?”
목진이 놀라 외쳤다. 이런 영단은 자신처럼 막 수련을 시작한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영단약은 매우 부드러워서 후유증도 없고, 목진처럼 영동경 중기의 실력을 지닌 사람이 복용한다면 짧은 시간 내에 영동경 후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응, 만약 내가 온령단을 얻을 수 있다면 영동경 후기에 도달할 거고, 그럼 영륜경에 들어갈 준비도 할 수 있을 거야.”
“성적은 어떻게 평가하는데?”
목진이 호기심을 느끼고 물었다. 분명 온령단이 그의 흥미를 끈 것이 분명했다.
“간단해. 영수를 가장 많이 죽인 사람이 1등이 되는 거야.”
“천계의 모든 학생이 참가할 기회를 얻기 때문에 경쟁이 매우 치열해. 나는 너와 한 조가 되고 싶어.”
“나는 이제 겨우 영동경 중기의 실력이야. 조원을 선택할 때는 더 강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 아냐? 게다가 누나의 매력이라면 동원, 서원의 실력자들이 모두 한 조가 되고 싶어 하지 않을까?”
목진이 웃으며 말했다.
“나와 한 조가 되는 게 싫은 거야?”
당천아가 가볍게 콧방귀를 뀐 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옥간을 가리켰다.
“당연히 해야지. 그러나 나중에 온령단을 얻지 못했다고 해도 나를 탓하면 안 돼.”
목진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목진은 영동경 중기의 실력을 지녔기 때문에 북령원에서 그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당천아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만약 얻지 못해도 괜찮아. 나는 영단에 의지하지 않아도 1년 이내에 영륜경에 도달할 자신이 있어.”
당천아가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옥간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목진을 보며 말했다.
“게다가 나는 다른 사람과 한 조가 되는 게 싫어.”
“천아 누나가 나와 한 조가 되고 싶다면 당연히 감사하고 따라야지. 누나, 안심해. 목숨을 다해 누나를 도와 온령단을 얻게 해줄게.”
목진이 과장되게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면서 웃으며 말했다.
“입만 살았군.”
당천아가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그럼 저 영결은?”
목진이 웃으며 당천아 손에 있는 옥간을 쳐다봤다.
“다음에는 절대 안 돼.”
당천아가 콧방귀를 뀌더니 영결을 가지고 영결실 밖으로 나갔다. 목진도 황급히 뒤를 따라갔다.
영결실 대문에서 당천아가 대출 기록을 하고 있는데, 영결실 관리 노인이 붉은빛이 나는 영결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당천아를 쳐다봤다. 노인은 잠시 망설였다.
삼라사인의 영결은 매우 흉악하기 때문에 비록 당천아가 조건에 부합된다고 하더라도 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목진은 관리 노인이 망설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만약 고지식하고 완고한 노인이 트집을 잡으면 삼라사인을 빌려 가지 못할 것이다. 노인의 허약한 모습만 보고 그를 판단하면 안 된다.
그는 영륜경 후기의 실력을 지니고 있고, 조금만 더 수련하면 신백경의 경지에 이를 날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이 노인을 깔보다가 손해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이 당천아는 노인과 관계가 매우 좋았다.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를 띠고 애교스럽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노인이 기꺼이 고개를 끄떡이게 했다.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관리 노인은 옥간을 당천아에게 주었다.
목진은 아무 말도 없이 당천아의 뒤를 따라 나갔다. 당천아는 목진에게 의기양양하게 웃더니 옥간을 목진에게 던져줬다.
“모두 누나 덕분이야.”
목진이 옥간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고, 눈동자에 기쁜 빛이 어리더니, 당천아에게 웃어 보였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마 저 완고한 노인에게서 옥간을 빌리지 못했을 것이다.
당천아가 활짝 웃으며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목진의 손에 있는 옥간을 쳐다봤다.
“정말 조심해야 해.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으면 즉시 수련을 멈춰.”
“응, 그럼 나 먼저 돌아갈게.”
목진은 옥간을 받아들자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당천아에게 손을 젓고 몸을 돌려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
당천아는 목진의 뒷모습을 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