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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20화 (20/1,000)

20화. 영수의 정백(精魄)

목진은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리고 반년 동안 풀지 못했던 마음속의 의문에 대해 말했다.

“그동안 왜 나를 죽이려고 한 거야? 만약 내가 너를 구하지 않았다면 너는 이미 죽었을 거야.”

목진이 은발의 소녀를 처음 만났을 때, 소녀는 함정에 빠져 있었다. 다섯 명의 교활한 변태들이 소녀를 거의 사지로 몰아넣었다. 원래 목진은 구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소녀의 유리 같은 검은 눈동자에 떠오른 처연한 빛을 보고는 그만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소녀를 구해주고 목진은 소녀를 함정에 빠트린 변태들 다섯 명의 화를 사고 말았다. 목진은 상처를 입은 소녀를 데리고 도망갔고, 열흘 정도 지나자 그들 중 3명이 죽고 2명만 남자 그들은 포기했다.

그러나 목진이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자신과 별다른 이야기도 나누지 않던 소녀가 검을 뽑아 들었다. 장장 반년 동안 소녀는 목진을 죽이려고 쫓아다녔다.

소녀는 목진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더니 망설이며 대답했다.

“나는 단지 수련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데 너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마음이 분산됐어.”

소녀의 말에 목진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너 제정신이야? 그럼 지금은 또 왜 이러는 거야?”

목진은 참지 못하고 외쳤다.

“방금 너를 죽이려고 했는데, 그런데…… 죽일 수가 없었어.”

소녀가 잠시 고민하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 생각엔 반년 동안 너를 쫓아다니면서도 여전히 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

그 말에 목진은 할 말을 잃고 하늘을 쳐다봤다.

‘서로 쫓고 쫓기는 동안 나를 죽이려고 하면서도 호감을 느꼈다니…….’

“내가 방금 너를 죽이지 않았으니, 너는 나에게 목숨을 빚진 거야. 그러니까 한 조가 되어 다니다가 너에 대한 호감이 사라지면 그때 죽여줄게.”

“지금 개 키우는 거야?”

“그럼 그때가 되면 죽이지 않고 놓아줄게.”

“…….”

목진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려 걸어갔다.

“관심 없어.”

“내가 너의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줄게. 네가 나를 다치게만 하지 않으면 너를 보호해줄게. 영로 뿐만 아니라 대천 세계에서도.”

소녀가 몸을 돌려 떠나는 목진을 보고 주저하며 말했다. 목진은 소녀의 말에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평상시에는 말도 안 하더니 말 한마디에 사람에게 감동을 주네.”

목진이 몸을 돌려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다시 소녀 앞으로 돌아가 손을 내밀었다.

“그럼 앞으로 즐겁게 협력해 보자.”

소녀는 항상 아무 감정도 없는 얼굴을 했지만, 이번에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 달빛조차도 말을 잊은 듯했다.

잠시 후 소녀가 섬섬옥수의 차가운 손을 내밀고 목진과 가볍게 악수를 했다. 이건 소녀와 목진의 약속이었다.

* * *

모닥불의 따뜻한 불빛이 당천아를 비췄다. 그러나 당천아는 오히려 한기가 느껴졌다. 이런 한기는 목진이 영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영로는 상상만큼 아름다운 곳이 아니구나. 내가 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 뼈조차 남지 않았을 거야.”

당천아는 조금 두려움을 느꼈다. 믿을 만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곳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는 제대로 살 수 없을 것이다.

“원래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니야.”

목진이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때 막사가 손짓했고 학생들은 모두 막사를 쳐다봤다.

“이번 북령지원의 수행에서 이곳이 바로 우리의 야영지이다. 너희들은 여기에서 출발해서 북령지원에서 수행하게 될 것이다. 영수와 정면으로 싸우기 전에 너희에게 알려줄 것이 있다. 영수는 총 3급으로 나뉘는데, 북령지원의 외곽에는 대부분 낮은 급수의 영수가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항상 연합해서 영수를 상대해야 한다.”

막사의 엄격한 눈빛과 무거운 목소리가 야영지에 울려 퍼졌다. 학생들은 모두 진지하게 막사의 말을 경청했다. 학생들도 이게 연습이 아니라 진짜 실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영수의 먹이가 될 것이다.

“낮은 급수의 영수는 대략 영동경의 실력과 비슷하다. 중급은 영륜경, 고급 영수는 신백경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 북령지원 깊은 곳에는 고급 영수가 있으니까 너희들은 절대로 북령지원의 깊은 곳에 들어가면 안 된다!”

막사의 목소리는 매우 진지하고 엄숙했다. 고급 영수는 막사조차도 상대하기 힘들다. 그런데 학원에서 처음 나온 학생들이 대항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막사의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떡였다. 고급 영수뿐만 아니라 중급 영수만 봐도 학생들은 멀리 도망치는 것이 사는 길이다.

“이번 수행에서 3위 안에 드는 조는 조원 모두 온령단을 얻을 수 있다.”

막사가 온령단이란 말에 눈을 빛내는 학생들을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서로 잘 협력해야 한다. 너희들의 지금 실력으로는 협력해야지만 이곳 북령지원 외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네!”

학생들이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했다.

“영수를 사냥하고 정백(精魄)을 가져와야 하는 것을 잊지 마라. 비록 저급 영수의 정백이라 신백경을 익힌 강자에게는 별거 아니지만, 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목진이 살짝 고개를 끄떡였다. 신백경의 강자는 영수의 정백을 정제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실력이라면 보통의 영수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다.

“막사께서도 신백경의 강자이신데, 막사께서 정제하신 영수는 뭔가요?”

한 학생이 호기심에 물었다. 신백경 강자의 영수를 정제하는 능력은 매우 특수한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막사는 학생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더니, 즉시 한 손에 결인을 만들었다. 강한 영력이 체내에서 폭발하더니 황금빛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잠시 후, 금빛의 거대한 늑대가 나타나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며 크게 울부짖었다. 거대한 늑대의 몸에는 문자가 새겨져 있고, 위풍당당한 것이 절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와.”

야영지는 순식간에 환호성에 휩싸였다. 심지어 야영지 한쪽에 있던 서원의 학생들도 막사 뒤에 있는 금빛의 늑대를 보고 눈을 빛냈다.

서원에 있던 석사가 입을 실룩거리더니 몸을 살짝 떨었다. 큰 폭발음이 나면서 석사의 측면에 거대한 검은 사자의 형상이 나타났다. 검은 사자는 회색의 귀갑(龟甲)을 입고 있었다.

야영지의 있던 학생들은 두 명의 신백경 강자가 정제한 영수의 정백을 보고 부러움에 두 눈이 뜨겁게 빛났다.

“내가 정제한 고급 영수는 금뢰랑(金雷狼)의 정백이다. 금뢰랑은 만수록에서는 대략 지방(地榜) 382위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석사가 정제한 고급 영수는 석귀사(石龟狮) 정백으로 390위로 기재되어 있다.”

막사는 석사의 행동을 지켜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손을 저어 금빛의 늑대를 사라지게 했다.

“이렇게 대단한 영수가 만수록에서 겨우 300위권 밖에 못 든다는 거야? 그럼 1위 영수는 도대체 어떤 거지? 전설 속에 나오는 만수록 천방(天榜)은…… 하늘을 뒤집어 놓는 거 아니야?”

학생들이 놀라 감탄했다. 지방이 이렇게 대단한데, 만수록에 기록된 천방은 얼마나 무서울까?

“만수록에서 100위 안에 드는 영수들은 절대 쉬운 영수들이 아니다. 그들의 실력은 신백경의 강자와도 비교할 수 없고, 삼천지경(三天之境)에 든 강자와 비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영수를 천급 영수라고 하고 하며, 간단하게 줄여서 천수(天兽)라고 부른다.”

여기까지 말하고는 막사가 갑자기 목진을 흘낏 쳐다봤다. 목진은 막사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왜냐하면 목진의 아버지가 정제한 용염조는 지방에서 100위 안에 드는 영수이기 때문에 천수의 등급에 든다고 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신백경의 강자가 영수 정백의 실력을 뛰어넘으려고 하면 큰 난관에 부딪힌다고 한다. 목봉이 용염조를 정제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기연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목봉의 실력으로 북령구역의 주인이 될 수 있었고, 구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었다.

어쨌든 신백경에 이르면 가장 큰 장점은 모든 영수의 정백을 정제할 수 있다. 그럼 엄청난 전투력을 얻게 되니, 누구라도 영수를 정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만수록의 천방의 존재는…….”

막사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웃으며 말했다.

“아마 대천세계의 지존급의 특급 인물이라도 감히 그들에게는 쉽게 덤비지 못할 것이다.”

“됐다. 시간이 늦었으니 너희들도 이만 쉬어라. 내일 아침에 북령지원으로 들어가 정식으로 수련을 시작할 것이다!”

막사가 말을 끝내고 학생들에게 손을 저었다.

학생들은 여전히 흥분된 표정으로 흩어졌다. 목진도 천막으로 돌아가 눈을 감고 다시 한번 두 번째 삼라사인을 수련했다.

밤은 조용히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학생들은 준비를 끝내고 흥분된 표정으로 넓고 광활한 숲을 쳐다봤다.

목진은 당천아와 함께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담청산과 묵령을 보았다. 두 사람이 한 조인 것이 분명했다.

목진은 조금 놀랐다. 묵령은 영동경 후기의 실력을 지녔기 때문에 담청산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목진, 너와 당천아가 한 조야? 하하, 나는 청산과 한 조야. 청산은 새로운 학생인 데다 위험한 곳에 왔으니 내가 당연히 돌봐줘야지.”

묵령도 목진을 보고 웃으며 다가왔다.

목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묵령이 담청산을 돌봐주는 것은 아마 자신들과 친구가 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묵령 선배는 세심하시군요.”

목진이 웃으며 말했다. 목진은 묵령에게 악의가 없었기 때문에 묵령의 이런 모습에 반감이 들지 않았다.

그들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들의 오른쪽에 있던 사람들의 무리가 갑자기 길을 비기더니 익숙한 그림자가 목진의 눈앞에 나타났다.

제일 앞에 선 사람은 바로 비무 시합에서 목진에게 진 류양이었다.

류양이 목진을 음침한 눈동자로 쳐다봤다. 비무장에서의 결전은 류양의 명성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천계에 들어왔고, 류양의 형 류모백이 있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분노가 가득했다.

목진은 류양을 흘낏 보고는 고개를 돌려 류양의 옆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 옆에서 체격이 건장한 소년이 흥미로운 눈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네가 바로 목진이야? 요즘 꽤 유명하던데.”

노란 옷을 입고 있는 소년이 웃는 얼굴로 천천히 말했다.

“진통, 너희들 왜 이러는 거야?”

묵령이 두 소년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나 목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진통이라는 이름은 북령지원에서 꽤 유명한 이름이었다. 비록 류모백만큼은 아니지만, 북령원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다. 영동경 후기의 실력에 묵령처럼 북령원에서 키우는 인재였다.

“예전에는 혼자 와서 위세를 부리더니, 오늘은 왜 사람을 데리고 온 것이냐?”

목진이 류양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목진의 말에 류양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음침하게 말했다.

“잘난 척하지 마. 만약 우리가 북령지원에서 만난다면 그때는 진짜 본때를 보여줄 거니까.”

“네 형과 비교하면 너는 아직 멀었다.”

목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정말 오만하네. 인사나 하자. 나는 서원의 진통이다. 예전부터 영로의 자격을 얻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

진통이 손을 내밀며 목진을 떠보듯 말했다.

“출발하자.”

목진이 웃으며 더는 류양 일행을 신경 쓰지 않고 진통 옆을 지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멀지 않은 곳에 흰옷을 입고 있는 류모백을 쳐다봤다. 마침 류모백도 목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치자 공기 중에 한기가 느껴졌다. 두 사람이 뿜어내는 한기에 주변 학생들이 입을 다물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만약 내가 마음에 안 들면 혼자 찾아와라. 이런 사람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목진이 가볍게 웃은 후,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당천아를 데리고 야영지를 빠져나갔다.

류모백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멀어지는 목진을 차가운 눈으로 쳐다봤다.

“저 건방진 놈!”

류양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 모습에 진통이 입을 벌리고 웃었다.

“괜찮아. 잘난 척하게 내버려 둬. 그들과는 북령지원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으니까. 그때는 내가 뭐가 진짜 예의인지 알려주겠다. 정말이지 선배를 공경할 줄 모르는 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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