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개자탁(芥子镯)
개자탁을 살피던 목진은 예전 주인이 남긴 영력의 낙인을 보았다. 원래라면 다른 사람이 만졌을 때, 주인이 즉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혈도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영력의 낙인도 사라졌을 것이다.
목진은 개자탁을 손에 쥐고 곧바로 영력을 불어넣었다. 순간 작은 공간이 나타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개자탁 내의 물건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개자탁 내에서 목진은 꽤 많은 물건을 발견했다. 대부분 별거 아닌 물건이었다. 목진이 개자탁을 흔들고 다시 살펴봤지만, 특별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이놈은 도대체 어디서 이런 쓰레기 같은 물건만 모은 거야? 그래도 혈도단의 단장이잖아.”
목진이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세심하게 살펴봤다.
한참을 살펴보던 목진이 갑자기 눈을 빛냈다. 손바닥에 빛이 스치고 지나가더니, 오래되고 낡은 동판이 나타났다.
목진이 영력으로 다른 물건들을 살펴볼 때 은은하게 영력들이 반응했는데, 유일하게 이 동판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런 반응이 오히려 목진의 주의를 끌었다.
오래되고 낡은 동판 위에 이해할 수 없는 문양이 나타났다. 그 문양은 너무 복잡해서 보고 있는 목진의 머리가 어지러웠다.
문양의 뒤편에는 거대한 새가 높이 나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거대한 새 아래에는 산과 강이 있었다. 산과 강을 거대한 새의 양 날개가 포괄하고 있는 듯했다.
“이건 무슨 영수지?”
목진은 조금 이상했다. 비록 동판의 그림이 모호했지만, 오래되고 낡은 문양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을 느껴졌기 때문이다. 목진은 기이하고 놀라운 감정이 들었다.
도대체 어떤 영수길래 문양만 보고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걸까?
‘설마 천수(天兽)일까?’
목진은 인상을 쓰며 다시 동판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목진의 직감은 이 물건이 혈도가 류역의 손에서 뺏어온 물건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이 물건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몰랐지만, 자신의 아버지는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진은 어깨를 으쓱한 후, 다시 개자탁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을 집중하자 멀리서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누군가 이쪽으로 오는 것이 분명했다.
목진은 동판을 황급히 개자탁에 넣고 손목에 차고는 소매로 가렸다. 그리고 빠른 속도록 혈도의 옷을 다시 입혔다.
혈도의 옷을 다 입혔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짧은 시간 내에 사람들이 공터에 나타났다.
목진은 사람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바로 막사 일행이었다.
“목진!”
막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목진을 보고 어두웠던 얼굴에 기쁜 표정이 떠올랐다. 막사는 순식간에 목진의 앞에 나타나 물었다.
“괜찮으냐?”
목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비록 얼굴을 창백했지만 상태는 괜찮은 듯했다.
“천아에게 너희가 혈도를 만났다는 말을 듣고 즉시 쫓아왔는데, 여기서 너를 만났구나.”
막사는 목진이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곧 주변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응? 혈도는? 그놈이 감히 겁도 없이 북령원의 학생을 건드리다니!”
목진이 웃으며 앞에 있는 풀밭을 가리켰다.
“그놈은 죽었습니다.”
막사가 놀라 순간 멈칫하고, 그의 뒤에 있던 석사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막사가 풀밭을 소매로 휘두르자 거대한 힘이 풀들을 쓸어버렸다. 그러자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가 드러났다.
“이건…….”
막사와 석사가 차가운 시체를 쳐다보며 안색이 변했다. 그리고 곧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목진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목진이 말을 하려고 할 때, 후방에서 파동이 전해져 왔다. 류역의 사람들이 사람들을 데리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 뒤에는 류모백과 류양도 있었다. 그들은 무사한 목진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혈도?”
류명이 바닥에 있는 시체를 보고 안색이 변해 황급히 말했다.
“어떻게 된 건가요?”
류명이 말을 하는 동시에 날카로운 눈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류명의 눈빛에 목진은 매우 불편해졌다.
“네가 한 짓이냐?”
목진이 류명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그에게 쫓겨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아는 놈을 만났는데 그놈이 혈도를 죽였습니다.”
“아는 놈?”
류명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그리고 손짓으로 두 사람에게 혈도의 시체를 수색하게 했다. 잠시 후, 그들은 류명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류명은 눈가에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다시 목진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목진, 혈도의 몸에 있는 물건을 보았느냐?”
“무슨 물건이요?”
목진이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그놈이 저자를 처리할 때 저는 멀리서 감히 다가오지도 못했고, 무엇을 가지고 간지도 모릅니다.”
류명의 안색이 차가워졌다.
“목진, 헛소리하지 마라. 분명 혈도에게 있던 물건을 네가 가져간 것이 분명하다. 네가 말하는 놈은 분명 네가 만들어낸 것이 분명해!”
“네 말은…….”
목진이 이상한 표정으로 류양을 보더니 말했다.
“혈도를 내가 죽였다는 것이냐?”
류양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혈도는 영륜경 후기의 실력자이고, 곧 신백경의 경지에 도달할 사람이었다. 목진이 혈도를 죽였다는 것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류모백은 오히려 차가운 눈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하하, 목진아. 나에게 농담하지 말아라. 만약 물건을 나에게 돌려준다면 너에게 꼭 사례하겠다. 그리고 내가 직접 목역을 찾아가 너의 부친에게 이 일을 꼭 말씀드리고 감사를 드리겠다.”
류명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웃으며 말했다.
“류 셋째 어르신, 저는 정말로 혈도의 몸에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혈도에게 쫓겨 죽을 뻔했는데, 제가 어떻게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겠습니까?”
목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실대로 말을 안 하면, 너의 몸을 수색하겠다!”
류명의 입가에 경련이 일더니,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비록 류명도 목진이 혈도를 죽일 실력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목진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류명이 갑자기 손을 뻗어 목진을 잡으려고 했다.
목진은 류명의 손이 뻗어오는 것을 보고 손을 쥐었다. 그러자 검은 영력의 비수가 나타났다.
류명의 큰손이 목진을 잡으려고 할 때, 옆에서 다른 손이 뻗어와 그를 막았다. 막사가 류명을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류명, 너무 심하군요.”
류명의 화난 말투를 들은 막사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막사는 신백경의 실력을 지닌 강자이고, 게다가 북령원에서 스승의 신분이었다. 그들이 비록 류역 사람들이라고 해도 감히 밉보일 수 없었다.
“하하, 막사께서는 진정하십시오. 내가 순간 마음이 급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우리 류역이 이번에 큰 손실을 보았지만, 혈도가 죽었으니 잃어버린 물건은 꼭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류명이 막사를 향해 공수하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
막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당신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내 앞에서 마음대로 제 학생의 몸을 수색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북령지원으로 혈도를 쫓아오지 않았다면 목진은 여기에서 혈도를 만나 위험에 처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행히 목진이 도망쳐 목숨을 구했는데, 당신이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나는 그 무엇도 허락할 수 없습니다.”
류명이 막사가 고집스럽게 목진을 보호하는 것을 보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일은 확실히 우리가 불러온 일이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분명 목진에게 미안하게 됐군요. 목진에게는 만족할만한 보상을 하겠습니다. 단지 우리의 물건을 돌려주면 됩니다.”
목진도 손에 있는 비수를 회수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류명을 쳐다봤다. 그리고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류 셋째 어르신,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목진은 이 물건은 자신의 전리품이라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혈도에 의해 죽을 뻔했으니 이 물건은 절대 줄 수 없었다.
“너!”
류명의 눈빛이 더 어두워지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옆에 막사가 있어서 목진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물건이 탐난다면 가져라. 그러나 어떤 물건은 조심하지 않으면 감당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류명이 어두운 얼굴로 목진을 바라보다 참지 못하고 화를 내었다. 그리고는 손을 저어 류모백 일행을 데리고 몸을 돌렸다.
“감사합니다. 막사.”
목진이 다시 막사를 보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너는 우리 북령원의 학생이다. 게다가 지금은 북령지원에서 수행 중이니 나는 당연히 너를 보호하고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막사가 담담하게 웃더니, 곧 깊은 눈빛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알겠습니다. 먼저 야영지로 돌아가겠습니다.”
목진은 막사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북령지원의 외곽으로 걸어갔다.
막사와 석사는 뒤에서 서로의 눈을 쳐다보다가, 다시 혈도의 차갑게 식은 시체를 바라보았다. 석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놈의 운이 어떻게 이렇게 좋은 건지 모르겠군? 정말 누군가가 도와줬다는 건가?”
사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그러나 목진의 실력만으론 영륜경 후기의 혈도를 죽일 수 없다. 그래서 가능성은 없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막사는 석사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웃었다. 그는 앞에 걸어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막사는 목진이 어떻게 화영원 왕을 죽였는지 직접 봤다. 만약 보통의 학생이었다면, 아마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목진이 직접 혈도 같은 고수를 죽였다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막사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재미있는 놈이군. 이러니 북령경에서 유일하게 영로의 자격을 얻은 것이겠지.’
목진이 야영지로 돌아오자 소식을 들은 묵령, 담청산 등이 즉시 목진에게 달려왔다.
목진은 그들에게 괜찮다는 미소를 지어주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고 있는 당천아를 보았다.
“미안해. 모두 내 탓이야.”
당천아가 빨개진 눈으로 말했다. 만약 자신이 아니었다면 목진은 혈도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위험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한 조잖아.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와 한 조가 됐는데, 이런 사건도 겪지 않는다면 이런 복을 누릴 자격도 없는 거 아니겠어?”
목진이 놀리듯 말했다.
당천아는 목진의 말에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그녀는 주먹으로 목진을 가볍게 때리며 표정이 더 부드러워졌다.
막사 등도 뒤이어 돌아왔다. 혈도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적지 않은 학생들이 놀라 어리둥절해졌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네가 한 짓은 아니지?”
당천아가 목진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목진이 웃었다.
이런 일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이 나았다. 게다가 사실도 그랬다. 만약 혈도가 은각용표에 의해 중상을 입고 도망치느라 영력에 손실을 입지 않았다면, 자신은 절대 혈도를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불가능하지만, 너라면…… 누가 알겠어?”
당천아가 웃었다. 그녀는 목진에 대해 알 수 없는 믿음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하기 불가능한 일을 목진은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진이 웃으며 천천히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개자탁 안에 있는 오래되고 낡은 동편을 생각했다. 보아하니 시간이 날 때 목역에 갔다 와야 할 것 같았다.
이 물건을 류역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절대 간단한 물건을 아닐 것이다. 그는 아버지께 직접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혈도가 죽어서 막사 등은 안전에 대해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곧 수행이 끝날 때쯤에는 학생들을 북령지원 외곽에 풀어주고 마음껏 수행할 수 있도록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