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봉인
“구유작…….”
목진이 놀란 눈으로 참지 못하고 말했다.
“만수록 11위에 기록된 구유작이요?”
“모양을 보면 매우 닮았다.”
목봉이 고개를 끄떡인 후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뜨거운 불꽃이 손에 서서히 응집되더니 손바닥만 한 화조(火雕)가 나타났다.
화조의 눈빛은 매우 날카로웠고, 두 날개는 마치 용익(龙翼) 같았다. 날카로운 매의 발톱과 붉은색의 용의 비늘로 덮여 있는 것이 매우 위험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게 아버지께서 연화한 용염조(龙炎雕)의 정백인가요?”
목진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화조를 쳐다봤다. 화조야말로 진정한 천수이며, 만수록에서 80위를 차지하고 있다. 막사의 금뢰랑과 석사의 석귀사(石龟狮)와 비교해도 얼마나 강한지 몰랐다.
용염조는 목봉의 손에 서서 동판 가까이 다가갔다. 용염조는 동판에 있는 검은 새의 무늬를 보더니, 차가운 눈에 당황한 빛이 어리며 황급히 한발 뒤로 물러났다. 분명 매우 두려워하는 듯 보였다.
“용염조 조차 매우 꺼리는 것을 보니, 정말 구유작인 것 같다.”
목봉이 상황을 보더니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구유작은 북명지지에서 태어났다. 긴 날개는 산을 가리고, 빛을 가리고, 해와 달을 삼킨다.
구유작의 모습을 설명하는 말에 목진은 참지 못하고 혀를 내둘렀다. 이런 강대함은 정말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만약 정말 구유작이라면, 류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만약 신백경의 강자가 구유작의 정백을 얻게 된다면, 그 실력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실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목봉이 감탄했다.
“만약 정말로 구유작이라면, 류역의 실력만으로 도전할 자격이 되나요?”
목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것이 정말 구유작이라면, 류역의 모든 힘을 써도 포획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비밀은 이 동판에 있을 것이다.”
목봉이 담담하게 웃으며 갑자기 웅대한 영력을 꺼내 낡은 동판에 주입했다. 목진도 이런 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목진이 실패했다고 해서 목봉도 실패하라는 법은 없다. 목봉은 진정한 신백경 후기의 실력자이고, 북령경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에 올라간 사람이다.
웅대한 영력이 동판으로 들어가자, 줄곧 조용했던 동판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판의 무늬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하늘에 빛의 장막이 펼쳐졌다.
빛의 장막에 검은색의 광대한 숲이 펼쳐졌고, 그때 척박한 땅에서 갑자기 거대한 검은 새가 나타났다. 검은 새는 고개를 들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더니 검은빛이 체내에서 뿜어져 나왔다. 검은빛은 점점 퍼져 모든 빛을 덮어버릴 것만 같았다.
검은빛은 점점 더 짙어지더니, 마지막에는 검은 화염이 몸을 감싸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검은 새가 거대한 몸을 구부리자 갑자기 검은 화염의 속도가 줄어들고, 마지막에는 비통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검은색의 거대한 알로 변하더니 숲속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화면은 이렇게 끝이 나더니, 다시 매우 복잡한 무늬의 지도로 바뀌었다.
“정말 구유작이구나…….”
목봉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에 감출 수 없는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게다가 이 구유작은 진화하려고…… 그러나 실패했다…….”
목진은 깜짝 놀랐다.
‘구유작은 이미 이렇게 대단한데 만약 더 진화한다면, 만수록 천방의 자격을 얻게 되지 않을까?’
“보아하니 류역이 정말 구유작 때문에 목진을 공격한 것 같군요. 류역이 이걸 얻으면 절대 안 됩니다.”
주야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만약 류역이 구유작을 얻는다면, 분명 실력이 늘 것이고, 그때가 되면 류역의 성정으로 더는 목역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럼 우리가 가져요!”
목진이 눈을 빛내면서 낡은 동판을 쳐다봤다.
“아버지, 이곳이 어디인가요? 매우 익숙한 느낌이 듭니다.”
목봉은 목진의 말에 웃었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졌다.
“당연히 익숙할 거다. 북령경이기 때문이야. 이곳은 분명 북령경의 흑명연(黑冥渊)이다.”
“흑명연?”
목진은 그 이름을 듣고 살짝 놀라며, 혀를 찼다.
흑명연은 북령경에서 아주 험하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그곳은 북령지원과 다르다. 북령지원에는 모험가들이 자주 들어가지만 흑명연은 북령경의 금지구역이었다.
몇 년간 그곳에 들어갔던 모험가들은 열에 아홉은 그곳에서 부패해 거름이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나온 이는 딱 1명이었는데, 혼비백산해서 많은 시간을 쉰 후에야 겨우 정신만 회복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흑명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모두 공포에 떨었다.
“흑명연은 들어가기 쉬운 곳이 아닙니다.”
주야가 인상을 썼다. 분명 흑명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흑명연은 곳곳에 습지가 널려있고, 매우 위험한 곳이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목숨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구유작을 얻을 수만 있다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게다가 만약 류역이 구유작을 얻게 된다면, 목역에게는 정말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게다.”
목봉이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주야도 고개를 끄떡였다. 구유작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온전히 진화한다면, 아마 북령경에서는 감히 구유작을 대적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금 상황을 보니 구유작은 진화에 실패했기 때문에 지금이 제일 약할 때였다. 그러니 류역이 지금 이런 기회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먼저 부하들을 보내 류역의 행적을 감시해라. 분명 이런 일은 은밀하게 처리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류역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몰래 일을 진행할 것이야.”
목봉이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흑명연은 자주 독이 있는 안개에 휩싸이는데 한여름이 되어야 겨우 안개가 약해집니다. 이제 곧 여름이 다가오니, 만약 류역이 손을 쓴다면 분명 그때일 겁니다.”
주야가 말했다.
그 말에 목봉도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우리도 몰래 사람을 모집했다가 그 시기가 되면 움직이도록 하자. 류역이 구유작을 얻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목역과 류역의 원한은 단순한 것이 아니기에 서로를 견제하는 것만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지금부터 준비하겠습니다.”
주야가 바람처럼 신속하게 대답하고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 나갔다.
목봉은 주야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목진의 머리를 두드렸다.
“녀석아. 나에게 큰 선물을 가지고 왔구나.”
“아버지, 흑명연에 갈 때 저도 데리고 가세요.”
“그곳은 매우 위험해서 너를 데리고 갈 수 없다.”
목봉이 웃으며 말하자 목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는 영로를 다녀온 사람입니다. 아버지, 그곳의 상황이 아마 흑명연보다 못하진 않을 겁니다.”
목봉이 놀라 그제야 앞에 있는 목진을 자세히 살폈다.
얼굴은 아직 앳된 소년의 티가 났지만, 알 수 없는 강함이 느껴졌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손을 잡아끌던 어린 남자아이가 벌써 이만큼 자란 것이다.
“네가 원한다면 그럼 따라가거라. 그러나 절대로 함부로 굴면 안 된다.”
목봉은 아들이 왠지 자신을 뛰어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미소를 지었다.
“한 가지 더 아버지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저에 관한 일입니다.”
목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제가 대부도결을 수련할 때, 체내에 어떤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걸 아버지께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목봉이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 일이냐?”
목진이 목봉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설명을 기다렸다. 목진은 평상시에 매우 침착했지만, 이 일은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 계속 저를 속이실 생각은 아니시지요?”
목봉은 목진의 고집스러운 눈을 보더니, 얼굴에서 서서히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이렇게 빨리 알아챌 줄은 몰랐구나. 나는 그래도 최소한 반년 정도의 시간은 있을 거로 생각했다.”
목봉이 계속 말했다.
“사실 그 일은 나에게 말해봤자 소용없다. 그건 네 어머니가 네게 남긴 것이다.”
“역시 제 예상이 맞았군요. 이런 방법은 아버지의 실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목진은 아버지의 대답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네가 맞고 싶은 것이냐!”
목봉은 아들에게 무시당하자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어머니가 나에게 뭘 하신 거예요?”
목진이 고개를 숙여 자신을 보며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너는 친아들이기 때문에 그녀의 혈맥이 흐른다. 그녀는 너를 출산할 때 네 몸에 봉인진(封印阵)을 만들었다. 그게 바로 네가 자신의 영맥(灵脉)을 찾아내지 못하는 이유이다.”
“제 영맥을 어머니가 봉인했다고요? 왜요?”
목진이 놀라 물었다. 목진은 자신이 아직 준비가 안 돼서 영맥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가 봉인한 것이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영맥이 너무 많은 사람은 오히려 그것이 방해가 될 수 있다. 진정한 강자가 되고 싶다면, 반드시 천부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상에 천재는 많지만, 뭇 영웅들을 업신여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목봉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도 사람들이 대천세계의 지존 자리에 오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강자이다. 그들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 같은 강자가 되려면 반드시 그런 심성이 있어야 해.”
“그럼 다른 한 가지 이유는요?”
“다른 한 가지는…….”
목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네 어머니가 너의 영맥을 봉인하지 않았다면, 우리 둘 다 무척 힘들었을 거야. 네가 순조롭게 이렇게까지 크지 못했을 거다.”
“무슨 뜻인가요?”
“너에게 말해줘야 할 건 전부 말했다. 하지만 어떤 일은 네가 알아서 좋지 않은 일도 있다.”
목봉이 고개를 저었다.
“너는 네 어머니가 너의 영맥을 봉인한 것은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만 기억해라. 네 어머니는 너를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다. 그러니 경솔하게 굴지 말고, 실력을 쌓기 전에는 절대 체내의 봉인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목봉이 엄격하게 말했다.
“어머니…….”
목진이 작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 어머니라는 단어가 목진의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모호한 그림자가 떠올랐다. 비록 모습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비교할 수 없는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
“네가 진정한 강자가 되면, 당연히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목봉이 목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제 체내의 봉인은 언제쯤 풀 수 있나요?”
“응? 푼다고? 네 어머니가 남긴 봉인은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열쇠를 너에게 남겼으니, 오직 너의 능력으로만 풀 수 있을 것이다.”
“열쇠요?”
목진이 웃으며 눈을 반짝였다.
“대부도결인가요?”
“그렇다.”
목봉이 고개를 끄떡였다.
“너의 대부도결이 화탑(化塔)의 경계에 이르면, 분명 네 어머니의 봉인을 풀 수 있을 것이다.”
“화탑…….”
목진이 중얼거렸다. 대부도결의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영진(灵阵)을 배워라. 내가 영진사 한 명을 너의 스승으로 모셔오겠다.”
“영진이요?”
갑작스러운 목봉의 말에 목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영진사가 되길 바라시는 건가요?”
“네 어머니는 영진에 대해 조예가 깊다. 그런데 아들이 돼서 배우지 않을 생각이었느냐? 내가 네 어머니를 만나면 할 말이 없으니 더욱 노력하거라.”
목봉이 웃으며 목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목진을 남겨두고 거실을 나갔다.
‘영진사가 쉽게 되는 게 아니잖아.’
‘어머니는 못 하시는 것이 없으셨구나. 어머니는 뛰어나신 분인데, 왜 아버지를 좋아하신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