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괴암(怪岩)
영수의 정백을 챙긴 목진은 고개를 들어 류역이 있는 곳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또 무슨 방법을 쓸 건가요? 계속해서 고급 영수를 불러올 건가요? 그럼 다시 서영봉을 불러오겠습니다.”
목진의 말에 류경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류경천은 죽일 듯이 목진을 노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저 서영봉을 네가 부른 것이냐?”
“그럼 누가 했을 것 같나요?”
목진의 목소리가 점점 차가워졌다.
“당신들도 빨리 흑명연을 나가는 것이 좋을 겁니다. 서영봉이 다시 나타나면 아마 저 영수와 같은 꼴을 당할 테니까요.”
류역 사람들은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류종, 류명의 안색도 변했다. 그들도 서영봉의 위력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놈이 감히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냐?”
류경천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정말로 서영봉을 불러왔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조종은 못 하는 것 같구나. 네가 먼저 검은 액체를 뿌렸기 때문에 서영봉이 미친 듯이 영수를 공격한 것이겠지?”
목진이 웃었다. 그러나 류경천의 날카로운 눈썰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목봉, 너에게 좋은 아들이 있구나!”
류경천이 차가운 눈으로 목봉을 보며 말했다. 오늘 충분히 류역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는데, 한 소년에 의해 일을 망치고 말았다. 그때 류경천의 마음속에 사악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하, 과분한 칭찬이다.”
목봉이 웃으며 말했다.
“류경천, 이번에는 어떤 방법을 쓸 거지? 오랫동안 싸워보지 못했으니 일대일로 한번 싸워 볼 테냐?”
류경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속으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목역과 싸울 때가 아니라는 것을.
만약 지금 전력에 손상을 입으면 구유작을 얻기 힘들 것이다.
“너희가 언제까지 득의양양할지 두고 보겠다!”
류경천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휘둘러 사람들을 데리고 빠르게 흑명연 안쪽으로 들어갔다. 류역은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러는 것도 헛수고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저들을 따라가자!”
목봉이 상황을 보고는 차갑게 말했다. 그는 먼저 빠르게 몸을 움직여 류역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류역은 준비했던 계획이 실패하자, 더는 목역 사람들을 떼어내려고 애쓰지 않았다.
류역과 목역의 사람들은 빠르게 흑명연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는 류역도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더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조용히 흑명연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서로 조심스럽게 영수들을 피해 갔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 달리자 검은 산봉우리가 사라지고, 길이 점점 넓어지고 평탄해졌다.
“휙!”
목역 사람들이 산봉우리를 지나자 높은 언덕이 나왔다. 그들은 앞을 보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전방에 넓은 검은 분지가 나타났다. 그곳은 마치 화염에 불탄 것처럼 까맣게 탄 곳이 곳곳에 보였다. 그러나 목봉 일행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분지에 쌓여 있는 백골이었다.
전부 영수의 백골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유인당한 듯 보였다. 목진이 대량의 백골을 보고 차가운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왜 이렇게 많은 영수가 죽은 거야?’
목역 사람들은 천천히 시선을 들고 앞을 바라봤다. 분지 중앙에는 거대한 화산이 돌출되어 있었다. 산 정상에는 움푹 파인 흑암 지대가 보였고, 입구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처럼 보였다.
“이곳은…….”
목진이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목진은 무언가가 생각났다. 이곳의 풍경은 동판에 기록된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목진이 고개를 돌리자 목봉과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눈에 놀람과 기쁨의 빛이 어렸다.
분명, 이곳이 구유작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적지였다.
검은 분지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순간 수북하게 쌓인 백골에서 썪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한기를 느끼며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곳이 바로 구유작이 있는 곳이다!”
류역과 목역 사람들은 검은 화산을 쳐다보며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류경천이 정신을 차리고 몸을 돌려 후방에 있는 목역을 쳐다봤다.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영력을 끌어올려 화산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뒤에 있던 류종, 류명, 류모백 등도 즉시 따라갔다.
“움직이자!”
목봉이 소리치며 빠르게 체내의 영력을 폭발시켰다. 뒤에서 거대한 염용조가 나타나 날개를 펼치자 목봉이 재빨리 염용조의 등에 올라갔다.
목봉과 염용조가 날아가자 엄청난 영력이 폭발하며, 폭풍처럼 앞으로 날아갔다.
“흥!”
류경천은 목봉이 빠르게 쫓아오는 것을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갑자기 체내에서 은광을 폭발시켜 거대한 은빛 영수를 불러냈다.
영수는 거대한 원숭이처럼 보였다. 온몸이 은색 비늘로 덮여 있었고, 비늘은 번개처럼 번쩍였다. 영수의 포효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저건 뇌린수(雷鳞兽)?”
목진은 류경천 뒤에 나타난 거대한 은색 영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뇌린수는 만수록 133위에 기록된 영수로, 비록 천계 영수는 아니지만 고급 영수 중에서도 최고봉을 차지하고 있었다.
“휙!”
뇌린수가 땅을 박차고 번개처럼 앞으로 달려갔다. 목봉을 막으려 한 것이다.
“하하, 류경천. 드디어 참지 못하고 공격하는 것이냐? 그동안 누가 더 실력을 쌓았는지 보자!”
목봉이 류경천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고 큰소리로 웃었다. 발밑에 있는 염용조가 낮게 울더니 붉은 영력을 끌어올리며, 곧바로 류경천을 향해 날아갔다.
펑!
두 마리의 거대한 영수가 공중에서 맞붙었다. 엄청난 영력의 충돌에 바닥에 쌓인 백골이 깨져나갔다.
역주들이 싸우기 시작하자 양쪽의 사람들도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주야는 내가 맡겠다!”
류종이 음침한 눈빛으로 주야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몸에 독을 품은 게 분명했다.
“벽독마갈(碧毒魔蝎), 만수록 204위에 기록된 영수다.”
목진이 벽록색의 거대한 전갈을 보고 바로 알아봤다.
쿵!
대지가 갑자기 거칠게 흔들리더니 앞에 있던 주야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산악영서가 류종을 향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펑!”
그들이 내뿜는 살기는 흑명연의 평온함을 깨기에 충분했다. 영력이 끊임없이 부딪치며 살기가 널리 퍼져나갔다.
목진은 단위 등의 보호를 받으면서 류역 사람들과 싸웠다. 그러다 목진이 갑자기 앞으로 뛰어가더니 곧바로 산 정상을 향해 달려갔다.
“모백, 막아라!”
단위와 싸우던 류명이 목진을 보고 소리쳤다. 류모백이 고개를 끄떡이고는 몸을 돌려 목진을 쫓아갔다.
목진은 뒤에서 달려오는 바람 소리를 느끼고 고개를 돌려 흘낏 그를 쳐다봤다. 류모백을 본 목진은 체내의 영력을 더 빠르게 운용해 속도를 높였다.
“혼자 가겠다고?”
그 모습에 류모백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똑같이 속도를 빨리했다.
두 사람은 앞뒤로 달리면서 빠르게 검은 분지로 뛰어갔다. 그리고 검은 화산에 가까워지자 험준한 절벽을 원숭이처럼 오르기 시작했다.
“쉭!”
산을 오르던 목진은 뒤에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이에 곧바로 몸을 낮추고 공중제비를 해 몸을 뒤집었다.
쨍!
날카로운 비수가 조금 전까지 목진의 있던 곳에 와서 꽂히면서 딱딱한 화산암을 깨트렸다.
쉭쉭!
류모백이 두 손을 움켜쥐고 다시 비수를 던졌다. 이번에는 앞으로 던져 목진을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목진은 다가오는 바람 소리를 듣고 빠르게 영인을 끌어올려 류모백을 향해 쏘았다.
휙휙!
빛이 떠오르고 공기가 뒤틀리면서 영력이 빠르게 날아오는 비수를 막았다.
목진은 류모백을 쉽게 떼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날카로운 화산의 암석 위에 한 발로 서서 다른 발로 암석을 세게 걷어찼다. 그러자 날카로운 화산암이 하늘을 덮으며 류모백을 향해 날아갔다.
쾅쾅!
류모백은 주먹을 움켜쥐고 한 손을 앞으로 내밀어 영력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화산암이 잘게 부서졌다.
공격은 막았지만 류모백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빈틈을 찾아 빠르게 목진을 향해 달려갔다.
두 사람은 달려가면서 공격과 방어를 계속 이어갔다.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전부 사용했다. 게다가 앞에 화산이 있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공격할 때는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휙!
추격전은 수각 동안 계속됐지만, 목진이 먼저 검은 화산의 정상에 올랐다. 산 정상의 움푹 파인 곳에 화산 입구가 있었다. 입구는 매우 어두워 안에 뭐가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쿵!”
목진이 화산 입구를 살펴보고 있을 때, 갑자기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류모백이 도착한 것이다. 목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발을 굴려 화산 입구로 내려갔다.
류모백이 황급히 목진을 쫓아왔다. 그는 목진이 그대로 화산 입구로 뛰어 내려가는 것을 보고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를 악물고 목진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빠르게 화산 입구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화산 입구에는 조금씩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검은 화산암들이 쌓여 있었다.
목진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구유작에 대한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는 화산이 솟구치면서 형성된 거대한 화산암밖에 없었다.
화산 입구에 들어온 류모백은 바로 목진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 역시 사방을 둘러보며 구유작의 흔적을 찾는 데 집중했다.
두 사람의 눈동자에 의혹이 떠올랐다.
목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화산 입구로 다가가면서 계속해서 흔적을 찾았다.
류모백은 목진을 흘낏 보고는 물러났다. 분명 목진과 똑같이 주의를 끌고 싶지 않은 듯했다.
화산 입구 주변은 별로 널찍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
‘설마 동판에 있는 것이 가짜인가?’
목진은 입술을 깨물며 다시 사방을 살펴봤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화산의 중앙에 섰다. 중앙 옆에는 거대한 화산암밖에 없었다.
목진은 중앙에 서서 거대한 흑암을 쳐다봤지만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며 걸음을 떼는데, 갑자기 주먹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낡은 동판이 손바닥 위에 떠올랐다.
“이 동판이 설마 구유작의 위치를 감응하는 것인가?”
목진은 잠시 고민하다 여전히 구유작의 흔적을 찾고 있는 류모백을 흘낏 쳐다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거대한 흑암으로 다가갔다.
목진은 흑암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잠시 후, 목진은 거대한 흑암 앞에 멈춰 섰다.
눈앞에 있는 암석은 대충 봐도 매우 높고 거대했다. 암석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지만, 마그마에 침식됐기 때문에 유난히 반들반들했다.
목진은 손바닥으로 가볍게 암석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손바닥에 있는 동판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구유작이 이곳에 있는 건가?”
목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빛내면서 다른 곳에 있는 류모백을 다시 흘낏 쳐다봤다. 그리고 갑자기 주먹을 움켜쥐어 삼라사인을 표면으로 끌어올렸다.
펑!
목진은 영력으로 싸인 강대한 힘으로 암석을 때렸다. 거리가 짧아서 엄청난 바람 소리가 났다.
쾅!
목진의 주먹이 흑암에 떨어지자, 낮은 소리가 울리면서 암석이 흔들렸다. 그리고 목진의 주먹 아래에 천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암석이 갈라지더니 돌멩이가 흘러내리면서 금은 더 빠르게 벌어졌다.
목진은 암석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그는 주먹으로 내려치면서 이 암석 안이 비어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거대한 암석이 진동하며 조각들이 빠르게 떨어졌다. 잠시 후, 갈라진 틈으로 검은빛이 뚫고 나왔다.
목진의 모습은 즉시 류모백의 주의를 끌었다. 류모백은 흔들리는 흑암을 쳐다보더니, 곧 눈에 기쁜 빛이 떠올랐다.
검은빛은 갈라진 틈을 뚫고 나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암석이 폭발하며 깨져나갔다.
작은 돌들이 깨지면서 목진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목진은 움직이지 않고 암석이 깨지면서 쏟아져 나오는 검은빛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잠시 후 검은빛이 화산 입구의 낮은 지대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작은 돌멩이들도 공중에 떠다녔다.
그리고 빛 속에서 검은색의 거대한 알이 떠올랐다. 알의 표면에는 명확하지 않지만, 신비로운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무늬를 자세히 살펴보니 신비로운 검은 새가 두 날개를 펴고, 그 안에 검은 알을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