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진화
“저 검은 알은 구유작이 변한 것이 분명하다.”
목봉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붉은빛을 흡수하고 있는 검은 알을 쳐다봤다.
“흑명연의 영수들이 구유작에게 대량의 영력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목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봉도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 처음으로 일어난 일도 아닌 것 같다. 지난 세월 동안 이미 수많은 영수가 이곳에서 백골이 되었고, 모든 영력을 저 구유작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흑명연의 영수…….”
목진의 얼굴이 이상해졌다.
“마치 구유작이 키운 것 같습니다. 충분히 살을 찌운 후에 죽여서 영력을 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옆에 있던 단위 등의 사람들은 목진의 말에 한기를 느꼈다. 만약 사람이 이런 일을 벌였다면 별로 의외가 아니지만, 영수가 다른 영수들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얻은 이 동판으로 일부러 욕심 많은 이들을 유인해서 체내의 영력을 가져가는 것 같다.”
목봉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행히 구유작이 우리를 중시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도 저 영수와 같은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야.”
주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만약 이 모든 것이 구유작의 계획이라면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말에 목진이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의 말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그동안 욕심에 빠져 이곳에서 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바로 목진이 흑명연에서 만난 그 백골처럼 말이다.
그 백골은 다행히 도망은 쳤지만, 중상을 당해서 결국 죽고 말았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단위 등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물었다. 그들은 이렇게 무서운 영수는 처음 만났다. 그 두려움은 실력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보다 더 교활하고 악랄함 때문이었다.
“후퇴합시다!”
목봉의 목소리에는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구유작은 더는 생각하지 맙시다. 북령경에는 아직 구유작을 정복할 수 있는 존재가 없소. 지금은 중요한 것은 구유작이 우리에게 신경 쓰고 있지 않을 때, 즉시 후퇴하는 것이오!”
“네!”
단위 등은 목봉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런 위험하고 기이한 상황에는 희망을 찾기가 어려웠다. 지금이라도 이곳을 떠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다.
목봉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더는 구유작을 탐내지 않았다. 그는 명령을 내려 사람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검은 분지를 벗어났다.
“큰형님, 목봉 등이 후퇴합니다!”
류명이 목역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가 황급히 말했다.
“그들은 신경 쓰지 마라!”
류경천이 차갑게 말했다.
“상황이 이상하긴 하지만, 저들이 떠나면 더는 목역을 경계하지 않아도 되니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지.”
“그럼 우리는…….”
류명이 망설였다. 사실 그도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모골이 송연했다. 저 신비로운 검은 알은 너무 기이해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류경천의 눈에 망설이는 빛이 떠올랐다.
구유작의 유혹이 너무 컸다. 구유작만 얻을 수 있다면 자그마한 기회라도 잡아야 한다. 그러면 북령경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류명과 류종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후, 고개를 끄떡였다. 그들은 이번 계획을 오랫동안 준비했다. 만약 이대로 그냥 떠난다면 분명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목역 사람들은 후퇴했지만 류역 사람들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검은 분지에서는 계속해서 영수 무리가 공중으로 떠오르며 백골이 되어 떨어졌다.
펑!
하늘에서 붉은빛이 바람 소리를 일으켰다. 마지막 붉은빛이 사라졌을 때, 천지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쩍.
고요함 속에서 갑자기 미세하게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류역 사람들과 후퇴하고 있던 목역 사람들의 귀에는 커다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그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검은 알을 쳐다봤다. 검은 알의 표면에 뜻밖에도 미세하게 금이 가 있었다.
금이 간 틈으로 검은 화염이 솟아올랐다. 검은 화염은 순식간에 검은 알을 감싸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저건…….”
목봉의 이마에서 땀이 떨어지며, 목소리가 갈라졌다.
“구유작이 나타난 것 같다.”
끼루룩!
목봉의 말이 끝나자마자 맑은 새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검은 알에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검은 화염이 폭풍처럼 하늘을 휩쓸고 지나갔다.
검은 알은 맑은 소리를 내면서 드디어 갈라지기 시작했다.
검은 화염이 하늘을 활활 태우자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우아하게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화염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두려울 정도의 강력한 영력의 압박이 서서히 퍼져 나와 천지간의 영기가 기세등등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게 구유작인가요?”
목진은 검은 화염 속에서 거대한 몸을 일으키는 생물을 쳐다보았다. 비록 정확한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모호하게나마 그 윤곽을 볼 수 있었다.
“이런 파동은…….”
목봉도 거대한 그림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정도 영력의 위협이라면 삼천지경(三天之境)의 강자라도 적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존재를 정복하려 했다니 정말이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하마터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뻔했다.
“빨리 갑시다!”
목봉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준비를 했든지 간에 후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쿵쾅쿵쾅!
목봉이 사람들을 재촉해 후퇴하려고 할 때,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소리 같은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목역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모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 화염 안에서 뇌운(雷云)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검은 용처럼 생긴 것이 조용히 위로 용솟음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소멸시킬 정도의 힘이 검은 뇌운에서 퍼져 나왔다.
“이건 흑신뇌운(黑神雷云)?”
목봉이 눈을 가늘게 뜨고 검은 뇌운을 쳐다보며 참지 못하고 말했다.
“흑신뇌운?”
목진의 표정이 멍해졌다. 목봉이 놀란 마음을 억누르며 중얼거렸다.
“구유작이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진화하려고 하는구나!”
“진화요?”
목진은 검은 화염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림자를 보고 참지 못하고 말했다.
“전에 실패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다시 시도하는 것 같다.”
목봉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보아하니 구유작은 매우 오만하구나. 지난번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목진도 구유작의 기백에 매우 놀랐다. 누구나 한 번 실패하면, 당분간은 다시 시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유작은 실패한 곳에서 다시 일어섰다. 이런 기백과 오기가 그를 감탄하게 했다.
“그럼 이번에는 성공할까요?”
목진은 작은 목소리로 물으며 하늘에 퍼지는 검은 뇌운을 쳐다봤다. 뇌운은 마치 거대한 검은 용처럼 움직이며 형용할 수 없는 위력을 느끼게 했다.
“구유작이 원래 얼마나 강한 영력을 가졌는지 모른다. 구유작이 성공적으로 진화한다면 만수록 천방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구유작은 진정한 신수(神兽)가 되는 것이지.”
목봉이 말했다.
“신수.”
목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신수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비교할 수 없는 압박을 주었다. 대천세계에서 모든 신수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흑신뇌겁(黑神雷劫)은 쉽게 뚫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목봉은 하늘의 거대한 그림자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유작은 이미 한 번 실패했다. 일반적으로 천겁을 뚫는 데 실패하면 뇌겁(雷劫) 속에서 소멸하고 말지. 그러나 구유작은 운 좋게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이번에 실패한다면 지난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목봉은 후퇴하는 속도를 줄이고, 구유작이 천겁을 뚫으려고 하는 것을 쳐다보았다.
구유작이 천겁을 뚫으려 한다면, 그들은 오히려 안전했다. 지금 구유작의 눈에 자신들은 개미보다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목진은 목봉의 말에 애석함을 느꼈다. 구유작이 뇌겁 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진다면, 그 누구도 영수의 정백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구유작의 정백을 얻는다고 해도 그걸 누가 연화할 수 있겠는가? 목봉이 염용조를 연화할 때도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건 염용조 보다 더 두려운 구유작이 아닌가.
목진 등은 아쉬운 눈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검은 화염 속에서 다시 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맑은 울음소리 속에서 짙은 전의가 느껴졌다.
구유작이 드디어 흑신뇌겁에 도전하는 것 같았다!
“쾅쾅!”
흑신뇌운은 구유작의 도발을 느낀 듯 엄청난 천둥소리를 내뿜었다. 가만히 있어도 천지의 영기가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끼루룩!”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검은 화염에 가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구유작의 날개가 진동하자 검은 화염이 하늘을 뒤덮으며 용솟음쳤다. 수많은 검은 화염의 불기둥이 솟구치면서 검은 뇌운과 충돌했다.
구유작은 흑신뇌겁을 향해 주동적으로 저항했다.
쾅!
검은 뇌운이 용솟음치며 세찬 천둥소리가 났다. 마치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천천히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모든 것을 소멸시킬 것 같은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펑펑펑!
천둥소리에 천지가 흔들렸고, 하늘과 땅이 폭발할 것처럼 거대한 소리가 나더니, 분지가 있는 곳까지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목진 등은 하늘에서 무서운 싸움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검은 불꽃과 검은 안개가 서로 미친 듯이 부딪히면서 잔학한 일이 벌어졌다.
세찬 번개가 하늘에서 격렬하게 불꽃을 일으키며 검은 화염 속에 몸을 숨긴 거대한 동물을 향해 계속해서 날아갔다.
끼루룩!
새의 울음소리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그러나 곧 울음소리에 분노가 섞였고 구유작은 두 날개를 흔들기 시작했다. 이에 매서운 바람이 휩쓸고 가더니 곧 검은 화염의 폭풍이 불어왔다.
휭휭!
대지가 검은 화염의 폭풍에 갈라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구유작의 목적은 흑신뇌겁이었기 때문에 거대한 폭풍은 검은 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구유작의 맹렬한 진격에 흑신뇌운도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뇌운의 중앙에서 갑자기 검은 뇌광이 꿈틀거리더니 중앙에 소용돌이가 생겼다. 소용돌이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검은 번개가 모여 있었다.
쾅!
소용돌이 안에 모여 있던 번개가 거대한 번개 기둥으로 바뀌더니,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바로 검은 화염의 폭풍으로 날아갔다.
쉭!
번개 기둥은 뇌신의 벌처럼 검은 화염의 폭풍을 찢어버릴 듯한 기세를 보였다.
구유작의 모든 힘이 응집된 화염 폭풍은 또다시 번개 기둥으로 인해 공격이 막혀버렸다. 이에 구유작은 폭풍 같은 분노의 울음소리를 냈다.
이번에도 또 진화하려는 것을 막는 것일까?
그때 구유작이 갑자기 기이하게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검은 화염이 거대한 구유작의 몸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화염이 사라지자, 드디어 구유작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족히 만장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생물이 날개를 펴자, 산천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구유작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은은하게 검은 화염이 올라왔다. 길고 우아한 꼬리는 길게 늘어져 있었고, 꼬리 끝은 검은 화염에 불타고 있었다.
구유작의 몸은 거대했지만, 절대 비대하지는 않았다. 구유작의 자태는 매우 우아하고 신비로워서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구유작은 화염과 같은 붉은 색을 지녔고,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구유작이 뇌운을 노려보며 날개를 떨자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화염은 광선으로 바뀌어 구유작의 모든 힘을 싣고 검은 뇌운을 향해 날아갔다.
구유작은 흑신뇌운과 목숨을 걸고 마지막 공격을 퍼부었다.
목진은 구유작의 날개를 쳐다보면서 불로 뛰어드는 나방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방해하는 흑신뇌운에 대해 분노하는 구유작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구유작의 분노 어린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도 모두 감탄했다.
감탄 속에서 아쉬운 마음이 솟구쳤다. 목진은 흑신뇌운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움직이며 모든 힘을 응집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 공격은 분명 경천동지할 정도의 위력을 지닐 것이다.
쾅!
천지가 갑자기 고요해졌다.
유일하게 새의 울음소리만 들려왔고, 그 순간 번개가 하늘을 뚫고 구유작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