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설득
목진과 주야는 뇌성을 따라서 산채의 주채(主寨)에 도착했다. 안에는 건장한 체구의 사람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뇌성과 비슷하게 생긴 중년 남성이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들어오는 목진과 주야를 바라보았다. 그가 바로 구룡채의 두목인 뇌산이었다. 현재 북령경 흑도에서 양귀 다음으로 강한 사람이었다.
“목역의 친우들이여, 그대들이 이곳에 온 목적을 이미 알고 있네.”
뇌산은 목진과 주야를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목역과 망음산 사이의 은원이지. 우리 구룡채는 끼어들지 않을 것이네.”
주야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역시 구룡채는 자신들을 도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주야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옆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 숙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주야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목진을 보았다. 그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뇌 두목, 일찍이 그 두 주먹으로 구룡채를 일궈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곳 북령경에서는 명성이 높은 분이시지요. 하지만 오늘 그 모습을 보고 조금 실망했습니다.”
주야가 고개를 끄덕이자 목진이 천천히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뇌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손을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손짓에서는 약간의 분노가 느껴졌다.
“나를 상대로 격장지계(激將之計)를 펼치기에 너는 아직 서툴다.”
“저는 단지 뇌 두목께서 왜 북령경 흑도에서 용의 머리가 되려 하시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뿐입니다.”
목진의 말에 뇌산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지만,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지금 북령경 흑도에서 망음산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흑도 세력을 삼키면서 점점 세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북령경 흑도 중에서 최강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지요. 이점은 뇌 두목께서도 인정하시지요?”
뇌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망음산의 세력 확장이 빠른 것은 야심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 뒤에는 류역의 암묵적인 지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야심은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래지 않아서 망음산이 북령경 흑도를 전부 통합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때가 되면 구룡채에게는 남은 길이 두 가지밖에 없지요. 하나는 흡수가 되어 망음산의 수하가 되는 것, 나머지 하나는 반항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구룡채는 망음산의 맞수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뇌산의 얼굴에 천천히 변화가 생겨났다.
한참 후, 그가 입을 열었다.
“그것은 너의 추측에 불과하다.”
“맞습니다. 추측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요? 뇌 두목께서는 망음산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십니까? 그들이 어떤지는 사실 두목께서 우리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목진이 웃었다. 그는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북령경 흑도의 세력과 망음산의 일처리 방식에 대해서 숙지를 한 상태였다.
주채 안, 구룡채의 고위층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조금 굳어있었다. 목진의 말을 듣고, 그들 역시 속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그들은 이미 망음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류역이 그들을 돕고 있다면, 그들은 야심을 품을 것이다.
북령경 흑도 중, 유일하게 망음산과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 구룡채였다. 따라서 망음산이 흑도를 통합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구룡채를 향해서 손을 쓸 수밖에 없다.
구룡채 고위층들이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주야의 눈빛에 희색이 돌며, 몰래 목진을 향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어린애라고 생각했던 목진이 날카로운 식견으로 구룡채의 약점을 꿰뚫어 볼 줄 몰랐다.
“너는 어쩔 생각이냐?”
뇌산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들의 어투가 이전보다 부드러워졌다.
“본래 우리 목역은 북령경 흑도에 신경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망음산에서 먼저 건드렸으니, 우리 목역도 그들을 그냥 둘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구룡채에 기회를 줄 생각입니다. 우리와 손을 잡으면 충분히 망음산을 제거하고 북령경 흑도의 최강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구룡채는 더욱 발전하겠지요.”
목진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그럼 우리 구룡채는 류역과 척을 지는 것이 아니냐? 류역은 북령경 최강 세력이다. 목역을 위해서 그들과 척을 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뇌산이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당신들은 선택권이 없습니다. 류역은 이미 구룡채를 무시하고 망음산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류역과 척을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류역이 망음산을 도와서 구룡채라는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이죠.”
목진은 손을 털며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서, 상대방은 이미 구룡채를 멸망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들과 척을 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뇌산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기회는 이번뿐입니다. 만약 목역에서 망음산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재수가 없는 것은 바로 구룡채가 될 것입니다.”
목진은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만약 뇌 두목이 넓은 식견을 가졌다면 낡은 규율 따위는 버리고 우리와 손을 잡고 망음산을 쓸어버리죠.”
“이건 앞으로의 위기를 제거할 기회이자, 당신들에게는 좀 더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뇌 두목, 어떻습니까?!”
목진의 말소리가 점점 무거워졌고, 주채의 분위기도 굳어갔다. 구룡채의 고위층들과 뇌성, 뇌음의 시선이 전부 뇌산에게 쏠려 있었다.
그가 내릴 결정에 구룡채의 운명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압박감 속에서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목진도 속으로는 긴장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할 말을 전부 끝냈다.
뇌산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목진도 이제 방법이 없었다. 그저 다른 방법으로 망음산을 상대해야 한다.
“후우.”
팽팽한 고요함 속에서 뇌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서 예리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우리 구룡채는 너희 목역과 손을 잡겠다. 망음산을 무너트리자!”
주채의 긴장된 분위기는 뇌산의 한 마디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주야의 눈빛에는 희색이 드러났고, 구룡채의 고위층들도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 역시 원하던 동맹이었다. 구룡채는 득실 사이에서 배회하고 있었지만 뇌산의 결정으로 드디어 길을 찾게 되었다.
“하하, 뇌 두목, 우리의 동맹을 축하합시다.”
주야는 뇌산에게 달려가 포권하며 말했다. 뇌산 역시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의 시선이 목진에게 향했다.
“과거 목봉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지. 그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도 탄복을 했지. 하지만 이런 자식이 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 이전의 목봉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아니 더 뛰어난 것 같아.”
“과찬입니다. 저는 그저 있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목진 역시 긴장을 풀고 웃으며 말했다.
“사실 네 말이 옳다. 망음산은 최근 급속도로 커졌다. 이미 우리 구룡채를 압박하고 있어. 다만 내가 일을 키우기 싫어서 참고 있었던 것이지. 하지만 상황을 보니 더이상 참았다간 우리 구룡채 형제들의 목숨을 그래도 내주게 생겼구나.”
뇌산의 눈빛에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양귀 놈이 우리 구룡채를 놔줄 생각이 없으니, 나 역시 놈이 원하는 대로 하게 놔둘 수 없지!”
“우리 목역은 내일 망음산을 공격할 겁니다. 망음산에 있는 일부 흑도 세력은 뇌 두목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망음산이지, 절대로 다른 흑도 세력이 아닙니다.”
뇌산의 말에 주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심하게. 우리 구룡채의 체면이 있으니 다른 형제들도 협조할 걸세. 그저 길을 빌리는 것뿐이니, 뭐라 할 사람도 없을 것이야.”
뇌산은 커다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뇌 두목, 우리가 먼저 망음산을 공격했으니 그들에게 기회를 주면 안 됩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구룡채에서 전력을 다해서 후환을 제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흠, 어린 나이에 우리보다 더 엄하구나.”
목진의 말에 뇌산이 웃으며 말했다. 흑도 출신들은 이런 독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양귀는 제 가족을 죽였습니다. 이렇게라도 복수하지 않는다면 여인만도 못한 거죠.”
“음, 여자가 어때서? 지금 여자를 우습게 보는 거야?”
목진의 말이 끝나자 옆에서 교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뇌음이 눈을 크게 뜨고, 목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목진은 난감하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 우리 음아는 남자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지. 목진, 우리 음아에게 미움을 받지 말게나. 음아는 망음산맥을 가장 잘 알고 있다네. 음아를 데리고 망음산에 오르면 주요 요충지를 전부 돌아서 바로 본거지를 칠 수 있어.”
뇌산이 웃으며 말했다. 목진은 조금 놀랐다. 그는 바로 뇌음에게 달려가서 포권을 하고 웃으며 말했다.
“방금 했던 말은 저의 실수입니다. 이번 일은 뇌음 소저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비록 너희 북령원을 싫어하지만, 이번 일은 우리 구룡채에도 아주 중요하니까. 내가 도와줄게.”
뇌음은 목진을 째려보면서 말했다.
“게다가 듣기로는 너도 영진사라며? 내일은 우리 중 누가 더 뛰어난 영진사인지 직접 보겠어.”
뇌음은 여자지만 호승심은 다른 남자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쩐지 북령원을 항상 신경 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럼 내일 구룡채에도 좋은 소식 가지고 오겠네. 우리는 곧바로 돌아가 사람들을 준비해 내일 망음산으로 향하지!”
주야는 뇌산을 보면서 웃었다. 그리고 목진과 함께 돌아갔다. 뇌산은 멀어지는 두 신영을 보고 혀를 찼다.
“두목, 정말로 목역과 손을 잡고 망음산을 공격합니까?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다른 흑도 세력들이 저희를 비난하지 않겠습니까?”
구룡채의 고위 간부 중 하나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목진이 한 말이 옳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규율만 따진다면 아마 우리 구룡채는 막다른 골목에 이를 것이다.”
“망음산이 류역과 암중에 손을 잡았다. 야심을 품었으니 막을 수밖에.”
“형제들 모두가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명령을 내려라. 지금까지 잘 참았다. 보아하니 우리 구룡채가 이전에 어떻게 싸우면서 성장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더군.”
뇌산의 눈빛에 냉혹한 기운이 흘렀다.
“양귀는 우리를 멸망시킬 생각이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손을 써서 놈들을 멸망시키자!”
* * *
다음 날, 싸늘한 함성과 함께 수많은 사람이 마치 홍수처럼 성 밖으로 향했다. 그들은 살기를 내뿜으며 망음산맥으로 향했다.
망음산맥에 들어가기 전, 목진 일행은 마중 나온 구룡산채의 사람들과 만났다. 뇌음이 선두에 섰고, 뇌성과 구룡채의 정예들이 그녀를 뒤를 따랐다.
“우리는 동쪽에서 망음산으로 이동할 거예요. 구룡채의 나머지 정예들이 서쪽으로 돌아가서 마지막에는 망음산을 포위할 거고요. 그럼 망음산의 모든 퇴로를 끊는 것이죠.”
뇌음은 주야와 목진을 보면서 말했다.
“뇌음 소저, 부탁합니다.”
목진이 포권을 하면서 말했다.
“가죠.”
뇌음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곧바로 말을 몰아 망음산맥으로 향했다. 대부대가 이동했지만 예상했던 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타고 온 말의 발굽에 전부 두꺼운 천을 싸두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