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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75화 (74/1,000)

75화. 융천경(融天境) (1)

류경천은 8대 역주들이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것을 보고 얼굴에서 미소가 조금씩 사라졌다.

“여러분들은 우리 류역이 그 정도 명망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류 역주. 나 열염(烈炎)은 역주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열역(烈域)은 오랜 세월 동안 고생해서 만든 것입니다. 이 연합에 대해서 저는 큰 흥미가 없군요. 만약 류 역주가 북령맹을 만든다면 우리 열역은 같이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만.”

붉은 머리의 중년 장한이 갑자기 일어나서 류경천을 향해서 포권을 했다.

“열염. 네놈이 감히 우리 류역을 무시하는 것이냐?!”

류명은 그가 일어서자 대뜸 고함을 쳤다.

“흥, 우리 열역이 지금까지는 네놈들을 정중하게 대했지만, 한 번도 네놈들은 두려워한 적은 없다.”

열염은 본래 불같은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는 류명의 말을 듣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소매를 휘저으며 대전을 떠났다.

대전에 있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류경천의 계획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목진도 류경천을 힐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옅은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그가 열염을 쳐다보는 눈빛은 마치 독사와도 같았다.

“열염, 네가 이곳에서 나가는 순간 기회는 없다. 내가 알려주지 않았다고 내 탓을 하지는 말아라.”

류경천은 고개를 숙여 소매를 정리하며 말했다.

“하하, 류경천. 비록 내가 너를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네가 그 말을 나에게 할 자격은 없다.”

열염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웃었다.

열염 역시 신백경 중기의 실력자로 비록 류경천보다 조금 떨어졌지만, 충분히 그를 상대할 수 있었다. 열염의 입장에서는 웃긴 이야기였다.

쿵!

열염이 웃으며 대전 밖을 나가려는 순간, 한 줄기의 무겁고도 답답한 소리가 대전 문밖에서 들려왔다. 잠시 후, 어떤 인영이 날아와서 거대한 돌기둥과 충돌하고는 중앙에 떨어졌다.

컥컥.

그 인영은 땅에 떨어짐과 동시에 입에서 선혈을 토했다. 그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웅성웅성.

대전이 순식간에 시끄럽게 변했다. 사람들의 놀란 시선이 엉망이 된 열염에게로 향했다. 누가 신백경 중기의 열염을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목봉과 목진 역시 동공이 작아지며 대전의 문을 바라보았다. 한 줄기의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솟아났다.

류경천의 표정은 담담했다. 하지만 입꼬리에는 조소가 걸려있었다.

사박사박.

다시 대전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자국 소리에 소란스러웠던 대전이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대전의 문으로 향했다.

모든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드디어 마른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노포를 입은 노인은 나이든 얼굴에 눈이 깊게 파여 있어 꼭 시체 같았다.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전의 밖에 섰다. 그리고는 약간 혼탁한 눈빛으로 대전 안의 사람들을 훑어봤다.

그는 기침 소리를 내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노부의 허락 없이 누군가 이곳을 나간다면…….”

노인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그의 구부러진 몸에서 신백경을 초월한 영력의 압박이 폭풍처럼 터져 나왔다.

펑펑펑!

그와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은 그 영력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처참하게 날아갔다.

“사(死)!”

노인이 글자 하나를 외치는 순간, 영력의 압박이 최고조에 다다르며 터져나갔다.

대전의 밖에는 광풍이 몰아치며,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었다. 천지의 영력이 모여들며 폭동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대전에 있던 모든 이들의 안색이 급변했다.

목봉은 의자의 손잡이를 꽉 잡더니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약간의 떨림과 함께 그의 이름을 내뱉었다.

“류경산…… 삼천지경!”

대전은 놀랄만한 위력의 영력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안색이 변하며 놀란 눈빛으로 눈 주위가 움푹 들어간 회의(灰衣) 노인을 보았다.

원신경 강자를 훨씬 뛰어넘는 영력의 위압은 분명히 삼천지경(三天之境)의 제일경(第一境) 융천경에 도달한 강자의 것이 분명했다.

소위 삼천지경은 단일 경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3단계의 경지를 말했다. 1단의 융천경, 2단의 화천경(化天境), 3단의 통천경(通天境).

그리고 지금, 회의 노인은 놀랄만한 영력을 퍼트리고 있었다. 그것은 융천경의 강자나 가능한 것이었다.

융천경!

대전에 있는 이들은 입술이 메말라 가는 것을 느꼈다. 북령경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융천경의 강자가 나타나지 않았는가? 이런 경지를 가졌다면 북령경 뿐만 아니라 백령천에서도 진정한 강자일 것이다.

이곳에 모인 이들도 신백경에 도달한 강자들이다. 그 숫자가 양손으로 셀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명의 융천경 강자 앞에서는 여전히 무력했다.

왜냐하면 둘 사이의 격차는 실제로 너무 거대했기 때문이다.

융천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미 하늘과 땅에 융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천지의 영력을 일부 조정하여 수족처럼 사용할 수 있으며, 산을 무너트릴 만한 힘이었다.

“저 사람이 류경산이다. 그는 류역의 전대 역주이자, 북령경 최강자였다. 그가 정말로 아직 살아있다니!”

대전 내, 모여 있던 이들은 깜짝 놀라 서로 눈을 마주치기 바빴다. 그들은 갑자기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북령경은 지금과 같은 구조로 수년을 보내왔다. 세력 간의 힘이 전부 비슷해 균형을 이루었고, 그 때문에 오랫동안 평온했다. 하지만 갑자기 눈앞에 류경산이 나타나면서 그 평화와 균형이 순식간에 흔들린 것이다.

목봉은 류경산을 노려보며 두 손을 꽉 쥐었다. 옆에 있던 목진의 안색 역시 극도로 무거워졌다. 이전에 들었던 그 소식이 정말 사실이었다.

목진의 시선이 다른 역주들에게로 향했다. 그들 역시 눈빛에 짙은 걱정과 불안이 가득했다.

목진은 속으로 탄식했다. 만약 8개의 역이 손을 잡는다면 류경산을 특별히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누구도 융천경 강자와 맞서 싸울 적수가 되지 못했다.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아 압박감에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류경산은 주변을 한번 훑어보더니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류경천이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자리를 비켜줬지만, 그는 손을 저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중에 노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하, 류 어르신은 당시 북령경의 최강자였습니다. 비록 3년 동안 나타나지 않으셨지만, 그 위명을 어찌 저희가 잊겠습니까?”

당산이 어색해하며 웃으며 답했다.

“다들 알고 있다니, 그럼 노부의 성격 역시 알고 있겠군. 그동안은 노부가 북령경의 흩어진 세력을 참아왔으나 아무래도 이번에는 반드시 해결해야겠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류 어르신, 우리 북령경은 그렇게 큰 야심이 없습니다. 백령천의 다른 큰 세력과 경쟁하기 원치 않습니다. 지금 이대로도 좋지 않습니까.”

그때 한 역주가 억지로 웃으며 말하자, 류경산이 잠시 그를 노려보면서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야심이 없지만, 노부는 있다. 오늘부터 우리 류역은 북령맹(北靈盟)을 만든다. 노부가 맹주역을 맡지. 가입 여부는 각자의 선택에 맡기겠다. 다만 이전에 말한 것처럼 노부의 눈에는 맹우(盟友)냐, 적군이냐 두 가지밖에 보이지 않네. 노부와 맹우를 맺기 싫다면 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겠지.”

그 말에 적지 않은 사람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류경산의 말은 위협이나 마찬가지였다.

류경천 등은 미소를 띠며 사람들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융천경 강자의 합류로 류역은 이미 북령경의 모든 세력을 뛰어넘었다.

류경천은 뻣뻣하게 굳은 목봉을 보면서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목봉, 이번엔 역전할 방법도 없이 패배다!’

“하하, 류 어르신의 말이 맞습니다. 인생을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살 수는 없지요. 저희 백마방은 북령맹에 가입하겠습니다. 류 어르신을 맹주로 모시겠습니다.”

백마방의 방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얼굴에 아첨이 가득한 것을 보고 사람들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의 형세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벗어났다. 류경산의 주시 아래에서 각 세력의 수장들은 감히 반대의 의견을 내지 못했다.

한편 열염은 아직도 땅에 누워있었다. 그는 비록 신백경의 강자였지만 류경산과는 몇 번 손을 섞어보지 못했다. 이제야 신백경과 융천경 사이의 거대한 격차를 명백하게 깨닫게 되었다.

백마방에 이어서 몇몇 세력들이 계속해서 북령맹에 들어갔다. 하지만 8대 역주들은 아직도 별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전부 속으로 투쟁을 하느냐, 가담하느냐로 고민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류경산은 그 모습을 보다가 결국 8대 역주들에게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8대 역주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들의 안색이 극히 나빠졌다.

“어르신…….”

당산은 탄식했다. 그리고 포권을 하면서 말했다.

“당 역은 저의 일생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북령맹에 들어가지 못하겠습니다.”

“당역의 역주는 노부의 맹우가 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나 보군. 그렇다면…….”

류경산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면서 대전에 퍼져있던 영력이 당산을 향해 모여들었다.

당산 역시 몸에 있던 영력이 체내로 뿜어져 나왔다. 영력은 그의 뒤편에서 응집되어 거대한 금빛 호랑이로 변했다. 영력이 넘실거렸다.

“어흥!”

거대한 호랑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당산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그의 신형이 움직이는 순간 영력의 파도가 호랑이의 발이 되어 벼락처럼 류경산을 덮쳤다.

당산 역시 류경산의 위력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작부터 모든 힘을 끌어모아 전력을 다한 것이다.

그러나 당산의 위력적인 공세에도 류경산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혼탁한 눈빛에 조소의 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바닥을 아무렇게나 내밀었다.

웅웅!

류경산이 손바닥을 내미는 순간, 천지의 영력이 마치 인력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놀랄만한 속도로 장심(掌心)에 모여들었다. 영력은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영력의 빛 덩어리로 변했다. 그리고 당산의 공세와 하나가 되었다.

펑!

광폭한 영력의 충격이 대전 안에 퍼져 나갔다. 대전의 바닥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갈라져 나갔고, 돌기둥 여러 개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컥!

허공에 있던 당산은 선혈을 내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그의 뒤에 있던 금빛의 호랑이는 순식간에 어둡게 변했다.

단, 1초 만에 신백경 후기에 가까운 당산이 처참하게 패배했다.

“아버지!”

당천아가 당산의 중상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변하며 급하게 외쳤다.

류경산은 차가운 눈빛으로 여전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허공에 주먹을 날렸다. 광폭하기 그지없는 영력이 당산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 모습을 보니, 일부로 독하게 손을 써서 본보기를 보일 생각 같았다.

목봉은 그 광경을 보고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그는 주야를 보면서 빠르게 말했다.

“주야. 상황이 좋지 않으면 목진을 데리고 바로 자리를 떠나서 북령원으로 피신해라!”

주야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번은 목봉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융천경의 강자는 너무 강했고, 얼마든지 북령경의 평형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목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주먹만 쥐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광폭한 붉은 빛이 스쳐 지나갔다.

목봉은 자신의 주변 사람이 다치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없었다. 나중에 하는 복수는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전력을 다해서 생존의 기회를 찾기로 했다.

촥!

목봉은 곧바로 신형을 날려 당산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체내에 있는 영력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전부 뿜어내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화륵!

붉은 영력이 마치 화염처럼 퍼져 나가며, 묵직하게 날아오는 공세와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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