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검은 치마 소녀
목진이 숲에 들어갔을 때, 멀리 떨어진 영접대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그곳에 있는 영접대는 목진이 있던 곳보다 조금 더 컸다. 사람의 수도 더 많았다. 그곳에서는 적지 않은 소년들이 오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체내에서 강한 영력을 파동을 내뿜었다. 대부분은 영륜경 후기로 그들의 이마에는 붉은색의 인장이 있었다. 종자 명패를 획득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군계일학의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웅!
영접대 위에서 갑자기 강력한 빛줄기가 나타났다. 일부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나른한 얼굴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감탄을 쏟아내는 소리가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더 많은 이들이 그것에 영향을 받아서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자 빛의 기둥이 천천히 사라지면서 기둥 아래에서 검은 치마를 입은 소녀가 나타났다.
소녀의 자태는 아름다웠다. 그녀는 검은 치마 아래로 뻗은 곡선과 은하(銀河)와 같은 은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가벼운 바람에 은발이 날리자 춤을 추듯,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소녀의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눈썹은 초승달과 같았다. 그 모습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달을 닮은 눈썹 아래로 한 쌍의 유리 같은 눈이 있었다. 그 눈은 너무 아름다워 취해버릴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동년배의 남자라면 누구나 평정심을 잃을 것이다.
그녀의 섬세한 작은 얼굴에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바로 웃음이 없다는 것이다. 싸늘한 것과는 달랐다. 마치 깊은 호수와도 같은 고요함이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그녀의 눈동자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본래 시끄러웠던 영접대가 이 미녀로 인해서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몰래 그녀를 훑어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눈을 마주치려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이마에 붉은색의 인장이 있는 소년들의 눈빛이 조금 뜨거워졌다. 저런 아름다움은 그들도 평생을 살면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검은 치마를 입은 소녀는 영접대를 보더니, 바로 중앙에 있는 비석으로 향했다. 그녀가 사뿐사뿐 발을 움직이자 등 뒤로 한 자루의 검은 장검이 보였다.
영접대의 시선이 전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였다.
그때 거대한 신체에 영준하게 생긴 소년이 참지 못하고 걸어 나왔다. 그의 이마에는 붉은색의 인장이 있었고, 붉은 인장이야말로 그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은 이유였다.
“안녕, 나는 고가(古歌)라고 해. 대원대륙의 대원령원에서 왔지. 도와줄 건 없어? 네가 조금 늦었으니 내가 이곳의 규칙을 알려줄게.”
소년은 검은 치마 소녀에게 다가가서 부드러운 웃음과 말투로 말했다.
검은 치마 소녀는 맑은 눈동자로 소년을 보았다. 그저 가벼운 눈짓이지만 소년의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 줄기의 열기가 스쳐 지나갔다.
‘이런 여인을 손에 넣어 품에 안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가슴이 뛸까?’
하지만 소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소년을 돌아서 비석으로 향했다.
고가 역시 그 모습을 보고 그저 웃었다. 그는 계속 따라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곳의 규칙에 대해서 자세하게 웃으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보기에 너는 혼자 같은데. 이건 아주 위험해. 나한테 동료들이 있으니 우리와 한 팀이 된다면 안전할 거야.”
한 팀이 되자는 말을 듣고 지금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던 소녀의 눈동자가 빛났다. 하지만 여전히 말없이 앞으로 가 비석에 손을 뻗었다.
웅!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비석이 진동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금빛이 폭발하며 그녀의 미간에 빛이 모여들었다.
순간 고가의 말소리가 멈췄고, 주변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전부 멍해졌다. 소녀의 미간에 5라고 새겨져 있었다.
5급 인장?
사람들 모두 그 모습을 보고 숨을 들이마셨다. 종자 명패를 얻은 사람들은 더욱 침을 삼켰다. 눈앞에 있는 소녀가 핵심 명패를 얻었다고?!
고가의 얼굴이 미미하게 떨렸다. 핵심 명패는 영로에 참가해 왕급 판정을 받은 사람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소녀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라니?
검은 치마를 입은 소녀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맑은 눈동자로 고가를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은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청아한 목소리였다.
“너 조금 전에 인장의 등급은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올릴 수 있다고 했지?”
고가는 멍하니 있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치마 소녀는 이마를 가볍게 짚으며 말했다.
“그럼, 거기 종자 명패를 받은 사람의 인장을 전부 나에게 넘겨.”
헉!
영접대가 순간 경악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종자 명패를 얻은 소년들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흥, 비록 네가 핵심 명패를 얻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인장을 전부 빼앗으려 하다니 정말 너무 한 거 아니냐?”
한 소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녀가 고개를 저으며 그 소년을 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
소년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서 이를 악물고 외쳤다.
“애들아. 같이 손을 쓰자! 저년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고!”
나머지 종자 명패를 얻은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천천히 그녀를 포위했다. 고가 역시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지금까지 그를 무시했다. 이 때문에 고가도 조금 화가 난 상태였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즐거워하며 말했다.
“나도 도와줄 수가 없겠네.”
십여 명의 영륜경 후기의 소년들이 영력을 뿜어냈다. 그들은 빠르게 몸을 움직여 검은 치마 소녀를 향해 나아갔다.
소녀는 맑은 눈을 깜빡이며 작은 손으로 날리는 머리카락을 치웠지만 움직임은 조금도 없었다.
쿵!
십여 명의 소년들이 소녀의 몸에 닿았을 때, 검은색 빛이 맹렬히 몸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펑펑펑펑!
소년들은 힘없이 날아가 곧 땅바닥에 떨어졌다. 선혈을 토해낸 그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들이마셨다. 십여 명의 영륜경 후기 강자들이 몸에 닿지도 못하고 패배했다니.
소녀는 걸어가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십여 명의 미간에 있던 인장이 빠르게 어두워지며 빛이 나와 그녀의 금빛 인장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3급 인장을 빼앗았지만, 소녀의 금빛 인장은 조금 더 밝아졌을 뿐 아직 6급 인장이 되기엔 부족했다. 확실히 등급을 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 재수 없는 놈들의 인장을 빼앗고 소녀는 창백한 얼굴이 된 고가에게 다가가 맑은 눈동자로 말했다.
“네 것도.”
식은땀이 고가의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그는 굳은 얼굴로 웃었다. 그가 손을 쓸 새도 없이 인장에 있던 영기가 빠져나가 소녀의 인장으로 들어갔다.
종자 명패의 인장을 전부 흡수한 소녀는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손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영접대의 끝으로 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차분한 눈동자에 파장이 생겨났다. 소녀가 입을 움직여 옅은 미소를 만드는 순간, 세상의 모든 꽃이 색을 잃어버린 듯했다.
‘너를 기다리겠다고 했어. 만약 네가 안 오면 나는 너를 미워할 거야.’
* * *
하늘로 뻗은 나무들이 구름을 뚫고 솟아올랐다. 나뭇잎은 무성하게 피어서 온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이 끝없이 펼쳐진 숲에서 가끔씩 경천동지할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강력한 영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쿵!
그 시각, 목진은 숲속에서 그의 앞에 나타난 영수를 보고 있었다. 그 영수는 온몸이 황금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모습이 소와 같았다. 머리에는 금색 뿔이 달렸고, 꼬리에는 악어 꼬리에 있는 날카로운 가시들이 달려 있었다. 꼬리가 움직이자 공기가 찢겨 나가며 날카로운 파풍성을 냈다.
황금악(黃金鰐)은 중급 영수로 그 힘은 영륜경 후기와 비슷했다. 몸에 있는 황금색의 껍데기는 부수기가 무척 힘들다.
이 황금악 옆에는 검은색의 거대한 호랑이가 있었다. 비록 황금악만큼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영륜경 중기에 다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 큰놈은 내가 상대할게. 저놈은 네가 상대해라.”
목진이 황금악을 가리켰다. 혼자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묵령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수련을 해야 성장할 수 있었다. 묵령을 과보호한다면 오히려 그의 성장을 방해할 것이다.
“응.”
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목진에게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실력을 올리지 않고, 목진의 곁에만 있다면 결국 짐덩이가 될 것이다.
목진은 그 모습을 보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움직여 황금악 근처로 가서 손을 썼다. 두 손가락을 구부리자 손끝이 금빛으로 빛났다. 매우 강렬하고도 패도적인 기운이 손가락에서 튀어나왔다.
쿠오!
황금악은 목진이 오는 것을 보고 분노에 찬 울음소리를 냈다. 암석이라도 찢어버릴 것 같이 꼬리를 거세게 흔들며, 목진을 향해서 돌진했다. 하지만 놈이 뚫고 지나간 것은 잔영에 불과했다.
“위에 있어.”
목진이 신출귀몰하게 황금악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그는 웃으면서 영력을 폭발시켰다. 그 힘은 황금악을 땅에 처박아버렸고, 양 손가락에 모아놨던 빛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황금악의 머리로 쏘아졌다.
땅!
목진의 손가락이 곧바로 황금악의 단단한 껍데기를 뚫고 들어갔다. 순간 진탕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쿠왕!
황금악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이 아무리 날뛰어도 목진의 신출귀몰한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그의 실력은 영륜경 후기로 힘들이지 않고 영수를 처리할 정도가 되었다.
순식간에 황금악은 온몸에 피를 묻히며 쓰러졌다. 땅에 쓰러지면서 커다란 진동을 일으켰다.
목진은 가볍게 손을 털며 주저앉아서 황금악의 머리에서 영수 정백을 꺼냈다. 영수 정백을 꺼내자 한 줄기의 금광(金光)이 나와서 목진의 미간에 있는 인장으로 들어갔다. 붉은색 인장이 은은하게 빛을 냈다.
“북창령원에서 설계한 이 물건은 정말로 특별한 거네.”
목진은 영수 정백을 손에 쥐었다. 그가 영수 정백을 개자탁에 넣으려고 할 때, 검은빛이 그의 장심에서 뿜어져 나와 빠르게 영수 정백을 감쌌다.
목진은 영수 정백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마지막에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 검은색 빛은 영수 정백의 힘을 흡수한 뒤에 다시 목진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목진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곧 정신을 차리고 그것이 구유작의 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수 정백은 나의 회복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니 조금 더 많은 영수를 죽여서 나의 회복을 도와라.”
구유작은 목진에게 담담하게 의념을 보냈다.
“너는 정말로 대단하구나.”
“지난번에 내가 힘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약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알았어. 최대한 노력하지.”
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그에게도 구유작이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 좋았다. 물론 그 힘을 또 이용할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마지막 수단이 더 생기는 것이니까.
“너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너에게 도움을 주지. 너는 이미 표적이 된 것 같다.”
“음?”
목진의 눈빛이 조금 굳었다. 그는 웃으면서 대놓고 숲을 한번 살펴보았다. 보아하니 3급 인장은 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