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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90화 (89/1,000)

90화. 엽경령(葉經靈)

소녀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서 갈청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팔목에 있는 붉은 천을 보더니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희들은 갈방(葛幇)의 사람인가?”

갈청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눈앞에 있는 소녀가 신백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엽방(葉幇)의 수장 엽경령이었다. 이곳에서 그녀의 명성은 대단했다.

“물러나라.”

소녀가 말했다. 그 말에 갈청의 안색이 조금 변했다. 그리고 달갑지 않다는 듯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만약 저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겠다면 방해하지 않겠다. 하지만 놈들과는 적지 않은 은원이 있다. 우리 큰형인 갈해의 체면을 봐서라도 끼어들지 않기를 바란다.”

엽경령은 갈청을 보았다. 갈해는 갈방의 수장으로, 그 역시 신백경에 도달한 강자였다.

“그들은 순아의 친구들이다.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엽경령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엽경령이 끼어들겠다고 말하자 갈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엽경령이 큰형의 체면을 무시할 줄은 몰랐다.

슉!

갈청의 표정이 일그러졌을 때, 뒤에서 커다란 파풍성이 들렸다. 곧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나타났고, 공터 주변을 포위했다.

“엽방의 사람인가…….”

갈청은 갑자기 나타난 수십 명의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갈청, 우리 누님이 그렇게 말을 했는데. 네놈은 사리 분별할 줄 모르는구나. 그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네놈들의 인장을 전부 빼앗겠다. 그때 가서 갈방에서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자꾸나.”

그때 한 소년이 앞으로 나오며 냉랭하게 말했다.

큰 키의 소년은 갈청을 보며 비웃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앞에 있는 노란 치마를 입은 소녀에게로 향했을 때는 열정과 사모하는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왕성, 우리 갈방이 너희들을 무서워할 것 같으냐?”

갈청이 소년을 보면서 말했다. 왕성은 엽방의 2인자였다. 실력은 엽경령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반쯤은 신백경에 이른 자로 꽤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 너희들이 한번 해보던가!”

왕성이 그들을 얕보며 말했다.

“네놈이!”

갈청이 이를 갈았다. 그러나 엽경령이 곁에 있어 함부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신백경과 영륜경 사이의 차이는 너무 컸다. 신백경의 강자라면 그들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갈청의 안색이 변하며 목진을 보고 말했다.

“이번에는 운 좋은 줄 알아라. 다음번에는 내가 이렇게 간단히 너를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이 끝나자 그는 다시 엽경령과 왕성을 보면서 말했다.

“네놈들이 우리 갈방의 체면을 무시했으니 돌아가서 큰형에게 잘 말해주지. 내가 네놈들이 무서워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가자!”

갈청은 콧방귀를 뀌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30명이 넘는 이들을 데리고 숲으로 향했다. 곧 그들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갈청이 물러나자 분위기가 많이 풀어졌다. 왕성 역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갈방의 숫자는 그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갈해 역시 신백경 초기의 실력을 지니고 있어 싸운다면 손해를 면치 못할 것이다.

나무에 올라가 있던 엽경령은 갈청 무리가 사라진 것을 보고 나서야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목진이 있는 커다란 나무 앞에 나타나 순아의 작은 손을 끌며 부드럽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

순아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며칠 동안 굶다가 다행히 목진 오빠를 만났어. 아니었다면 진작에 굶어 죽었을 거야.”

“먹보네.”

엽경령이 웃으며 순아의 코끝을 건드렸다. 그리고 소년을 보았다. 소년는 얕은 미소를 드리운 채 그녀들을 보고 있었다.

“목진이라고? 나는 순아의 언니 엽경령이다. 며칠 동안 순아를 돌봐줘서 고맙다.”

목진을 보고 웃으며 손을 내미는 모습이 시원시원했다.

목진은 손을 뻗어서 그 가느다란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은 마치 옥석에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감정에 미련을 가지지 않고 천천히 손을 빼며 말했다.

“단지 내가 좋아서 한 일이야. 게다가 가는 길도 같아서 데리고 온 거지.”

엽경령 뒤에 있던 왕성 무리도 앞으로 와서 목진을 보고 웃었다.

“언니. 목진 오빠 진짜 강해. 오빠도 우리처럼 종자 명패를 받았어. 게다가 영진사야…….”

순아는 엽경령의 손을 이끌며 웃으며 말했다.

“음?”

엽경령과 왕성 등의 눈에 의아함이 나타났다. 그들의 시선이 목진에게로 향했다.

종자 명패를 얻었다는 것은 나름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지만, 영륜경 후기의 실력은 북창계에서 너무 평범했다. 게다가 영진사라는 말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영진을 알아도 정통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이 아이는 너무 단순했다. 단번에 그의 밑천을 드러내고 말았다. 목진은 엽경령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순아를 데려다주었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없는 것 같군요. 조금 전에 포위를 풀어준 것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럼 나와 친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목진은 엽경령이 만든 작은 세력에서 대접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과 교류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목진 오빠. 가지 마세요!”

목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순아가 그의 손을 잡았다. 소녀는 작은 얼굴에 애원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 전부 북창전까지 가야 하잖아요. 그러면 같이 가요.”

며칠 동안 같이 있으면서 순아는 목진과 정이 들었다.

“순아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일단 같이 가는 것이 어떤가? 당신들은 사람도 적고 북창계에 대한 정보도 적으니 우리가 도와주지.”

엽경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순아를 도와줬으니 일말의 인정이라도 베풀 생각인 듯했다.

이전의 상황을 보니, 목진은 갈청과 척을 진 것 같았다. 갈청은 처리하기 편했지만, 그의 뒤에는 신백경에 오른 큰형 갈해가 있었다. 역시 영로에 참가한 인물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목진이 그들을 만나면 아마 크게 낭패를 볼 것이다.

목진은 가만히 엽경령을 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을 보고 있으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목진은 그저 웃었다. 갈청은 시종일관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그의 큰형이 신백경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목진은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융천경의 강자도 죽였던 그가 한 명의 신백경에게 무슨 압박을 받겠는가?

하지만 엽경령이 먼저 요청을 했으니, 목진이 다시 거절한다면 인정머리가 없어 보일 것이다. 게다가 엽경령이 뒤에 한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는 이 북창계가 익숙하지 않았다. 반면 엽경령 쪽은 사람이 많으니 아는 것도 더 많을 것이다.

“그럼 며칠만 신세를 지겠습니다.”

목진이 웃으며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묵령을 데리고 커다란 나무 아래로 향했다. 그러자 한쪽에 있던 엽방 소년들이 친근하게 그들을 반겼다.

“엽 누나, 우리가 저들을 받아주면 갈해가 불만을 품지 않을까요?”

왕성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갈해는 갈청이 일으킨 이런 작은 문제로 우리를 어떻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문제가 된다고 해도 나는 갈해가 무섭지 않다.”

“목진 오빠를 만만히 보지 말아요. 오빠는 정말 강해요. 그리고 오빠도 영로에 간 것 같아요…….”

그때 순아가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순아는 묵령이 말하는 것을 얼핏 들었다.

“뭐라고?”

그 말에 엽경령뿐만 아니라 왕성도 놀라서 말을 잃었다.

목진이 영로에 참가한 적이 있다고?

“영로에 참가한 사람이 영륜경 초기는 아니겠지? 보기에는 나보다 약해 보이는데.”

왕성이 의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엽경령 역시 눈썹을 가볍게 찌푸렸다. 목진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네가 잘못 들었겠지.”

엽경령이 얕게 웃었다. 영로에 참가한 사람치고는 목진의 실력이 너무 낮았다. 게다가 목진에게서 풍기는 느낌은 영로를 거친 사람에게서 나는 느낌이 아니었다. 잠시 생각을 해봤지만 아마도 순아가 잘못 들은 것이 분명했다.

“가자. 언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엽경령이 순아를 끌었다. 순아는 본래 목진에 관해 반박하려고 했지만, 먹을 것을 준다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서둘러 그녀를 따라갔다.

* * *

숲속 깊은 곳.

자갈이 깔린 공터에 천막들이 하나둘 펼쳐졌다. 곧 하나의 숙영지가 짙은 녹음의 숲에서 구색을 갖추고 완성이 되었다.

숙영지에 하나둘씩 사람이 보이자 활기찬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숙영지의 사방에 있는 고지대에서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끝없이 숙영지 주변 상황을 살펴보았다.

“엽 누나가 돌아왔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외침에 숙영지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많은 이들이 몸을 일으켜 간절한 눈빛으로 숙영지 외부를 보았다. 수십 개의 신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곧 그들은 숙영지에 도착했다.

“엽 누나!”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선두에는 노란빛의 치마를 입은 소녀가 있었다. 숙영지에서 그녀에게 보내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사람들을 보면서 엽경령은 옅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목진을 보고 말했다.

“저곳이 우리 엽방의 임시 거점이다. 전부 좋은 사람들이지.”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한번 훑어보았다. 많은 이들이 우호적이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아주 존경을 받는 것 같은데요.”

목진은 조금 놀라워하며 말했다. 신백경의 엽경령이 실력으로 경외심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엽경령에게 존경심을 보였다.

“하하, 엽 누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만약 누나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인장을 빼앗겼을 거야. 누나가 엽방을 만들고 나서야 우리들의 상황이 좋아졌지…….”

뒤에 있던 왕성이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학생들의 인장을 빼앗기 위해 세력을 만들었지. 하지만 엽 누나는 그렇지 않다고. 누나는 우리를 데리고 영수를 사냥하고 보물을 찾지. 게다가 찾은 물건 대부분을 우리에게 나눠줘.”

목진은 조금 놀랐다. 그제야 사람들이 엽경령을 존경하는 이유를 알았다.

“나는 신백경이라 인장을 얻어서 4급에 도달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지. 만약 그들을 모아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벌써 다른 사람들에게 인장을 빼앗기고 탈락하고 말았을 거야.”

엽경령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야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인장의 등급을 올리는 효율이 떨어집니다.”

“인장의 등급을 올리는 것은 북창령원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과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서지. 그런 것들은 나중에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탈락하면 바로 모든 기회가 사라지지.”

목진의 말에 엽경령이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가 신경 쓰지 않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여자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에 그는 감탄했다.

엽경령은 손을 저으며 다른 사람들을 해산시키고 순아의 손을 잡고 모닥불 옆으로 향했다. 그녀는 재료를 꺼내 직접 먹을 것을 준비했다.

“우리도 북창전으로 가고 있으니 며칠 동안이라도 함께 다니자. 우리는 영수와 보물의 흔적도 같이 찾으면서 이동하는 중이다. 아니면 너희들이 관심이…….”

그녀는 순아를 위해서 고기를 구우며 목진을 보면서 말했다.

“아니면 이곳에 있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 갈청이 너희들을 포기하거나, 멀리 떠났을 때 움직이도록 해. 어때?”

목진은 그저 웃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녀조차 목진이 따라온 이유가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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