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91화 (90/1,000)

91화. 갈해

그 시각, 산 중턱에 있는 숙영지에서 갈청은 어두운 얼굴로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가고 있었다.

“하하, 갈청 돌아왔구나? 모습을 보니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 같은데?”

한 건장한 남자가 갈청의 안색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어떤 놈이 우리 갈방을 무시하는 거야?”

갈청은 분노에 가득 차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

“엽방 놈들이 아니면 누구겠어. 조금 전에 엽경령을 봤어. 정말로 재수도 없지.”

“음? 엽경령과 마주친 거냐? 헤헤. 엽경령이 예쁘기는 하지. 실력도 좋고 말이야. 만약에 정복할 수 있다면 인생의 큰 즐거움이 될 텐데.”

“풋. 네가? 엽경령은 신백경의 강자라고. 이곳에서 대장을 제외하면 그녀의 적수는 없을걸?”

또 다른 사람이 비웃으며 말했다.

“큰형.”

갈청은 그들을 무시하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곳에는 어두운 붉은 색의 장도를 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고, 장발이라서 그런지 특히 성숙해 보였다. 게다가 은은하게 풍기는 살기로 절로 존경심이 들게 했다.

“엽방 놈들이 선을 넘었습니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었어요.”

붉은 장도를 보고 있던 남자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순간 얼굴에 있는 흉악한 상처가 드러났다. 그 상처는 왼쪽 눈에서 목까지 이어져 있어 마치 얼굴의 반으로 나누는 선처럼 보였다.

그 상처가 마치 징그러운 지네처럼 보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남자를 사납고 무시무시한 사람으로 여겼다.

“뭐 하러 엽방을 건드린 것이냐? 엽경령은 능력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영로에서 나왔으니 싸우지 않을수록 좋다.”

갈해가 담담히 웃으면서 말했다. 갈청은 갈해가 나서려고 하지 않자 머뭇거리며 말했다.

“엽방이 놈들을 도울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 목진 놈은 엽방의 사람이 아닌데 엽방에서 놈을 위해서 우리와 싸울…….”

슉!

붉은빛의 칼끝이 순간 갈해의 손바닥을 긁고 지나갔다. 선혈이 손바닥에서 흐르자. 옆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심지어 갈청도 입을 닫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서 손바닥에 난 상처를 보았다. 그의 몸에서 순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음산하고 난폭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큰형…… 내가 뭐 잘못했어?”

갈청이 침을 삼키며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역시 갈해가 이런 난폭한 기세를 흘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

갈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 있는 상처가 꿈틀거렸다, 그 모습을 보자 극한의 공포를 느꼈다. 그는 갈청을 보았고, 그의 두 눈은 붉게 변해있었다.

“조금 전에 그놈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갈청은 몸이 굳은 채로 말했다.

“목…… 목진.”

갈해의 몸이 조금 떨렸다. 마치 무언가를 억누른 것 같이 말했다.

“놈이 어떻게 생겼지?”

갈청은 갈해의 모습에 적지 않게 놀랐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곧 갈청은 얌전히 목진의 모습을 설명했다.

갈청의 말이 끝나자. 숙영지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하게 변했다. 유일하게 갈해만이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두 눈은 짙은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미쳐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모습에서 참기 힘든 어떤 원한이 느껴졌다.

“놈은 지금 영륜경 후기였지?”

갈해가 고개를 들더니 붉은 눈으로 갈청을 보았다. 갈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갈해가 조용히 읊조렸다.

“그렇지. 놈은 영로의 마지막을 겪지 않았으니, 실력이 당연히 많이 떨어지겠지. 하하, 영륜경 후기라…… 하하…….”

“큰형, 왜 그래?”

갈청은 갈해의 이런 정신 나간 모습에 깜짝 놀라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갈해는 갈청을 보면서 웃었다. 그 웃음은 매우 공포스러웠다. 갈해는 피범벅이 된 손으로 천천히 얼굴에 있는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

“목진이 지금 엽방이 있는 곳에 있다고 했지?”

“응.”

갈해가 맹렬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늑대처럼 음산한 눈빛으로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말했다.

“모든 이들을 모아라. 당장 엽방의 숙영지로 간다. 전부 단단히 준비해라. 이번에도 엽방이 방해하면 놈들도 같이 쓸어버린다.”

사람들은 놀랐다. 엽방과 싸우겠다는 뜻인가? 대장이 왜 저러지? 지금까지 엽방에게는 온화했는데. 왜 갑자기 짙은 살기를 내뿜는 것인가?

사람들은 속으로 의문을 품었지만, 반대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곧 사람들이 흩어지고 숙영지 전체가 소란스럽게 변했다.

“큰형…… 목진을 알아?”

“알지, 당연히 알지.”

갈해는 손가락으로 상처를 만지며 눈에 짙은 원한이 차올랐다.

“얼굴에 이 흔적을 바로 놈이 남긴 것이다.”

옆에 있던 갈청의 눈이 커지며, 곧 머리까지 저리는 듯했다. 그는 갈해를 가장 존경했다. 그런데 곱게 생긴 그 소년이 갈해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놈은 도대체 뭘 하는 놈이지?

* * *

엽방 숙영지.

숙영지 전체가 활기찼다. 순아가 돌아오면서 숙영지에는 유쾌함이 더해졌다. 이 귀엽고 단순한 소녀를 모든 사람이 아주 좋아했다.

모닥불 옆에 있던 왕성은 술 한 잔을 가지고 목진의 곁으로 향했다. 그는 술을 마셔서 얼굴이 붉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흥해 취해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목진 형제, 무서워하지 마. 이곳에 있으면 갈방도 어떻게 하지 못할 거야.”

“맞아. 네가 엽 누나의 친구라면 우리의 친구도 되는 것이지. 우리가 있는 한 갈방은 절대로 너를 건드리지 못할 거야.”

옆에 있던 사람도 말했다.

조금 전, 목진과 갈청 사이에 있었던 일을 왕성 등이 전부 퍼트렸다. 적지 않은 엽방의 구성원들이 목진을 지지해주었다.

목진은 옅게 웃었다. 엽방 사람들은 엽경령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인성이 좋고, 호감이 갔다.

“너무 과장하지 말라고. 너희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으니까.”

엽경령이 걸어오면서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술만 마시면 허풍 떠는 것을 좋아하거든.”

“좋아 보여요.”

엽경령은 차분한 눈빛으로 목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네가 만만하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걸…….”

“영륜경 후기는 숨길 수 있는 게 없죠.”

여자들의 직감은 가끔 무서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목진은 자신을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

그 말에 엽령경이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목진이 겉으로는 영륜경 후기의 실력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그의 기세는 절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목진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서 그녀도 더이상 묻지 않았다.

목진이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안색이 바뀌며 그의 검은 눈동자가 숙영지 밖으로 향했다.

삑삑!

그때 숙영지 주변에서 경보가 울려 퍼지면서 숙영지 전체를 감쌌다. 엽방 사람들이 모두 몸을 일으키며 서둘러 숙영지 밖에 있는 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나타나 숙영지를 포위했다.

엽방 사람들은 안색이 변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곧 그들의 팔에 묶여 있는 붉은 비단을 확인했다.

“갈방의 사람이다.”

엽방 숙영지에 있던 사람들이 맹렬히 몸을 일으키며, 굳은 안색으로 숙영지 밖을 보았다. 그곳에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 숫자가 최소한 백 명은 넘었다. 갈방 전체가 이곳에 온 것인가?

왕성 등은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엽방과 갈방은 서로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사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전력을 다해 쳐들어온 거지?

설마 갈방이 갈청을 위해서 그들과 전면전을 벌일 생각인가?

“엽 누나!”

엽방의 사람들은 엽경령을 보았다. 엽경령 역시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갈방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몰려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장 손을 흔들며 말했다.

“경계해라.”

왕성 등은 그 말을 듣고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은 그 모습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갈청은 정말로 그를 귀찮게 하고 있었다.

“목형.”

묵령이 목진의 근처로 왔다. 조금은 긴장한 것 같았다. 목진은 그를 보며 긴장할 필요 없다는 듯 옅게 웃었다.

“목진 오빠 무서워하지 마세요. 우리가 꼭 지켜줄게요.”

그때 순아가 목진의 옆으로 가 목진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목진은 웃으며 순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서 숙영지 밖을 바라보며, 안색이 점점 싸늘하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묵령은 깜짝 놀랐다. 목진이 정말로 화가 났기 때문이다.

숙영지 밖, 갈방의 사람들이 숙영지를 포위하고 있었다. 갑자기 무리가 갈라지더니 두 명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선두에 있는 사람은 붉은 장도를 들고 흉악한 기세를 온몸으로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갈해다. 놈이 직접 오다니!”

숙영지 내,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안색이 바뀌었다.

“갈해, 무슨 짓이냐?”

엽경령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는 냉랭하게 흉악한 기세를 풍기는 갈해를 보면서 말했다.

갈해는 엽경령을 주시했다. 그는 음산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다가 숙영지로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엽경령, 이번 일은 너희 엽방과 상관이 없다. 그러나 만약 너희들이 방해한다면 나도 머뭇거림 없이 손을 쓸 것이다. 우리 둘 중 누구의 손실이 더 큰지 보자고!”

엽경령의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말했다.

“고작 갈청의 일로 모든 사람을 데리고 온 것인가. 정말로 우리 엽방이 너희들을 두려워할 줄 아느냐?”

갈해는 조소 가득한 웃음으로 엽경령을 보면서 이상한 말을 했다.

“너는 내가 고작 갈청 일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일 사람으로 보이냐?”

엽경령은 눈썹을 꿈틀이더니 말했다.

“그럼 왜 그런 것이냐? 이 많은 사람이 살기를 날리면서 연회라도 열 생각인 것이냐?”

“보아하니 너는 정말로 모르는군…….”

갈해는 기괴한 눈빛으로 엽경령을 보면서 말했다.

“너희 엽방에 대단한 사람이 왔지. 그런데도 너는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구나? 대체 영로에서 어떻게 보낸 것이냐?”

엽경령은 작은 손을 꽉 쥐었다. 그 순간, 그녀도 무언가 알 것 같았다. 설마 목진을 말하는 것인가? 그녀는 고개를 돌려서 사람들 뒤쪽에 있는 마른 소년의 모습을 보았다.

숙영지 내의 다른 사람들도 엽경령의 시선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준수한 얼굴의 소년이 보였다.

갈해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을 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모습이 나타났다. 갈해의 몸이 순간 떨려왔다. 붉게 변한 눈에는 광기와 원한 그리고 약간의 공포가 남아 있었다.

영로에서 그는 그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주었다.

“목진…… 정말로 네놈이구나! 정말로 네놈이었어!”

갈해의 몸이 떨리며, 그의 미친듯한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때 뒤에 있던 소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사람들은 멍한 얼굴로 의문에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

목진은 갈해를 보더니 눈을 찌푸렸다. 마치 무언가를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드디어 조금은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너는…… 아직도 살아있었구나. 그때 처리한 줄 알았는데…… 하하.”

목진의 한 마디에 모든 사람이 놀랐다. 심지어 엽경령의 얼굴에도 경악이 물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