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혈화자(血禍者)
갈해는 앞에 있는 목진을 노려보았다. 마음속의 원한이 그의 몸을 격렬히 떨리게 했다. 영로에서 목진의 손속은 지금 생각해도 무서웠다. 그는 지금까지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며, 절대로 뒤집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참으로 신기했다.
영로에서 풍량을 일으켰던 소년은 결국 영로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그를 이곳에서 다시 만나다니.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경외하고 두려워했던 사람의 실력이 지금의 그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겨우 영륜경 후기에 불과했다.
순간 갈해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는 미미하게 떨리는 손을 꽉 쥐며 목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생각지도 않게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주었구나. 목진, 당시 네가 나에게 주었던 공포를 지금 너에게 100배로 돌려주마!”
“지금의 너에게 당시 내가 느꼈던 공포와 무력감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마!”
지금의 갈해는 이미 신백경에 도달한 강자였다. 반면 목진은 그의 일격도 막아내지 못할 사람이었다. 이것은 마음속에 있던 한을 부술 기회였다. 갈해는 절대로 쉽게 목진을 놔줄 생각이 없었다.
목진은 그를 보며 차분한 검은 눈동자로 말했다.
“비록 내가 적수가 많긴 하지만 너를 나의 진정한 적수로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
목진의 말에는 조소가 없었다. 그저 간단한 서술에 불과했다.
갈해는 붉은 눈으로 목진을 노려보았다. 그보다 더 강한 적수라니. 상대는 그를 전혀 진정한 적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만큼 더한 치욕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내가 이 칼로 너의 얼굴에 핏줄기를 만들어주마…….”
갈해가 원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맹렬히 달려나가며 웅혼한 영력을 터트렸다. 신백경의 위압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억압받는 느낌을 받았다.
“갈해! 네놈이 내 앞에서 엽방의 친구를 공격할 생각을 하다니!”
엽경령이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흉흉한 기세를 풍겼다.
“하하.”
갈해는 그 모습을 보고 목진을 가리키며 기괴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마치 재미있는 일을 겪은 것처럼, 숲이 진동할 정도로 웃었다.
“하하, 목진. 영로에서 왕급을 획득한 너를, 희현과 양홍같이 영로에서 정점에 도달한 사람도 두려워했었는데. 영로에서 영로혈화(靈路血禍)라고 불리던 네놈이 지금은 여인이 대신해서 나설 정도로 추락한 것이냐!”
모든 이들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깊은 호수와 같은 눈빛을 한 소년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그들은 영로에 참가한 것은 아니지만 영로에서 왕급이라는 평가를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무조건 5대원의 핵심명패를 받을 수 있었다.
“왕급? 희현? 양홍? 영로혈화?”
그때 엽경령의 눈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녀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영로를 경험한 사람으로 그들이 말한 단어나 이름들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잘 이해했다.
희현, 양홍…… 그들은 영로에서 가장 눈부셨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5대원에 간다면 수많은 이들이 그들을 우러러볼 것이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소년이 그들마저 공포에 떨게 했던 존재라고?
영로혈화…….
엽경령이 천천히 숨을 토했다. 그것은 영로 전체를 경악하게 만든 일이었다. 마지막에 영로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5대원의 사람들이 놀라서 영로혈화에게 손을 썼다. 그런 일을 눈앞에 있는 소년이 만든 것이라니?
“원래, 원래 네가 바로 영로의 혈화자 목진…….”
엽경령은 놀랐다는 듯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쩐지 그 이름이 조금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목진은 영로에서 무수한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고, 두려움에 떨게 했으며, 흠모했던 혈화자였다.
“그러니 엽경령은 비켜라. 너는 그를 보호할 자격이 없다.”
갈해는 이를 꽉 물고 말했다. 그는 앞에 나왔던 이름들을 하나씩 말하면서도 몸을 떨었다. 눈앞에 있는 소년은 얼마나 무서웠던가. 하지만 그때 사람들을 공포를 떨게 했던 사람은 만만한 놈이 되었다.
지금은 손쉽게 그를 짓밟을 수 있었다.
엽경령은 복잡한 눈빛으로 평온한 표정의 목진을 보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가 누구든 그는 이미 우리들의 친구가 되었다. 절대로 너에게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혈화자라는 말에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목진은 영로에서 쫓겨나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영로에서 가장 중요한 영력정관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는 그저 영륜경 후기의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갈해는 지금도 여전히 그의 앞에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녀는 서늘한 눈빛으로 갈해를 보면서 붉은 장도를 쥐고 웅혼한 영력을 뿜어내었다.
엽경령은 앞으로 나서서 옥수(玉手)를 꽉 쥐었다. 그녀는 손에 얇은 장검을 쥐고 갈해 앞에 마주 섰다.
사박사박.
엽경령이 앞으로 나섰을 때, 뒤에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마른 청년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엽경령이 고개를 돌리자 목진이 그녀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고맙지만…… 이렇게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 하나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면서 무슨 낯으로 이곳에 오겠습니까?”
“갈해 맞지? 비록 영로는 아니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이전의 너는 나의 적수가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
목진이 웃으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자 검은 눈동자에 싸늘한 기운이 차올랐다.
붉은 눈빛의 갈해가 옆에 있는 신영을 보았다. 목진의 눈빛은 여전히 평온했다. 마치 대해(大海)처럼 아무런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사람을 삼킬 무서운 소용돌이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너는 아직도 이곳이 영로인줄 아느냐?”
갈해가 목진을 노려보고, 이를 갈며 말했다.
“지금 네놈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 네놈이 뭐라고? 겨우 영륜경 후기의 경지가 아닌가?!”
“네놈 안에 있는 공포와 기억을 지우고 싶다면 와라. 너는 내 성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싸우고 싶다면 그 대가를 준비해라. 이곳은 비록 영로만큼 잔인한 곳은 아니지만, 규율을 생각했다면 영로에서도 그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갈해의 눈동자가 작아졌다. 그는 미소짓는 목진을 보면서 영로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그러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공포가 다시 살아나는 걸 느꼈다.
“지금의 너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갈해는 깊은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속의 공포를 억눌렀다. 그는 알고 있었다. 만약 목진을 이기지 못한다면 평생 그의 그림자에서 살아야 한다. 결국은 수련의 큰 장애가 될 것이다.
하늘이 준 기회를 잡아서 이번에야말로 공포를 씻어낼 것이다.
“이번에는 네놈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갈해의 목구멍에서 낮은 포효가 들려왔다. 곧 그의 눈에서 포악한 기운이 솟아나며 강력한 영력이 뿜어져 나왔다.
펑!
그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그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순식간에 목진 앞에 나타나서 붉은 장도를 손에 쥐고 휘둘렀다. 솩! 하는 소리와 함께 싸늘한 칼끝이 매섭게 목진의 목으로 향했다.
갈해의 일수는 오랫동안 훈련한 티가 났다. 이런 기세는 평범한 학생들은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영로에서 나온 사람들은 능력이 뛰어났다.
칼끝이 목진의 눈앞으로 지나가는 순간, 그는 뒤로 살짝 물러났다. 싸늘한 칼날이 목을 지나가는 순간 날카로운 파풍성이 들렸다.
“오늘 너에게 신백경과 영륜경의 차이를 보여주마!”
갈해의 함성에 영력의 위압이 목진을 감쌌다. 곧 칼끝이 하늘을 덮으며 마치 소용돌이처럼 목진의 주변을 둘러쌌다.
촥촥!
지면은 칼끝에 걸려 깊은 고랑이 생겼고, 무수한 나무들도 칼끝에 허리가 잘려나갔다. 그 단면이 마치 거울처럼 미끄러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 그들은 갈해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신백경의 강자들은 그들을 월등히 뛰어넘었다. 이런 공세는 순식간에 영륜경 후기의 사람을 완벽히 처리할 수 있는 정도였다.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목진을 보았다. 그는 싸늘한 칼끝에서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목진의 눈동자는 하늘을 덮은 칼끝과 갈해의 사나운 표정을 동시에 보았다. 체내에서 대부도결이 순식간에 움직였다.
검은 영력이 경맥을 따라서 움직였고, 목진의 몸속 깊은 곳에서 다시 한번 신비로운 빛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경지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있는 영맥을 직접 봉인할 수 있었다.
비록 그의 힘을 완전히 극한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눈앞에 있는 상대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신비의 탑처럼 목진의 몸 안에서 나타났다. 솟구치는 영력이 순식간에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목진의 눈동자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공 깊은 곳에서 검은빛으로 된 탑이 나타났다. 목진이 손을 쥐자 그의 주변에 검은빛이 뭉쳐지더니 하나의 검은 탑이 나타났다.
땅땅땅!
갈해의 날카로운 칼이 흐릿한 검은빛의 탑에 떨어졌지만, 순간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검은빛의 탑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게 뭐지?!”
갈해는 목진의 몸을 덮은 검은빛의 탑을 보면서 안색이 조금 변했다. 곧 그는 이를 악물었다. 신백경의 힘으로 영륜경에 불과한 목진을 누를 수 없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혈전도법!”
갈해가 앞으로 한 발자국을 떼자 기세가 바뀌었다. 경악할 피비린내가 몰려오며 붉은빛의 장도가 더욱 붉게 물들며 빨간 빛줄기가 되어 내리쳐졌다.
갈해의 흉포한 공격에도 목진은 조금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런 행동은 오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안중에도 없는 상대에게 뒤로 물러난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목진은 양손 모두 주먹을 쥐었다. 그의 몸은 검은빛의 탑이 보호해주는 것과 동시에 가장 위력적인 무기가 되었다. 권풍이 포효와 함께 엄청난 영력으로 갈해의 붉은 장도와 하나가 되었다.
탕!
엄청난 소용돌이가 불어와 두 사람이 있던 곳의 땅이 일부 파였다.
“죽어라!”
갈해의 분노에 찬 목소리와 함께 그의 수중에 있는 도에서 꽃이 피어나 춤추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 있는 영력이 극한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갈해는 여전히 목진을 진정으로 누를 수는 없었다.
‘젠장, 영륜경 후기에 불과한 놈이 어떻게 나를 정면으로 상대한단 말인가!’
갈해는 속으로 외쳤다. 목진은 영륜경 후기에 불과했지만, 그의 진정한 전투력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엽방과 갈방의 사람들도 그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영력의 충돌은 영륜경의 실력이라고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언니, 목진 오빠에게 아무 일도 없겠지?”
순아는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엽경령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엽경령은 순아의 작은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목진의 실력은 영륜경 후기의 불과했지만, 그의 진정한 전투력은 신백경과 겨뤄도 충분했다.
“정말 대단하다.”
영로혈화자라는 이름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영로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등급은 조금 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괴물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볍게 일반인에게 밀리겠는가.
그가 아무리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며 다시 강해질 것이다.
“큰형이 우세를 잡지 못하다니. 젠장. 저놈이 저렇게 강하다고?!”
갈방의 사람들은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갈해는 신백경의 강자였다. 생각대로라면 영륜경 후기의 목진을 완벽하게 제압해야 했다.
갈청의 안색도 어둡게 변했다. 목진의 실력이 평범한 영륜경 후기보다 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갈해와 싸워서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탕탕!
두 사람의 모습이 웅혼한 영력과 함께 맹렬히 충돌했다. 영력의 충격파는 지면에 있는 먼지를 날려버렸다.
갈해는 사나운 얼굴로 양손으로 도병을 꽉 쥐었다. 그리고 마치 산을 쪼개겠다는 자세로 베어 내렸다. 그런데 영륜경 후기의 목진은 이런 공세를 단지 주먹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목진의 주먹에는 검은 영력의 파동이 패도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갈해의 장도마저도 영력을 가를 수 없었다.
“영로정관을 획득한 네가 이 정도 실력밖에 되지 않는 것이냐? 보아하니 정관도 내 상상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구나.”
목진은 옅게 웃었다. 그는 지금 몸 안에 있는 비밀 영맥을 움직여 신백경의 초기의 강자와 맞서는 것이다. 갈해가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그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다.
“지금은 알겠지. 그때도 간단히 이겼고, 지금도 너를 간단히 상대할 수 있다.”
목진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따듯했던 눈빛이 마치 날카로운 검처럼 차갑게 변하며, 다른 사람들마저 서늘하게 만들었다.
목진의 눈빛을 보고 갈해의 몸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