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보물을 훔치다
깊은 숲속, 많은 이들이 엉망인 모습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최전방에는 온몸이 피범벅이 된 갈해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있는 상처가 꿈틀거리자 더욱 험악해 보였다. 옆에서 누군가가 봤다면 가슴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큰형…….”
갈청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그 정보를 넘겨줘야 해? 만약 목진이 신혼음양지를 얻어 경지가 더욱 올라가게 되면…….”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갈해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고, 갈청은 서둘러 입을 닫고 웃었다. 갈해는 매서운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를 갈며 말했다.
“신혼음양지를 얻는 것이 쉬울 리가 있나!”
“너는 내가 진짜로 지금까지 손을 쓰지 않은 이유가 단지 세 마리의 축생이 두려워서라고 생각하느냐?”
갈해는 갈청을 보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 마리 축생의 힘은 대단하기는 하지만 머리가 좋지 않다. 물리칠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하지만 신혼음양지라는 보물을 노리는 것은 우리들 뿐만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발견한 거야?”
갈청이 놀라서 물었다.
“그 둘은 전부 착한 놈들이 아니야. 신혼음양지를 노리면서도 서로를 두려워해 지금까지 손을 쓰지 않은 것이야. 만약 목진이 간다면 무조건 싸우게 되겠지.”
갈해가 냉혹하게 말했다.
“그 두 무리의 대장은 영로를 가지는 못했지만 배경이 괜찮아. 각종 지원을 받아 나와 비슷한 경지다. 목진이 그들의 것을 빼앗는다면 꽤 볼만할 거야.”
“그때 우리는 잠복을 하고 있다가 기회를 노려 놈들을 정리하는 거지. 신혼음양지를 손에 넣으면 신백경 중기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정도 경지라면 이곳 북창계에서도 꽤 쓸만하지.”
“큰형은 역시 현명해. 이 모든 게 형의 계획이라고 생각이나 하겠어?”
갈해가 음산하게 웃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소년의 웃는 얼굴이 지나가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는 서둘러 그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너희들은 정보를 뿌려라. 영로 혈화자 목진이 북창계에 나타났다고 말이야.”
갈해는 이를 갈면서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놈은 영로에서 만만치 않은 상대들을 많이 만났다. 지금 북창계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야. 놈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꽤 흥미로워하겠지. 하하하”
“네!”
* * *
엽방 숙영지가 시끌벅적했다.
사람들은 조금 전의 싸움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들은 숙영지의 중심에 있는 호리호리한 체형의 소년을 존경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누가 이 순해 보이는 소년이 갈해처럼 강한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다고 생각했겠는가.
“목진 오빠, 정말 대단해.”
순아는 검고 커다란 눈으로 목진을 보면서 대놓고 감탄했다. 소녀는 조금 전에 목진이 정말 멋있어 보여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순아의 양 갈래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엽방의 사람들은 곧바로 숙영지를 정리하고 갈해가 말한 장소로 향했다.
“우리는 인근까지 접근한 뒤에 대부분은 대기하겠다. 소수의 사람만 그 장소로 향하도록 하겠다.”
엽경령이 목진에게 말했다.
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에 사람이 많은 것은 쉽게 발각이 되기 때문에 좋지 않았다.
“신혼음양지는 희귀한 것이니, 갈해가 발견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발견했을 테니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는 갈해가 말한 것을 전부 믿지 않았기에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엽경령도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도 비밀 무기가 있습니다.”
목진이 갑자기 웃으며 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아이 역시 같은 2급 영진사였다. 게다가 심진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만약 모든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엽경령도 순아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소녀의 전투경험이 너무 적었고, 쉽게 당황했다. 영진사가 다른 사람과 싸울 때 이런 상태라면 반은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아이는…….”
엽경령 역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순아는 영진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 만약 완전히 발휘한다면 아주 위력적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순아는 담이 작았고 먹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순아는 엽경령의 모습을 보고 입을 삐죽였다.
“순아의 나이가 아직 어려서 그러니 조금 더 수련한다면 제 몫을 할 겁니다.”
목진은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순아는 아직 어렸다. 게다가 지금까지 보호받는 생활만 했다. 천천히 경험을 늘려나가면 언젠가 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목진 오빠가 최고야.”
순아는 목진의 팔을 안으며 말했다. 엽경령이 순아를 째려보고는 곧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그 후로 2각 정도가 흐르자 엽방은 출발준비를 끝냈다. 엽경령의 손짓에 수많은 이들이 파도처럼 북서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많은 사람이 이동하자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이 근처에서 엽방은 꽤 명성이 높았다. 그래서 다른 세력들이 감히 나쁜 마음을 먹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만난 영수들을 처리하는 것을 제외하면 이동은 순조로웠다.
그들은 밤이 되어서도 계속 이동했다.
그들이 멈춰선 곳은 숲이 끊어진 곳이었다. 앞은 산들이 겹쳐 있어서 험준한 산봉우리가 하늘을 뚫고 솟아났으며, 스산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갈해가 말한 곳이 아마도 이곳일 거야. 일단 사람을 선발해서 산으로 갈 준비를 하자.”
엽경령은 앞에 있는 산들을 보면서 말했다.
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확실히 비교적 숨겨진 곳이었다. 특별히 찾아가지 않는다면 찾기 힘든 곳이었다.
엽경령은 대략 20명 정도를 선발했다. 대부분은 영륜경 중기였고, 왕성 등 소수는 영륜경 후기에 다다른 사람들이었다.
“묵령, 너는 일단 이곳에서 기다려라.”
목진은 묵령을 보면서 말했다. 묵령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그의 실력은 특출난 것이 아니었다. 만약 따라간다면 도와주기는커녕 방해만 될 것이다.
“가지요.”
목진은 준비가 끝나자 더 이상 꾸물거리지 않고 산으로 향했다. 엽경령은 순아를 챙겼고, 왕성 등도 서둘러 뒤따랐다.
산에는 영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아니었기에 따로 손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가신 영수들은 몰래 피해 산속 깊은 곳으로 향했다.
대략 2각 정도 지났을 때, 그들은 한 산비탈에서 멈췄다. 시선이 향한 곳은 3개의 산봉우리가 만나서 골짜기를 이룬 곳이었다. 산골짜기 주변에는 높은 나무들이 솟아있어서 장벽을 이뤄 골짜기를 숨겨버렸다.
목진 무리는 산비탈의 꼭대기에서 골짜기를 내려 보았다. 그곳에서 숨어 있는 3개의 흉악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의 기세라면 확실히 신백경 초기의 강자와 비견할 만했다.
“신백경 초기의 영수들이군.”
목진은 영수를 확인하고 엽령경 등을 보았다. 엽경령은 괜찮았지만, 왕성 등의 안색이 조금 변했다. 그들은 한 번에 3마리의 고급영수를 사냥해본 적이 없었다.
“영수들은 빠르게 제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움직임이 너무 커져서 다른 영수들이나 사람들의 이목이 몰릴 겁니다.”
“아무리 빨라도 빠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목 형과 엽 누나만이 고급영수를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으니까요.”
목진의 말에 왕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3마리의 영수는 모두 내가 상대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주변의 움직임만 살펴주면 됩니다.”
그 말을 듣고 왕성뿐 아니라 엽경령도 놀라서 목진을 보았다. 목진 혼자 신백경 초기의 영수를 3마리나 상대할 수 있다고? 이것은 갈해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았다.
“저는 놈들과 힘들게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순아가 말하지 않았나요. 저도 영진사라고…….”
묵진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엽경령은 순간 굳었다. 순아가 확실히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게다가 목진이 영진사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3마리의 고급영수를 상대하겠는가? 강한 위력의 2급 영진을 쓰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녀가 의문을 품는 사이 목진의 손끝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곧 엽경령 등은 깜짝 놀랐다. 영인이 줄줄이 나와서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30개의 영인이었다.
엽경령의 붉은 입술이 벌어졌다.
‘30개의 영인이라면 정말로 2급 영진사라는 말인가?!’
목진은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손끝으로는 호를 그리자 30개의 영인이 줄줄이 앞에 있는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곧 경악할만한 영력의 파동이 천천히 출렁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순아도 그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가득해졌다.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목진을 보면서 말했다.
“목진 오빠도 심진 상태에 들어갈 수 있네…….”
엽경령은 다시 한번 놀랐다. 심진 상태라니, 순아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도 심진 상태가 영진사에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눈앞의 목진은 2급 영진사일 뿐만 아니라 순아처럼 심진 상태를 익힌 사람이었다.
“과연 영로에서 왕급이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답구나…….”
엽경령은 감탄했다. 비록 영로에서 중간에 탈락했지만 이런 사람이 어떻게 평범하겠는가?
목진은 엽경령의 감탄에도 신경 쓰지 않고 인(印)을 변화시켜 거대한 금색의 영진을 만들었다. 영진은 천천히 그의 앞에 퍼져 나갔고, 영력의 파동으로 대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금색의 영진이 천천히 목진 앞에 나타났다. 복잡한 영력의 선으로 이뤄진 영진은 극단적으로 난폭한 영력 파동을 발산했다.
엽경령 등은 영진사가 아니라 잘 몰랐지만 순아는 그 모습을 열심히 지켜보았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복잡해 보이는 빛의 선이지만 그녀의 눈에는 영력을 전달하는 통로로 보였다. 영진이 점점 완벽하게 변해갔다.
후.
목진은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그는 고개를 들어서 거대한 황금빛의 영진을 보았다. 그의 눈빛이 엄숙하게 변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2급 영진을 만들어냈다.
이 영진은 그가 북령경을 떠날 때, 목봉이 고생해서 찾은 2급 영진이었다. 목진은 이미 이 진도를 완벽하게 외웠다. 단지 영인을 충분히 응결할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 펼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충분했다.
“그럼 부탁 한 번만 드리겠습니다.”
목진은 영진을 응결하고 나서 엽경령을 보면서 웃었다. 그 말을 듣고 엽경령이 굳자, 순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언니는 정말 바보 같아. 목진 오빠는 언니한테 3마리를 유인하라고 하는 거야. 그럼 오빠가 영진으로 처리할 거야.”
엽경령은 순아를 한번 째려보고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이 영진으로 3마리의 고급영수를 해치울 수 있는 거지?”
목진의 2급 영진이 위력적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고급영수의 가죽은 두꺼웠고 방어력도 높았다. 한 번에 격살하려면 꽤 힘들 것처럼 보였다.
“안심해요. 전부 계산했어요.”
목진이 웃으며 말했다.
엽경령은 그 말을 듣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에 산골짜기로 몸을 날렸다.
“순아.”
목진은 엽경령의 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고는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순아를 보면서 손짓으로 부르고는 귓속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