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초기(楚麒)
길을 지나가면서 괜찮은 물건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진정으로 목진의 마음을 끄는 것은 없었다. 목진은 약간 실망했다. 그가 돌아가려고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진은 서둘러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망할 놈이. 이런 낡은 지도가 6급의 인장 영기라니, 누굴 속일 생각이야?”
‘진도?’
목진은 마음이 동했다. 그가 시선을 돌렸을 때, 한 소년이 가판대를 향해 욕을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가판대 뒤에 있는 회색 옷을 입은 소년은 입을 삐죽이며 그 아이를 무시했다.
소년은 회색 옷의 소녀가 자신을 무시하자 흥미가 사라졌는지 콧방귀를 뀌면서 자리를 떠났다.
그때 목진이 돌로 만들어진 가판대로 향했다. 가판대 위에는 검은색의 철로 된 상자가 하나 있었다. 상자 안에는 어두운 금빛의 두루마리가 있었는데, 상자 밖으로 은은하게 영력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이 진도는 몇 급인가?”
목진이 흥미가 있는 것처럼 물었다.
회색 옷을 소년은 그의 질문에 귀찮다는 듯 눈을 뜨고 목진을 보았다. 그러다 목진의 미간에 6급의 인장이 있는 것을 보고 눈을 빛냈다. 그의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변했다.
“이건 2급 진도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것이 이것을 펼치기 위해서는 최소 40개의 영인이 필요합니다. 그 위력은 신백경 중기의 무인도 맞설 수 없을 정도입니다.”
“40개의 영인?”
목진의 눈에 의아함이 스쳐 지났다. 그 정도의 영인이 필요한 2급 진도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일부 뛰어난 영진사들이나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경지였다.
목봉이 건네준 금륜열영진도 30개의 영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신백경의 영수 한 마리를 순식간에 죽이고, 2마리에게는 중상을 입힐 정도였다.
“혹시 영진사입니까?”
목진의 물음에 소년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도는 영진사에게 중요한 물건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파는 것입니까?”
“저는 지금 1급 영진사에 불과합니다. 40개의 영인을 언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요. 그럴 바에는 인장 영기로 바꾸어서 북창령원으로 들어가 수련하는 것이 낫지요.”
회색 옷을 입은 소년이 초연한 듯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이 웃었다. 그 말도 맞았다. 만약 인장을 4급까지 모으지 못해서 탈락하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격은?”
“6급 인장 영기입니다. 가격은 깎아줄 수 없습니다. 저도 어렵게 아버지 것을 훔쳐 온 것이니까요. 지금 살 것이 아니라면 됐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소년이 단호하게 말했다.
“물건을 확인해 볼 수 있나?”
“가능하죠.”
회색 옷을 입은 소년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 역시 영진사였다. 그래서 이 진도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았다. 이것을 제대로 익히려면 반드시 자세하게 연구해야 했다. 단번에 이 복잡한 진도를 이해한 사람은 아직까지 아무도 없었다.
목진은 손을 뻗어서 검은 상자 안에 있는 두루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펼쳤다.
웅!
두루마리를 펼쳐지자 어두운 금빛이 그를 맞이했다. 은은하게 용과 코끼리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두루마리 위에 금빛이 움직이더니 복잡한 광선이 빛나며, 용과 코끼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금빛이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마지막에는 3개의 커다란 글자가 나타났다.
“용상진(龍象陳)”
목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진도를 말았다. 목진의 눈동자에는 기쁜 기색이 나타났다. 이 진도는 확실히 대단했고, 아주 만족스러웠다.
“내가 사지.”
“하하. 시원한 형님이군요.”
그 말을 듣고 소년은 크게 기뻐했다. 목진의 몸이 움직이자 이마에 있던 붉은 인장이 어둡게 변했고, 영기가 순식간에 줄어들어 1급으로 변했다.
목진의 미간에서 나온 금광은 바로 소년의 미간으로 들어갔다. 소년의 어두웠던 인장이 빛을 내면서 6급으로 표시가 바뀌었다.
“와. 나도 이제 6급의 고수다.”
회색 옷을 입은 소년이 신이 나서 자신의 이마를 만졌다. 그리고 빠르게 천을 이용해 이마를 감싸 인장을 숨겼다.
목진 역시 자신의 인장을 만져 보았다. 대략 보름 동안 쌓아온 것이 한 번에 사라졌다. 만약 지금 등급을 정한다면 그는 바로 탈락이었다.
목진은 진도를 개자탁(저물대)에 넣었다. 그는 잔뜩 신이 난 소년을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그는 지금 매우 가난했기에 엽경령 등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때 교역장 중심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멀리서 무리가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목진은 고개를 들어서 그곳을 바라보자 희미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초방의 대장이지? 초방은 이곳에서 가장 강한 세력 중 하나라는데…….”
“저 사람은 이곳에 거의 오지 않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온 거지.”
사람들이 갈라지면서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걸을 때마다 땅이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목진은 그 신영을 보고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신영은 그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놀란 표정을 지었고, 목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건장한 신영은 목진의 앞에 멈췄다.
목진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의 앞에 있는 낯선 신영을 보았다. 그는 목진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지?”
“네가 목진이지?”
눈앞의 건장한 신영이 목진을 보면서 웃었다.
“나는 초기다. 네가 나를 도와줬으면 한다.”
목진의 눈동자가 그의 얼굴에서 멈췄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초기는 목진을 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나는 네가 낙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말에 목진은 빛나는 눈동자로 눈앞에 있는 초기라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낙리의 추종자? 모습을 보면 영로 출신인 것 같은데?”
목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영로에 있었다면 너는 나에 관해 많든 적든 알고 있을 테지. 그렇다고 네가 낙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아. 희현조차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네가 뭐라고 그러는 거지?”
초기는 목진을 바라보면 천천히 말했다.
“희현은 확실히 강하지. 하지만 네가 아니라 희현이라고 해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로에서 네 명성은 정말로 대단했지. 하지만 지금은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곳은 영로가 아니다. 그리고 너도 그때의 혈화자 목진이 아니지. 그저 조금 전에 신백경에 오른 사람일 뿐이야. 지금 너의 실력은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네 모습이 나에게 한 가지 신념을 주었다.”
초기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앞으로도 오늘 같은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겠지. 하지만 그녀는 너를 좋아한다. 나는 네가 다른 사람에게 패배하는 것이 싫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나에게 지는 것이 낫다.“
“너는 조금 극단적인 사람이구나.”
목진은 이상한 눈빛으로 초기를 보며 말했다.
“너 혹시 낙리와 만나봤어?”
“그녀는 영로에서 나를 한번 구해준 적이 있다. 그리고 잠시 같이 다녔다.”
“네가 말하는 그 시간 동안…… 낙리가 한 번도 너의 말에 대답한 적이 없지?”
목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목진이 아는 낙리는 주변 사람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초기의 안색이 조금 굳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왜냐면 목진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낙리가 그를 구해주고 난 이후에 그녀와 어떤 교류도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얌전히 자기의 일만 했다. 수련하고, 사냥하고, 휴식하고, 마치 주변 사람에 대해서 완전히 잊은 듯했다. 하지만 초기는 그런 모습이 더 좋았다. 그 짧은 시간이 영로에서 보낸 시간 중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떠나야 할 시기가 왔다. 그는 참지 못하고 낙리에게 말했다.
“네가 좋아.”
그 말에 낙리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유일하게 한마디만을 건넸다.
“나는 목진을 좋아한다. 나를 따라오지 마.”
그 말을 하고 그녀는 멍하니 있는 초기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
초기의 안색이 조금씩 변했다. 그는 앞에서 웃고 있는 목진의 얼굴을 보자 마음속에서 질투라는 감정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 왜 목진은 낙리의 관심을 받는 것인가.
초기는 그녀가 목진의 이름을 말했을 때, 고요했던 작은 얼굴에 부드러움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지금의 네가 영로에서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면 너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너는 너무 약해 보인다.”
초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그녀와 어울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초기는 조금 고집스러운 듯 보였지만 감정에 치우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목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나와 한번 싸우자. 만약 패배한다면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마라. 그녀는 뛰어나기에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네가 약해서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진다면 그녀가 무척 상심할 것이다. 그전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지.”
“네 생각에 이러면 너에게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니?”
“아니…….”
초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단지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이 약한 것이 보기 싫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져서 그녀가 상심하는 모습은 더 싫고.”
목진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했다. 이놈은…… 정말로 답이 없었다.
“나는 네가 하려는 일에 관심이 없어.”
목진은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아 초기를 지나치려 했다. 그리고 발을 떼면서 말했다.
“하지만 누구든지 그녀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게 누구든지.”
그 말에 초기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너의 힘으로 그딴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지 아나.”
목진은 한숨을 쉬면서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쿵!
웅혼한 영력의 파동이 몸 뒤에서 뿜어져 나왔다. 순간 교역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전신에서 영력을 뿜어내는 초기에게 향했다.
초기가 한 발을 내딛자 마치 땅이 울리는 것 같았다. 이어서 주먹을 내지르자 지면이 권풍으로 갈라지며 번개처럼 목진을 향해 쏘아졌다.
그 순간, 목진이 몸을 돌렸다. 그의 손에 검은 영력이 뿜어져 나와 손을 감쌌다. 곧 목진의 일장이 밀려오는 맹렬한 기세의 권풍을 쳐냈다.
펑!
영력의 충돌로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주위의 지면이 전부 갈라지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날아갔다.
“선을 넘지 말아라.”
목진이 눈빛이 점점 싸늘하게 바뀌며 초기를 보고 말했다.
“겁을 먹고 떠는 것은 바로 너다. 혈화자 목진의 패기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
초기의 신형이 움직였다. 그는 빛이 되어 교역장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외부에 있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영력을 모아서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그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천둥처럼 울려 펴졌다.
“목진, 너의 능력을 보여라. 네가 가더라도 나는 잡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네가 낙왕 낙리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그저 겁쟁이라고 생각하고 있겠다.”
웅성웅성!
교역장이 소란스럽게 변했다. 사람들의 눈이 호리호리한 몸의 소년에게 향했다. 그가 최근 화자되고 있는 혈화자 목진인가?
이곳에는 영로에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들은 놀란 기색으로 영로에 파랑을 몰고 왔던 소년을 가늠해 보았다.
목진은 산봉우리에 있는 초기를 보고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 선을 넘은 놈의 행동 때문에 목진은 조금 화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