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벽안금정수(碧眼金晶獸)
“목진!”
멀지 않은 곳에서 엽경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순아를 데리고 서둘러 달려왔다. 그녀의 눈빛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초기를 알아보았다. 그는 이곳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조심해라.”
엽경령이 외쳤다.
그녀는 조금 전에 초기가 하는 말을 들었다. 그의 목적이 그와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지금의 상황에서 목진은 싸울 수밖에 없었다.
목진은 엽령경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순식간에 교역장을 지나쳐 맞은편 산봉우리에서 나타났다. 그는 초기와 아무런 은원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시비를 걸어왔으니 계속 참는다면 사람들은 목진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초기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낙리는 매우 뛰어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이 그녀를 좋아할 것이고, 초기와 같은 귀찮은 일을 막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초기는 이미 신백경 중기를 넘어서 이전의 갈해와 비교하면 훨씬 강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했기에 목진을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패기는 칭찬해주겠지만, 목진은 이런 패기는 그에게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교역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리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초기, 이놈…… 정말로 싸우는구나.”
무리의 수장으로 보이는 영준한 소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이 바로 목진인가? 신백경 초기군. 강하기는 하지만 대장과 비교하면 실력이 차이가 나는데?”
영준한 소년 뒤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그 말에 영준한 소년이 웃었다. 그의 시선은 호리호리한 모습의 목진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도중에 영로에서 탈락하지 않고 영력정관을 잃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는 희현이나 양홍과 같이 영로에서 가장 높은 등급에 오른 사람일 것이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놀랐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것은 없지. 초기의 말대로 지금 목진은 신백경 초기에 불과하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영로에서 떨쳤던 그의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지.”
영준한 소년이 말했다.
“최소한 지금의 초기는 그를 제압할 수 있다.”
영준한 소년은 산봉우리에서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초기는 목진을 이기고 싶었다. 목진을 이겨 낙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목진 역시 초기를 빌려서 힘을 증명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최근 목진에 관해 여러 가지 소문이 퍼져 시끌벅적했다. 영로에 있었던 사람들의 은밀한 움직임이 종종 포착되었다. 영로에서 목진은 대단했지만, 지금은 그만한 힘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그를 밟을 유일한 기회였다.
목진은 초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아무리 영로에서 탈락했다 하더라도 과거의 명성에 맞게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두 사람이 목적을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각자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영준한 소년은 점점 고조되는 긴장을 느끼며 기침을 토해냈다. 이 싸움은 두 사람 모두에게 아주 중요했다.
교역장 밖이 갑자기 시끄럽게 변했다. 주변에 있는 숲에서 끊이지 않고 파풍성이 들려왔고, 신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경악에 찬 눈빛으로 멀지 않은 산봉우리에서 대치하고 있는 두 인물을 보았다.
사람은 목진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초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초방은 가장 강한 세력 중 하나였다.
두 사람이 대치하자 많은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그래도 혈기는 남아 있구나.”
초기가 목진을 보면서 말했다.
“신백경 중기로는 나를 두렵게 할 수는 없지.”
목진이 웃었다. 그는 비록 얼마 전에 신백경에 올랐지만 그렇다고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네 실력이 너의 입담만큼 좋았으면 한다. 나도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이 약한 것은 바라지 않으니까.”
초기는 양손을 천천히 쥐었다. 그러자 짙은 화색의 영력이 마치 폭풍처럼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가 수련하는 영력에서 무언가 대지와 같이 두꺼운 느낌이 났다.
“나는 너를 조금도 봐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고함을 치며 땅을 힘껏 박차고 올랐다. 그가 솟아오르자 산봉우리가 떨리는 듯했고,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목진을 향해 뛰어올랐다.
“운석파(隕石波)!”
초기는 허공에서 양손에 짙은 황색 영력을 빠르게 모았다. 대략 10장 정도로 응집된 영력이 작은 운석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슝슝.
날카로운 파풍성이 들려왔다. 엄청난 풍압으로 아래쪽에 있던 나무들이 부러지고 심지어 땅에도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초기는 단번에 필살기를 사용했다. 그는 목진과 오래 싸움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단번에 목진을 무너트릴 생각이었다.
목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다가오는 공격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안색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그저 손을 뻗어 주먹을 쥘 뿐이었다. 주먹에 세 줄기의 검은 광인이 번쩍이며 나타났다.
목진이 일권을 날리자 세 줄기의 삼라사인이 검은빛과 함께 터져 나오며 한 줄기의 광선이 되었다. 패도적인 영력의 파동이 퍼져 나가며 대기마저 휘어진 것처럼 보였다.
펑펑펑!
삼라사인이 초기와 부딪히며 폭발이 일어났다. 검은색의 파동이 층층이 퍼지면서 파도가 중첩되는 것처럼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빛과 황색 빛이 허공에서 불꽃처럼 피어나며 영력의 충격파가 점점 퍼져 나가 커다란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렸다.
연기가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허공에 있던 초기는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났다. 그는 산 아래쪽을 가득 채운 누런 먼지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탐색전도 없이 바로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아무도 목진이 그 공격을 완벽히 막아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쿠르릉!
연기 속에서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 하나의 진이 연기 사이로 나타났다. 찰나의 순간, 뇌광이 포효하는 이무기처럼 허공을 찢으며 초기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영진?”
초기는 특수한 영력의 파동에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피하지 않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가 손을 꽉 쥐자 옷소매가 단번에 찢어지며 근육이 마치 규룡처럼 솟아났다.
그는 온 힘을 실어 주먹을 날렸다.
펑!
공기마저 초기의 일권에 터져나가며 광폭한 영력이 뿜어졌다. 그의 권풍은 바로 뇌전의 이무기를 향해서 쏘아졌다. 강력한 힘이 깃든 일권이 뇌전의 이무기와 만나 폭발했다.
“네가 영진사였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군. 하지만 이 정도 위력의 영진은 나에게 소용이 없다.”
초기는 절벽에서 먼지가 가득한 곳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래? 그럼 조금 더 강한 것을 주지!”
먼지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곧 엄청난 영력의 파동이 몰려오며, 누런 먼지를 한순간에 날려 보내고 아래쪽의 풍경이 나타났다.
목진의 호리호리한 몸 위로 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영진이 응결되어 나타났다. 엄청난 기세의 영력 파동이 퍼져 나가며 주변의 땅이 갈라졌다.
“그건…… 2급 영진?”
사람들의 시선들이 순간 굳어졌다가 풀어지며 소란스럽게 변했다. 목진이 2급 영진사였던가?
“금륜열영진!”
목진은 금빛의 영진을 보고 굳어진 초기를 보고 웃었다. 목진이 손가락을 튕기자 금빛의 영진에서 톱니가 달린 금륜이 영진에서 엄청난 굉음을 내며 쏘아져 나갔다.
촥!
금륜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금빛은 순식간에 지나가 하늘에는 한 줄기의 흔적만 남았다.
신백경에 들어선 강자들만이 조금 전의 일격에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이 금륜을 정면에서 맞는다면 신백경 초기의 강자라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만큼 위력이 대단했다.
금빛은 초기에게 다가가자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바람에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그제야 목진이 왜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지 알았다. 신백경 초기의 경지에다 2급 영진사라는 신분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졌다고 인정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웅!
웅혼한 영력이 초기의 몸에서 쏟아졌다. 그의 두 눈이 천천히 벽안(碧眼)으로 변하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그의 목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영력의 빛이 초기의 뒤에 모여들며, 거대한 영수의 모습이 은은히 드러났다.
그 영수는 황금빛 피부에 수정 갑옷을 입고 있었고, 눈은 벽안이었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저건…… 벽안금정수(碧眼金晶獸)? 만수록 서열 99위에 심지어 천급의 영수와도 필적한다는 영수!”
“저것이 바로 초기가 연화시킨 영수인가? 정말로 대단하군.”
영수의 광영(光影)이 초기의 뒤에 나타났다. 초기가 다시 한번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손을 쥐어 일권을 날렸다. 권풍이 슉!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갈 때, 뒤에 있던 벽안금정수 역시 포효하며 금빛 수정으로 덮인 발을 휘둘렀다.
권풍과 영수가 휘두른 발이 어우러지면서 금빛이 요동쳤다. 힘의 파동이 순식간에 팽창했다.
땅!
초기의 권풍은 하늘을 뒤덮은 금빛과 함께 금륜을 향해서 쏘아졌다. 순간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금빛의 파동이 퍼져 나가 멀리까지 전달되었다.
“부서져라!”
초기가 외치자 다시 한번 손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갔다. 벽안수정수 역시 더욱 큰 울음소리와 함께 영력을 뿜어냈다.
탕!
초기의 일권이 강하게 금륜을 때렸다. 흉포한 힘이 흘러넘치며 금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사람들의 떨리는 눈빛과 함께 금륜이 깨져버렸다.
“대단하군!”
많은 이들이 초기의 실력을 보고 감탄했다. 신백경 강자를 순식간에 죽일 수 있는 강력한 금륜을 단번에 박살을 낸 것이다. 이 정도 힘은 신백경 중기 중에서도 걸출하다고 봐야 했다.
“엽 누나, 목진 형은 괜찮겠죠?”
묵령이 초기의 강력한 힘을 보고 걱정스레 말했다.
엽경령 역시 표정이 어두웠다. 그녀는 목진의 강력한 영진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 강력한 방어력을 가진 신백경 초기의 영수를 단번에 죽였고, 두 마리는 중상을 입었다. 그런 위력이 신백경 중기의 강자를 만나면서 전부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초기가 이렇게 강할 줄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이렇게 빨리 벽안금정수의 힘을 사용하다니…….”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영준한 소년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혼잣말을 했다.
“목진, 너를 패배시키기 위해서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힘을 사용했다. 이 정도면 너를 충분히 존중한 것이다.”
초기는 벽안으로 변한 눈으로 목진을 주시했다. 그가 다시 한 걸음 나아가자, 그의 뒤에 있던 벽안금정수 역시 긴 울음소리를 냈다. 금빛이 엄청난 속도로 양손으로 모여들었다. 천지의 영력 역시 요동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금정신권(金晶神拳)!”
초기의 낮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가 주먹을 뻗자 금빛 태양이 주먹에 몰려들었다. 빛이 터져 나오며 하늘을 삼켜버렸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눈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받았다.
웅!
초기의 몸이 세차게 떨렸다. 주먹에 있던 금빛 태양은 벽안금정수의 울음소리와 함께 목진을 향해서 떨어졌다.
웅웅!
대기는 태양이 떨어짐과 동시에 진동했다. 목진이 있는 산봉우리가 강렬하게 떨렸고, 바위들도 끝없이 부서지고 떨어졌다.
목진은 고개를 들어서 자신을 향해서 떨어지는 태양을 보았다. 태양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에 목진의 눈빛이 조금은 신중하게 변했다. 초기의 힘은 신백경 중기에서도 상당히 특출났다.
“후”
한 줄기 하얀 기운이 목진의 숨과 함께 빠져나왔다. 목진의 검은 눈동자가 천천히 싸늘하게 변했다. 그는 최근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초기는 처음 자신에게 손을 쓴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벌어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똑같이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건재하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목진은 천천히 주먹을 풀었다. 그러자 장심에 은은한 금빛이 요동치며 금빛의 광선이 장심으로 모여들었다. 장심은 서서히 금빛의 탑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때 목진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가 하늘을 보는 순간, 장심에 모여 있던 금빛이 생동감 있게 변하기 시작했다.
금탑이 떠오르며 만물을 짓누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