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혈맥연결
잠시 후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검은 문양 안에서 2개의 정혈이 순조롭게 융합된 것이다.
웅웅!
두 줄기의 정혈이 확실히 융합되자 검은 문양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검은 화염은 더욱 맹렬히 타올랐다.
슉! 슉!
검붉은 정혈이 검은 화염에서 뿜어져 나와 목진과 구유작의 미간으로 향했다. 검은 화염이 움직임과 동시에 화염 인장이 떠올라 그들의 몸속까지 파고들었다.
검은 화염 인장이 그들의 몸속 깊은 곳에 파고들었을 때,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순간 머리까지 솟아오르는 신기한 감응을 경험했다. 그 느낌은 같이 죽고 같아 살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목진은 구유작을 보았고, 구유작은 목진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혈맥 연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어찌 됐든, 지금부터 그들은 서로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상대방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었다.
슉!
구유작의 몸에 떨어져 격렬한 통증을 일으켰던 자금색의 그물이 갑자기 구유작의 몸을 통과했다. 이번에는 어떤 상해도 가하지 않았다. 반면 구유작의 몸 안에 있던 두 개의 천급 영수 정백은 그 의념이 완전히 말살되었다.
그 모습에 구유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빙현령교와 지심염룡 정백에 있던 의념은 이미 제거되었다. 이제 우리가 함께 연화를 시켜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력은 나에게 올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는 이 거대한 영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지.”
구유작이 말했다.
“시시콜콜 따지는 것이 딱! 여자 같네?”
목진의 눈썹이 꿈틀대며 구유작을 향해 말했다.
“너는 도대체 수컷이냐? 암컷이냐? 너처럼 강력한 영수들은 어느 정도가 되면 인간화도 가능하겠지?”
“무슨 상관이야!”
성별에 대해서 거론하자 구유작은 순간 부끄러움과 함께 분노가 치솟았다. 그래서 검은 날개를 움직여서 목진을 때리려고 했다.
목진과 구유작은 혈맥이 이어지면서 만다라 꽃은 더 이상 구유작을 속박하지 않았고, 구유작은 검은 날개로 빛의 장막을 지나서 목진의 신백으로 날아갔다.
“이 폭력적인 새야.”
목진은 웃으며 더는 구유작을 자극하지 않았다. 그들은 힘을 합쳐 두 개의 천급 영수 정백에서 거대한 영력을 흡수했다.
* * *
그 시각, 그들 곁으로 사람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으나 목진은 몸속의 상황을 처리하느라 알지 못했다.
어느새 폭포 밖 상공에 사람들의 인영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폭포 근처에 앉아 있는 목진을 발견했다.
“흥, 드디어 찾았구나. 이번에는 어떻게 도망치는지 보자!”
목진의 신영을 본 순간, 사람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를 쫓아오는 동안 그들은 매우 고된 시간을 보냈다. 고작 신백경 초기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가 잡기는 어찌나 어려운지.
무리 앞에는 사관 등 3명의 강자가 싸늘한 눈빛으로 목진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장심에 영력을 모아서 출수하려고 했다.
슉!
그때 파풍성과 함께 3개의 신영이 목진 앞에 나타났다. 바로 엽경령, 초기, 방종이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목진을 쫓았고, 생각지도 못하게 목진이 발견되자 어쩔 수 없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초기?”
사관 등은 초기를 보고 순간 당황하며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설마 목진을 보호할 생각이냐? 제 무덤을 파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초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목진이 그들 손에 잡히면 천급 영수 정백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목진의 인장까지 제거당할 수도 있었다.
“관용을 베푸는 것이 어떻습니까? 우리가 목진에게 천급 영수의 정백을 받아 줄 테니 우리를 풀어주시죠?”
방종이 말했다. 그들은 최대한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흥, 놈이 지금까지 우리의 시간을 빼앗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 용서할 만큼 했다. 너희들도 빨리 꺼지지 않으면 같이 처리하겠다!”
신백경 후기의 오호의 안색이 싸늘하게 변하며 소리쳤다.
“그럼 우리가 너희들을 막아야지!”
초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네놈들이 뭐라고?!”
오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곧 오호의 신영이 웅혼한 영력과 함께 세 사람을 향해서 쏘아졌다.
“모여!”
초기는 오호가 출수하는 것을 보고, 고함을 지르며 오호와 맞섰다.
쿵!
양쪽의 충돌로 폭포마저 떨렸고, 오호는 신영이 뒤로 두 걸음 정도 밀려났다. 그러나 초기와 방종 역시 거의 10여 걸음이나 물러났고, 가장 약한 엽경령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전부 꺼져라!”
오호는 다시 한번 돌진하며 일권을 내질렀다. 초기 등은 미처 손을 쓰지도 못하고 그대로 날아갔고, 오호의 신영은 눈을 감고 있는 목진의 앞에 나타났다.
오호가 웃으며 말했다.
“무슨 혈화자 목진이라는 것이야. 눈이나 떠라!”
그는 웃으며 웅혼한 영력이 담긴 장풍을 목진의 가슴을 향해서 날렸다. 수련상태에 들어간 목진을 불러낼 생각이었다.
초기 등 세 명은 그 상황을 보고 안색이 변했다. 목진은 지금 수련상태였다.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영력의 반서로 중상을 당할 것이다.
슉!
그들의 안색이 변하던 순간, 멀리서 날카로운 파풍성이 들려오며 한줄기 검은빛이 쏘아졌다. 순간 오호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고, 검은빛은 그의 다리를 관통했다.
악!
오호는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사관 등 많은 신백경 고수의 안색이 변했고, 누군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누구냐?”
사람들이 고개를 들자 멀리서 무지개빛이 스쳐 지나갔고, 몇 호흡 만에 한 줄기 빛이 목진 옆에 나타났다.
초기는 그 가녀린 신영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익숙한 신영은…… 바로 낙리?
우르릉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폭포에서 짙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 위에는 수백 개의 그림자가 우뚝 서 있었고, 그들은 의아함이 가득한 눈으로 폭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엔 검은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있었는데, 아리따운 외모에 깊고 맑은 눈을 하고 있어 보는 사람에게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왔고, 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휘날렸다.
사람들은 조용히 서 있는 소녀를 보면서 왜인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오호의 다리엔 검은색 장검이 꽂혀있었고, 장검은 바닥에 단단히 박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분노에 찬 오호가 고개를 들어 소녀를 보는 순간, 두 눈에서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러나 오호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사관과 진정의 얼굴도 점점 굳어졌다. 소녀를 알아본 듯한 눈치였다. 사실 사관과 진정은 그녀를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러나 소녀의 외모와 기질이 어찌나 출중한지 뇌에 각인된 것처럼 그녀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했다.
또 영로의 마지막 전투에서 현왕 희현을 이긴 것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여기에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쥐 죽은 듯이 고요한 분위기가 기이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영로에 처음 참가한 신백경의 소년이 소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넌 누군데 저놈을 도우려 하는 거야? 너도 우리랑 적이 되고 싶은 거야?”
“닥쳐!”
소년의 말에 앞에 있던 사관이 호통을 쳤다.
사관의 호통에 놀란 소년은 이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였으나 다시 말대꾸할 용기는 없었다. 뒤돌아보니 다들 이상한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저 소녀는 누굴까?
소녀는 길고 가는 손으로 오호의 다리에 꽂힌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이 뽑히자 오호는 재빨리 피를 흘리는 다리를 감싸고선 자리를 뜨려 했다.
“움직이지 마.”
그러나 그가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소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란 오호는 몸이 굳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소녀는 고개를 들어 공중에 떠 있는 수백 개의 그림자를 보고 천천히 말했다.
“당신들도 움직이지 마.”
사관은 굳을 얼굴을 한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낙왕, 혹시 우리가 실수한 게 있다면 사과할게요.”
“그럼 저 사람을 죽이려 들지 말았어야지.”
소녀는 차가운 눈을 한 채 사관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에 사관은 놀랐다.
‘목진과 낙리가 아는 사이인가? 그럴 리가 없어. 저놈은 분명 영로에서 쫓겨났단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낙리랑 아는 사이일 수가 있지?’
“낙왕의 친구였군요.”
진정은 억지웃음을 한 채 말을 이어갔다.
“낙왕의 친구인 걸 알았더라면 절대 공격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건 다 오해에요.”
사관은 달갑지 않은지 이를 꽉 깨물었다. 낙리가 나선 이상 천급 영수 정백은 빼앗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저 어여쁜 소녀가 실은 얼마나 무서운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희현과 같은 고수도 중상을 입힌 걸 보면 그들이 맞서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여기까지 따라왔으니 가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낙리의 말에 사관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낙왕께서 우리를 공격하겠단 말씀이신가요?”
“내 손으로 직접 너희들을 없애고 싶지만 그러면 저 사람이 또 나를 원망할 거야. 그러니 일단 가지 말고 가만히 있어. 저 사람은 내가 끼어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낙리의 말에 사관은 오히려 기뻤다. 낙리만 나서지 않는다면 목진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관과 진정은 서로 눈을 맞추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낙리의 말대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저 소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사관 일행의 행동으로 봐서는 그녀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신백경 초기의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마주치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도망갔다.
“멍청한 것들!”
그들이 도망가는 소리에 사관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낙리는 눈살을 찌푸리고선 천천히 검을 들어 앞으로 찔렀다.
그러자 공기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더니 검 주위에 검의 잔영이 둘러싸였다.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빛이 허공을 가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푸직!
도망가던 사람들의 몸이 굳었고, 그들의 눈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순식간에 미간의 인장이 깨지면서 빛이 그들을 감싸 전송했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빛을 보면서 사관 일행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저 소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깨달은 듯하였다.
“움직이는 사람은 저들과 같을 것이야.”
엽경령은 수백 명이 낙리의 말 한마디에 두려워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했다.
‘역시 낙왕다워!’
옆에 있던 초기도 소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여인이 눈앞에 있는데, 방종만 아니었다면 당장 달려갔을 것이다.
두려워서 덜덜 떠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야 낙리는 천천히 몸을 돌려 조용히 앉아 수련하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낙리는 목진에게 다가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가만히 목진을 바라만 보고 있는데도 낙리의 눈이 휘어지며 부드럽게 바뀌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목진의 얼굴이 더 성숙해진 것 같았다. 준수한 얼굴엔 늘 그렇듯 여유로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드디어 널 찾았다.”
낙리는 손을 뻗어 목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입가엔 웃음이 피어올랐고, 늘 깊고 맑을 것만 같았던 눈은 더없이 반짝거렸다.
언제부턴가 수련 말고는 그 어떠한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낙리였지만 목진이 나타나고부터는 모든 게 다채롭게 변했다.
그 재미없는 영로도 즐겁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