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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12화 (111/1,000)

112화. 집합처

“그나저나 영로에서 마지막 영관은 누가 가져갔어?”

목진은 입을 쓱 닦더니 낙리에게 물었다.

영관은 영로에서 최고의 영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왕의 자격을 받은 사람만이 영관을 다툴 수 있고, 그 과정이 영로에서 최고의 순간이었다.

목진은 그들과 겨뤄보고 싶었다. 어쨌든 그들은 영로에서 최고니까. 그들과의 대결이야말로 진정으로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온청선(溫清璇)이 가져갔어.”

“온청선? 여자야?”

목진은 의아한 듯 물었다.

영로는 매우 넓은지라 그가 미처 다 돌아보기도 전에 쫓겨나서 몇몇 인물에 대해서는 여전히 낯설었다. 온청선이라는 여자에 대해서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실력이 굉장히 강해. 지금은 만황령원에 들어갔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만나게 될 거야.”

낙리의 신경이 온통 희현에게만 집중되지 않았다면 아마 온청선과 겨뤘을 것이다. 그렇다고 희현이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희현을 물리치긴 했지만 낙리도 그만큼의 대가를 치렀다.

“역시 오대원이라 그런가 고수들이 많이 모였네.”

앞으로 얼마나 더 흥미로워질지 벌써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양홍도 북창령원에 왔어.”

“양홍이?”

낙리의 말에 목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목진이 영로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두 적수가 희현과 양홍이다. 양홍이 북창령원에 있다면 생각보다 더 일찍 마주칠지도 모른다.

“북창계에 있어?”

목진의 물음에 낙리의 눈빛이 어딘가 차가웠다. 그때 그 일이 희현이 꾸민 짓이긴 하지만 양홍도 결코 아무 연관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응. 그런데 이쪽 북창계에 있는 게 아니야.”

북창계와 비슷한 시험 장소는 모두 네 곳이다. 양홍은 그들과 다른 곳에 있었다.

“그래. 북창령원에 가면 자연스레 만나겠지.”

희현에게 먼저 죄를 물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양홍이랑 결판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북창계에서 나까지 포함해서 8명이 ‘왕’을 받았어. 그중 두 명은 너도 잘 아는 사람이야. 석경천(石惊天)과 석호(石昊) 형제야.”

“우리가 영로에서 죽일 뻔한 석 씨 형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이야.

“둘 다 융천경에 반은 도달했어. 실력이 꽤 강해.”

융천경에 반은 도달했다는 건 곧 돌파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북창계에서 그 정도면 최고의 실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도 융천경에 들어서지 않았어?”

목진의 물음에 낙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너도 부지런히 움직여. 아니면 내 뒤꽁무니만 쫓게 될 거야.”

“엉덩이를 때릴 수도 있고 좋네.”

“또 그 소리야?”

낙리는 목진을 흘겨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오늘은 내가 수련할 거니까 네가 지키고 있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낙리는 영로에서 둘이 서로 의지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비록 어렵긴 했지만, 그때는 둘 사이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한 번만 안아볼까?”

목진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낙리에게 물었다. 오랜만이라 그녀의 품이 너무 그리웠다. 그러나 목진의 말에도 낙리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수련상태로 들어갔다.

목진은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때 영로에서 널 구하길 잘한 것 같아.’

목진은 이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북창계에 그의 적들이 넘쳐났다.

석경천, 석호, 양홍.

‘너희들이 영로에서 날 두려워했듯이 거길 벗어나도 여전히 날 두려워하게 될 거야. 날 만만하게 본다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

넓은 숲속이 어딘가 소란스러웠다. 수많은 영수가 포효하며 수십 명의 그림자를 따라 날뛰고 있었다.

“목형이 있는 데로 유인해!”

“영수한테 먹히고 싶지 않으면 빨리 달려!”

그들은 가쁜 숨을 내쉬면서 한 곳을 향해 힘껏 달려가고 있었다. 거기서 누군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의 정상에선 거대한 영진이 천천히 돌고 있었다. 가끔 용과 코끼리의 소리가 들려왔고 놀라운 영력이 파동쳤다.

목진은 멀리서 뛰어오는 영수를 바라보았다. 족히 40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제일 앞에서 뛰고 있는 열댓 마리는 고급 영수였다.

그러나 지금의 목진에게 이 정도의 영수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시작하자.”

목진이 손을 젓자 영진에서는 폭발적인 파동이 일어났다. 이내 영진에서 금빛 기둥이 뿜어져 나오더니 용과 코끼리로 변했다.

쿵!

용과 코끼리가 지나가는 곳의 영수는 온몸의 뼈가 부서지면서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영진이 아무리 강해도 영수가 워낙 많다 보니 한두 마리는 놓치기도 하였다. 그렇게 도망간 영수는 엽방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엽경령은 급히 그들을 도와주려 했지만, 옆에 서 있던 낙리가 먼저 검을 뽑아 들었다. 가볍게 검을 튕기자 검 그림자들이 허공을 가르면서 영수를 향해 날아갔다.

푸직.

엽방 사람들에게 달려들던 영수는 순식간에 피를 뿜으면서 반쪽으로 갈라졌다.

그들은 놀란 눈으로 낙리를 바라보았다. 어쩜 이렇게 순식간에 영수를 반쪽으로 만들어버리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만약 죽은 게 영수가 아니라 그들이었다면 아마 저것보다 더 참혹하게 죽었을지도 모른다.

“정백을 꺼내고, 아직 4급 인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인장 영기를 꺼내도록.”

목진 위에 떠 있던 영진이 서서히 사라졌다.

목진의 말에 그들은 매우 기뻐하면서 죽은 영수 무리로 다가갔다. 영수들의 실력이 약하지 않아 그들이 나서서 영수를 죽이려 했다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목진과 같은 강자가 나서서 도와줬기 때문에 모든 것이 순조로울 수 있었다.

엽경령은 기뻐하는 엽방 식구들을 보면서 목진에게 말했다.

“정말 고마워.”

목진의 도움이 없었다면 엽경령 혼자서 저들의 인장을 4급까지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실망하며 떠나는 사람이 생겼을 것이고, 슬픔에 빠졌을 것이다.

엽경령이 고마움을 표하자 목진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힘들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에요. 또 다들 어느 정도의 재능이 있어요. 북창령원에 들어가게 된다면 분명 성과를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여기서 탈락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네요.”

그때 낙리가 목진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북창계의 가장 안쪽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아마 곧 집합처에 도착할 것 같아.”

“집합처라…….”

목진은 매우 기대하는 눈치였다. 거기에 가면 북창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슬슬 떠나자.”

“응.”

* * *

목진 일행은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이미 북창계의 중심이 된 거기로 수많은 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쪽으로 모이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백 리 밖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목진 일행은 집합처로 가는 길에 수많은 세력을 만났고, 그들은 하나 같이 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북창계의 마지막 시험장이었다.

거기엔 북창령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진정한 문이 있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인장은 모두 4급을 넘었고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북창령원에 들어가기엔 충분했다.

물론 많은 세력이 목진 일행을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인원도 적고, 영력 또한 강한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작은 세력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심지어 모든 사람이 4급 인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목진 일행은 정작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산을 넘고 숲을 지나 저녁 무렵이 되자 그들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

저 멀리에서 끝이 안 보이는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강력한 영력의 파동이 하늘을 찔렀다.

그렇게 강자들은 북창계를 지나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야 진정한 강자라고 할 수 있었다.

“정말 사람이 많다.”

왕성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여기엔 널린 게 영륜경 후기의 사람들이고 심지어 신백경인 강자들도 널리고 널렸다.

“우리도 들어가자.”

목진이 앞장서자 낙리와 엽경령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그들은 수십 명한테 둘러싸였다. 그들은 목진과 다른 이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결국 낙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목진 일행은 인원이 적기도 하고 다들 그리 강해 보이지도 않았다. 거기에 낙리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니 눈길이 가지 않을 리 없었다.

“이런 미녀가 고작 이런 약해빠진 데에 몸을 담아서 되겠나? 우리 묵방에 들어오는 건 어떠신가? 누구도 절대 자네를 건드릴 수 없을 거야!”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은 꽤 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앞장 서 있는 두 사람은 신백경 중기에 도달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그러나 목진 옆에 서 있는 낙리를 보더니 이내 목진을 막아선 사람들을 불쌍하게 바라봤다.

그 말에 목진은 눈살을 찌푸렸고, 낙리는 검을 뽑아 들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쿵!

그러나 그녀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이 멀리 떨어져 나갔다.

“누구야!”

떨어져 나간 사람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구석에서 매섭게 그를 노려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두려운 듯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형님.”

형님이라는 사람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선 낙리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제 부하가 실수했네요. 낙왕께서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무례하게 굴던 이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한 번도 영로를 참여한 적이 없지만 낙왕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영로에서 최고의 강자들만 얻을 수 있는 칭호였다. 신백경 후기에 들어선 그들의 형님도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형님이란 사람은 낙리 옆에 서 있는 목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잠깐 멈칫하는 것 같더니 이내 놀란 듯한 얼굴을 하였다.

“날 압니까?”

형님이란 사람의 표정 변화를 본 목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

“혈화자 목진을 모를 리가 없지요.”

형님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영로의 혈화 때문에 저도 하마터면…….”

그는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날 이 소년이 어떠한 재앙을 일으켰는지.

“그렇군요. 정말 미안하게 됐네요.”

형님이라는 사람은 목진과 더는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의 눈엔 옆에 서 있는 낙왕보다 온화해 보이는 이 소년이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부하 관리를 잘하시죠. 괜히 화를 초래하지 말고요.”

목진은 웃으면서 일행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형님, 대체 누군데 그럽니까? 저랑 실력이 비슷한 것 같던데 어디서 감히 형님한테.”

“닥쳐!”

형님은 분노에 차 있는 부하를 힘껏 발로 찼다.

“어떻게 저런 놈을 건드릴 생각을 해! 넌 죽어도 상관없는데, 난 아직 더 살고 싶다고!”

목진은 소란스러운 소리에도 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앞쪽은 뒤처럼 비좁거나 혼잡하지 않았고, 북창계에서 손에 꼽히는 강한 세력들만 모여있었다. 그들이야말로 북창계의 진정한 강자들이었다.

그들은 목진 일행이 나타나자 궁금한 듯 유심히 바라봤다.

그때 서북쪽 구석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두 사람이 목진을 발견하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기가 어찌나 센지 그 구역의 모든 사람이 눈길을 돌릴 정도였다.

“목진!”

그 둘은 어마어마한 영력을 내뿜으면서 차가운 눈으로 목진을 노려보았다. 그때 그들의 차가운 목소리가 공중으로 퍼졌다.

“네가 감히 여기에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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