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석 씨 형제
드넓은 이 땅에는 여러 갈래의 세력이 존재하였고, 각자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가졌다. 하여 다른 곳에서 우두머리로 으쓱할 수 있었던 신백경 경지의 사람들도 이곳에서만큼은 꼬리를 내려야 했다.
고수가 셀 수 없이 많은 이 땅에서 신백경 따위는 함부로 까불 자격조차 없었다.
이 땅의 중심 구역에는 최고급 실력을 자랑하는 곳이 일곱 군데가 있었는데, 그중 수백 명의 수련자가 동북 방향에 있는 두 명의 소년을 따랐다.
그중 하나는 몸매가 우람했고, 다른 한 명은 몸이 바싹 말랐다. 그들이 바로 낙리와 함께 금강 외눈 원숭이를 잡은 이들이었다.
두 소년은 영로에서 으뜸가는 존재였고, ‘왕급’ 평가를 받은 엄왕 엄소(嚴嘯)와 주왕 주령(周翎)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눈이 부셨다.
두 소년은 두리번거리다가 막 도착한 목진과 낙리를 발견하고는 목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들은 영로에서 목진과 힘을 겨룬 적이 있었지만, 강자들끼리 서로 아끼는 마음에서 한 번도 살수를 두지 않았었다.
그들 외에도 놀라운 영력을 뿜어내며 목진을 주시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방금 고함을 지른 자들이었다. 그들은 바로 낙리가 말했던 석 씨 형제로, 영로에서 목진의 상대였던 석경천과 석호였다.
영로에서 온 8명의 왕이 전부 이 구역에 모여 있다니 놀라운 따름이었다.
그 외에 기타 대형 세력들도 존재했는데 그 우두머리들은 비록 영로에는 참가한 적은 없지만, 결코 실력이 다른 왕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았다. 대부분 대천세계의 방대한 세력 출신으로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것이야말로 강자들의 모임이 아닐까?
석 씨 형제의 우레와 같은 기합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자 사람들의 눈길이 전부 두 사람에게 돌아갔다.
“왕급 평가를 받은 석 씨 쌍걸이군. 곧 융천경에 이른다고 들었는데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융천경 초기의 강자와도 힘을 겨뤄볼 수 있다더군.”
“그런데 저들이 방금 목진이라 외치지 않았나? 설마 영로에서 혈화자로 불렸던 그 목진을 말하는 건가?”
“바로 그 사람이라네. 북창계에 와서는 천급 영수 두 마리의 정백을 얻었다지 뭔가?”
“그런데 목진은 현재 신백경 중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영로에서 겪은 일이 큰 타격이었나 보군. 지금의 실력으로 더는 왕급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것 같네만…….”
“목진이 영로에서 겨뤘던 상대가 바로 석씨 쌍걸이었는데, 이렇게 마주쳤으니 절대 가만두지 않겠지? 헌데 그 곁에는 석씨 쌍걸보다 실력이 뛰어난 낙왕이 있으니 볼만하겠군.”
이곳에는 이름을 날린 인물들이 넘쳤고, 영로 출신들은 이를 바로 눈치채고 수군거렸다.
목진도 왠지 눈에 익은 두 사람에게 눈길을 돌렸다.
우람한 몸매를 가진 석경천은 민머리에 눈빛이 매서운 것이 마주치면 소름이 쫙 끼칠 것 같았고, 장발의 석호는 무덤덤한 표정에 목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무척 냉랭했다.
“나와 싸워 이기지도 못했던 것들이 소란을 피우는구나.”
목진은 피식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에게는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었다.
“아직도 그리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석경천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영로에서 기세등등했던 혈화자가 지금은 신백경 중기밖에 되지 않다니. 그런 실력으로 어찌 이곳에 있을 생각을 하는 건가? 당장 돌아가게.”
다들 쥐죽은 듯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으니, 대화 내용만으로 봐서는 신백경 중기밖에 되지 않는 목진이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목진의 실력이 아무리 뒤처져도 그 옆에 낙리가 있으니 결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이곳에 머무를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면 어디 덤벼봐.”
이때 낙리가 석 씨 형제를 째려보며 말했다.
“낙리, 우리가 당신을 무서워할 것 같나?”
석경천은 괜히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럼 어디 석 씨 쌍걸 석황결의 위력을 맛보자꾸나.”
낙리는 가녀린 손으로 검은색 칼자루를 잡았다. 낙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 안에서 엄청난 영력이 뿜어져 나와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융천경에 이른 건가? 괴물이 따로 없네.”
영력의 영향을 받아 땅이 흔들려 중심 구역에 있던 정예들의 시선이 모두 낙리를 향했다.
석 씨 형제도 순간 움찔했지만, 곧바로 석경천이 목진에게 시선을 돌려 언짢은 듯 말했다.
“목진 자네도 한때는 영로에서 알아줄 만한 인물이었지. 내 비록 자네를 같잖게 여겼지만, 먼저 여인 앞에 나서는 점만은 마음에 들었는데 대천세계에 돌아오더니 되레 여인의 힘을 빌리는 처지가 되었구나.”
“석경천, 그따위 수작은 집어치우게.”
목진은 고개를 살짝 내리며 말했다.
“우쭐대지 말게. 우리 형제가 힘을 합치면 아무리 낙리라도 못 이기네. 그리고 자네가 과연 석방을 당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어디 한 번 해보든지.”
석경천의 질문에 목진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비록 엽방의 실력이 석방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시비를 걸어온다면 똑같이 갚아주리라 생각했다.
이렇게 석경천과 목진이 기 싸움을 하는데 동북쪽에서 주왕 주령이 천천히 걸어왔다.
“거참, 말로 잘 풀면 될 것을 왜 이리 야단법석인가.”
“주령, 당신도 이 일에 가담할 작정인가?”
석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열에서 일곱은 북창계 중 이 구역에 왔고, 우리가 이곳에 모인 목적은 북창전을 찾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중 누가 북창전을 찾았는가?”
주령이 담담하게 웃으며 묻는 말에 석호는 어리둥절하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북창전은 아마도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텐데,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니 우리가 북창전이 나타날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네.”
“그 조건이 뭐란 말인가?”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빨간 도포를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심상치 않은 영력의 소유자로 영로에서 염왕으로 불리던 염릉이었다.
“내 추측에 의하면, 9급 인장이 북창전을 소환할 수 있는데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주령은 무안하여 낙리를 바라봤다. 낙리가 가장 유력한 후보였으나 그날 목진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9급 인장이라…….”
주령의 말에 다들 인상을 찌푸렸는데, 8급 인장이 있는 사람은 있어도 9급 인장의 소유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힘을 합쳐 9급 인장을 만들어 북창전부터 소환하는 것이 어떤가?”
주령이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누가 순순히 인장을 내놓는단 말인가?”
석경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예 최약체를 뽑아 그자의 인장을 빼앗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은가?”
석경천은 자연스레 목진에게 눈길을 돌렸다.
“어떻게든 나한테 시비를 걸 작정이군.”
“지금의 자네는 우리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우쳐주고 싶을 뿐이네.”
씩 웃으며 말하는 석경천을 보며 목진은 가볍게 숨을 고르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피식 웃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계속 참을 내가 아니지. 어디 겨뤄봅시다. 영로에서처럼 내 손에 처참하게 깨지겠지만.”
“패배하면 군소리 말고 인장을 내놓아야 할 걸세.”
이 순간만을 기다렸던 석경천은 목진이 주제도 모르고 까분다는 생각에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싸움에서 지면 자네는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할뿐더러 낙리의 인장도 내놔야 할 걸세. 자네 인장은 내 성에 차지 않으니 말이야.”
이에 목진이 입을 열려는 찰나, 뒤에 서 있던 낙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렇게 하지.”
낙리의 말에 사람들은 순간 떠들썩해졌다. 다들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낙리가 직접 출전하면 모를까, 신백경 중기인 목진이 곧 융천경에 이르는 석경천과 싸우려니 말이다.
낙리는 목진의 승리를 그토록 확신한단 말인가?
한편, 주령도 쓸쓸하게 웃으며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과 협동 작전을 펼쳤을 때도 수련에만 집중했던 낙리가 누군가를 위해 나서는 모습이 낯설었다.
“목진, 자네는 참 행운아네. 부디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게.”
주령은 목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낙왕이 아직 자네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 같네.”
석경천은 호탕하게 웃더니 바로 목진을 노려봤다.
“어디 시작해볼까?”
목진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차가웠으니 얄미운 것은 옛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디 덤벼보지!”
석경천은 이리 말하며 한 발자국 내딛더니 영력을 힘껏 뽐냈다. 그러자 땅이 뒤흔들렸고 그 충격으로 땅 위의 돌멩이들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다.
“영로의 수치인 너를 오늘 제대로 혼내줄 테다.”
석경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비틀더니 땅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이에 땅은 쩍하고 갈라졌고, 매서운 영력은 목진의 다리를 향해 돌진했다.
목진은 바로 공격을 피하고 순식간에 석경천의 앞에 나타나 울대를 공격했다.
“이까짓 재량으로 나를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석경천은 껄껄 웃더니 손으로 자신의 울대를 막았는데 팔에 회백색의 영력을 몰아넣어서 그런지 암석처럼 견고해 보였다.
이렇게 목진은 석경천의 손바닥에 손이 닿았는데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불꽃이 튀었다.
“당장 꺼지거라!”
석경천은 바로 주먹을 쥐어 반격하며 회백색의 영력을 주먹에 몰아넣어 목진에게 휘둘렀다.
그러나 목진은 옷깃을 휘날리며 손쉽게 공격을 피하고 허공에 멈춰 손바닥에서 수십 갈래의 빛을 뿜어냈다.
놀라운 수준의 영력이 아주 빠른 속도로 목진한테서 뿜어져 나와 곧바로 금광 영진을 이루었다.
“영진이라니? 진을 치는 속도가 엄청나구나!”
다들 목진의 속도에 경악하였는데, 이건 통제력이 어지간히 뛰어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목진이 연이어 수인을 바꾸자 톱니 가득한 금색 광륜이 공기를 가르며 석경천에게 돌격했다.
“진을 빨리 칠 수 있어서 그리 자신만만했던 건가? 그런데 이따위 영진은 식은 죽 먹기라네.”
석경천이 팔에 힘을 주자 회백색 영력이 흘러넘치며 불쑥 튀어나온 핏줄이 규룡처럼 꿈틀거렸다.
“석맹천산경(石蟒穿山勁)!”
석경천은 목진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곧바로 암석과도 같은 주먹을 휘둘렀다. 이에 회백색의 영력이 바람을 타고 울부짖으며 금륜과 부딪쳤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금색 광륜이 산산조각이 났다. 이에 석천경은 으쓱하며 말했다.
“목진, 역시 대천세계에서는 보잘것없군.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석경천은 목진의 공격을 곧바로 무산시켜 더욱 우쭐해졌다. 그러나 목진과 영로에서 대결한 경험이 있기에 방심하지 않고 그에게 근접 공격을 하려고 다가갔다.
영진사와는 가까운 거리에서 공격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였고, 인장이 걸린 싸움이기에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했다.
“한 방에 보내주겠네!”
석경천은 씨익 웃더니 회백색의 팔을 내리 꺾었다.
“석룡파!”
석경천의 웅장한 영력은 용의 울음소리를 내며 석룡의 모습으로 변해 목진을 향해 돌격했고, 그 위력이 어찌나 센지 공기를 가르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에 목진은 검은빛 세 갈래가 뿜어져 나오는 주먹으로 석경천의 공격을 막아냈는데 그 위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석경천은 당황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웃으며 반격했고, 공격 또한 손쉽게 막아냈다.
지금껏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 석경천은 으쓱하다가 목진의 차가운 눈빛에 흠칫 놀랐다. 그제야 목진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검은빛이 맴도는 목진의 주먹에서 엄청난 영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알아챘다.
잠시 후, ‘쿵’하는 소리와 함께 광인이 다시 나타났고, 그 주위에 영력이 순식간에 요동쳤다.
“네 번째 광인이 있다니!”
석경천의 눈빛이 드디어 변하기 시작했다. 목진의 검은색 광인이 회를 거듭할수록 위력이 세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