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최후의 도전
낙리는 자금빛 인장을 받아 목진을 향해 생긋 웃더니 바로 미간의 인장에 넣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북창전이 나타나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낙리의 미간에 있던 인장과 자금색 인장이 더해져 눈부신 빛을 뿜어내더니 미간에서 자금색 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영력의 파동이 갑자기 거세지더니 ‘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금색 빛이 반짝이던 하늘에서 어렴풋이 거대한 궁전이 나타나 천천히 내려왔다. 이에 다들 황급히 자리를 피했고 궁전이 내려앉는 순간, 땅이 격하게 흔들렸다.
“이것이 북창전이란 말인가?”
다들 잔뜩 긴장해 자금색 대전을 바라보았다. 이곳이야말로 북창령원으로 가는 진정한 통로였고 북령원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황금빛으로 빛나는 대문이 서서히 열렸다.
“북창전이 열렸으니 인장이 4급이 넘는 사람들은 바로 들어오시게.”
대문이 열리며 연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다들 늦을세라 와르르 몰려들었다. 그 놀라운 광경에 목진은 무덤덤하게 웃으며 엽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도 이만 들어갑시다.”
어렵게 이곳까지 온 엽방도 설레긴 마찬가지였기에 바로 엽경령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갑시다.”
목진과 낙리 역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출발하더니 순식간에 수백 장 되는 자금색 대문을 넘었다.
사람들이 대문을 지날 때, 미간의 인장이 미세하게 반짝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인장이 4급이 넘었는가를 검사하는 일종의 점검장치 때문이었다.
* * *
한참이 지나자 사람들이 전부 대전에 들어왔다. 대전은 너무 넓어 끝이 보이지 않았고, 대전에 모인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이곳이 바로 북창전 안이란 말인가? 북창령원은 어떻게 가는 거지?”
“꼬맹이들, 북창령원의 시험에 통과한 것을 축하하네.”
이때, 대전 위에 빛이 모이더니 연로한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그는 매우 낯익었는데 목진 일행이 영접대에 왔을 때 그들을 북창계까지 인도해준 빛이었다.
다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빛이 아니라 진정한 사람이었다.
목진은 노인을 빤히 쳐다봤는데 순간 강렬한 압박감을 느꼈다. 이는 절대 일반 융천경의 실력으로 가질 수 있는 압박감이 아니었다.
“안내하는 사람의 실력마저 이 정도라니, 북창령원은 역시 평범한 곳이 아니군.”
목진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바로 북창계의 안내인이고, 그대들을 진정한 북창령원으로 데리고 갈 사람이라네.”
노인은 허공에서 기대에 찬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까지 온 것만으로도 성공했다는 뜻이니, 내 그대들에게 상을 내리겠네.”
백발노인이 담담하게 웃으며 손을 스윽 휘두르자, 인장이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사람들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빛이 사라지자 각기 다른 숫자를 나타낸 수정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뭔가요?”
다들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그 물건은 영치패(靈值牌)라 하는데 숫자가 곧 그대들의 영치일세. 북창령원에 머무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물건이니 잘 간직하게. 그대들은 영치로 영결, 영기, 진도, 심지어 천급 영수의 정백과 최고급 도사의 가르침도 직접…….”
손바닥보다도 작은 물건이 이토록 요긴하게 쓰인다니 노인의 말에 대전은 순간 떠들썩해졌다.
“천백 영치…… 인장의 급수가 높을수록 영치가 많은 것 같군.”
목진은 중얼거리며 낙리의 영치패를 힐끗 쳐다봤는데, 그녀의 영치패에는 ‘오천’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렇게 많은 차이가 날 줄이야.
‘오천이라…….’
목진은 낙리의 영치패를 보고 흠칫했다. 옆에 있는 엽경령의 영치패를 보니 비록 7급 인장이긴 하지만 고작 팔백 정도의 영치 밖에 안 됐다. 묵령이나 왕성은 그보다 더 낮은 백 정도였다.
그들은 낙리의 영치를 보더니 감탄했다. 저 정도면 아마 여기서 제일 높을 것이다.
“영치로는 제일 부자네.”
목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낙리는 그런 목진이 못마땅한 듯 눈을 흘겼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영치를 얻을 수 있는 겁니까?”
누군가가 큰소리로 묻자, 백발노인은 웃으면서 답했다.
“그리 어렵진 않소. 북창령원엔 여러 가지 임무가 있네. 그 임무를 완수하면 영치를 얻을 수 있고, 또 영수를 사냥하여 영수의 정백을 바쳐도 얻을 수 있다네. 혹은 자네들끼리 영치를 거래해도 된다네. 북창령원에 들어오면 차차 알게 될 거라네.”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영치를 얻을 방법이 참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저희는 언제 북창령원에 들어갈 수 있나요?”
진정한 북창령원을 구경하고 싶은 그들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평소대로라면 자네들은 이미 북창령원으로 들어갈 자격이 충분하오. 그러나 아직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네. 7급 이상의 인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관문일세.”
7급 이상의 인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노인의 말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관문일까?
“무조건 거쳐야 하는 관문은 아니네. 당장 포기해도 괜찮네. 그렇지만 통과하게 되면 오천 영치를 얻을 수 있네.”
“오천 영치?”
노인의 말에 다들 눈을 반짝였다. 7급이 안 되는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하는 눈길로 바라봤다.
“어떤 관문인가요?”
7급 인장을 가진 사람이 노인에게 물었다.
“경기에 도전하는 거라네. 도전 상대는 북창령원의 고참들이지.”
북창령원의 선배라는 말에 다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노인이 긴 소매를 휘젓자 뒤에선 열댓 개의 빛기둥이 생겼고, 기둥의 빛이 점점 사라져 갈 때쯤 그 자리엔 수십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죄다 젊은이였고 장난 가득한 눈길로 대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참 많네. 북창령원이 또 시끌벅적해지겠구먼.”
빨간 머리 청년이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백노(白老), 이제야 우리를 부르다니, 너무 늦은 거 아닌가요.”
몹시 여윈 청년이 노인에게 웃으면서 말하자 웬 건장한 청년이 투덜거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 북창계는 이제야 북창전을 부르네. 다른 세 북창계는 벌써 결과도 나왔다는데.”
“다른 세 곳의 북창계에는 꽤 대단한 녀석들이 있다고 하더군. 마지막 관문을 뚫었다고 하더라고. 우린 안 선배가 있으니 절대 뚫리진 않겠지?”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에 다들 중간에 있는 빛기둥의 여인에게 눈길을 돌렸다. 거기엔 빨간색 옷을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완벽한 몸매와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지만, 얼굴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조용히 하지!”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호통치면서 흘겨보자 그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대전에 있는 모든 이들이 백노의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파동을 느끼자 다들 얼굴이 굳어졌다. 느껴지는 바로는 저들은 분명 융천경에 가까운 실력을 지녔다.
특히 중간에 서 있는 빨간색 옷을 입은 여인이 가장 두렵게 느껴졌다.
목진도 그들처럼 의아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그 여인에게 시선이 머물자 얼굴 가득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저 여인은 진정한 융천경의 강자이다. 류경산과 같은 단계야.’
“안연(安然), 자네가 어떤 도전인지 저들한테 설명해주게.”
백노는 여인에게 손짓하면서 말했다.
안연이라는 여인은 백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대전의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7급 이상의 인장을 가진 자들은 우리에게 도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물론 지금 포기해도 괜찮다. 도전에 대한 보상은 아까 얘기한 그대로다. 내 옆에 서 있는 이 사람들은 북창령원에서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다. 북창령원의 신백방에서 50위 안에 겨우 든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너희들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하지.”
“신백방이 뭔가요?”
“북창령원에서 제일 낮은 등급의 순위방이다.”
융천경에 가까운 저들의 실력이 북창령원에서 제일 낮은 등급의 수준이라니 다들 안연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다.
“안 선배, 신인들 앞에서 면 좀 세워주지 그래. 신백방이 그렇게 형편없지 않잖아. 10위 안에 드는 사람은 그래도 대단하지 않은가.”
그들은 안연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신백방에서 더 오르지도 못하는 멍청이들이 뭐가 대단하다는 거지?”
안연의 예리한 눈빛에 그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이어 안연은 대전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북창계와 같은 시험의 장은 모두 네 곳이다. 그러나 네 곳중에서 여기의 북창전이 제일 늦게 열렸지. 그 말인즉슨 너희들의 실력이 가장 약하다는 것이다.”
“9급 인장이 생길 뻔했는데 중간에 문제가 생겼을 뿐입니다.”
주령은 참지 못하고 대꾸했다. 그날 낙리가 목진을 구하러 가지만 않았어도 진작에 북창전을 열었을 것이다.
“다 핑계일 뿐이야. 난 결과만 본다. 가장 약한지 아닌지는 입으로 말할 게 아니라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주령은 입을 삐죽거렸다. 자신보다 강한 여인이라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다른 세 북창계에선 그들 모두가 최후의 도전에 통과했다. 또한 좋은 성적을 거둔 몇은 가장 강하다는 선배를 이겼다.”
사람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들만 봐도 가장 강하다는 고참들이 분명 융천경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배를 이기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떤 사람들인지요?”
염왕 염령(炎淩)은 자존심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대체 누가 그리 강한지 궁금했다.
“빙청(冰清), 목규(木奎), 그리고 양홍이다.”
대전은 세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자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목규와 양홍은 영로에서도 최고의 실력자이며 ‘왕급’ 평가에서도 앞쪽에 있던 사람들이다.
“양홍…….”
목진의 눈빛이 양홍이라는 이름에 흔들렸다. 생각보다 녀석이 꽤 높은 위치에 있었다.
“이제 너희들 차례다. 너희들이 약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난 입만 놀리는 사람이 정말 싫더라고.”
다들 안연이 아니꼬웠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대꾸할 수는 없었다. 보아하니 다른 고참들도 안연을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신인인 그들이 무슨 수로 안연을 이기겠는가.
“자격이 있는 자들은 선택할 수 있다. 지금부터 포기할 사람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라.”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머뭇거렸다. 곧이어 7급 인장을 얻은 사람들이 하나둘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찌 융천경에 가까운 저들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나도 포기해야겠다.”
엽경령도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물러났다. 신백경 초기인 그녀가 굳이 도전해보지 않아도 결과는 뻔했다.
“목진, 낙리, 저 여인을 꼭 이기길 바라. 신인들도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줘야지.”
엽경령은 그나마 낙리가 안연에게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목진은 조금 힘들 거라는 생각을 했다.
“도전 상대는 제비를 뽑아 결정한다. 제비를 뽑고 나서도 포기할 수 있다.”
안연이 손을 꽉 쥐자 수십 갈래의 빛이 손에서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그 빛을 잡으려 하였고, 빛이 손에 닿자 빛은 다시 고참들의 몸으로 돌아갔다.
목진은 그중 한 빛을 가볍게 잡았고, 이내 빛이 갈라지더니 빨간색 빛이 되어 다시 돌아갔다.
빨간색 빛의 끝을 확인한 목진은 순간 멈칫했다. 목진 뿐만 아니라 대전의 모든 이들이 똑같이 놀란 얼굴을 했다.
그 빛의 끝에는 차가운 얼굴을 한 안연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