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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22화 (121/1,000)

122화. 신백단

한편, 목진과 낙리는 2각 정도 날아간 뒤에야 영치전에 도착하였다.

영치전은 말로 묘사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였는데 한 봉우리의 산처럼 북창령원에 우뚝 솟아있었고, 그 주위에 안개까지 맴돌아 마치 선경에 이른 것만 같았다. 영치전에서 만큼은 누구나 더없이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었다.

영치전은 북창령원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목진과 낙리는 대전 밖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걸 보았고, 영치전의 엄청난 인기를 실감했다.

역시 지금까지 봤던 북창령원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우리도 들어가자.”

그들은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곧바로 영치전에 들어갔는데, 순간 소름 끼칠 정도의 영력이 느껴졌다.

끝이 보이지 않을 거대한 대전이 두 사람 앞에 펼쳐졌는데 매우 신비로웠고 떠들썩했다.

목진과 낙리는 자연스레 대전 천장에 눈이 갔는데 허공에 있는 원형 수정 안에는 영기, 영결 등 보물이 들어있었다.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별처럼 빛나는 수정들을 보았다. 대전에서 은밀하지만 섬뜩할 정도로 두려운 파동이 느껴졌다. 이는 분명 영진이었다.

역시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아주 굉장한 영진을 배치해놓은 것이었다.

그때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한테 쏠렸는데, 이는 목진이 아닌 낙리를 향한 눈빛이었다.

비단결 같은 검은 장발에 늘씬한 몸매를 가진 여인의 맑은 눈을 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한 마음속이 들여다보이는 것만 같았다. 미모까지 훌륭하니 어찌 이런 여인한테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북창령원에 언제 저리 예쁜 여인이 나타났단 말인가? 미모만 따지면 최상급이네.”

“낯이 익지도 않고 여태껏 들어본 적도 없어.”

“그럼 가서 한 번 물어봐. 옆에 서 있는 청년은 신백경 중기밖에 되지 않으니 연인은 아니겠지…….”

주위의 시선에 목진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이때 낙리가 갑자기 목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수군대던 사람들은 순간 놀라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고,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여인이 어떻게 이토록 평범한 청년을 선택했는지 의구심을 품었다. 심지어 얼굴만 보고 고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한편, 목진은 사람들의 반응에 씨익 웃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감히 남의 여인을 넘보다니 그는 낙리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목진의 행동에 낙리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다.

목진은 어느덧 소녀한테서 물씬 풍기는 여인의 향기에 취해 넋을 놓고 걸었다. 낙리는 영치전 깊숙이 들어가서야 목진의 손을 놓고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주위를 살폈다.

“내가 빨리 실력을 키워야겠다. 누구의 매력이 엄청나니 내가 강해지지 않으면 얼마나 욕먹을지 모르겠네. 방금 사람들이 나를 어찌나 한심하게 보던지.”

목진이 한숨을 쉬며 하는 말에 낙리는 피식 웃더니 고개를 돌려 목진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사람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이에 목진은 뾰로통해졌다.

“농담이야. 그리고 이건 분명 내가 원해서 맺은 관계야.”

낙리는 커다란 눈을 굴리며 말했다.

“여우가 따로 없네. 내가 언젠가는 너를 뛰어넘어 단단히 혼내줘야겠어.”

목진은 입을 삐쭉 내민 채 낙리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다시 위쪽을 쳐다봤다. 그중 하나의 거대한 수정 구슬에 금색 액체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저것은…….”

목진은 이내 수정구에 쓰인 글을 읽고 흠칫 놀랐다.

“북명용곤의 정혈이 저렇게 생겼구나…….”

그때 기해의 영력이 들끓었고 역시나 구유작이 또 흥분하였다.

“진정해, 이곳의 물건은 함부로 손댈 수 없다. 네가 전성기에 이르렀어도 감히 북창령원의 물건을 빼앗을 수는 없을 거야.”

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구유작에게 말했다.

목진의 말에 구유작은 서서히 진정했다. 북창령원에서 북명용곤의 정혈을 훤히 보이는 곳에 진열한 것을 보면 쉽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일단 신백단부터 사자.”

목진은 구유작이 진정하자 한시름 놓고 낙리와 함께 수정 계산대로 향했다.

“어르신, 신백단 한 알 주십시오.”

목진은 수정 계산대를 가볍게 두드려 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 백발노인을 깨웠다.

이에 언짢은 듯 깨어난 노인은 목진을 힐끗 쳐다보더니 손가락을 튕기자 한 줄기 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은 목진의 손에서 옥합으로 변했고, 그 안에는 다름 아닌 용의 눈알만큼 큰 신백단이 들어있었다.

노인은 신백단을 건네주고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목진의 영치패가 빛나더니 이만 영치가 깎여있었다.

일을 마친 노인은 다시 눈을 감으려다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낙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야…….”

낙리의 은발에 시선이 끌렸던 것이었다.

낙리와 목진은 어리둥절하여 노인을 바라봤다.

“혹시 낙신족이냐? 낙 천신과는 무슨 사이냐?”

노인은 낙리를 한참 바라보더니 물었다.

“죄송한데 알려드릴 수 없어요.”

낙리는 노인을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하고 목진의 손을 잡고 떠났다.

“저 아이는 분명 낙신결을 수련하여 머리가 은발이 된 것인데 낙신결은 낙신족 황족만 수련할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저 아이가 낙신족의 황족이라면 왜 북창령원에 온 것이고 두 사람은 무슨 관계란 말인가…….”

노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더니 이내 한숨을 쉬고 다시 눈을 감았다.

노인의 말을 들은 목진은 낙리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생각했다.

낙리가 낙신족이란 말인가? 왜 여태껏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걸까?

낙리는 영치전에서 나와서야 목진의 손을 놨는데 뭔가 불안해 보였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목진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낙리는 고개를 흔들더니 이내 웃으며 답했다.

“신백단을 얻었으니 당장 뇌역에 가서 수련해. 나는 5급 취영진에 가서 수련하면서 네가 나오기를 기다릴게.”

목진은 낙리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소리 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내가 지금은 실력이 부족해서 너와 짐을 나눠서 질 수 없지만, 최대한 실력을 빨리 키울게. 네가 영로에서 내 뒤를 노리는 비수를 막아주겠다고 했지? 그럼 나는 네 앞에 서 있는 든든한 존재가 될 거야.”

이에 낙리는 목진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뇌역에 가볼게.”

말을 마친 목진은 손을 저어 인사를 하더니 바로 빛이 되어 뇌역으로 향했고 낙리는 멀어져가는 목진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미소 지으며 떠났다.

그 시각, 신생 구역에는 장발에 기가 매서운 청년이 신생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목진이 누구냐? 당장 나오라고 해!”

신생 구역에 갑자기 나타난 청년의 엄청난 영력을 감지한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엽경령, 묵령 등을 포함한 신생들이 적잖게 모여 있었는데 갑작스레 닥친 상황에 다들 인상을 찌푸렸다.

청년은 차가운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다들 귀먹었어? 신생 목진은 어디에 있어? 감히 신백방에 있던 내 이름을 지우더니 지금은 눈앞에 나타날 담도 없는 거야?”

신생들은 그제야 그가 목진이 신백방 3위를 빼앗은 일로 찾아왔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목진은 그곳에 없었다.

“선배, 목형은 볼 일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내일 다시 오세요.”

묵령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는 목진을 무시하는 이 청년이 언짢았지만, 감히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이곳에 없다니? 내가 올까 봐 두려워 일부러 숨은 건 아니야? 올해 신생들 실력이 괜찮은 줄 알았는데 다들 무능한 겁쟁이네.”

피식 웃으며 하는 청년의 말에 다들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곳에는 목진 말고도 주령처럼 북창계에 이미 이름을 떨친 실력자들이 적잖게 있었지만 청년의 진정한 실력을 본 적이 없어 다들 경계하는 눈치였다.

“무능한 놈들.”

청년은 화가 나면서도 꾸역꾸역 참는 신생들을 보니 더 기고만장하여 말했다.

“목진 오라버니를 욕하지 마세요!”

이때 어디선가 앳된 목소리가 들렸는데 엽경령 옆에 서 있던 순아였다. 그 뒤에 순간 거대한 광진이 생겼다.

“영진?”

청년은 순아 뒤에 생긴 광진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이토록 귀엽고 어린 계집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광진은 영력을 내뿜더니 풍망이 되어 살기를 드러내며 장발 청년을 공격했다.

청년은 순간 발을 굴러 몸속의 영력을 끌어내 풍망을 단숨에 부숴버렸다. 그리고 손을 튕겨 매서운 영력으로 순아를 공격했다.

“이런!”

이에 엽경령은 인상을 찌푸리며 어린 순아 앞에 나서서 웅장한 영력으로 방패를 만들었다.

엽경령은 청년의 공격을 막았지만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방패가 깨졌고, 힘에 못 이겨 뒤로 밀려나며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너무한 것 아닌가요?”

이때 묵령이 장발 청년에 대한 두려움도 잊은 채 버럭 화를 냈다.

“시끄러우니 그 입 다물어라. 역시 이번 신생들은 말썽꾸러기라 목진이 그런 짓을 벌였겠지. 오늘 내가 이곳 북창령원에서 선배를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마.”

장발 청년은 피식 웃더니 정색하며 옷깃을 휘둘렀고 영력이 거대한 손바닥으로 변해 신생들을 향했다.

북창령원에 들어온 신생 중 누구 하나 자부심이 강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고 아무리 보살이라도 청년의 비꼬는 말투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주령과 그 옆에 서 있던 건장한 소년 엄소가 힘을 합쳐 공격에 맞섰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주령과 엄소가 튕겨 나갔다. 두 사람은 곧 융천경의 경지에 도달하는 실력이지만 힘을 합쳐도 장발 청년과 실력 차이가 상당했다.

“그까짓 실력으로 주제도 모르고 감히 나 맥륜한테 덤볐던 거냐?”

맥륜은 콧방귀를 뀌며 주령과 엄소를 바라봤다.

“실력에 그렇게 자신 있으면서 왜 천방에 도전하지 않고 신생을 괴롭히는 겁니까? 그리고 오늘 목진과 낙리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당신이 나설 자격도 없었을 겁니다!”

주령이 이를 갈며 말했다.

“목진이란 놈은 분명 내가 올 것을 알고 미리 도망친 거야.”

맥륜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너희들도 그냥 둘 수 없으니 오늘 제대로 혼내줘야 할 것 같구나.”

“우리가 당신이 무서워서 참는 거라고 생각합니까?”

맥륜은 수천 명의 신생을 발끈하게 하였고 다들 하나가 되어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신생이긴 하지만 당신보다 수련한 시간이 짧을 뿐인데 뭐가 그리 잘났다고 이토록 우쭐거립니까? 당신이 이곳에 있는 신생들을 전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중 신생 3명이 주령과 엽경령의 앞에 나섰다. 영로에서 왕급 판정을 받은 사람들로 북창계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실력이 출중하였다.

자부심 때문에 평소에는 교류가 없었던 신생들이 똘똘 뭉치는 것을 보자 맥륜은 그제야 조금 겁을 먹었다. 곧 융천경의 경지에 이를 다섯 명도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고, 수천 명의 신생까지 합세하면 패배할 것이 분명하였다.

“너희처럼 안하무인인 신생들은 또 처음이구나!”

맥륜은 정색하며 말했다.

“힘을 합친다 이거냐? 오늘은 일단 봐줄 테니 내일 다시 와서 제대로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목진한테는 잘 숨어있으라고 전해라.”

맥륜은 말이 끝나자마자 피식 웃더니 바로 사라졌고, 주령은 이를 보며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다들 고마웠어.”

주령은 선뜻 나선 세 사람한테 시선을 돌려 인사했다.

“괜찮아. 우리가 신생이라고 깔보는데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적발의 염릉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보아하니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은데, 맥륜이 포기할 때까지만이라도 우리끼리 힘을 합치자.”

“목진은 수련하러 뇌역에 갔고 낙리도 따라간 것 같은데…….”

엽경령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엽경령은 목진과 친분이 있어 당연히 그들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도 좋을 것 같네.”

주령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맥륜이란 자는 안연보다도 실력이 뛰어난 것 같았다. 목진이 있었다 해도 큰 도움은 되지 않고 되려 수모만 당할 수도 있었다.

역시 주령도 암묵적으로 맥륜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목진이 갑자기 뇌역에 간 것은 분명 다른 의도가 있으리라.

“목진 오라버니는 저따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순아가 중얼거리며 하는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맥륜이 언제까지 소란을 피울지 모르니 다들 최대한 이곳에 머물지 말고 수련하러 나가자. 흥미를 잃으면 언젠가 포기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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