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맥륜
한편, 목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신생 구역으로 내려갔다.
“목진!”
신생들이 이때다 싶어 우르르 몰려들었다.
“목형, 드디어 돌아왔군요!”
묵령 등 사람들은 잔뜩 흥분하여 다가왔다.
“다들 괜찮아?”
목진은 이리 말하며 주위를 살폈는데 누구 하나 자신을 원망하지 않고 반기는 눈치였다. 이에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여 사죄하였다.
“이번 일은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너희들이 고생이 많았어.”
“고참들이 우리를 어찌하지는 못했으니 너무 미안해하지 마.”
주령이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 형님, 가당치도 않을 말씀이에요. 신백방은 우리 신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고 형님이 상위권에 든 것은 당연지사이에요. 고참들이 속이 좁은 것이니 너무 개의치 마세요. 우린 형님 편이에요.”
신생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래요. 목진 형님이 신백방 3위에 오른 것은 우리 신생들한테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저것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텃세를 부리고 있네요. 우리보다 이곳에서 좀 더 빨리 수련했을 뿐인데, 뭐가 저리 당당한지 모르겠어요.”
신생 구역이 순간 떠들썩해졌고, 다들 고참들한테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들 네 편이야. 비록 지금은 맥륜이 자리에 없지만, 다른 고참들이 번갈아 가며 이곳을 지키고 있어. 맥륜도 소식을 듣자마자 나타날 거야.”
주령의 말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절대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니 다들 걱정하지 마. 고참들이 이렇게까지 나왔는데 우리가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목진은 이리 말하더니 사색이 된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맥륜한테 당장 이곳으로 오라고 하세요. 나를 오매불망 기다렸다고 들었는데 올 때까지 꿈쩍 않고 기다리겠다고 전하세요.”
목진의 말에 한 고참이 합장하여 수중에서 빛을 내뿜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생 주제에 너무 나서네? 맥륜 형님 앞에서도 그럴 수 있나 두고 보자.”
그 모습에 고참 중 한 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에 목진은 그 청년을 흘겨보고선 더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맥륜이 한 짓을 듣고 불만은 있었으나 불똥이 튈까 봐 감히 나서지 못했던 기타 구역 신생들도 목진이 돌아왔단 소식에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양홍, 빙청과 목규도 이 구역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으니 목진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다.
목진은 그저 조용히 맥륜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후 멀리서 한 줄기의 빛이 자신을 향해 돌진하더니 누군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덧 빛이 사라지고 장발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은 주위를 쓰윽 훑더니 목진한테 눈길이 멈췄다.
“네가 목진이냐? 내가 너를 열흘도 넘게 기다렸다.”
장발 청년은 허공에 멈춘 채로 차가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도망 다니다가 더는 숨을 곳이 없어 나타난 것으로 착각하고 피식 웃었다.
“네가 목진이냐?”
목진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당신이 이렇게 속이 좁을 줄은 몰랐네요. 설마 다른 순위권에 도전할 생각은 못 하고 여태껏 신백방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가요?”
맥륜의 낯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입만 살아있구나. 그런데 감히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명을 단축하고 싶은 거야?”
“거참 말이 많네요.”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맥륜을 노려봤다.
“이제는 당신이 조용히 일을 넘기고 싶어도 내가 절대 그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이 내 친구들한테 준 수모를 내가 오늘 전부 돌려받을 테니까.”
이에 맥륜은 피식 웃더니 친구들한테 말했다.
“들었나? 저놈이 감히 나한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하네? 벌써 내게 용서를 비는 건가?”
고참들 또한 비웃듯 목진을 바라봤다.
“앞으로 너는 북창령원에서 무사하지 못할 거야.”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과연 있을까?”
목진은 담담하게 웃더니 맥륜한테 다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어디 덤벼보세요.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그만한 실력이 있기를 바래요. 그게 아니라면 분명 수치스러워 얼굴도 못 들 테니까.”
맥륜은 화가 나 목진을 째려봤다. 예상 밖인 목진의 태도가 몹시 거슬렸다. 맥륜은 선배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던 목진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기대했었다.
기대가 처참히 무너진 맥륜은 신생 따위가 겁도 없이 덤비니 단단히 혼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물러나라.”
이에 다른 고참들은 잔뜩 화가 난 맥륜에게 호되게 맞을 목진을 가여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조용히 물러났다.
“너는 내 이름을 신백방에서 없애서 좋아했을지 몰라도, 그것은 내가 한해 전에 남긴 기록이라 지금의 나와는 실력 차이가 엄청나다.”
맥륜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주먹에서 황금빛 영력이 웅장한 금광으로 변하여 몸속에서 흘러나왔다. 이를 본 신생들은 그가 융천경 중기의 실력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맥륜은 북창전에서 만났던 안연보다도 강력했다!
이에 목진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작 목진은 무덤덤하였다.
“지금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다.”
맥륜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먹을 휘둘렀는데, 금광이 놀라운 파동과 함께 번개처럼 목진을 향해 돌진했다.
이에 목진도 손가락을 굽히고 맥륜을 향해 찔렀고 백 척도 넘는 황금빛 기둥이 손가락에서 솟아올라 황금빛을 띤 예리한 창을 만들었다.
두 줄기의 황금빛이 부딪쳐 눈부신 빛을 뿜어내다가 점차 사라졌다. 이때, 목진이 황금빛을 꿰뚫고 맥륜 앞에 나타나 삼라사인 네 갈래가 깃든 주먹을 휘둘렀다.
맥륜은 목진의 공격에 당황했다. 목진이 이토록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건 비범한 공격 영결을 수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우쭐댔던 거라면 진정한 실력 차이를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이에 굳게 마음먹은 맥륜이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금염령지!”
맥륜의 손가락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와 이내 금색 화염으로 변해 네 갈래의 삼라사인을 내리찍었다.
황금빛과 검은색 두 갈래의 영력이 서로를 없애고자 안간힘을 썼다.
승부가 나지 않자 맥륜은 전력을 다해 또 한 번의 공격을 가했고, 황금빛이 번쩍이더니 끝내 삼라사인을 없앴다.
그런데 그때 목진의 권풍이 무서운 속도로 맥륜의 급소를 향해 돌진했고, 맥륜은 피식 웃더니 그의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
이렇게 두 갈래의 빛이 얽혀 하늘이 무척 눈부셨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다투며 내뿜는 엄청난 영력에 깜짝 놀랐다.
엽경령, 주령 등도 잔뜩 긴장해 지켜봤는데 짧은 시간 안에 대폭 성장한 목진의 실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융천경 중기에 이른 맥륜과 거뜬히 싸워내는 목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목진이 아직 신백경 후기일 뿐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 제아무리 전투력이 막강해도 싸움이 길어지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그때 ‘쿵’ 소리가 나며 두 사람이 갈라졌는데, 목진은 옷깃이 조금 찢어졌고 맥륜은 머리가 흐트러져있었다.
“역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췄으니 신백방에 있던 내 이름을 지우고 네가 3위에 올랐겠지.”
목진의 실력은 융천경 초기와 엇비슷하였다.
“그런데 시작은 지금부터이지 않나?”
맥륜은 장발을 휘날리며 목진을 향해 걸어갔고, 그의 몸에선 눈부신 황금빛이 흘러나왔다.
“금염검결, 만검참!”
맥륜은 금세 수인을 바꾸며 구결을 외쳤고 이에 눈앞에 수많은 황금빛 검영이 나타났다. 그러자 맥륜 주위의 영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맥륜이 끝내 목진에게 필살기를 사용한 것이다.
“맥륜 형님이 금염검결을 쓰게 만들다니, 저 자식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구나.”
그들을 지켜보던 고참들도 화들짝 놀랐다.
황금빛 검영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황금빛 폭포처럼 놀라운 속도로 쏟아져 내려 목진의 퇴로를 전부 막았다.
금염검결은 융천경 초기도 받아내기 어려운 공격이었지만, 맥륜은 필살기를 사용해서라도 싸움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엽경령, 주령 등 신생들은 손에 땀을 쥐고 하늘을 바라봤다. 웅장한 황금빛 폭포에 비하면 목진은 더없이 왜소해 보였다.
먼 곳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양홍, 빙청, 목규 세 사람도 하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필살기의 위력에 목진이 이를 대처할 방법이 없으면 패배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목진은 여전히 태연하게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매서운 황금빛 폭포를 바라보다 서서히 눈을 감았다.
어두운 빛이 점차 목진의 몸을 감싸더니 하늘 높이 솟구쳤고 목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수백 척이나 되는 9층 부도탑이 나타났다.
“몸이 부도가 되다.”
목진의 속삭임과 함께 허공에 나타난 부도탑에서 검은색 빛이 흘러나왔는데 황금빛 폭포수가 아무리 매서운 기세로 공격해도 끄떡없었다.
두 사람의 싸움에 주위의 공기마저 비틀어진 것 같았다.
맥륜과 멀리서 구경하던 양홍, 빙청, 목규 등 사람들은 순간 긴장했다. 이토록 매서운 공격에도 부도탑은 끄떡없었다. 맥륜의 공격이 목진한테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다.
“말도 안 돼!”
맥륜은 그제야 불안해졌다. 겁에 질려 도망 다녔다고만 여겼던 신생이 얼마나 기이하고 위험한 인물인지 뒤늦게 실감한 것이다.
황금빛 폭포수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는데, 멀리서 보면 꼭 검영이 이룬 폭풍과도 같았고 그 위력은 어마어마하였다.
이에 엽경령 등은 목진이 걱정됐다. 그때 갑자기 ‘윙’ 소리가 나면서 황금빛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속도가 점차 느려지더니 마침내 멈춰 섰다.
그리고 흑광이 황금빛 폭포수를 삼켰는데 그 속도가 실로 엄청났다.
반각도 안 되는 사이에 웅장한 황금빛 폭포수는 완전히 사라졌고, 허공에 솟아있던 검은색 부도탑에서 기이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검은색 광탑 표면에는 신비로운 광문만 새겨져 있고, 몸체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황금빛 폭포수의 공격에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이다.
“저 물건은 영기처럼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뭐지?”
다들 어리둥절하였고 엽경령도 목진이 이 수법을 사용하는 것을 처음 봤다.
그때 부도탑이 흔들리더니 검은빛이 흘러나왔고, 광탑이 갑자기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곧장 맥륜을 향해 떨어졌다.
그 압박감에 하늘과 땅을 맴돌던 영기마저 귀신을 본 듯 비켜섰다. 이에 맥륜은 더는 목진을 비웃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졌다.
“그래도 나를 이기기란 절대로 쉽지 않을 거야.”
맥륜은 경험이 풍부한 고참이었고 실력도 상당하여 재빨리 마음을 가다듬고 금광을 불러냈다. 기합 소리와 함께 금광이 순식간에 황금빛 맹수로 돌변하여 그를 보호하였다.
“저건 만수록 지방 91위인 금염수가 아닌가?”
엽경령 등은 화들짝 놀랐다. 맥륜이 어지간히 다급하지 않고서야 이런 맹수를 소환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금염수는 울부짖으며 수만 갈래의 금광을 내뿜었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부도탑을 노려보다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금염지각!”
금염수는 으르렁거리며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황금빛 부리를 추켜들고 하늘 높이 뛰어올라 부도탑과 충돌했다.
“당장 꺼져!”
금염수와 부도탑이 충돌해서 생긴 막강한 영력의 충격파에 거대한 파도가 생겨 주위로 퍼져나갔다.
“내가 잡을 건데 꺼지라니.”
금염수가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부도탑은 끄떡없었다. 목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색 광륜이 탑 아래에서부터 퍼져나가 눈부셨던 황금빛은 금세 어두워졌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에 맥륜은 차마 반응할 새도 없었다.
파죽지세로 달려드는 부도탑을 보노라니 금염수도 흠칫 놀라 체내의 영력을 끌어올려 최후의 공격을 했으나, 부도탑 밑의 검은색 광륜과 만나 금세 사라졌다.
검은색 부도탑은 그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자 금염수는 끝내 겁에 질렸다.
어느새 ‘쿵’하는 소리와 함께 부도탑이 금염수 위에 내려앉았고 그 위력에 하늘마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금염수는 비명을 지르며 몸집이 빠르게 작아졌고 이내 사람으로 돌아왔다.
맥륜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내던져졌다. 웅장했던 영기는 온데간데없어졌고 주위를 맴돌던 영력도 미약하고 무질서하였다.
맥륜이 내던져진 자리엔 깊은 웅덩이가 파였다. 그 웅덩이 안의 맥륜은 얼굴이 하얗게 변해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진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이에 다들 믿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고, 고참들도 사색이 된 맥륜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어떻게 융천경 중기인 맥륜이 신백경 후기밖에 안 되는 신생과 싸워 졌단 말인가?
고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침묵을 지켰고, 이번에 재수가 없어 엄청난 놈이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