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조직
“저 자식…….”
양홍이 멀리서 이곳을 바라보더니 검은빛 광탑에 시선이 멈췄다. 그 또한 목진의 실력에 놀랐다. 그리고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란 생각에 열흘 뒤에 있을 신생대회를 제대로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좀 하는군.”
다른 쪽에 있던 목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목규 역시 맥륜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이 지경까지 만들려면 엄청난 실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고작 신백경 후기의 실력으로 이를 해냈으니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편 빙청은 늘 그렇듯 무덤덤하였다. 푸른색을 띤 아름다운 눈망울은 그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그 외, 엽경령과 주령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목진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신생의 신분으로 고참을 꺾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묵령 등은 더 말할 나위 없었고 기타 신생들도 속이 후련하여 활짝 웃었다.
어느덧 하늘에 떠 있던 검은색 광탑은 빠르게 작아지더니 빛이 사라져 늘씬한 청년으로 돌아왔다. 목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맥륜에게 다가갔다.
이에 맥륜은 움찔하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번에는 네가 운이 좋아 나를 이겼지만, 다음번에는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
맥륜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이대로 떠나려는 건가요?”
목진이 피식 웃자 맥륜은 불길함을 느꼈지만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쩔 작정이야?”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이곳에 열흘도 넘게 가둬 두었는데 배상은 해야죠.”
목진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선배의 영치를 전부 내놓으시죠.”
“뭐?”
맥륜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목진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목진이 손을 가볍게 튕기자 괴성과 함께 맥륜 옆에 있는 견고한 암석에 깊숙한 구멍이 뚫렸다.
“내가 비록 당신을 죽일 수는 없지만 당신을 신생 구역의 나무에 걸어놓을 수는 있죠. 그리되면 당신은 앞으로 더는 북창령원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겠지요?”
목진의 무덤덤한 웃음에 맥륜은 소름이 끼쳤다.
“잘못했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죠. 안 그럼 당신은 절대 버릇을 고치지 않을 테니까.”
“망할 자식!”
맥륜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소리를 질렀다.
“내가 ‘청홍회’ 소속인 걸 몰라? 네가 나를 이렇게 홀대하면 앞으로 북창령원에서 무사하지 못할 거야!”
목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맥륜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의 옷깃을 잡고 장풍을 쐈다. 그러자 맥륜의 사지가 탈골되었다.
“너!”
맥륜은 사색이 되어 고통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잠시만!”
이 꼴로 나무 위에 걸리면 앞으로 북창령원에서 더는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맥륜은 드디어 꼬리를 내렸다.
“오늘의 수모는 내 언젠가 갚아줄 거야!”
맥륜은 수중의 영치패를 목진에게 건네주었고, 그 위에 적힌 수치를 확인한 목진은 매우 기뻐했다.
맥륜의 영치패에는 무려 이십만의 영치가 있었다.
이십 만 영치.
맥륜이 이렇게나 많은 영치를 보유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걸 모으느라 애썼을 텐데 내놓으라 하니 당연히 안색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목진은 주령에게 영치를 건네면서 말했다.
“주형, 영치를 다 나눠주게. 내가 미안해서 그래.”
“그래도 되나…….”
신생들도 그저 받기가 미안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주령이 머뭇거리자 엽경령이 웃으면서 말했다.
“목진이 말한 대로 해.”
목진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니 아무리 신생들이 목진을 탓하지 않아도 목진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영치를 나눠줌으로써 목진의 넓은 도량을 나타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주령은 머뭇거리다 염릉과 눈길을 주고받고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주령은 영치패에서 십칠만 영치만 가져가고 삼만 영치가 남은 영치패를 목진에게 돌려주었다.
“네가 이겨서 얻은 전리품이니 남은 건 네가 가져가. 우린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목진은 굳이 거절하지 않았고 영치패의 남은 영치를 가져갔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영치패를 화가 나 얼굴색이 새파래진 맥륜에게 던져주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모두를 대신해 선배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맥륜은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로 텅텅 빈 영치패를 보며 화를 억눌렀다. 반년 동안 힘들게 모아온 영치를 한 번에 다 빼앗긴 것이다.
맥륜을 뒤따라온 청년들이 이 광경을 보고선 목진을 노려보았다.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어찌 감히 영치를 빼앗는 거야!”
그들의 화난 목소리에도 목진은 전혀 개의치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
“빼앗은 게 아니라 배상이라고 말했습니다만. 설마 당신들도 더 보태고 싶어서 그래요? 제가 없는 며칠 동안 당신들도 한 몫 크게 한 것 같던데.”
목진의 말에 청년들은 흠칫했다. 맥륜이 어떻게 목진에게 졌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지금은 감히 덤벼들 자신이 없었다.
“우리 청홍회는 절대 이번 일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한 청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두지 않을 거면 저만 찾으세요. 다른 사람들은 괴롭히지 마시고요.”
목진의 눈빛도 순간 차가워졌다. 청홍회가 뭔지는 몰라도 그게 무엇이든 그 누구도 자신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냥 신생이지만 신생이라고 무시한다면 그들의 오만함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딱 기다려!”
수많은 신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쪽팔려하던 청년들은 급히 자리를 떠났다. 며칠간 그들이 했던 짓에 신생뿐만 아니라 고참들도 심기가 불편했다. 맥륜도 졌겠다, 이때다 싶어 다들 한꺼번에 덤빈다면 그들은 물론이고 청홍회도 비웃음을 당할 게 뻔했다.
그들은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허겁지겁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는 그들을 보며 신생들은 그간의 서러움을 토해내듯 환호했다.
“역시 목형이야!”
묵령이 흥분되어 큰소리로 외치자 다른 신생들도 따라 외쳤다. 그들의 외침이 얼마나 큰지 멀리에 있는 다른 신생 구역에서도 들릴 지경이었다.
“대단하다…….”
다른 구역의 신생들도 목진의 실력에 탄복했다. 그들이 맥륜에게 당한 건 아니지만 똑같은 신생으로 맥륜이 저지른 만행에 분개하고 있었다. 또한 목진이 맥륜을 이겼으니 신생의 면을 세워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목진과 같은 구역에 있었던 신생 중 일부는 일이 터지자 다른 구역으로 이동 신청을 했었다. 그런데 일이 다시 이렇게 되어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는커녕 회피했다는 모양새가 그리 보기 좋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멀리 공중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양홍은 콧방귀를 뀌며 자리를 떴다.
“탐나는 상대네.”
목규는 열정 가득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빙청은 멀리서 목진을 바라보면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로의 혈화자 목진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났다. 그러니 영로에서 나온 사람들이 목진을 두려워하는 거겠지.
그렇게 구경하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전투는 끝났지만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탑의 위력이 뇌리에 박힌 것처럼 잊히지 않았다. 신백경 후기밖에 안 되는 목진이 어떻게 저런 막강한 실력을 지니고 있을까?
“열흘 후의 신생대회가 기대되는군. 과연 목진이 강할까, 아니면 홍양, 목규, 빙청이 더 강할까?”
그들은 과연 누가 일인자가 될지 무척 궁금했다.
주령은 여전히 흥분의 도가니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생들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십칠만 영치를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적지 않은 영치였지만 수백 명이나 되는 신생들에게 나눠주고 나니 각자 받은 영치는 천 남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신생들은 매우 고마워했다.
“그새 실력이 또 늘었구나.”
엽경령이 목진에게 다가가 웃으면서 말했다.
“조금 오른 것뿐이죠.”
엽경령의 말에 목진도 웃으면서 답했다. 이번에 대부도결을 돌파하지 못했더라면 맥륜을 이렇게 쉽게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분명 저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난리를 칠 텐데.”
엽경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속 좁은 맥륜이 자신의 영치를 다 빼앗아간 목진을 가만둘 리 없었다.
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는 맥륜처럼 약한 자에게 강한 티를 내는 사람에겐 절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맥륜은 그렇다 쳐도 청홍회가 문제야.”
영치를 다 나눠준 주령은 목진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청홍회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
목진은 궁금했는지 물었다.
“북창령원엔 학생들만 백만 명 정도 되는데, 그 중엔 숨어있는 인재들이 많아. 그런 이들이 크고 작은 조직을 만들었고 지금은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 잡았지. 그들끼리도 복잡하게 얽혀있어. 청홍회는 그중에서도 꽤 유명한 조직이야. 청홍회에는 강자도 많을뿐더러 그들의 우두머리는 천방 100위 안에 들었다고 들었어. 적어도 융천경 후기의 실력일 거야.”
“융천경 후기라…….”
융천경 후기면 북창령원에서는 훌륭한 수준이었다. 그걸 믿고 청홍회의 사람들이 날뛰는 것이다. 융천경 후기인 우두머리가 있으니 저토록 신생들을 깔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엽경령과 염릉도 심각한 얼굴을 했다. 그 정도 실력을 지닌 선배들이라면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막아야지. 맥륜이 청홍회를 앞세워 날 상대한다면 나도 참지 않고 반격할 거야.”
목진은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난 그저 조용히 지내고 싶거든.”
주령과 다른 이들도 목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청홍회가 오늘 맥륜이 당한 일로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 몰라 걱정이 됐다.
“그리고…….”
주령과 다른 이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머뭇거렸다.
“걱정하지 말고 얘기해 봐.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꼭 도울게.”
그들이 주저하는 모습에 목진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 일이 있고 나서 주령과 다른 이들을 친구로 두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가항력의 사건이었지만 그를 원망하거나 상처 주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일 때문에 많은 사람이 우리 구역을 떠났어. 하지만 남아 있는 학우들은 정말 괜찮은 사람들이야. 또 서로 믿고 있기도 하고…….”
주령은 부끄러운 듯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도 조직을 하나 만들까 해. 혼자보다는 여럿이 낫다고 사건이 터져도 서로 도울 수 있잖아.”
목진은 주령이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말에 조금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신생들 사이에서 벌써 많은 조직이 생겼어. 가장 유명한 건 비룡회(飛龍會) 인데 양홍이 만든 조직이야. 그리고 목규가 만든 철목단(鐵木團)도 있어. 그들을 제외하고도 많은 세력이 존재해…….”
목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조직이 생기고 세력이 생겼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우리가 조직을 만들게 된다면 똑같이 실력이 있는 자가 이끌어야 해. 그래서 말인데…….”
주령은 목진을 향해 활짝 웃었다.
목진은 그들의 기대에 찬 눈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조직을 만드는 거에 크게 관심은 없지만, 너희들이 만든다면 적극 지지할 생각은 있어.”
목진의 긍정적인 대답에 주령과 다른 이들은 매우 기뻐했다. 그때 주령이 쭈뼛거리더니 목진에게 물었다.
“낙리에게도 우리 조직에 들어오라고 하면 안 될까? 낙리가 있으면 우리 조직이 훨씬 유명해질 거야.”
그들이 말에 목진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 크게 웃었다.
“이제 보니 내가 아니라 낙리가 목적이었구나.”
“낙리는 얼굴도 예쁜 데다 실력도 출중하고 기질도 뛰어나서 신생들뿐만 아니라 북창령원을 통틀어도 낙리 만한 사람이 없어.”
주령은 난처한 듯 변명했다.
목진은 황당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낙리한테 얘기해볼게. 들어올지 말지는 낙리가 결정하겠지.”
“그럼 잘 부탁할게.”
주령과 다른 이들은 매우 기뻤다. 평소에 수련 말고는 관심이 없는 낙리에게 그들이 가서 부탁해봤자 거절당할 게 뻔했다. 하지만 목진이 나서준다면 말이 다르다.
목진과 낙리가 조직에 들어온다면 분명 기세를 크게 떨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