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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27화 (126/1,000)

127화. 부정행위

목진이 나타나면서 맥륜의 패거리는 자연스레 물러났고 신생 구역도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때의 그 전투는 아직도 신생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곤 했다. 몇몇 고참도 그들의 전투에 대해 전해 듣고 무척 놀라워했다.

고참들 사이에서 맥륜의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어도 곧 융천경 중기에 달하는 실력을 지닌 자였다. 북창령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생이 쉽게 이길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의 예상과 달리 맥륜은 패배했다.

그것도 목진이라는 신생한테 반항도 못 하고 처참하게 패배했다.

고참들은 대부분 맥륜이 패한 것에 대해 콧방귀를 뀌었다. 맥륜이 얼마나 속이 좁은지 그들도 다 알기 때문이다. 그가 목진에게만 따지러 갔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신생들을 감금한 일은 정말 비열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누구나 다 신생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맥륜의 행동이 매우 못마땅했다.

맥륜이 진 것도 모자라 반년 동안 모은 영치를 다 빼앗겼다는 걸 들은 고참들은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로 체면을 잃었으니 당분간은 날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목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맥륜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렀을 뿐이다. 북창령원의 규칙만 아니었다면 영치를 가져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끄럽던 신생 구역도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목진은 또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할까 봐 며칠간은 신생 구역에 머물러 있었다.

다행히도 더는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고 맥륜은 어디에 숨어들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주령은 조직을 만드는 데에 집중했고 신생들은 그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북창령원에서의 경쟁은 생각보다 더 치열했다. 보름 동안 북창령원에서 생활하면서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혼자보다는 여럿이 낫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주령은 생각보다 쉽게 조직을 만들었고, 이에 적잖은 기쁨을 느꼈다. 그들은 북창계에서도 조직을 만들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만 잠시일 뿐이었다. 그들은 앞으로 긴 시간을 북창령원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북창령원에서 조직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였다.

그들과 달리 목진은 조직을 만드는 데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들을 지지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주령과 다른 이들은 오히려 수련에만 집중하는 목진의 모습에 찬성했다. 조직이 강대해지려면 그만큼 강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겐 목진과 낙리가 곧 강한 힘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목진이 수련할 때 방해하지 않으려 애썼다. 덕분에 목진은 한가하게 보낼 수 있었다.

다락방에서 목진이 양반다리를 한 채 대부도결을 돌려 하늘과 땅 사이에 넘쳐나는 영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4급 취영진에 있는 신생 구역인지라 영기가 매우 농후했다. 북령원에 있는 3급 취영진에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수련 속도가 족히 북령원의 두 배나 되기 때문이다.

“4급 취영진이 이 정도면 5급, 6급은 얼마나 더 강할까?”

문뜩 상위 등급의 취영진을 구경해본 적이 없는 목진은 매우 궁금했다. 5, 6급의 취영진은 북령경은 막론하고 백령대륙에도 얼마 없을 것이다.

“낙리는 5급 취영진에서 수련 중이겠지? 그런데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야.”

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낙리는 목진도 감탄할 만큼 수련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영로에서 낙리를 그들의 손아귀에서 구할 때부터 낙리는 목진에게 흔들렸다. 보통 여인이라면 그러한 호감을 고이 간직할 텐데 낙리는 오히려 호감을 없애려고 목진을 죽이려고 했다.

그때의 낙리에겐 남녀 간의 호감이 수련을 방해하는 요소로 느껴졌고, 내면의 갈등 속에서 몸부림을 치다 결국 반년 동안 목진을 따라다니면서 죽이려 한 것이다.

낙리는 매우 냉정한 사람이다. 그녀는 항상 방관자처럼 모든 걸 내려다보곤 하였는데 제아무리 냉정해도 낙리도 여인이었다.

반년 후, 드디어 목진을 이기고 장검을 그의 목에 들이댔을 때 그제야 낙리는 이미 목진에게 푹 빠져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한 감정에 빠지는 순간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해진다.

길고 긴 싸움에서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사냥감이었을까?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 누구도 정확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은 낙리의 수련에 대한 집착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목진은 가끔 그런 낙리의 모습에 동정을 느꼈다. 하지만 목진은 그런 낙리를 막아서는 대신 그녀보다 더 열심히 수련하려고 노력했다.

“낙리는…….”

목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낙리의 배경이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영치전 노인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목진은 더 궁금했다. 낙리는 왜 그렇게 수련에 집착하는 것일까?

목진이 알고 있는 낙리는 그렇게 수련에 집착할 아이가 아니었다. 가끔 낙리가 수련을 혐오하고 거부한다는 것도 느끼곤 했으니까.

목진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생각에서 벗어나려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는 낙리가 직접 그에게 말해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먼저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생각을 마친 목진은 주먹을 쥐어 영치패를 소환했다. 영치패에 삼만 영치라고 적혀있었다.

“삼만밖에 안 되네.”

북명용곤의 정혈을 사려면 아직 육백구십칠만 영치가 부족했다. 맥륜이 이십만 영치를 모으는데 반년 정도 걸렸다고 했으니 육백만이 넘는 영치를 모으려면 십여 년이 걸린단 말인가?

“목진.”

고민 중인 목진에게 구유작이 말을 걸어왔다.

“왜?”

“이 천뢰주들을 팔면 얼마나 나오나 한번 보게.”

구유작의 득의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어두운 빛이 몸속에서 흘러나왔다.

쿠르릉.

어두운 빛과 함께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그 빛 속엔 놀랍게도 천뢰주가 빽빽하게 들어있었다. 손가락만 한 구슬에서 농후한 힘이 흘러넘쳤다.

“이건 천뢰주잖아? 이렇게 많은 천뢰주를 어떻게 얻은 거야?”

목진은 놀라움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얼핏 봐도 오백 개는 넘었다. 개당 이백 영치라면 적어도 십만 영치는 된다.

“뇌역에서 수련할 때 나도 천뢰의 힘을 조금 흡수했네. 그리고 그 힘으로 이걸 만들었지.”

구유작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 차 있었다.

“팔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이걸 팔면 얼마나 되느냐?”

“십만 영치.”

“칠백만 영치가 부족하지만 괜찮네. 뇌역을 몇 번만 더 다녀오는 건 어떤가? 내가 최선을 다해서 천뢰주를 더 빨리 만들도록 하겠네.”

십만밖에 안 된다는 말에 구유작은 조금 실망한 듯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최선을 다한다고? 또 얼마나 시끄럽게 일을 벌이려고 그래? 북창령원의 윗분들이 눈치챌 거야. 그렇게 되면 부정행위로 여겨 무슨 조치라도 취하면 그간 고생한 게 헛되지 않겠어?”

목진은 괜히 일을 크게 벌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리 당당한 건 아니니까.

“그럼 난 대체 언제 북명용곤의 정혈을 얻을 수 있는 거야?”

구유작은 목진의 말에 동의하지만 그래도 억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정혈이 코앞에 있는데 영치에 발목을 잡힐 줄이야.

“시간은 넉넉하니 천천히 모아보자.”

목진은 실의에 빠진 구유작을 위로했다.

“그럼 이 천뢰주들은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게. 다시 뇌역에 가게 되면 내가 몰래 천뢰주를 만들도록 하겠네. 최대한 남들이 눈치를 못 채게 말이야.”

구유작의 말에 목진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뢰주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고, 눈 깜짝할 새에 지붕 꼭대기에 자리를 잡았다. 목진은 지붕 위의 늘씬한 그림자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수련이 끝났구나.’

낙리는 목진을 보면서 미소를 짓더니 이내 매우 놀란 눈으로 물었다.

“신백경 후기를 돌파한 거야?”

목진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수련했구나.”

“5급 취영진에서 수련을 했는데 효과가 정말 좋아. 그나저나…….”

낙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신백방에서 너한테 밀린 맥륜이 널 찾아왔다고 들었어. 그래서 수련 중에 급하게 나온 거야.”

목진은 그간 있었던 일을 낙리에게 들려주었다.

목진의 얘기를 들은 낙리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더니 목진에게 말했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 내가 여기에 남았었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아니야. 그저 소란만 피우는 망나니일 뿐이야.”

목진은 개의치 않은 듯 싱긋 웃었다. 목진은 한 번도 맥륜을 자신이 전력을 다해 상대할만한 상대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 맞다.”

목진은 낙리에게 주령이 조직을 만들 거라는 계획을 알렸다.

“조직? 북창령원에 조직이 많기는 하지. 혼자보다는 여럿이 낫기는 하니까. 네가 지지한다면 나도 지지해.”

역시 목진의 예상대로 낙리는 이러한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찬성하는 것도 대부분은 목진이 찬성하기 때문이다.

낙리의 말에 목진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웃기만 했다. 그때 저 멀리서 거센 바람소리가 들려왔는데 자세히 보니 주령과 엽경령이었다.

멀리서도 바로 낙리를 알아본 주령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그는 엽경령과 함께 잽싸게 날아 지붕 위에 안착했다.

“낙리, 드디어 돌아왔구나.”

주령은 기쁜 얼굴로 낙리에게 말했다. 주령의 말에 낙리는 그저 웃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조직을 만드는 일은 잘 되어가고 있어?”

목진이 웃으면서 주령에게 물었다.

“지금 그걸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우리 조직에 가입하겠다는 사람만 칠백 명이 넘어. 다 우리 구역의 학우들이야. 앞으로는 심사를 거쳐야 들어올 수 있어.”

“그래, 너희들이 알아서 잘하겠지. 그리고 우리는 조직에 개입할 생각도, 나설 생각도 없어.”

“모든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거야. 너희들은 그저 북창령원에서의 명성과 지위만 잘 유지하면 돼.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조직에 큰 힘이 될 테니까. 앞으로 천방에서 1위와 2위에 오르면 우리 조직은 북창령원에서 가장 강한 조직으로 거듭날 거야.”

“욕심이 엄청나네.”

천방의 1위와 2위라니, 그건 정말 그만의 욕심이었다.

“조직의 이름은 뭐야?”

목진은 문뜩 궁금했는지 물었고 주령은 웃으면서 낙리를 쳐다봤다.

“우리 조직의 이름은…… 낙신회야.”

“낙신회?”

낙신회라는 말에 목진과 낙리는 잠깐 멍해졌다. 누가 들어도 낙리가 만든 조직 같았기 때문이다.

“신생들 사이에서 낙리는 여신과도 같은 존재야. 그래서 낙리의 이름을 빌려 만들었어. 내가 장담하지만 앞으로 북창령원에서 가장 환영받는 여인이 될 거야.”

주령은 신이 난 채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낙신회 휘장도 만들었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령은 품에서 정교한 휘장 하나를 꺼냈다. 어두운 푸른 빛을 띤 휘장엔 물결무늬가 있었고, 그사이에 검은색 옷을 입은 은발 소녀가 서 있었다.

누가 봐도 휘장 속의 소녀는 낙리였다. 목진은 헛기침을 하면서 정중하게 말했다.

“가뜩이나 매력 넘치는데 너희들이 이렇게 휘장까지 만들어버렸으니 더 많은 남자가 낙리에게 접근하겠네. 나만 골치가 아파졌어.”

목진의 말에 주령은 난처해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너도 휘장에 넣어줄까? 그럼 다들 낙리가 임자가 있다는 걸 알지 않을까?”

그러자 목진은 주령의 어깨를 힘차게 두드리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그렇게 좋은 생각이 있다니 정말 믿음직스럽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엽경령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낙리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괜히 목진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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