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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29화 (128/1,000)

129화. 천방 2위, 이현통

거울과 같은 하늘에선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고 그 광경은 마치 선경과도 같았다. 하늘과 땅 사이엔 잔잔한 안개가 껴있었고 그 안개는 흩어지지 않고 둥둥 떠서 바람을 따라 움직이기도 하는데, 그 안개 속에서 가끔 특이한 파동이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영기였다.

선경의 깊숙한 곳에는 거대한 폭포가 산을 가로질러 떨어지면서 우레와 같은 소리를 냈다.

알록달록한 폭포에서 매서운 파동이 느껴졌는데, 자세히 느껴보면 알 수 있듯이 이 폭포는 영력으로 이루어진 폭포였다.

북창령원의 신생이 보게 되면 실로 놀랄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절대 감당하지 못할 곳이었다.

영기가 농후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여기서 수련했다간 넘쳐나는 영기를 담아내지 못해 경맥이 터져 그대로 죽을 수도 있었다.

이곳은 바로 북창령원의 10개밖에 안 되는 7급 취영진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었다.

폭포가 떨어지는 곳에는 커다란 푸른 바위가 있었다. 그 위에는 웬 사람이 양반다리를 한 채 조용히 앉아있었고, 그의 몸은 주변의 영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옅은 빛이 그를 뒤덮고 있었는데 그 빛이 마치 무지개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 있는 청년은 하늘과 땅 사이에 녹아든 것처럼 보일 듯 말 듯 했다.

그는 준수한 얼굴에 푸른색 옷을 입고 있었고, 긴 머리는 바람에 의해 가볍게 휘날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수련한 그가 서서히 눈을 뜨자 그의 두 눈에서 화려한 빛이 돌았다. 한참이 지나자 그는 흰색 기를 내뱉었고 바로 그 기를 불었다.

쾅!

그러자 흰색 기에 영력이 깃든 것처럼 강력한 빛이 되어 폭포를 갈랐다. 순간 폭포가 그 빛에 잘린 것만 같았다.

청년은 담담하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폭포를 보고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림자 하나가 그를 향해 날아오더니 어느새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았다.

“심창생은 소식이 없나?”

푸른 옷 청년이 기지개를 켜면서 물었다.

“천급 임무를 받고 밖에 나갔어. 구음종을 잡으러 간다고 하던데. 구음종이 북창에서 수련 중인 사람 열댓을 죽였다고 하더군.”

푸른 옷 청년의 물음에 검은 옷 청년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답했다.

“구음종? 보잘것없는 세력이긴 하지만 그 종주가 화천경의 실력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들 또한 은닉과 습격에 능하다고 들었는데 심창생 혼자서 해낼 수 있을까? 딱 봐도 단체 임무인데. 참 대담하네.”

“혼자서 해결하지 못할까 봐 그래?”

검은 옷 청년이 웃으면서 물었다.

“그 녀석이라면 안 될 것도 없지. 고작 구음종이 그를 이기기는 힘들지.”

푸른 옷 청년은 고개를 저으면서 답했다.

“신생대회에서 네가 고작 그런 놈한테 한 수에 지다니.”

“어떨 땐 그 한 수가 더 큰 차이가 되는 거지.”

푸른 옷 청년은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거의 1년 동안 그와 겨뤄보지 못했네. 나도 이젠 근질거려. 그의 심판신결(審判神訣)이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 궁금하네.”

그러자 검은 옷 청년이 조금은 놀란 듯 물었다.

“그나저나 너의 천현신결(天玄神訣)도 더 강해진 것 같네?”

“그냥 조금 강해진 것뿐이야.”

푸른 옷 청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요즘 북창령원에는 무슨 재미난 일이 없어? 벌써 여기에서 수련한지도 석 달이 지났네. 그 녀석들이 또 무슨 사고를 친 건 아니지?”

“심판단(審判團) 녀석들이야 항상 똑같이 제멋대로지. 어쩌겠어, 심창생이 거기에 있는걸. 다른 사람들은 제법 조용히 수련하면서 지내고 있어.”

“심판단 녀석들이 제아무리 제멋대로여도 우리 현방(玄幫)에겐 감히 어쩌질 못하지. 오히려 다른 녀석들이 더 난리야. 특히 학요(鶴妖) 그 녀석은 항상 날 도발해. 학요가 천방 4위밖에 안 되지만 전력을 다하면 소훤도 그를 막진 못할 거야. 다만 그 녀석이 소훤을 좋아하니까 소훤의 자리를 건드리지 않는 거야.”

“그래서 널 노리는 건가?”

검은 옷 청년의 말에 푸른 옷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 천방 10위 안에 드는 사람들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어. 다만 몇 년간 항상 그들 위에 내가 있다는 건 그만큼 내가 강하다는 게 아니겠어? 그 누구도 쉽게 나를 꺽지는 못해.”

검은 옷 청년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핏 들으면 매우 건방진 발언 같지만, 눈앞의 푸른 옷 청년이 천방 2위인 이현통이기 때문에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북창령원에서 이현통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 변태 같은 존재밖에 없다.

“이번에 신생들이 들어왔어. 내일이 신생대회인데 듣기론 꽤 강한 신생들이 들어왔다고 하더군.”

“누군데?”

이현통은 소매를 휘저으면서 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독 다섯 명이 눈에 띄어. 양홍, 목규, 그리고 조금은 특이한 목진이라는 신생도 있어. 신백경 후기인데 융천경 중기인 맥륜을 이겼다고 하더군.”

“그리고 남은 둘은 여자야. 하나는 빙령족의 빙청이고 다른 하나는 낙리라는 아이야.”

검은 옷 청년은 갑자기 굳어버린 이현통을 보면서 의아했다.

“누구라고?”

이현통의 물음에 검은 옷 청년은 잠깐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다시 낙리라는 이름을 말했다. 낙리라는 말에 푸른 옷 청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낙리?”

이현통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낙리가 어떻게 여기 북창령원에 온 거지? 낙리가 어떻게 생겼는데?”

검은 옷 청년은 의아한 눈으로 이현통을 바라보면서 낙리의 생김새를 묘사했다.

“정말이네, 정말이구나.”

이현통은 호탕하게 웃었다.

“낙리를 알아?”

검은 옷 청년은 깜짝 놀라 물었다. 이현통이 처음으로 여인의 이름을 듣고 이같은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옷 청년은 안타깝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혹시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거라면 참 아쉬운 소식이겠지만 그녀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바로 목진이라는 신생이야. 내가 알기론 두 사람은 동거 중이야.”

청년의 말에 이현통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내가 들었던 것들이 모두 사실이네.”

검은 옷 청년은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현통에게 말했다.

“내가 그 신생을 손봐줄까?”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이현통은 웃으면서 거절했다. 이내 멀리 있는 출구를 보더니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그녀를 만나야겠어. 몇 년을 못 봤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가봐야겠네. 그다지 기분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연적이야? 네가 이렇게 훌륭한데 널 안 좋아해?”

“난 그녀를 동생으로만 생각했어.”

검은 옷 청년이 입을 삐죽거리자 이현통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낙리는 날 안 좋아해. 그리고 낙리의 상황도 매우 복잡하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번쩍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검은 옷 청년은 그런 이현통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낙리라는 여인이 얼마나 중요하면 수련도 멈추고 그녀를 찾아가는 것일까.

* * *

신생 구역의 광장에 수많은 신생들이 모여있었다. 목진과 낙리는 광장의 중앙에 서서 열심히 수련 중인 낙신회 사람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낙리는 손을 들어 이마에 붙은 머리를 떼려 했다. 그때 멀리서 다가오는 한 그림자에 낙리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분명 눈에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 주변 사람들은 마치 그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를 눈치챈 목진은 다가오는 그 그림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다가오는 그림자에선 알 수 없는 위험이 느껴졌다.

그 청년은 곧 목진과 낙리 앞까지 왔고, 그는 웃으면서 낙리에게 말을 걸었다.

“낙리, 오랜만이야.”

그가 앞까지 와서야 광장의 신생들이 그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들은 빠르게 몰려들어서 경계에 찬 눈으로 청년을 훑어보았다.

낙리는 청년을 빤히 보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리고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통, 오랜만이야.”

낙리가 자그마한 입으로 이현통이란 이름을 내뱉자 떠들썩했던 광장은 순간 조용해졌다. 낙신회 회원들도 흠칫 놀랐다. 천방 2위에 북창령원에서 명성이 자자한 이현통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 믿기지 않은 것이다.

북창령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들과 달리 이현통은 이미 수많은 이들의 숭배를 받는 신적인 존재였다.

한편, 목진은 수려한 장발 청년의 신분에 놀라긴 했으나 일말의 경외감이나 두려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북창령원에 왔구나.”

이현통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낙리 옆에 서 있는 목진에게 눈길을 돌리더니 이내 정색했다.

낙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넌 여전하구나. 너는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이현통은 무안하여 가볍게 웃으며 낙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일이야.”

낙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사람들은 이현통과 낙리가 아는 사이라는 걸 눈치챘다.

“내가 들은 게 있는데 그 소식이 진짜야?”

이현통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

“너도 충동적인 선택을 할 때가 있구나.”

이에 낙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저 사람 때문이야?”

이현통은 다시 목진한테 눈길을 돌리며 담담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이현통의 물음에 낙리가 목진의 앞에 나서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자신의 손을 꼭 잡았다. 뒤돌아보니 다름 아닌 목진이었다. 그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목진은 낙리가 모든 걸 감당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남자라면 더욱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진은 낙리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들어 이현통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이현통 선배. 목진이라고 해요.”

이현통은 묵묵히 목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된 기류에 다들 압박감을 느꼈고 이들과 가까운 곳에 있던 학생들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려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목진은 끄떡없었고 이현통의 압박에도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압박감은 금세 사라졌고 옆에서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주령 등도 이내 시름을 놓았다. 얼마나 실력이 뛰어났으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걸까?

“네가 방금 그런 행동을 하지만 않았어도 난 너와 말조차 섞지 않았을 거야.”

이현통은 무덤덤하게 목진을 보며 말했다.

“영광이군요.”

이현통은 오만함이 뼛속까지 배어있는 사람이었다. 그 오만함은 엄청난 실력에서 왔을 거란 생각에 목진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와 낙리를 위해서 최대한 빨리 낙리한테서 떠나.”

이현통의 말에 낙리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입을 열려고 하자 목진이 먼저 막아섰다.

“그 일이라면 못 들은 것으로 할게요. 내가 분수를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말해도 좋고, 내가 많이 다칠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목진은 낙리의 손을 더 꽉 잡고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저 얻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 낙리의 곁을 지키는 일이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갈 거예요.”

이현통은 인상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는 낙리가 뭘 떠안고 사는지 전혀 몰라. 이 세계는 처음부터 불공평했고 낙리는 이런 불공평한 세상에서 힘겹게 살고 있어. 아마 낙리는 너 때문에 북창령원에 왔겠지. 그런데 그런 시간이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나 해?

너는 낙리와 함께라면 마냥 행복할 테지만 낙리는 얼마나 큰 대가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알기나 하냔 말이야. 그러니까 애처럼 떼쓰지 말고 낙리한테서 당장 떨어져.”

이현통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낙리는 너한테 과분한 사람이야.”

목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꽉 쥔 낙리의 손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게 무슨 뜻이죠?”

“2년의 자유를 위해 낙리는…….”

이현통이 애잔해하며 말을 하려는데 검을 빼는 소리와 함께 주위에 갑자기 엄청난 영기가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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