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신생대회
날카로운 검광이 하늘로 치솟더니 낙리는 순식간에 이현통 앞에 나타났다. 검은색 장검이 날을 세운 채 이현통을 가리켰다.
“이현통, 우리가 친구이긴 하나 내 일에 간섭할 권리는 없어. 그렇지 않으면 내 검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알게 될 거야.”
낙리의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한 눈에서 한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현통은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낙리가 무언가를 지키려고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만 그것이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뭇 괴로웠다.
“저 녀석이 대체 뭐라고 그러는 거야? 너도 네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면서…….”
낙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고개를 숙여 담담하게 웃었다. 목진 덕분에 단조로웠던 삶이 다채로워졌고 지루하기만 했던 수련이 재미있어진 것만으로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목진은 입을 꼭 다물고 다가가 낙리의 장검을 거두고 이현통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비록 낙리가 북창령원에 온 이유는 모르지만 낙리가 영로에서 내 뒤에 서서 뒤통수를 노리는 자들을 모두 물리치겠다고 말했던 순간부터, 무슨 대가를 치르든 낙리의 앞은 내가 지키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지금의 너는 나마저도 이기지 못할 텐데 무슨 자격으로 그런 호언장담을 하는 거지?”
이현통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
“더 강해져야죠.”
목진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확고한 신념이 묻어났다. 그는 자신의 실력은 아직 보잘것없지만 언젠가 낙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낙관적인 건 좋은데 현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냉혹할 거야.”
이현통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어떤 말을 해도 생각이 바뀌지 않아. 난 여전히 너한테 낙리는 과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네가 포기할 때까지 두 사람을 말릴 거야.”
“그럼…….”
목진은 피식 웃더니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내가 언젠가 선배와 싸워 이기면 다시는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마세요.”
“오만방자한 녀석.”
이현통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일단 이번 신생대회에서 1등부터 해. 만약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난 절대 너를 상대하지 않을 거야. 내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거든.”
이에 낙리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현통을 노려봤다.
“이건 남자 사이의 일이야, 낙리. 저 녀석이 만약 내 앞에 나설 용기도 없다면 네가 아무리 나를 뜯어말리고 무시해도 난 목진을 북창령원에서 쫓아낼 거야. 그러니까 이런 일에는 끼어들지 마.”
이현통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낙리에게 말했다.
“그럼 기다리세요. 내가 언젠가 당신이 천방에 새긴 이름을 지워줄 거니까요.”
목진이 낙리의 손을 잡고 이현통을 보며 말했다.
“내일 신생대회를 기대할게. 낙리의 안목이라면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겠지만 너도 열심히 해야 할 거야.”
이현통은 담담하게 웃고는 낙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바로 떠났다.
* * *
이튿날, 북창령원의 신생 구역은 모두 떠들썩하였고 다들 신생대회가 기대되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북창계는 그저 시험이었을 뿐, 신생대회야말로 자신의 실력을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 대회에서 잘만 하면 북창령원에서 바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신생대회는 여느 때처럼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한편, 목진이 속해있는 신생 구역도 떠들썩하였으니 천 명에 근접하는 신생들이 전부 낙신회 휘장을 달고 광장에 모였다. 다들 낙신회 회원이었다.
목진과 낙리는 광장의 중심에 서서 대회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신생대회 1등만 보고 지금까지 달려왔어. 너라고 봐주지 않을 거니까 절대 우리한테 지지 마.”
낙신회 회원들의 말에 목진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얼마든지 덤벼.”
“낙리 누님, 목 형이 너무 거만한 것 같은데 부디 목형을 누르고 1등을 따내세요.”
그 말에 주위가 순간 떠들썩해졌다. 낙신회 회원들은 전부 낙리가 1등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낙리가 방긋 웃으며 목진을 힐끗 쳐다봤다.
“조심해.”
이에 목진은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여인이라고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
다들 목진과 낙리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고, 낙리가 목진 앞에서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 알고 있기에 이내 미소를 지었다.
“농담은 그만하고 준비를 마쳤으면 다들 나와 함께 떠나자꾸나.”
그때 빛줄기가 이곳을 향해 오더니 목릉 선생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신생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자!”
목진의 말에 사람들은 목릉의 뒤를 따라 우르르 북창령원의 서북쪽을 향해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기타 신생 구역의 신생들도 그곳으로 향했는데, 수많은 신생이 동시에 한곳을 향해 가는 모습이 굉장히 웅장해 보였다.
고참들도 신생대회를 구경하러 길을 나섰다. 오늘 이 대회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이 앞으로 북창령원의 정예가 될 것이다. 이에 고참들은 한시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대단한 신생이 자신을 위협하게 될지 말이다.
1각 뒤, 신생들은 신생대회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하자 하늘에서 서서히 내려왔다.
신생대회는 방대한 산맥에서 치르는데, 이 산맥에는 십만 척도 넘는 거대한 산이 있었다. 너무 높아 하늘 끝까지 치솟은 것 같았고 산을 맴도는 공기는 혼탁하였으며 가끔 우렛소리가 들렸고 엄청난 영력까지 느껴졌다.
산맥에 가기 전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평원이 있었는데, 신생들은 어느새 이곳 평원에 전부 모여 있었다.
그때 먼 곳에서 빛 한 줄기가 서서히 다가오다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났다. 빛이 사라지고 세 사람이 나타났는데 양쪽 끝에 청포를 입은 백발노인 2명이 엄숙하게 서서 신생들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은 백포를 입었는데, 백발에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어 전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지만 웃는 모습은 더없이 인자했다.
목진 일행도 허공에 떠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들이 나타나자마자 영기가 끊임없이 세 사람을 향해 흘렀는데 꼭 영기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것 같았다.
“저분들은 북창령원의 장로란다. 그중 백포를 입은 분은 북창령원의 천석 장로이신데…….”
목릉은 한결 공손한 자세로 세 분의 장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북창령원에서는 장로를 천석과 지석으로 나누는데, 천석 장로는 보기가 아주 드물었다. 하여 얼핏 보면 소년과도 같은 사람이 천석이란 말에 다들 흠칫 놀랐다.
“이번 신생대회는 여느 때보다 흥미로울 것 같군.”
백포를 입은 장로가 수많은 신생들을 바라보며 소맷자락을 휘두르자 다들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난 촉천(燭天)이라 하고 이번 신생대회의 주최자란다. 이 자리를 빌려 북창령원의 식구가 된 것을 축하한다.”
백포 노인은 이리 말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 앳된 얼굴은 신생이라고 해도 믿을 법해 백발에 어른스러운 말투가 사뭇 어색했다.
“이번 신생대회는 여느 때처럼 단순한 힘겨루기 대회가 아니란다.”
촉천은 뒤쪽의 산맥과 그 중심에 우뚝 솟은 산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저기 북령산에 영기를 하나 꽂아두었는데, 가장 먼저 정상에 올라 영기를 뽑는 자가 이번 신생대회의 1등이 될 것이다.”
이렇게 간단할 수가!
“대신, 북령산에 영수가 적잖게 있는데 북령산 정상의 영수는 무려 천급 영수란다.”
촉천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천급 영수?”
신생들의 안색은 바로 어두워졌고 험난한 싸움이 예상되었다.
“정상에 오른 사람 중 1등은 50만 영치를, 2등은 40만…… 이렇게 5등까지 영치를 보상으로 줄 것이다.”
축천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1등부터 5등까지는 영결 신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그곳에서 운이 좋으면 신급 영결을 얻을 수도 있단다.”
“신급 영결이라…….”
신생들은 의지가 불타올랐다. 신급 영결은 강자들마저 사무치게 원하는 물건이었다.
“아주 솔깃한걸.”
목진도 신급 영결이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흥분되어 우뚝 솟은 산에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영결전에 들어가기란 생각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을 것 같구나. 별도의 규칙은 없으니 어디 잘해보려무나.”
촉천은 이리 말하며 소매를 휘둘렀고 이내 어디선가 낭랑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신생대회를 시작한다!”
촉천이 미소를 머금고 신생대회의 시작을 알리자 수많은 영력이 하늘에 치솟더니 북령산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이에 천지가 흔들리는 것 같았는데 촉천은 이토록 놀라운 기세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으나 그 속은 꼭 비웃는 것만 같았다.
“북령산 정상에 어마어마한 놈이 있는 걸 왜 신생들한테 알려주지 않았는가?”
촉천 뒤에 서 있던 백발노인들이 물었다.
“이런…….”
촉천은 흠칫하더니 이내 머리를 두드리며 답했다.
“내가 그만 깜빡했네. 그런데 젊은이들은 자극을 줘야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지 않겠는가?”
이에 노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은 촉천이 일부러 이 사실을 숨겼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한편, 신생들은 호호탕탕하게 산맥을 향해 돌진했다. 허공에는 사람들이 그들을 관전하려고 모여들었는데, 이현통 역시 뒷짐을 쥐고 담담하게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목진이란 녀석이 1등을 하지 못하면 낙리가 막아서더라도 어떻게든 북창령원에서 그를 내쫓으리라 결심했다.
조용했던 북령산은 지진이 일어난 듯 흔들리자 그 안에 있던 영수들이 하나같이 모두 울부짖었다.
이에 땅이 반으로 갈라졌고 그 속에서 영수들이 끊임없이 나와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허공에서는 흉악한 영수 떼가 날개를 휘저으며 갑자기 들이닥친 침입자를 쫓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인간과 영수가 부딪치자 난폭한 영력이 휘몰아쳐 하늘은 순식간에 다채로운 빛으로 반짝였고 신생들의 전진 속도도 점차 느려졌다.
이에 무리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하늘 높이 우뚝 솟은 그곳으로 향했다.
목진이 속해있는 무리도 어느새 이리저리 흩어져 그와 낙리, 그리고 수십 명의 낙신회 회원들끼리 똘똘 뭉쳤다. 목진과 낙리는 길을 트기 위해 아주 빠른 속도로 전진했고 낙신회 사람들은 묵묵히 두 사람의 뒤를 따르며 양측에서 덤비는 영수를 없앴다.
목진이 두 손을 모으자 황금빛이 손가락 사이로 스며 나왔고, 이는 금세 황금색 장창이 되어 앞에서 날아오는 영수를 공격하여 한방에 숨통을 끊었다.
목진은 용맹한 영수들을 재빨리 제거하며 다른 곳도 쓱 훑었는데 자신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전진하는 무리에는 꼭 실력이 좋은 누군가가 있었다.
“속도를 올려야겠어!”
목진은 고개를 들어 산맥 중심에 있는 산 정상을 바라보려 했는데 구름을 뚫고 우뚝 솟아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그는 가장 먼저 정상에 오르는 사람이 1등을 할 확률이 높을 거라고 판단했다.
목진은 숨을 고르면서 낙리와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가 영력을 끌어올리자 두 손 사이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이 장창으로 변해 영수를 공격했고, 영수는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겼다.
한편 낙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중의 검은색 장검에서 스며 나오는 검은색 검망으로 영수를 공격했는데, 칼집을 빼지 않았는데도 그 위력에 영수들은 반으로 잘렸다. 깔끔하게 잘린 단면을 보고 목진은 흠칫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