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석대
영수들의 분노 섞인 포효가 산맥 전체에 퍼져 땅마저 흔들렸다.
주위에서 신생들을 지켜보던 자들은 서서히 산맥 중심으로 시선을 모았다. 웅장한 영력이 주위에 퍼지는 것으로 봐서, 신생 중 정예들이 이미 북령산에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그중 가장 먼저 정상에 오르는 사람이 영기를 뽑을 것이고, 대회의 1등을 따낼 것이다.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 중에는 북창원의 장로들도 있었는데, 축천은 흐뭇하게 북령산을 바라보더니 정상을 확인하며 생긋 웃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일찍 도착했군. 그런데 지금부터가 관건이지. 그 녀석을 쓰러뜨리기란 결코 쉽지 않을 거야.”
* * *
목진과 낙리는 엄청난 영력으로 몸을 휘감고 정상을 향해 날아갔다. 산 중턱을 넘었으니 이젠 천급 영수들의 기습을 주의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까지는 융천경 초기 실력의 영수들만 나타났다.
그때 목진은 뭔가를 본 듯 주먹에 영력을 모아 땅을 내리쳤다. 곧바로 땅에 거대한 틈이 벌어지더니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단단한 갑옷을 입은 영수가 살기 가득한 눈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기어 나왔다.
“지마수?”
목진은 검은색 갑옷을 입은 흉측하기 그지없는 영수를 보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리다가 바로 마음을 다잡고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내 낙리가 막아서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때 땅이 반으로 갈라지며 지마수가 나타났는데 무려 다섯 마리였다.
지마수가 여섯 마리나 된단 말인가?
목진은 순간 아찔했지만 낙리와 눈을 마주치고선 곧바로 움직였다. 이들은 비록 융천경 초기밖에 안 되지만 두 사람이 해결하기엔 조금 버거웠다. 최대한 빨리 정상에 오르려면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었다. 이에 그들은 도망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도망가자 여섯 마리의 지마수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고 놀라운 속도로 두 사람의 뒤를 쫓아갔다.
이에 목진과 낙리도 최대한 빨리 움직여 정상으로 향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무성한 숲은 어느새 사라졌고 잠시 후 광활한 곳이 펼쳐졌으며, 그 뒤에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보였다.
목진과 낙리가 그곳을 향해 전력 질주하려는데 다른 방향에서도 영수의 포효가 들려왔다.
다른 신생들도 이들처럼 여러 마리의 영수들한테 쫓기고 있었는데, 똑같이 도망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목진, 낙리와 목표가 같았으니 바로 정상의 석대에 꽂힌 영기였다.
목진은 눈앞에 나타난 서른 마리도 넘는 천급 영수를 보고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렇게 많은 영수를 물리치기란 불가능했다.
“얼른 도망쳐!”
수십 마리의 천급 영수한테 발목이 잡히면 화천경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거란 생각에 목진은 낙리와 함께 더 빨리 움직였다.
북창령원의 신생대회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신생의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제일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목진과 낙리를 포함해 영수들한테 쫓기는 신생들 모두 정상에 오르는 유일한 길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그중에는 양홍, 목규, 빙청 등도 있었고 다들 목진, 낙리와 같이 도망가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의 똑같은 생각이 천급 영수들을 한곳에 모은 꼴이 되고 말았다.
주위에서 관전하던 사람들도 수십 마리의 천급 영수를 보고 안색이 변했다.
“천급 영수가 왜 이렇게나 많아?”
“이번 신생들은 참 운도 없어. 서른 마리도 넘는 영수들을 무슨 수로 이길까?”
“그러게 말이야. 천급 영수뿐만 아니라 다른 신생들도 경계해야 하니…….”
“흥미진진하군. 이래야 구경할 맛이 나지.”
* * *
주위는 순간 떠들썩해졌고 대부분 흥미진진해 하고 있었다.
아직 산기슭에 머물러 있는 일반 신생들의 싸움에 비하면 이곳 정상의 상황이야말로 구미가 당겼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현통이 뒷짐을 지고 조용히 목진과 낙리를 바라봤다.
수많은 시선 속에서 열 명 남짓한 신생들은 수십 마리의 영수를 피해 점차 가까워졌다.
“목진!”
자신을 부르는 주령의 소리에 목진이 뒤돌아봤다. 그의 얼굴이 창백한 것이 조금 안쓰러웠다.
목진은 융천경 초기에 도달한 주령의 영력을 확인하고 사뭇 놀랐다. 다만 기의 흐름이 안정치 않은 것으로 보아 융천경에 이른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주령은 곧 융천경에 도달할 실력이었으니, 북창령원에서의 수련으로 경지를 돌파한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일단 석대로 가자.”
영수들이 점차 가까워지자 목진은 낙리의 손을 잡고 더 빨리 달리려 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목진을 앞을 막고 공격했다.
“목진, 조심해!”
주령이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 이에 목진은 빠르게 어두운 영력을 끌어올려 광탑을 형성했다.
누군가의 영력이 광탑을 매섭게 공격했고, 목진도 그 충격에 몸이 흔들렸다. 곧이어 눈앞에 익숙한 사람이 나타났다.
분명 목진을 영수 무리에 밀어 넣으려 공격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되면 목진이 운 좋게 영수 무리에서 도망쳐 나온다 해도, 타격을 입었을 테니 절대로 1등은 못 할 것이었다.
“양홍, 굳이 지금 나와 싸우고 싶다면 상대해주지.”
목진은 한기 가득한 눈빛으로 양홍을 바라보며 합장하여 날카로운 황금빛을 만들어 양홍을 공격했다.
양홍은 피식 웃으며 손을 가볍게 튕겼고, 이에 목진의 공격은 바로 무산되었다.
“내가 두려워할 것 같아?”
양홍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대에 내려 목진을 바라보며 예사롭지 않은 영력을 끌어올렸다.
목진 역시 주먹을 꽉 쥐고 어두운 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체내의 대부도결을 움직이며 석대에 도착했다. 그 뒤로 낙리가 따라와서는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양홍을 지켜봤다.
잇따라 목규, 빙청, 주령 등 수십 명의 신생도 석대에 도착했다.
“목진, 조심해. 천급 영수들이 쫓아오고 있어!”
주령의 말처럼 지금은 누군가와 싸울 때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의 영수야말로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이에 목진은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바로 진정하고 양홍을 노려봤다.
이와 동시에, 수십 마리의 영수들이 어느덧 이들을 포위하고 한껏 울부짖더니 엄청난 영력으로 석대에 있는 신생들을 공격했다.
목진은 낙리와 함께 물러나 숨을 고르고 다시 영수들을 공격하려 했다. 그때 구유작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목진, 뭔가 이상한 것 같다. 얼른 이곳을 떠나거라.”
이에 화들짝 놀란 목진은 바로 낙리의 손을 잡고 엄청난 속도로 도망쳤다. 그 순간, 목진이 서 있던 땅이 무너졌고 그 자리에서 용암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사이로 거대한 손이 솟아올라 천급 영수를 내리쳤고 녀석은 즉사했다.
뒤이어 석대가 격렬하게 움직이더니 사방에서 용암이 솟구치며 그 사이로 거대한 손이 계속해서 솟아올랐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건…… 북창령원에서 어찌 신생대회에 저 녀석을 투입했을까?”
이현통도 흠칫 놀라더니 안색이 바로 어두워졌다.
거대한 석대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용암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라 불기둥을 형성했는데, 불기둥 안에 숨어있던 거대한 손들이 천급 영수와 석대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이에 목진 뿐만 아니라 북령산 밖에서 관전하고 있던 사람들마저도 화들짝 놀랐다.
다행히 목진은 구유작 덕분에 가장 빠른 속도로 낙리와 함께 후퇴했지만, 용암은 이미 융천경 초기의 천급 영수 한 마리를 삼켜버렸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불기둥 속 거대한 손은 다시 한번 석대를 내리쳤다. 그러자 석대는 심하게 흔들리다가 바로 용암에 잠겼다.
이렇게 용암은 다시 한곳에 뭉쳐 목진과 낙리를 향했다.
목진은 이를 정면 돌파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용암에 파묻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낙리도 목진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녀는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검은색 장검을 쥐고 그 뒤를 따랐다.
목진은 후퇴하며 주위를 살폈는데, 현재 용암 사이를 비집고 나타난 열 개도 넘는 거대한 손들이 끊임없이 석대를 내리쳐 천급 영수들마저 공포의 아우성을 지르며 공격을 피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그중 느린 놈들은 벌써 거대한 손에 잡혀 잿더미가 되었다.
양홍, 목규, 빙청 등도 거대한 손의 공격을 피하느라 바빴고 함부로 맞섰다가 큰 대가를 치를까 두려웠다.
“어떡하지?”
낙리가 낮은 목소리로 목진한테 물었다. 도무지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낙리의 말에 목진은 잠시 머뭇거렸고 이내 무언가를 발견한 듯했다. 천급 영수들이 도망칠 때 거대한 손은 일정한 범위만 벗어나면 더는 쫓아가지 않았다.
“거대한 손은 공격 범위가 있는 것 같아.”
목진은 이리 말하더니 석대 위에 우뚝 선 산 정상을 바라봤다. 거대한 손의 공격이 그곳까지는 미치지 않은 것이다.
“정상으로 올라가자!”
목진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바로 정상으로 향했고, 낙리도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을 따라 양홍 등도 정상으로 올라갔다.
지금 석대를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정상에 오르거나 이곳을 아예 떠나는 것이었다. 다만 후자를 택하면 바로 1등을 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다.
한편, 주령 등 사람들도 양홍의 뒤를 따르려 했지만 갑작스럽게 막아선 거대한 손에 맞아 피부가 빨갛게 그을려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 쳤다.
산 정상은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이미 도망쳐 나와, 신생 중 최강자들 사이의 싸움을 지켜봤다.
많은 이들의 주시하에 목진 등 5인은 강력한 영력으로 거대한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때 북령산에 잠자코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눈을 뜨며 으르렁거렸다.
그 음침한 고함에 뒷산이 흔들리며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균열 사이로 들끓는 용암이 뿜어져 나왔다. 용암은 어느덧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 목진 등 5인의 앞길을 막았고, 그 열기에 영기마저 들끓는 것 같았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북령산에 숨어있는 무서운 존재는 신생은 물론이고 고참도 감히 덤비지 못할 정도였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휘몰아치는 용암에 비하면 목진 등 5인은 더없이 왜소해 보였고 이들의 안색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이 정도 공격이라면 목숨을 잃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물러나면 1등을 쟁취할 기회도 포기해야 하는지라, 다들 아쉬워서 떠날 수도 없었다.
목진은 무언가 결심한 듯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어두운 영력을 끌어올려 용암 폭포로 향했다.
이에 다들 목진이 죽으러 들어갔다고 여겼다.
이현통도 그리 생각하면서 조용히 목진을 지켜봤다.
한편, 양홍 등 사람들은 목진의 행동에 흠칫 놀랐지만, 바로 영력을 끌어올려 그 뒤를 따랐다.
용암 속에 뛰어든 목진은 금세 종적을 감췄고 그 뒤로는 알록달록하고 거대한 이무기로 변신한 듯한 양홍이 엄청난 영력을 뽐내며 따라오고 있었다.
반면, 목규는 영력을 손에 모아 용암 폭포를 향해 거대한 황금빛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파란색 장발에 한기를 가득 품은 빙청은 가녀린 몸에 얼음 갑옷을 걸치고 용암에 뛰어들었다.
다섯 명 중 낙리가 마지막이었는데 그녀는 목진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바로 검은색 장검에 힘을 실었다. 장검은 이내 파르르 떨리더니 하늘을 반으로 가를 듯한 날렵한 검기를 내뿜었다.
이들은 북령산에 숨은 무언가에 맞서기 위해 진정한 실력을 드러냈다.
이에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고, 용암 폭포의 다른 한쪽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정상을 오르는 방법은 이토록 위험천만한 용암 폭포를 가로지르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다섯 명 중 누가 성공할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떠들썩했던 사람들도 모두 조용해졌고 다들 묵묵히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