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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36화 (135/1,000)

136화. 호교를 진압하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놀라운 영력 파동이 휘몰아쳤고 그 위압감에 하늘과 땅마저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그 영력의 원천은 바로 만 척 정도 되는 흑탑이었다. 흑탑은 흑염을 끊임없이 내뿜으며 내려왔다.

엄청난 충격에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전부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이 정도의 공격은 융천경 중기의 실력이라도 아찔할 수밖에 없었고, 목규와 빙청은 이미 사색이 되어 목진을 바라봤다. 이들은 비록 목진과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지만 흑탑의 영력 파동에 위협을 느꼈다.

그들은 목진과 양홍의 싸움이 이렇게까지 치열할 줄 몰랐다.

이에 목규와 빙청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전투 결과가 곧 나오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편, 촉천 장로는 인상을 찌푸리고 무서운 기세로 내려오는 흑탑을 보며 중얼거렸다.

“난 왜 어디선가 이 흑탑을 본 것 같지?”

촉천 장로는 한참을 생각해봐도 전혀 단서가 잡히지 않아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저 북령경에서 온 녀석이 대단하단 생각뿐이었다.

“승패가 갈릴 때가 되었군.”

촉천 장로의 말대로 이번 공격에 쌍방은 더는 숨김없이 전력을 다하고 있었기에 누군가는 처참한 실패를 당할 것이 분명했다.

상고의 호교도 눈을 부릅뜨고 놀라운 기세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색 거탑을 바라보았다. 호교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극도의 불안감이 온몸에 휘몰아쳤다.

만약 목진의 공격을 피하면 사람들한테 패배자로 남을 것이고, 이는 목진이 명성을 떨칠 절호의 기회를 주는 셈이 된다. 그러나 오만한 양홍은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게 두고 볼 수 없어 맞서 싸우기로 했다.

‘이곳 북창령원에서 나 양홍이 제일이야. 그런데 목진 네가 굳이 나한테 도전장을 내민다면 사정없이 짓밟아주겠어.’

양홍은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상고의 호교가 포효했다. 그 울음소리는 용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호랑이와도 비슷했다. 영수의 정백을 연화하면 한순간에 엄청난 힘을 얻는 동시에 정백의 성격을 닮아가기 때문에 양홍은 포악했던 호교의 성격에 영향을 받아 정신없이 날뛰었다.

호교가 으르렁거리자 짙은 푸른색 영기가 몸 안에서 스며 나왔고 몸 표면의 황금빛 호문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푸른색과 황금빛이 동시에 상고의 호교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다 빛이 한곳에 모여 거대한 푸른빛 이무기와 황금빛 호랑이가 서로 얽힌 듯 상고의 악기가 들끓으며 이곳을 가득 채웠다.

“목진, 신생 중 제일의 호칭은 내 것이니 빼앗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양홍은 이렇게 외치며 마음을 다잡고 상고의 호교를 움직여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순간 주위에 푸른빛이 흘러내렸다.

상고의 호교가 울부짖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멍하니 이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높은 곳에서 검은색 거탑이 흑염을 머금고 내려왔고 두 사람 모두 눈이 뒤집혔다.

검은색 거탑과 상고의 호교는 각각 흑염과 푸른빛을 머금고 하늘을 가르며 무서운 기세로 서로를 향해 돌격하더니 끝내 허공에서 부딪쳤다.

순간, 천지가 흔들리더니 땅이 사정없이 갈라졌고 눈부신 빛이 난폭한 영력을 휩쓸며 우렛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미친 듯이 내려왔다.

다들 눈을 겨우 뜨고 두 사람이 부딪친 곳을 뚫어지라 쳐다봤는데 그곳만 엄청난 영기에 공기가 뒤틀린 것 같았다.

상고의 호교는 계속하여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검은색 거탑을 공격하였다. 호교는 어떻게든 이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검은색 거탑은 끄떡도 없었고 호교가 공격할 때마다 흑염이 더 활활 타올랐다.

그러다 거탑의 무늬가 서서히 선명해졌고 탑 밑에서 흑빛을 응결하여 거대한 검은색 부적을 이뤘다.

사람들은 비록 부적에 뭐라 적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기이한 파동에서 신기한 봉인의 힘을 느꼈다.

“부도의 탑은 만물을 진압하리라!”

검은색 거탑 안에서 오래된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거대한 검은색 부적이 갑자기 상고의 호교를 향해 돌진했다.

부적이 몸에 닿는 순간, 호교의 주위를 맴돌던 푸른빛은 어두워졌고 처량한 포효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추락했다.

호교는 검은색 부적을 통해 전해지는 기이한 힘을 느꼈다. 그 힘이 몸에 들어온 순간 영력이 봉인된 것처럼 느껴졌다.

검은색 거탑은 호교의 몸 위에 떨어졌는데 그 충격에 주위의 공기는 폭발하였고 땅은 닿기도 전에 이미 움푹 파였다. 그렇게 호교는 힘없이 당했다.

잠시 후, 검은색 거탑은 끝내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다. 순간 땅이 세차게 흔들리더니 바위가 수없이 떨어졌고 뒤이어 산 전체가 조금씩 무너졌다.

자욱한 연기가 일어 사람들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다들 숨죽여 무너지는 산봉우리 쪽을 바라봤고 주위에는 바위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왔다.

산기슭에 있던 엽경령과 주령 등은 어느새 하늘에 날아올라 잔뜩 긴장하여 그쪽을 바라봤고 이현통도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산 정상에 서 있던 목규, 빙청, 낙리도 똑같이 움직였고, 다들 목진과 양홍의 싸움을 신생 중 제일을 가리는 결승전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어느덧 연기가 가시고 거대한 바위가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이는 산이 무너지고 남은 잔해였다.

중심에는 더 크게 파여 들어간 곳이 있었는데 한가운데서 기승을 부리던 난폭한 영력도 서서히 사라졌다.

결과를 확인한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상고의 호교와 검은색 거탑은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감췄고, 두 남자의 몸과 옷에는 싸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양홍은 산발을 한 채 조금 두려운 듯 목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 다 아직 살아있어?”

다들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두 사람의 강한 생명력에 탄복하였다.

목진은 조금 창백하지만 이글거리는 눈으로 양홍을 힐끗 쳐다보고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고 서서히 밖을 향했다.

“내 물건은 언젠가 돌려받을 것이라고 말했었지? 이번엔 네가 빚을 갚았으니 다음에는 희현이겠구나.”

목진의 말에 양홍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양홍은 또 목진한테 졌다.

이에 다들 목진이 사뭇 두려워졌다.

양홍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목진을 꺾을 사람은 희현뿐이라 생각하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 * *

천지 사이를 휘몰아치던 난폭한 영력은 어느덧 사라졌다. 사람들은 평원이 된 산 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목진의 수려한 얼굴은 조금 창백했고 놀라웠던 영력도 어느새 사그라들어서 왠지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이런 그를 비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참들 마저 그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은 실력으로 모든 이들의 인정을 받았다.

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신생 중 누군가 손을 높이 들어 목진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는데 이에 다들 잇따라 박수를 쳤다.

목진은 맥륜과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고참들이 더는 신생들을 함부로 괴롭히지 못하게 하였고, 양홍과의 싸움에서 실력을 보였으니 앞으로는 더 이상 고참들 앞에서 고개 숙일 일은 없을 것이다.

목진은 사람들이 보내는 박수갈채에도 그저 머쓱하여 웃기만 했다. 이를 지켜보던 이현통도 목진을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낙리의 안목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목진이 낙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였다. 결국엔 누군가는 상처받을 거란 생각에 이현통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낙리는 비록 자신을 친구로 생각하지만 이현통은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어 생각이 많아졌다.

낙리가 조용히 목진의 옆에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이에 목진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긴, 양홍이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닌지라 싸움에서 이겼지만,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 촉천 장로가 서서히 다가와 목진의 앞쪽에 나타나 주의 깊게 목진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얘야, 네가 비록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였지만 영기를 얻은 것이 아니라서 신생 대회의 1등은 아니란다.”

이에 사람들은 다시금 목진한테 주목하였다. 촉천 장로의 말처럼 이번 신생 대회는 싸움에서 승리만 하면 되는 단순한 경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 마음속 1등은 이미 목진이었다.

한편, 엽경령 등은 장로의 말에 시무룩하였다. 목진이 지금 상태로 목규와 빙청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불리해 보였다.

그런데 목진은 목규, 빙청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눈길을 무시한 채 담담하게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축천 장로님, 전 이만 포기할게요. 기회는 나머지 신생들한테 넘겨줄게요.”

목진은 1등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양홍한테는 앙금이 남아있었기에 대결을 한 것이다. 승패가 갈린 이상 자신한테 불리할 싸움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정녕 그리 결정한 것이냐?”

촉천 장로는 의아하여 목진을 바라봤다. 혈기왕성하여 1등이라는 호칭에 목숨을 걸줄 알았는데 이토록 좋은 기회를 포기할 줄 몰랐다.

장로뿐만 아니라 고참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낙리까지 합세하면 영기는 분명 목진의 것이라 여겼다.

사실 1등부터 5등까지 주는 영치가 다를 뿐, 나머지는 똑같았다. 5등이라도 영결전에 들 수 있었으니 1등이란 호칭 때문에 불필요한 정력 소모를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두 분, 힘내시게.”

목진은 목규와 빙청을 번갈아 보며 생긋 웃었다.

“정말 포기할 건가?”

목진이 말에 목규는 바로 시무룩해졌다.

“난 1등 따위에 관심이 없다. 내 진짜 목적은 너와 한바탕 싸워보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나와 싸워줄 수는 없나?”

목진은 흠칫 놀라더니 목규 역시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생각에 씁쓸하게 웃었다.

“목진이 지금은 상태가 안 좋으니 정 원하면 내가 대신하겠다. 실망하지는 않을 거야.”

이때 낙리가 목규를 노려보며 말했다.

“목진, 네가 없는 신생 대회는 재미없는 데다 여인들과 싸우기는 싫으니 나도 기권하겠다.”

낙리의 말에 목규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대신 기력을 회복하면 나와 한번 겨뤄주어라. 나를 원수로 생각해도 좋으니 전력을 다하길 바란다.”

목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목진은 오히려 목규처럼 통쾌한 성격을 선호하는지라 그의 부탁을 거절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여인이 뭐가 어때서?”

빙청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가 나를 이길 수나 있다고 생각하니?”

목규는 여인이란 생물이 도무지 이해되지는 않았으나 괜히 시비를 걸었다가 큰코다치고 싶지 않아 대답하지 않았다. 빙청은 그제야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이번 신생 대회는 참 재미없어. 왜 다들 포기하고 난리지? 이 상황에서 내가 영기를 뽑으면 얼마나 멍청해 보이겠어? 그러니 나도 기권할 거야.”

목진은 양보를 해도 1등하기 싫다는 사람들은 처음이었다. 양홍이나 맥륜 같았으면 벌써 영기를 뽑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었다.

“셋 다 기권하는 것이냐?”

촉천 장로도 놀라긴 마찬가지였으니 목진과 같은 생각이었다. 이에 목규와 빙청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목진을 바라봤다.

“이번 신생 대회의 1등은 네가 가장 유력해. 우리가 양홍 대신 너와 싸웠어도 결과는 썩 좋지 않았을 거다. 낙리만 동의한다면 우린 네가 1등의 호칭을 가져갔으면 한다.”

목규와 빙청의 말처럼 목진과 양홍의 싸움은 비록 치열했지만 멋진 승부였고 다른 사람과 싸웠어도 공포의 흑탑을 이길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하여 다들 목진과 싸워본 적 없지만 괜히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고 목진의 상태가 안 좋을 때를 노려 영기를 빼앗고 싶지도 않았다.

“고맙다.”

목진은 담담하게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우린 이미 기권하였으니 최후의 5인 중 유일하게 기권하지 않은 낙리한테 영기를 뽑으라고 하자. 낙리는 나보다 더 유력한 1등 후보였으니까.”

목진은 여태껏 낙리가 전력을 다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양홍보다 실력이 더 좋을 거라 장담했다. 그는 그녀와 싸우면 이길 자신이 없었다.

목규와 빙청도 목진과 같은 생각이었고 낙리를 힐끔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낙리는 싸움에 합류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빙청도 방금 낙리가 막아 나섰을 때 영기를 빼앗으려는 마음을 쉽게 접은 것이다.

낙리는 넋을 놓고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신생 대회의 1등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1등을 하면 50만 영치나 주는데 그걸 받으면 우리가 전보다는 마음 편히 살 수 있지 않을까? 알뜰하게 살아야지.”

목진은 낙리한테 다가가 몰래 그녀의 손을 잡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낙리는 목진을 흘겨보다 저절로 웃음이 났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정상에 올라 손쉽게 영기를 뽑았다.

낙리는 거대한 영기를 쥐고 내려와 넋을 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촉천 장로한테 물었다.

“이젠 결과를 발표하실 수 있죠?”

촉천 장로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1등의 영예를 거머쥔 낙리와 눈앞에 벌어진 상황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이번 신생 대회에서 따낸 1등은 아마 북창령원 역사상 가장 손쉽게 얻은 명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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