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1위
구유작은 날개를 펼치더니 흑염을 내뿜으며 물었다.
“내 흑염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엄청나지.”
목진은 구유작의 힘을 빌려 영력을 사용할 때 이미 느꼈던 터라 영력도 태워버리는 흑염을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을 구유화(九幽火)라고 하는데 구유작의 타고난 능력으로 영력과 다른 힘을 태우는 능력이 있다. 또한, 이 화염은 우리가 진화하면 할수록 그 힘이 더 강력해지고 체내에 있는 상고의 불사조의 혈맥을 완벽히 깨워 구유화를 불사화로 또 한 번 진화시킬 수도 있다. 불사화가 닿는 곳은 영원히 죽지도 소멸하지도 않지.”
이 세상엔 신기한 능력이 수도 없이 많았다. 게다가 영수는 인간과 달라 각종 신기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네가 우리 영력을 완벽하게 융합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너한테도 구유화의 능력이 생길 것이야. 그러면 네가 수련한 영력은 타인보다 더 강력하고 무시무시하겠지. 이는 영력이 질적인 도약을 하는 거나 다름없다.”
목진은 순간 흥미진진해졌다. 자신도 구유화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니. 지금까지는 구유작의 힘을 빌릴 때 구유화를 어느 정도 생성할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유작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구유작의 말대로라면 영력 융합으로 자신의 영력에 구유화의 특성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인데,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영력 융합은 어떻게 해야 해?”
목진의 질문에 간절함이 물씬 묻어났다.
“영력 융합을 수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다. 전에는 너와 내 동화 정도가 너무 낮아 불가능했지만, 지금이라면 얼추 비슷할 것 같기도 하구나.”
구유작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영력을 융합하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다. 바로 네 영력을 내 구유화로 부단히 태워야 하는데 이는 너를 화산에 내던진 것보다 더 고통스럽지. 그리고 네가 끝까지 버텨야 융합을 완성할 수 있고, 그래야 비로소 네 영력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래도 한 번 해볼 테냐?”
이에 목진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언제 시작할까?”
“성급할 필요는 없다. 일단 몸을 추스르며 이틀 정도 쉬다가 영결전에서 나오면 적당한 곳을 찾아 수련하자꾸나. 최대한 두 달 내로 네 실력을 융천경에 이르게 하고 영력 융합도 완성하자꾸나.”
“좋아!”
구유작의 말에 목진은 헤벌쭉 웃으며 답했다. 두 가지 수련을 무사히 마칠 수만 있으면 실력은 폭등할 것이고, 그리되면 비로소 이현통과 맞설 수 있을 거라 여겨졌다.
목진은 이틀 동안 구유작의 말에 따라 수련이 아닌 휴식에 치중하여 몸 상태를 최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양홍과 싸워 생긴 상처들이 완전히 나았고 엄청난 영력이 몸속에서 끊임없이 솟구쳤다.
단지 잘 쉬기만 했을 뿐인데 목진은 양홍과 싸우기 전보다 영력이 더 웅장해졌다. 이번 싸움이 위험하긴 했지만 수련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신백경을 돌파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목진은 전혀 조급하지 않았다. 융천경에 이르는 것 자체가 어려웠으니 제아무리 수련을 열심히 해도 일정한 시간과 계기가 필요했다.
하여 지금으로써는 그저 차분하게 수련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목진은 신생 구역의 맑은 호수 위에 영력으로 몸을 감싸고 앉아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수면 위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
호수를 둘러싼 훈련장에선 신생들이 서로 힘을 겨루며 수련하고 있었는데, 모두 낙신회였다.
목진과 양홍의 싸움을 계기로 신생들 사이에서 날뛰던 비룡회는 금세 꼬리를 내렸고 낙신회는 우뚝 솟아 규모가 적잖게 커졌다. 다행히 주령과 엽경령이 경험이 있어 아무나 낙신회에 들이지 않았으며, 누구든 일정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낙신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
목진은 현재 신생들의 우상이었다. 양홍이나 목규보다 더 빛나는 신생이 되었다. 신생 대회를 마친지 오래되었는데도 다들 흥미진진해하며 두 사람의 싸움에 대해 얘기했다. 하긴, 그 싸움에 고참들마저 혀를 내둘렀다.
사람들은 수련하면서 호기심과 경외에 찬 눈빛으로 몰래 호수 중심을 힐끔거렸다.
목진은 잔잔한 물결을 느끼며 평온한 마음으로 수면에 앉아있었는데, 몸속에 흐르던 영력마저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호수의 미세한 파동을 느껴 서서히 눈을 떠보니 엽경령과 주령이 다가왔다.
“양홍은 오늘에야 깨어났다더구나.”
담담하게 웃으며 하는 주령의 말에 목진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양홍이 입은 상처가 목진보다 훨씬 심했으니 오늘에야 깨어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너희는 내일이면 영결전에 가서 영결을 고르겠구나.”
엽경령이 부러운 듯 두 사람을 바라봤다.
“신급 영결을 얻게 된다면 정말 좋겠네.”
신급 영결은 목진 뿐만 아니라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얻고 싶은 물건이었다.
“손쉽게 얻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목진이 담담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만약 신급 영결이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면 영치전에서 그렇게 무시무시한 가격을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수련도 안 하고 노인네처럼 빈둥대기만 하던데 무슨 속셈이야?”
주령은 목진이 요즘 뇌역이나 취영진에 수련하러 가지 않고 온종일 신생 구역을 빈둥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몸조리 중이야.”
목진은 이리 말하며 북창령원 중심에 우뚝 솟아오른 십만 척도 넘는 거대한 산을 바라봤다. 위에는 한 마리의 새가 금빛 찬란한 신백방을 등에 업고 앉아있었다.
“신백방 1위를 해볼까 해.”
목진은 자연스레 신백방 1위에 적혀있는 이름에 눈길이 갔는데 놀랍게도 소령아(蘇靈兒)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신백방 1위라니?”
주령과 엽경령은 흠칫 놀라더니 금세 흐뭇하게 목진을 바라봤다. 신백방은 비록 북창령원에서 초급 순위에 속하나 1위를 한다면 떠들썩해질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목진이 정말 신백방 1위가 된다면 신생 대회 1위보다 힘이 더 실릴 것이다.
“신백방 1위는 무려 소령아야. 그녀는 북창령원에서 아주 유명한 미인이지.”
주령도 신백방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목진은 피식 웃었다. 그래 봤자 낙리와 비교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번거로운 건 소령아의 언니인데, 바로 소훤이야.”
“소훤? 설마 천방 3위인 소훤이야?”
목진이 화들짝 놀라 묻는 말에 주령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름도 이곳 북창령원에서는 이현통 못지않게 유명했다.
“소훤이 북창령원에서 명성이 자자한 만큼 속 좁은 사람은 아니겠지. 또한, 순위가 바뀌는 건 자주 있는 일이잖아.”
목진은 곧 융천경에 이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신백방 1위를 따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는 영예로운 일일 뿐만 아니라 영치도 적잖게 받을 수 있어, 영치가 턱없이 부족한 목진에게는 솔깃한 일이었다.
주령은 목진이 신백방 1위를 한다면 낙신회에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목진은 서서히 눈을 감더니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주위에 어두운 영력이 맴돌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금세 위압감을 느꼈다.
이에 낙신회 회원들은 자연스레 호수의 중심으로 눈길을 돌렸다.
허공에 일정하게 떠오른 목진은 다시 눈을 떴다. 며칠간 미동조차 없었던 영력이 마치 잠에서 깬 맹수처럼 움직였고 그 위력이 무척 놀라웠다.
목진의 손바닥에 어두운 영력이 미친 듯이 모여들었다. 멀리서 보면 꼭 먹물이 손 위에서 용솟음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목진은 고개를 들어 먼 곳에 있는 방대한 석비를 바라보더니 깊게 숨을 내쉬며 주먹을 꽉 쥐고 힘차게 휘둘렀다.
이에 목진의 눈앞에 있던 공기가 폭발이라도 한 듯 요란한 소리를 냈고, 네 갈래의 수십 척 정도 되는 검은색 광인이 나타나 검은색 홍광으로 변하여 목진 앞의 영치패를 때렸다.
이렇게 영치패에서 십수만 척의 빛을 내뿜더니 한 갈래의 빛줄기가 되어 신백방을 항해 돌진했다.
잠시 후, 빛줄기와 부딪친 석비는 부들부들 떨더니 기이한 울림과 함께 눈부신 황금빛을 내뿜었다.
기이한 현상에 북창령원의 학생들은 화들짝 놀라 신백방을 바라봤는데 3위에 머물러있던 이름이 반짝이더니 이름이 지워지고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석비는 계속하여 기이한 울음소리를 냈는데, 꼭 새로운 신백방 1위가 나타난 것을 축하라도 하는 것 같았다.
어느덧 1위에 눈부시던 황금빛은 서서히 사라졌고 누군가의 이름이 나타났으니, 바로 목진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신백방에서 높은 순위에 오른 낯선 이름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과는 다르게 다들 그리 놀라워하지 않았는데 신생 대회 이후로 많은 이들이 목진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목진이라도 감히 소령아의 이름을 신백방에서 지우다니. 사람들은 조곤조곤한 언니와 성격이 전혀 다른 소령아를 건드린 목진이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소령아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이를 갈며 목진을 저주할 것인지 다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목진이 언젠가 북창령원에서 이름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진은 호수 위에서 밝게 빛나는 신백방을 보더니 담담하게 웃으며 영치패를 잡아들었다. 영치패는 반짝 빛나더니 무려 십만 영치나 더 많아졌다.
신생 대회에서 받은 40만 영치까지 더하면 목진은 현재 50만 영치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북명룡곤의 정혈을 구매하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지난번에는 신백방 3위에 올랐을 뿐인데 맥륜 사건이 벌어졌으니 이번엔 또 어떤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북명룡곤의 정혈 노래를 부르는 구유작 때문에 별수가 없었다.
한편, 호수 주위의 신생들은 신백방 1위에 오른 이름을 보면서 언젠가 자신의 이름도 명예의 전당에 올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간질거렸다.
“역시!”
주령도 이내 감탄하였고, 목진이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목진은 신백경 후기의 실력에 북창령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융천경마저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고, 1년 정도 신백방 1위에 머물렀던 소령아의 이름도 손쉽게 지웠다.
목진은 무덤덤하게 웃으며 주령과 엽경령에게 인사를 하고 신생 구역으로 향했다.
한편, 이번 일로 다른 신생 구역도 떠들썩하였다. 1위에 오른 눈익은 이름에 다들 감탄하였다.
그러나 양홍만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살기 가득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비룡회 회원들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목진, 언젠가 널 꼭 이기고 말 거야!”
목진이 빛날수록 양홍은 치가 떨렸다. 자기를 밟고 위에 올라선 사람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한편, 목규와 빙청도 신백방을 확인하였는데 양홍과는 사뭇 다른 눈빛이었다.
지난번 맥륜 사건이 지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누군가의 이름을 지우다니, 목진은 정말 말썽을 일으키는데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