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139화 (138/1,000)

139화. 영결전

목진이 신백방 1위를 찍고 있을 때, 이현통은 고요한 산봉우리에 지은 깔끔한 대나무 집에서 뒷짐을 진 채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산은 이현통 소유로 그가 천급 임무를 완성하여 북창령원에서 포상으로 준 것이었다. 이곳 영기는 5급 취령진을 유지하고 있어 학생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백만 영치를 내야 해서 일반인은 엄두도 못 냈다.

이현통은 드넓은 북창령원 하늘을 바라봤는데 수많은 빛줄기가 스쳐 지나가면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러다 그중 한 줄기의 빛이 자신을 향하자 이현통은 바로 경계하였다. 그 빛은 검은색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소녀였다.

“네가 먼저 나를 찾아오다니, 놀랍군.”

이현통은 어느새 미소를 지었다.

이현통도 다른 사람 못지않게 준수한 외모에 실력이 좋아 인기가 많은 편이었지만, 낙리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어제 그 사람한테 뭐라고 말했어?”

낙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지만 이현통은 절대 답하지 않았다.

“이현통,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일이야. 그러니까 넌 더 이상 끼어들지 말고 그 사람한테도 뭐라고 하지 마.”

낙리는 한기 가득한 눈빛으로 이현통을 바라봤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언젠가 그 녀석은 지금보다 열 배, 백 배는 더 힘들 거야. 그땐 어떡할 거야?”

이현통도 이내 웃음을 거두었다.

낙리는 주먹을 꽉 쥔 채 답했다.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네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이현통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그 녀석을 좋아하긴 하는구나. 안 그럼 네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하긴, 사랑이란 참 신비한 감정이지. 똑똑한 사람을 순간 멍청하게 만드니까 말이야. 다만, 너까지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러고 보면 목진은 참 행운아야.”

이현통은 침묵을 지키는 낙리를 보며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낙리를 좋아했는데, 해맑기만 했던 소녀가 불가피한 상황들 때문에 조용해지고 성숙해진 것을 보면 가여웠고 마음이 아팠다.

“낙신족 상황은 네가 제일 잘 알 거야. 너한테 선택 따위란 없단 말이야. 이번에 북창령원에 온 것이 네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일 지도 몰라.”

이현통은 순간 슬픈 기운이 깃든 낙리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너한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데, 왜 헤어질 걸 알면서 이곳까지 왔어? 너희 둘한테 좋을 게 없다는 걸 정녕 몰라?”

“난 영로를 마지막으로 평생 그 사람을 보지 않으려고 했어. 그런데 목진이 보고 싶더라. 또 목진이 영로에서 쫓겨난 뒤로 자신을 포기할까 봐 두려워 그 옆을 지켜주고 싶었어. 난 그 사람이 다시 빛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 그래서 찾아왔는데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점점 더 행복해져. 이런 느낌을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모르겠어.”

낙리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런 느낌을 최대한 오래 느끼고 싶으니까 더는 우리 사이를 방해하지 마. 나도 내가 짊어져야 할 것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일부러 귀띔해줄 필요까지 없다는 소리야. 제발 날 좀 내버려 둬.”

낙리는 말이 끝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이에 이현통은 눈을 서서히 감고 잠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때, 먼 곳 신백방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목진의 이름이 신백방 1위에 떡하니 적혀있었고, 이현통은 한참 동안 그곳을 바라보다가 그제야 눈길을 거두었다.

‘낙리, 내가 저 녀석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실력이 부족하면 너한테 짐밖에 되지 않을까 봐 너 대신 치워주려는 거야. 그러니까 난 앞으로도 내 방식대로 너를 위해 계속 무언가를 할 거야.’

* * *

북창령원의 거대한 호수 중심에 자그마한 섬이 있었는데 그 섬엔 꽃에 둘러싸인 집이 한 채 있었다.

집 앞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듣자 하니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아악! 목진이란 신생이 너무 얄미워. 맥륜의 이름을 지운 것도 모자라 이젠 내 이름까지 지우고 1위를 해? 나 절대 못 참아. 언니, 나 대신 복수해줘!”

이에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다른 여인이 담담하게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백방은 신생들이 실력을 겨루라고 만든 건데 네가 여태껏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이 더 이상했어. 이번 기회에 조금만 더 노력하여 천방에 이름을 올리는 건 어때?”

“그래도 북창령원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생 주제에 이렇게 까불다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닌 것 같더구나. 난 절대 널 도울 생각이 없으니까 너도 잠자코 있어. 어쩌면 너도 그 신생과 겨루게 된다면 질지도 몰라.”

“그럴 리가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동생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노란색 치마에 높게 묶은 머리를 한 소녀는 생기발랄하니 귀여웠다.

소녀는 문을 나서자마자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어디론가 떠났고, 그 뒤로 뽀얀 피부에 갸름한 얼굴을 한 아름다운 여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소녀가 떠난 쪽을 바라봤다.

“령아는 왜 또 저래? 누구 짓이야?”

이때,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섬에 나타났다.

그는 늘씬한 몸매에 얼굴이 준수한 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사악한 기운이 주위를 맴돌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여인은 청년을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웃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요즘 천급 임무를 받았는데 함께할 사람이 필요해서 물어보러 왔어.”

청년은 그윽한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봤는데, 그 속에 연모의 마음이 깃들어있었다.

“내가 요즘은 수련해야 해서 시간이 마땅치 않을 것 같아.”

여인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하더니 바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이에 청년은 그저 웃으며 그곳을 떠났다. 멀리서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가 청년이 나오는 걸 보자 피식 웃으며 물었다.

“대장, 또 거절당했어요? 대장이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면 저 여인이 천방 3위를 차지하는 일은 없을 텐데 어디서 감히…….”

“성급하기는.”

흑발 청년은 담담하게 웃더니 이내 말을 이어갔다.

“이토록 엄청난 여인은 절대 손쉽게 넘어오는 법이 없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 언젠가 내 품 안에 넣을 테니.”

흑발 청년은 씩 웃으며 호수 중심에 있는 집을 보고는 다짐하듯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 * *

이튿날 새벽, 목진과 낙리는 신생 구역을 떠나 북창령원으로 향했다. 오늘이 바로 영결전에 들어가 영결을 택하는 날이었다.

북창령원은 북령원보다 더 엄격하고, 영결을 무료로 주는 법이 없어 좋은 영결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영치로 구매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 다들 영치를 모으기 위해 애썼다. 영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수련마저 영향을 미처 모든 사람이 영결전에 들어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영결전은 절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북창령원에서 상을 받은 학생들만 들어가 인연이 닿는 대로 영결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운 좋게 신급 영결을 얻으면 다들 질투에 사로잡혔다.

목진은 설레는 마음으로 낙리와 함께 북창령원 안으로 들어섰다. 1각 정도 지나자 북창령원 속 우뚝 솟은 산기슭에 도착했다.

그 산봉우리에는 거대한 전각이 있었고 그 앞은 청석 광장이었다.

청석 광장에 도착한 목진과 낙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광장을 보면서 그들은 더없이 진중했다. 두 사람이 광장에 도착할 무렵, 누군가 몰래 자신을 쓱 훑어보는 것 같았다. 그저 느끼기에도 막강한 실력인 것 같았는데 주위에 숨은 전각 수호자란 생각이 들었다.

영결전은 북창령원에서 중요한 곳이라 무방비상태로 두지는 않을 터, 누군가 이곳에서 난동을 부리면 저지할 사람이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했다.

목진과 낙리는 천천히 거대한 전각으로 향했다.

그때 뒤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세 갈래의 빛이 전각을 향했는데 양홍, 목규, 빙청 3인이었다.

양홍은 나타나자마자 주먹을 꽉 쥐고, 살기가 가득한채로 목진만 뚫어지라 쳐다봤다. 하지만 목진은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방긋 웃으며 목규와 빙청한테 인사했다.

“빨리도 왔군.”

목규도 방긋 웃으며 다가오더니 거대한 전각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곳 수비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방금 무서워 돌아갈 뻔했다.”

이에 목진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왜 이렇게 빨리 온 것이냐? 이 몸은 아직 충분히 쉬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이때, 느긋한 목소리가 대전에서 들려왔는데 바로 촉천 장로가 잠이 덜 깬 채 어디선가 나타났다.

“촉천 장로를 뵙습니다.”

그들은 모두 촉천 장로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이에 촉천 장로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순간 목진 등의 코앞에 나타났는데 그의 놀라운 속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촉천 장로가 언제 움직였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의 막강한 실력에 목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북창령원의 명성은 그저 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촉천 장로는 목진 등을 쓱 훑어보았다. 그러다 시선이 목진에게 머물렀고 목진은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다 왔으니 영결전에 들어가자꾸나.”

촉천 장로는 바로 눈길을 거두고 꼭 닫힌 영결전 대문을 향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한 갈래의 빛줄기가 청동으로 만든 대문에 적중하였다.

이에 청동 대문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나왔고 잇따라 복잡한 전술도를 형성하더니 은밀하고도 강력한 영력 파동을 일으켰다.

“고수들이 몰래 숨어있을 뿐만 아니라 이토록 강력한 영진까지 있다니 영결전의 수비는 역시 대단하군.”

목진은 중얼거리며 영력의 파동을 지켜봤는데 영진은 5급 이상 되는 것 같았다.

“나를 따르라.”

촉천 장로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졌고 목진 등도 얼른 뒤따랐다.

청동 대문을 들어선 순간 그들은 머리가 핑 돌았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눈앞에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화려한 광하(*光河: 빛의 물결)가 홍수처럼 흘렸고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져 앞에 나타난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영결전이 이렇게 생겼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다 하나, 둘씩 정신을 차리고 영결이 보이지 않아 어리둥절할 무렵, 촉천 장로가 다시 나타나 담담하게 웃으며 수많은 광하(*光河: 빛의 물결)를 가리켰다.

“이곳이 바로 영결전이란다. 너희가 그토록 원하던 영결이 바로 저 안에 숨어있으니…….”

목진 등은 다시 한번 놀랐다. 자세히 광하를 살펴보니 기이한 파동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영결전은 북창령원에서 영결을 보관하는 곳이란다. 하여 이곳에는 신급 영결도 적잖게 있는데 일정한 실력을 갖추고 인연까지 닿으면 너희도 신급 영결을 얻을 수 있단다. 그러나 너희가 영결전에 들어왔다고 무조건 영결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선택에 실패하면 빈손에 돌아갈 수도 있다는 점, 명심하거라.”

“선택에 실패하다니요?”

목진 등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광하에는 수많은 영결이 숨어있는데 스스로 만족하는 영결을 얻으려면 들어가 찾는 수밖에 없지. 그러다 괜찮은 놈을 만나게 되면 영결 속에 전송되고 그곳에서 영결 수호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실력은 영결의 등급에 따르는데 그들과 싸워 이겨야만 해당 영결을 얻을 수 있고, 실패하면 기회를 잃은 채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단다.”

촉천 장로의 말에 다들 입이 떡 벌어졌다. 역시 거저 얻는 것은 없었다.

“제일가는 영결을 얻으려고 하지 말아라. 그러다 정말 빈손으로 돌아가는 수가 있단다.”

촉천 장로는 그들을 번갈아 보더니 물었다.

“궁금한 점이 있느냐?”

이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흥미로운 방식에 다들 한시라도 빨리 광하에 뛰어들고 싶은 눈치였다.

“그럼 바로 시작하자꾸나. 다들 영결을 얻길 바란다.”

촉천 장로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갑시다!”

목진은 낙리를 보며 방긋 웃더니 함께 광하에 뛰어들었고 양홍, 목규, 빙청도 그 뒤를 따랐다.

한편, 촉천 장로는 그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하구나. 그중 신급 영결을 얻기란 유독 어려울 텐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