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곽풍(霍風)
목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지나가는 학생을 잡고 웃으며 물었다.
“선배, 어딜 이리 황급히 가나요?”
그 선배는 잔뜩 언짢아하며 목진을 째려보더니 말도 없이 바로 떠나려 하였다. 그러자 목진은 바로 영치패를 꺼내어 5천 영치를 줬다.
영치를 받은 학생은 반짝이는 눈으로 목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보아하니 신생이지? 취영진의 영조(靈潮)도 몰라?”
“영조요?”
목진은 어리둥절하여 상대방을 바라봤다.
“이정도 등급의 취영진에는 가장 깊숙한 곳에서 지극히 광대한 천지의 영기를 양성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누적되면 영조를 이뤄.”
“그럼 다들 영조를 향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건 또 아니야. 영조는 아주 난폭하여 휘말리면 위험해질 수 있어. 하여 마주치면 피하는 것이 좋아.”
학생은 히쭉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만, 천지의 영기가 쌓여 생긴 영조는 천영련(天靈蓮)이란 보물을 생성하지.”
“천영련이라......”
“영조가 나타날 때마다 하나의 천영련을 생성하는데 그 속에 깃든 영련자(靈蓮子)야말로 진정 귀한 것이야. 그것은 영력을 안정시키고 기초를 잘 다져주는데 신기하리만큼 좋은 효과가 있어.”
“그래요?”
목진은 의아하게 상대방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수련할 때 만약 기초를 잘 다지지 않으면 이후의 수련은 점차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영력을 안정시킬 수 있고 기초를 잘 다져주는 보물은 아주 보기 드물었다. 그런데 영련자라 불리는 물건이 그런 효능이 있다니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치전에서 영련자 한 알을 적어도 20만 영치에 팔고 있는데 보통은 물건을 구할 수 없어 살수가 없다.. 그런데 마침 영조가 나타났으니 다들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학생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천영련은 하나밖에 없고 그 안에 영련자도 얼마 없어 수많은 사람을 물리치고 영련자를 얻기란 아주 어렵지. 설명은 이 정도로 된 것 같으니 구미가 당기면 너도 가 봐. 늦으면 아무것도 없어.”
선배는 목진과 인사하고 바로 취영진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하나같이 그곳을 향하는 사람들을 묵묵히 바라보던 목진은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 영조로 향했다.
목진은 융천경에 이른지 얼마 되지 않아 체내의 영력을 애써 다스려봤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영련자를 얻을 수만 있으면 이따위 문제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고 따로 공을 들여 영력을 다스릴 필요도 없었다.
이토록 진귀한 보물과 인연이 닿았으니 목진은 구경이라도 하러 가려고 마음먹었다. 시도하지도 않고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물건이었다.
취영진 제일 깊숙한 곳의 오색찬란한 하늘에 기세등등하고 방대한 영기가 한곳에 모여 세찬 파도를 일으켰는데 그 소리는 진짜 파도와 다를 바 없었다.
사람들은 이미 주위에 잔뜩 몰려 먼 곳에 있는 영조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천지를 휘몰아치는 굉장한 영기의 압박이 주위를 맴돌았다.
융천경의 실력자도 이토록 방대하고 놀라운 영기에 더없이 작아져 감히 정면으로 맞설 수 없었다.
북창령원에서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앞쪽에 서 있었는데 이들은 실력도 막강하여 이곳에서 위엄이 남달랐다.
목진은 이러한 광경을 보며 앞쪽에 위치한 산봉우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천지에 들끓는 무서운 영조의 압박감에 숨 쉬는 것마저 어려워졌다.
“역시 6급 취영진이야.”
목진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저도 모르게 감탄하였다. 이 정도 등급의 취영진이어야 이토록 엄청난 영조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목진은 사람들한테 시선을 돌렸는데 그중에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소령아였다.
목진은 소령아를 보자 자연스레 코를 만지작거리며 뒷걸음쳤다. 다시 이곳에서 소령아를 볼 줄 몰랐다.
그러나 소령아는 목진를 발견하지 못한 채 팔짱을 끼고 차가운 얼굴로 머지않은 오른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도 다른 무리가 존재했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소녀도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입술이 얇아서 그런지 도도한 느낌을 물씬 풍겼다.
비록 두 여인의 미모는 비슷했으나 목진은 소령아가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소령아, 천영련이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왔어?”
이때, 늘씬한 소녀가 히쭉대며 소령아한테 말을 건넸다.
“서청청(徐青青), 취영진이 네것도 아닌데 내가 이곳에 올 때마다 너한테 보고해야 할 의무라도 있어?”
소령아는 맞은편에 있는 소녀에게 그 어떠한 호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입만 살았지.”
서청청이라 불리는 소녀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네가 목진이란 신생을 혼내겠다고 그렇게 돌아다니더니 결국 낭패를 봤다며? 소령아, 네 언니는 북창령원에서 그렇게 유명한데 동생인 너는 왜 신생 따위에 놀아나는 거야? 아니면 내가 도와줄까? 어디 나한테 사정해봐.”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 일에 끼어들어.”
소령아가 냉랭한 말투로 답했다.
“그래? 그런데 영련자는 반드시 나의 것이니 빼앗으려면 어디 덤벼봐, 절대 쉽진 않을 거야. 다들 네 언니를 무서워해도 난 아니거든.”
서청청이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그래, 어디 해 봐.”
소령아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둘의 사이가 안 좋다는 걸 주변의 구경꾼들 중에서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지라 지금 이 상황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소령아의 언니는 천방 3위인 소훤이고 서청청의 큰 오라버니는 천방 5위인 서황(徐荒)으로 뒷배가 다들 만만치 않아 이들을 건드릴 사람은 거의 없었고 마주치면 피해 다니는 편이었다.
목진은 이 광경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괜히 자신을 언급하는 서청청의 말투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목진은 두 여인 사이의 말다툼에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여 조용히 제자리에 서서 파동치는 영조를 바라보며 천영련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누군가 살기 가득하여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아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보고는 이내 흠칫 놀랐다.
그 시선의 주인공은 자신과 싸워 참담하게 패배했던 맥륜이었다.
목진은 그날 일이 있고 나서 맥륜이 또 무언가를 벌일 줄 알았는데 한동안 자취를 감춰 잠시나마 시름을 놨었는데 지금 보니 신백방 사건을 아직도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듯하였다.
목진은 맥륜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 옆에 있는 세 사람한테 눈길을 돌렸고 그중 제일 앞장선 사람한테 시선이 멈췄다.
그는 튼실한 몸에 콧날은 날렵하며 뾰족한 청년이었는데 몸속에서 내뿜는 영력의 파동을 보면 맥륜보다 훨씬 강한 것 같았다.
그 청년은 융천경 후기의 실력자였다.
이에 목진은 조금 놀랐다. 이런 실력을 갖춘 자라면 천방 100위에 들고도 남아 북창령원에서 무명인사는 아닐 것이었으니 말이다.
음침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던 맥륜은 한기 어린 미소를 짓더니 튼실한 청년한테 다가가 목진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속삭였다.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맥륜은 더 혼나야 정신을 차릴 거라 생각했다.
이때, 튼실한 청년이 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이에 목진은 전혀 피할 생각 없이 무덤덤한 얼굴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목진이 만약 융천경에 이르지 못했다면 융천경 후기의 실력자와 시비가 붙지 않으려 했겠지만 지금은 두려울 것이 거의 없었다. 제아무리 융천경 후기라도 지금의 목진을 손쉽게 이기기란 절대 불가능했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아하니 맥륜이 하소연하는 것 같았고, 반나절이 지나자 튼실한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목진한테로 돌진했다.
그리고 그 뒤를 허겁지겁 따라붙은 맥륜은 으쓱하여 목진을 바라봤다.
“청홍회의 큰형님 곽풍이잖아. 저자도 왔네.”
사람들은 바로 튼실한 청년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청홍회의 큰형님 곽풍이라......”
맥륜이 청홍회에 몸을 담고 있으니 곽풍을 믿고 그날 큰소리를 쳤던 것이었다.
보아하니 청홍회의 큰형님이 맥륜을 대신하여 복수라도 할 기세였다.
곽풍은 순식간에 목진이 있는 산봉우리에 내려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목진을 훑어봤다.
“네가 목진이라 불리는 신생이냐?”
“무슨 일이죠?”
목진이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
“전에는 내가 수련 중이어서 맥륜의 일을 최근에야 들었다.”
곽풍은 목진을 바라보며 손을 휘저었다.
“이 녀석이 일을 조금 지나치게 처리한 점은 나도 인정한다. 그래서 네가 한바탕 혼냈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영치는 다시 돌려주는 게 어때? 그건 맥륜이 반년 동안 어렵게 모은 거라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그래서 영치를 돌려주는 것으로 우리 사이를 깔끔하게 정리하자.”
곽풍은 너무 평온한 것이 꼭 당연한 일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에 목진은 피식 웃더니 맥륜을 바라보며 말했다.
“맥륜이 신생들을 우리 구역에 가두고 나가지 못하게 한 건 어떡할까요? 난 그것 때문에 맥륜을 혼냈던 것이고 너무 쉽게 돌려보냈다고 생각했던 참인데 영치까지 돌려주라고요?”
“목진, 우리 큰형님 앞에서 감히 우쭐대다니, 청홍회가 너를 가만둘 것 같아?”
맥륜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여 물었다. 꼭 목진이 전체 청홍회 회원들의 적이 된 것마냥 말이다.
“내가 전에 너무 곱게 보내준거 같네. 너 같은 쓰레기한테 무슨 도의를 지킨다고 말이야.”
목진은 히쭉 웃으며 맥륜을 바라봤는데 이에 맥륜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쳐 저절로 뒷걸음쳤다. 신생 대회 때 목진과 양홍이 싸우는 것을 봐서 자신이 절대 이 녀석의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내 앞에서 청홍회 회원을 위협하다니, 역시 소문대로 이번 신생은 너무 오만방자해.”
곽풍은 차가운 눈초리로 목진을 쏘아봤다.
한편, 천영련이 나타나기만 기다리던 사람들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바로 눈길을 돌렸는데 맞선 두 상대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곽풍은 천방 91위로 북창령원에서 꽤 명성이 자자했고 목진은 낯설긴 하지만 신생 대회에서 이름을 날려 다들 익히 알고 있었다.
머지않은 곳에서 영조를 바라보던 소령아도 무언가를 눈치채고 두 사람한테 눈길을 돌렸는데 목진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얼굴이 바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소령아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를 갈며 목진을 바라봤는데 이제야 나타난 목진을 당장에라도 죽여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네가 신생이라 뭘 좀 많이 모르는 것 같고 그날 맥륜이 잘못한 것도 사실이라 오늘은 그냥 넘어갈게. 다만, 영치만은 돌려줘. 그것으로 너희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자.”
곽풍은 목진을 쏘아보며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이에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곽풍을 쳐다보더니, 이내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싫어요.”
목진이 이 세 글자를 내뱉자 곽풍의 눈길은 점차 싸늘해졌고 놀라운 영력이 몸에서 스며 나왔다.
북창령원에서 명성을 어느 정도 알린 청홍회의 큰형님이 화가 났다.
이에 맥륜은 괜히 으쓱하여 목진을 바라봤다. 융천경 후기의 실력자이고 천방 100위안에 드는 엄청난 인물이며 북창령원에서 명성이 자자한 곽풍을 건드리면 목진은 오늘 손쉽게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멀리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소령아도 눈빛이 조금 흔들렸으나 이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곽풍은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닌데 나한테 했던 것처럼 허튼수작을 부려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소령아는 갑자기 그날의 일이 떠올라 얼굴이 더 빨갛게 달아올라 이내 이를 악물며 목진을 쏘아봤다.
“저 사람이 요즘 기세등등하다던 신생이야? 오만한 것 외에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네.”
서청청도 목진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곽풍의 실력을 잘 아는 그녀는 자신이 직접 맞서도 골치 아플 걸 알아 목진 따위는 절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