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천방 고수
소령아는 옥처럼 영롱한 영련자를 보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목진의 뜨거운 손바닥에 손이 닿자 흠칫 놀랐다.
영련자를 건네받은 소령아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내가 봐줄게.”
소령아의 말에 목진도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전 먼저 이만 가볼게요. 취영진에서 한 달 넘게 있었으니 이젠 나갈 때도 됐어요.”
“같이 가. 나도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
소령아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취영진 밖으로 향했고 소령아도 사람들과 함께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을 취영진을 나가는 동안 대화를 나누며 오해가 풀었고 그새 사이가 부쩍 가까워졌다.
어느덧 취영진 밖에 나온 목진은 익숙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비록 취영진에서 수련하는 학생도 많았지만 왠지 그곳은 북창령원과 다른 것같아 이곳이 더 마음이 편했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언제든 놀러와요. 환영합니다.”
목진은 방긋 웃으며 소령아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는 낙리와 떨어진 지 한 달이 넘었는지라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보고 싶었다.
이에 소령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며칠 동안 고생했더니 엄청 힘들었다.
이렇게 소령아는 먼저 떠나간 목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바로 떠났다.
* * *
목진이 돌아오자 신생들은 기다렸다는 듯 한껏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둘러쌌다.
“목형, 수련은 끝났어?”
“기세를 보니 실력이 또 늘었네. 역시 신생 중 으뜸이야.”
“넌 아부를 참 잘해. 그런데 목형이 날이 갈수록 멋져지는 것만은 사실이야...... 우리 낙신회에 목형이 있으니 언젠가 북창령원에서 큰 빛을 발할 거야.”
* * *
목진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각종 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이런 반응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들 그만해.”
우렁찬 소리와 함께 주령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목진을 쓰윽 훑어보더니 놀라운 기색을 드러냈다.
“융천경에 이른 거야?”
주령은 목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이어갔다.
“넌 역시 대단해.”
목진은 신백경 후기였을 때 감히 융천경 중기의 실력자와 맞섰는데 지금은 융천경이 되었으니 융천경 후기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목진은 앞을 막아선 주령을 무시한 채 광장 쪽만 바라봤다. 그곳엔 검은 치마를 입은 소녀가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늘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에 유리구슬처럼 맑고 투명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광장에서 수련하고 있던 수많은 신생이 두 사람을 보면서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녀를 바라보던 목진은 마음이 점차 진정되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목진은 그 어떠한 고난도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진이 돌아온다고 그렇게 좋아했는데 결국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는 방해꾼이었단 생각에 주령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목진은 주위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손을 내밀어 낙리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을 뿐 소년의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순간 놀랐지만 이내 목진이 부러웠다.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살 것 같은 낙리도 목진 앞에서는 순한 양이니 말이다.
“취영진에서 별일 없었어? 소령아가 기세등등하여 너를 찾아왔던데 내가 일단 돌려보내긴 했어. 그런데 꼭 널 찾아갈 것 같았어.”
낙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미 만났어. 처음엔 사건이 조금 있었는데 지금은 친구가 됐어.”
목진은 낙리한테 영련자를 한 알 건네주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건 내가 취영진에서 얻은 건데 너한테 한 알 줄게.”
“영련자잖아?”
주령이 놀란 눈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요즘 자주 영치전에 드나들며 영련자에 대해 주워들은 것이 있어 그 가치를 잘 알았다. 이에 목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두 알뿐이라 널 줄 건 없어.”
주령은 아쉬운지 괜히 입맛을 다셨다.
“취영진에서도 조용히 수련하진 않았나보구나. 대신 우리 낙리도 한 달 반 동안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어. 낙리는 지금 천방 고수야.”
“천방?”
목진은 먼 곳 북창령원 어디서든 보이는 우뚝 솟아오른 비석을 쓰윽 훑었다. 그리고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낙리, 천방 83위, 신생.
“네가 천방 순위권에 들 생각을 할 줄 몰랐어.”
낙리라면 천방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싫어할 거란 생각에 목진은 조금 놀랐다.
“낙리는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었어.”
주령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어갔다.
“낙리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는 알지? 하여 네가 수련하러 취영진에 들어갔을 때 북창령원에서 귀찮은 녀석을 만났는데 온종일 따라다니더군.”
“그래?”
목진은 벌써 인상을 찌푸렸다.
“그 녀석도 북창령원에서 명성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인데 전에 천방 83위였었어. 그러다 너무 귀찮게 해서 낙리가 도전장을 내밀었지.”
주령은 히쭉 웃으며 말했다. 그날 있었던 일을 회상할수록 흥미로웠다.
“그 녀석이 그토록 쉽게 낙리한테 질 줄 몰랐어. 싸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처참하게 패배했지 뭐야? 녀석은 결국 도망쳤고 낙리는 자연스레 녀석 대신 천방 83위에 이름을 올렸지.”
“다음번에 이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맡겨.”
목진은 낙리의 손을 잡고 엄숙하게 말했다. 자신이 없는 틈을 타서 자기 여인을 빼앗으려 하다니, 그게 누구든 가만두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낙리는 방긋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녀는 목진만 곁에 있으면 무엇이든 좋았다.
“우린 먼저 돌아갈게.”
목진은 인사를 하고 낙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목진은 그저 둘이서만 조용히 보고 싶었다.
집에 돌아온 목진은 낙리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맑은 호수를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고 낙리는 그 옆에 앉았다.
낙리는 목진의 옆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은 채 목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목진은 그런 낙리의 얼굴을 넋놓고 바라봤다. 이토록 간단한 동작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는 꼭 자신이 소녀의 전부이고 소녀가 의지할 사람이 자신뿐인 것 같았다.
“낙리, 언젠가 네가 모든 부담을 털어버리고 마음 편히 지내게 할게. 네가 떠안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든 내가 널 도울 거야.”
목진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이에 소녀는 눈을 깜빡이고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밤이 되어 침대에 앉아있는 목진의 몸에 차가운 달빛이 비췄다.
목진은 고개를 숙여 수중의 둥근 영련자를 바라봤는데 짙고 순수한 영력이 부단히 흘러나왔고 열매의 향기가 방안 한가득 퍼졌다.
그는 영련자를 잠시 지켜보다가 꿀꺽 삼켰는데 이는 들끓는 영력이 되어 몸에 스며들었지만 더없이 순하고 그윽하여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이는 다른 난폭한 보물과는 전혀 다른 속성이었다.
이렇게 목진은 대부도결을 소환하여 부단히 영력을 단련하여 신백에 흡수시켰고, 신백의 체내에서 만들어낸 불씨로 흑염의 어두운 영력을 얻었다.
이와 동시에 기이한 파동이 느껴졌는데 닿는 곳마다 들끓던 영력이 순간 진정되었고 차분하고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은 마치 곧 무너질 대전에 갑자기 견고한 기둥이 나타나 모든 불안한 요소를 없앤 것 같아 목진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목진이 시원하게 백기를 길게 내뱉고, 얼굴에서 담담하게 빛을 발산하였는데 지금이야말로 진정 융천경 초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었다.
전에는 그저 신백경 후기를 돌파한 것뿐이었지 융천경 초기를 완벽하게 장악하지는 못했지만 영련자의 신박한 효과 덕분에 바로 기초를 단단히 다지고 일반 융천경인 사람을 훨씬 뛰어넘었다.
“역시 영치전에서 20만 영치에 팔만한 보물이야.”
영련자는 실력을 끌어올리는데 다른 보물보다 못할 수 있지만 기초를 다지는 데는 제일이었다. 또한, 누구든 기초를 잘 다져야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검은색 족자에서 부단히 검은빛이 흘러나왔는데 이는 족자의 주위에 네 갈래의 상고 영수의 그림자를 형성하여 아우성쳤다.
검은색 족자는 바로 목진이 영결전에서 얻은 사신성숙경인데 6급 취영진에서 수련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체내의 신비로운 검은 종이의 부름을 받지 않았으면 목진은 절대 이 족자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이는 물건이 비범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목진은 비록 족자의 등급은 몰랐지만 적어도 준신급보다는 강력하다는 것은 확신했다.
그러다 이현통과의 약속 시간이 열흘 남짓 남았단 생각이 문득 들어 목진은 이내 엄숙해졌다. 이현통이 한 말은 절대 장난이 아니었는지라 목진이 만족스러운 답변을 주지 못하면 그는 분명 목진더러 낙리의 곁을 떠나라고 강요할 것이었다.
목진은 이처럼 원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장악하고 있는 모든 수법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했다. 이곳 북창령원에는 강자가 수없이 많았고 천방에 오른 사람들만 봐도 누구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에 목진은 손에 쥔 검은색 족자에 눈길이 갔는데 한껏 엄숙하여 주먹을 쥐더니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러다 족자가 은은한 검은빛을 내뱉어 목진의 손을 휘감았는데 목진은 순간 몸이 파르르 떨리더니 대량의 난해한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이와 동시에 목진의 뇌리에 무언가 요란한 소리가 들렸고, 순간 의식을 잃더니 주위 환경이 갑자기 바뀌었다.
목진은 지금 별이 한가득한 하늘에 떠 있었는데 앞에 있던 거대한 검은색 족자가 서서히 펼쳐지더니 검은빛과 함께 상고의 글이 목진의 눈에 들어왔다.
사방의 령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로 사령이 한곳에 모이면 천지를 진압할 수 있다.
복잡한 설명 하나 없이 간단한 한마디였는데 그 한마디에 담긴 엄청난 정보에 목진은 숨마저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이때, 나지막하게 무언가의 울음소리가 들려 목진이 고개를 돌리자, 사방이 빛나더니 거대한 용, 호랑이, 주작과 거북의 형태로 변하는 것 같았다.
그 외, 별밤도 부단히 변하였는데 어느덧 희미해졌다가 지극히 난해한 상고의 인법이 되었다.
목진은 넋 놓고 바라보다가 바로 상고의 인법을 머리에 새겨 넣었다.
이렇게 반나절이 지나 인법이 점차 사라졌고 목진도 다시 정신을 차렸으며 별밤이 사라지면서 눈을 떴고, 이어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상고의 인법에서 목진은 천지를 뒤흔드는 무서운 힘을 느꼈다.
“이것이 곧 신급 영결인가?”
목진은 중얼거리더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정색하여 두 손을 가볍게 모으고, 지극히 기이한 상고의 인법을 본 그대로 재현했다.
이 인법은 비록 낯설고 연결이 매끄럽지 못했지만 상고의 방대한 기운을 머금고 있어 주위의 천지 영기마저 들끓었다.
목진은 인법을 99번이나 변환하였는데 마지막에는 식은땀이 이마에 맺혔고 체력적인 소모도 엄청났다.
그러다 마지막 인법을 마치자 방 안 천지의 영기가 갑자기 폭동을 일으키더니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목진의 두 손 사이에서 눈부신 빛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주 무서운 파동이 방안에 퍼졌다.
목진은 손바닥에 모인 눈부신 빛을 바라보더니 방에서 나와 순식간에 신생 구역의 거대한 호수 위에 나타나 수인을 휘두르며 외쳤다.
“사신성숙경, 백호신인!”
하늘을 뒤흔들만큼 엄청난 호랑이의 포효와 함께 주위의 천지 영기가 미친듯이 몰려왔고, 목진 손바닥의 눈부신 빛이 점차 팽창하여 결국 천 척 정도 크기의 백호가 되어 호수를 공격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수만 척이나 되는 방대한 호수 전체가 흔들렸고 거대한 파도가 주위에 퍼졌다.
목진은 자신의 공격에 흔들리던 호수가 점차 진정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손바닥에 눈을 돌리며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비록 지금 휘두른 백호신인도 위력이 약하진 않지만 절대 사신성숙경의 진정한 위력을 선보이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무언가를 빼먹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