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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51화 (150/1,000)

151화. 깨달음

이렇게 목진은 호수 위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빠졌다.

목진은 자신이 소환했던 백호신인을 다시 떠올렸는데 영력은 난폭했으나 기세가 부족해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저 하얀색 호랑이의 형태를 했을 뿐, 절대 백호의 기세가 깃들어있지 않아 진정한 백호신인의 위력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에 목진은 기분이 좋아졌으나 바로 시무룩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사방의 령이라 불리는데 이들은 신수중에서도 제일인 존재였고 소수의 최상급 신수들이 겨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하여 지금의 목진한테는 백호의 기세를 흉내 내는 것마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신급 영결은 수중에 넣어도 수련에 성공하기란 어렵단 생각에 목진은 시무룩해져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영결 수련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난관에 부딪혔으니 일단 중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때, 목진은 갑자기 체내의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가 생각났다.

사신성숙경도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가 소환했으니 양자 사이에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목진은 바로 기해에 들어가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를 뚫어지라 쳐다봤지만 그것은 한 줄기의 빛마저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목진은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를 쳐다보며 잠시 주저하다가 영력 광륜 위에 앉은 신백을 움직였다.

이에 신백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더니 난해한 상고의 인법을 서툴게 변환하였다. 이는 목진이 했던 것과 똑같았다.

그런데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는 99번째 인법이 응결될 때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목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였는데, 이때 기이한 진동소리가 들려오더니 기해에서 확산되었다.

이에 목진의 신백이 고개를 번쩍 들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아무런 반응도 없던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가 드디어 은은한 검은빛과 함께 진동소리가 기해에 울려 퍼졌다.

신비로운 검은빛이 검은색 종이에서 조금씩 흘러나왔고 그 위에 난해한 상고의 광문이 조금씩 나타났다.

목진은 흥미진진하여 살펴봤다. 이는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를 얻은 뒤로 이런 움직임은 처음이었다.

검은빛이 부단히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에 모이더니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공간을 형성하였고 새하얀 백호가 그 사이로 울부짖으며 다가왔다. 이와 동시에 무한한 살기가 휘몰아쳤는데 이에 목진 체내에 흐르던 영기가 순간 움직임을 멈춰 몸 전체가 차가워졌다.

목진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백호의 위엄에 화들짝 놀랐다. 눈앞의 백호는 더는 새하얀 가죽을 덮어쓴 일반 호랑이가 아닌 진정한 최상급 신수였다.

비록 실물은 아니나 그 기세만큼은 천지를 뒤흔들고도 남았다.

자신이 수련하는 사신성숙경이 바로 4령에서 비롯된 기세가 모자랐던 것이었다.

한편, 구유작도 기해에서 날개를 휘저으며 잔뜩 진지하여 신비로운 검은 종이의 위쪽에서 목진한테 다가가는 백호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똑같은 영수로서 구유작은 백호의 체내에서 내뿜는 진정한 위압감을 느꼈는데 이는 일반 신수와 전혀 달랐다.

4령 중 한 마리인 백호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목진도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점차 진정하였다. 눈앞의 백호는 비록 허상이었지만 진짜 백호에게만 있는 기세와 위압감을 갖고 있었다.

이에 목진은 서서히 눈을 감고 백호의 체내에서 내뿜는 기운을 느꼈다.

이런 기세를 인법에 인용해야 사신성숙경이 진정한 위력을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제아무리 백호의 위엄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다행히 목진은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신성숙경을 수련할 방법을 찾았으니 시간만 충분하면 분명 성공할 거라 생각했다.

하여 목진은 마음을 바로잡고 기해에서 물러났는데 이와 동시에 신비로운 검은색 종이에서 나던 빛도 신속히 사라져 여느 때와 같이 평온을 되찾았지만 구유작만은 아직도 그것을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한편, 목진이 호수 위에서 눈을 떴을 때 이미 해가 뜨기 시작하여 기지개를 켜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 후, 목진은 틈만 나면 기해에 들어가 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백호를 주시하였는데 그 살기는 한기처럼 다가와 몸에 흐르는 피마저 응고시키는 것 같았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 목진의 백호신인은 처음보다 훨씬 강력해졌고 이대로라면 곧 진정한 위력을 나타내는 날이 올 거라 확신했다.

목진은 그날이 엄청 기대되었다.

* * *

목진은 조용히 옥상에 앉아 느긋하게 햇볕을 쬈다. 요즘 백호신인을 수련하느라 백호의 살기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체내의 영력에 이상이 느껴졌다. 다행히 체내의 영련자가 이상한 파동을 바로 진정시켰는데 이는 분명 목진이 백호신인의 수련에 너무 푹 빠져있어 생긴 일이었다. 하여 그 뒤로부터 목진은 더는 시도 때도 없이 백호신인의 수련에 몰두하지 않았다.

목진의 옆에는 낙리도 함께 앉아있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장발을 풀어헤쳤는데 은하수처럼 눈부셨고 가녀린 몸매에 우아한 자세를 하고 족자 하나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아마도 영결인 것 같았다.

목진은 열심히 글을 읽는 낙리를 빤히 쳐다보더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상대가 너무 아름답고 곁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았고, 일전에 백호의 살기 때문에 이상했던 마음이 확실하게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런 안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날, 누군가 바람을 가르며 두 사람이 사는 곳에 찾아왔는데 내려가보니 엽경령이었다.

“무슨 일이죠?”

목진은 다소 다급해 보이는 엽경령에게 물었다.

“오늘 내가 사람들과 함께 5급 취영진에 가서 수련하려고 하였는데 낯선 고참들이 다가오더니 우리 낙신회 사람들을 전부 내쫓으려 했어. 주령이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으려 하자 손찌검까지 하더군. 순아의 뺨까지 때렸어.”

엽경령이 다급하게 말했다.

“네?”

목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도대체 누가 순아같은 어린아이한테까지 손을 대는 건지 궁금했다.

“우리 낙신회가 주동적으로 원한을 산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설마 청홍회 맥륜입니까?”

낙리도 족자를 접고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청홍회는 아니야.”

엽경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대황회라고, 청홍회보다 더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야.”

“대황회?”

목진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혹시 천방 5위인 서황이 있는 대황회를 말하는 건가요?”

반면, 낙리는 이에 관해 조금은 아는 눈치였다.

“서황?”

목진은 순간 흠칫하더니 한기 가득한 눈길로 엽경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서청청이란 여인도 있었나요?”

“순아가 바로 그 계집한테 맞았어!”

목진의 말에 엽경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령이 목진을 찾아가라고 시키지 않았으면 지금쯤 서청청과 싸우고 있었을 것이었다.

“역시......”

서청청은 역시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목진을 얼마나 쉬운 사람으로 여겼으면 이렇게까지 나왔을까?

“나 때문에 낙신회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 같아요.”

목진의 말에 엽경령은 흠칫 놀랐다. 비록 목진과 서청청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게 왜 네 탓이야, 서청청 탓이지.”

“서청청이 있는 곳으로 함께 가죠.”

목진의 목소리엔 한기가 흘렀다. 그가 정말 화가 났다는 의미다.

서청청은 6급 영진에서부터 목진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는데 목진이 귀찮아 상대해주지 않았더니 감히 낙신회에까지 손을 댔고 어린아이인 순아의 뺨을 후려쳤다.

“서청청이 사람을 여럿 거느렸는데 그중 넷은 이미 융천경 후기였고 북창령원에서도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어.”

“나도 갈래.”

낙리는 잔뜩 화가 난 목진이 혼자 갔다가 혹시라도 상대방한테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였고 엽경령은 바로 앞장섰다.

이렇게 세 사람은 신생 구역을 떠나 드넓은 북창령원의 한쪽 구석을 향했는데 1각 정도 지나 드디어 속도를 늦췄다. 앞쪽 방대한 석대 위, 영기가 일그러진 곳이 바로 5급 취영진이었다.

세 사람은 5급 취영진에 곧장 들어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석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싸움 현장을 목격하였다.

그중 한쪽은 기세등등하여 상대방을 기선제압하고 있었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적잖게 있었는데 석대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신생이었고 그 오른쪽에는 북창령원에서 명성이 대단하다는 대황회 사람들이었다. 양쪽은 전혀 다른 급이었다.

해당 행위는 명백히 괴롭히는 것이었으나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하긴, 대황회의 지위로 보나 그중 큰형님의 천방에서의 순위로 보나 북창령원에서 이들을 건드릴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때, 대황회 무리의 가장 앞에서 서청청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콧방귀를 뀌며 기세등등하여 한껏 놀란 신생들을 바라봤다.

주령의 얼굴은 이미 퍼렇게 멍들었는데 그것은 융천경 후기와 싸우다가 맞은 흔적이다.

그리고 주령의 주위에 서 있는 낙신회 회원들은 이를 갈며 서청청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형이 왔어!”

누군가의 외침에 주령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목진!”

주령은 기뻐하며 목진의 이름을 외쳤다.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령의 옆을 바라봤다. 양 갈래를 한 여자 아이가 눈물이 글썽하여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데 새하얀 얼굴에 빨갛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목진 오라버니.”

순아는 얼굴을 어루만지며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 있었는데 너무 가여웠다.

이렇게 목진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목진이 석대 위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적잖게 놀랐다. 신생 중 가장 유명한 두 사람이 곧 목진과 낙리였다.

목진이야 신생 대회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낙리는 그날 천방에 오른 것 때문에 북창령원의 학생들이 적잖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으로 보면 두 사람은 대황회 때문에 뭉쳤다.

한편, 두 사람에 맞선 대황회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는데 북창령원에서 감히 건드릴 사람은 손에 꼽힐 만큼 적었다. 그중 목진은 예측 불가한 변수였다.

“드디어 나타났군.”

목진이 나타난 것을 확인한 서청청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6급 취영진에서 괜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했지? 나 서청청을 건드린 네가 북창령원에서 두 다리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어린 아이를 때린 겁니까?”

목진은 순아를 가리키며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이에 서청청은 얼굴에 빨간 손자국이 난 여자아이의 불쌍한 표정에 넘어갈 뻔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어린 나이에 벌써 남자를 유혹할 줄 아는 여우 같은 계집이라 생각했다.

“그래, 내가 때렸어. 어린 계집이 겁도 없이 자꾸 말대꾸해서 때렸다 왜?”

서청청이 콧방귀를 뀌었다.

“만약 영로에서 너 같은 걸 만났다면......”

목진은 서청청을 노려보더니 이내 씨익 웃었는데 그 속에는 한기를 넘어 살기가 느껴졌다.

“바로 죽였을 거야.”

목진의 눈길은 점차 차가워졌다.

서청청은 목진의 살기에 흔들리는 듯했지만 이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너 따위가 뭔데 내 앞에서 센 척이야?”

목진이 몸을 앞으로 조금 기울여 공격태세를 취하자 옆에 서 있던 낙리가 먼저 움직였다. 어찌나 빠른지 희미한 그림자만 겨우 보였다.

낙리는 순식간에 서청청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엔 한기가 서렸다.

“넌 누구야?”

서청청은 여인마저 부러워할 아름다운 얼굴을 한 여인을 보자 질투가 났다.

짝.

낙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바로 서청청의 얼굴을 후려쳤는데 맑은 소리가 석대에 널리 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서청청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공이 이내 파르르 떨렸는데 순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뺨을 맞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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