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강자들의 대결
옆에서 수군대던 사람들은 서청청이 뺨을 맞는 맑은 소리와 함께 바로 조용해졌고 서청청 뒤에 서 있던 대황회 회원들은 순간 넋이 나갔다. 다들 서청청이 오만한 것을 잘 알았으나 그의 큰 오라버니 서황이 있어 감히 건드리지 못했는데 그런 서청청의 뺨을 사람들 앞에서 때린 낙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야!”
서청청은 입을 파르르 떨며 낙리를 바라봤다.
“감히 내 뺨을 때려? 네가 감히!”
“방금 때린 건 순아의 몫이야.”
낙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손을 들어 상대방의 얼굴을 후려쳤다.
맑은 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지자 다들 심장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이건 네가 방금 목진을 욕보인 대가야. 앞으로 네가 입을 함부로 놀릴 때마다 난 한 대 때릴 거야.”
낙리는 손을 거두며 말했다.
서청청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따가운 얼굴을 어루만지며 광기 어린 눈으로 낙리를 바라봤다. 그러다 주먹을 쥐더니 영기를 불어넣은 장검을 빼들고 미친 듯 낙리의 목을 찌르려고 돌진했다.
“널 죽여버릴 거야!”
이에 낙리는 검은색 장검을 빼들었는데 검영이 나타나더니 현묘한 궤적을 그리며 서청청의 손목을 세차게 내리쳤다.
이렇게 서청청의 손목은 순간 멍이 들었고 장검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으며 비명소리와 함께 서청청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 멈추지 않았으니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당장 저 계집을 죽여! 얼른 죽이란 말이야!”
서청청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여태껏 북창령원에서 원하는 걸 다 이루며 살아왔는지라 이런 수모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또한, 이 일이 알려지면 자신은 앞으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서청청 뒤쪽에 서 있던 대황회의 실력자들도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서황의 동생 서청청이 당했는지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뺨을 때린 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그중 평범하게 생긴 청년이 엄숙한 표정을 한 채 낙리에게 말을 걸면서 손을 뻗더니 웅장한 영력이 매의 발처럼 낙리의 손목을 향했다.
“내가 당신이었다면 절대 그녀한테 손대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이때,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낙리의 뒤에서 달려와 주먹을 날렸는데 흑염이 깃든 권풍은 사정없이 청년을 공격했다.
이에 청년은 순간 안색이 변하여 한쪽 손에 영력을 끌어모았는데 손끝에서 영력이 결정체가 된 듯 단단하고 매서웠다.
이렇게 두 갈래의 영력이 부딪쳤는데 청년의 안색이 다시금 변하더니 손끝이 이상하게 뜨거웠고, 기괴한 흑염이 자신의 영력을 태워버리며 자신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흑염은 영력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
하여 청년은 바로 손을 거두고 십여 보 뒤로 물러났다.
관전하던 사람들은 순간 떠들썩해졌다. 방금 목진과 싸웠던 청년의 이름은 진수(陳袖)인데 대황회에서 고위 관리자였다. 실력은 융천경 후기에 이르렀으며 천방 100위 안에 들 자격이 충분하다고 평가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목진한테 당할 줄 아무도 몰랐다.
“신생 따위에 지다니, 이 쓸모없는 자식아. 다들 뭐해, 난 오늘 저 계집을 죽여버리고 말 거니까 당장 잡아!”
서청청은 화가 치밀어올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이에 진수 등의 안색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대황회 회원이지 서청청의 노예가 아니었다. 또한, 서황만 아니었으면 서청청 따위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대편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이를 지켜보던 목진은 실력이 괜찮은 대황회 사람들과 얼마든지 싸워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낙리도 태연하게 검은색 장검을 쥐고 서 있었는데 괜히 아우성치며 난동을 부리는 서청청과 현저하게 대비되어 사람들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우아하고 조용한 낙리에 비하면 서청청은 너무 저속하였다.
반면, 아무리 앙탈을 부려봐도 소용이 없자 서청청은 치가 떨려 진수 등에게 손가락질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감히 내 말을 거역해? 그럼 내가 직접 나간다. 그러다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 오라버니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에 진수 등은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살생이 금지되어 있는 북창령원에서 감히 누가 서청청처럼 사람을 죽이겠다고 미쳐 날뛸 수 있을까.
그러나 이를 알 바 없는 서청청은 바로 장검을 빼들고 낙리의 목숨을 따려 달려들었다.
“청청아!”
그런데 이때, 우레와 같은 소리가 이곳 석대에 울려 퍼졌는데 서청청은 순간 화색이 되어 고개를 들었다.
“큰 오라버니!”
멀리서 누군가 빛의 속도로 다가오더니 바로 서청청 옆에 나타났다.
주령 등은 큰 오라버니란 서청청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빛이 사라지고 나타난 사람은 회색 옷을 입고 있었고 매서운 눈으로 주위를 훑었는데 저도 모르게 눈길을 피하게 됐다.
저 사람이 바로 북창령원의 천방 5위인 서황이었다.
그가 이 자리에 나타날 줄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이 석대에 나타나자 분위기는 순간 무거워졌다. 다들 북창령원에서 쉽게 얼굴을 비추지 않는 존재가 이런 일에 직접 나설 줄 몰랐다.
한편, 목진도 청년한테 눈길이 갔는데 움푹 파인 눈에서 예리하고 불편한 한기를 느꼈다.
또한, 목진은 청년한테서 위협을 느껴 움찔하였다. 이는 여태껏 북창령원에서 만난 학생 중 이현통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상대였다.
“큰 형님!”
진수 등 사람들도 이내 꼬리를 흔들었다.
“오라버니!”
서청청은 바로 서황의 팔을 끌어안고 울며 말했다.
“저 계집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 뺨을 때렸는데 반드시 혼내주세요.”
서황은 빨갛게 달아오른 서청청의 얼굴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비록 서청청의 성격을 잘 알고 있으나 친동생이라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감싸고 대신 나서줘야 한다고 아버지께서 신신당부했었다.
“네가 한 짓이냐?”
서황이 인상을 찌푸리며 앞에 서 있는 목진에게 물었다.
이에 목진도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당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알겁니다.”
목진은 이내 시선을 서청청에게 돌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입을 함부로 놀리면 뺨 두 대로 끝나진 않을 거야.”
목진의 말에 서청청은 반박하려 했지만 살기 어린 그의 두 눈을 보고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이에 관전하던 사람들도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서황 앞에서 감히 서청청을 위협하는 목진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기가 가득한채로 목진을 노려보는 서황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신생, 감히 내 앞에서 그리 말한 것인가? 북창령원에서 자네가 손에 꼽힐 만큼 대단하다 생각하는 건가?”
서황의 나지막한 목소리에서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당신이 이현통이었어도 저는 똑같이 말했을 겁니다.”
목진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서황은 피식 웃었다. 목진의 말을 어처구니없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이 아이가 아무리 안하무인이고 난동을 부려도 내 동생이란 점은 변치 않아. 그리고 이 아이를 혼낼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서황이 저리 감싸고 도니, 서청청이 오만방자하지 않다면 더 이상했을 것이다.
“누가 내 동생을 때렸는가? 내 동생을 때린 사람만 내놓는다면 신생인 너희를 봐주겠네.”
그래도 북창령원에서 꽤나 이름을 날린 서황인데 괜히 신생들과 따지고 들었다간 체면만 구길 뿐이다.
서황의 말에 낙리가 검은색 장검을 빼들고 나서려 하자 목진이 그 앞을 막아 나섰다.
“서황 선배께서 시비도 따지지 않고 서청청 대신 원수를 갚아주겠단 말입니까?”
서황은 적어도 시비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목진은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 역시 이러니까 동생이 저따위란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말을 참 복잡하게 하는구나.”
서황은 움푹 파인 눈으로 목진을 바라봤는데 음침하고 예리한 눈빛을 감히 직시할 사람은 몇 없었다.
“사람을 내놓을 수는 없고 선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대신, 동생 단속은 제대로 하셔야 할 거예요. 북창령원에서는 당신이 보듬어주면 그만이지만 이곳을 떠나면 분명 큰코다쳐요.”
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에 서청청은 순간 화가 치밀어올라 이를 갈며 목진을 바라봤다.
“마음대로 하라?”
목진의 말에 언짢아진 서황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굉장한 영력을 끌어올렸다. 그 위력에 주위 사람들이 힘없이 밀려났다.
서황의 영력은 너무 강력에서 함께한 사람들은 호흡하기도 어려워졌고 다들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천방 5위의 실력이 이렇게 어마어마하단 말인가?
목진도 간신히 숨을 쉬며 대부도결을 소환하였다. 이에 몸속에서 상고의 종소리가 울리더니 서황이 내뿜는 압박감을 전부 받아냈다.
그 옆에 서 있는 낙리도 검은색 장검을 꽉 쥐고 서황의 영력의 압박에 맞섰는데 두 사람 모두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화천경......”
이러한 압박감은 융천경 후기의 실력자가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황은 벌써 화천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얼른 저 계집을 내놔. 그럼 오늘 일은 봐주도록 하지.”
서황은 낙리를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에 목진은 피식 웃었다. 융천경 초기한테 화천경이 엄청난 상대이긴 하나 목진이 두려워한단 뜻은 아니었다. 서황이 도를 넘으면 바로 구유작의 힘을 빌려 짓밟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유작은 목진이 직접 정련한 정백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하면 혈맥을 연결한 일이 드러날 수 있었지만 낙리를 넘기는 것이 들키는 것보다 더 싫었다.
“고집을 부려봤자야.”
마침내 인내심을 잃은 서황은 공격 준비를 하였다.
이때, 한 갈래의 막강한 영력이 느껴졌고 먼 곳에서 한 줄기의 빛이 이곳으로 향했다.
“서황, 네가 낙리한테 손을 대는 것은 내가 용납할 수 없지.”
점차 가까워지는 소리에 사람들이 시선을 돌렸고 한 줄기의 빛이 석대에 나타나더니 이내 목진과 낙리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에 주위는 순간 떠들썩해졌다. 오늘 이곳에 천방에서 손꼽히는 인물이 두 명이나 나타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현통?!”
천방 제일인 심창생이 북창령원에 없으니 이현통을 뛰어넘을 존재는 결코 없었다.
“이현통?”
서황도 움찔하긴 마찬가지였고 옆에 서 있는 서청청은 마음이 복잡미묘했다. 그저 배경 하나 없는 신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이현통과 연관이 있을 줄 몰랐다.
한편, 목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는데 자신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낙리 때문이란 생각에 납득이 갈 것도 같았다.
“이현통, 네가 왜 나서지?”
서황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제아무리 천방 5위인 서황이라도 이현통이란 상대 앞에서 까불지 못했고, 정말 이현통이 끼어든다면 큰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낙리만 끌어들이지 않으면 나 또한 물러날 거야. 또한 오늘 일은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생각하네.”
이 말은 잘못은 서청청한테 있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제아무리 안하무인인 서청청이라도 감히 이현통 앞에서 난동을 부리진 못했다.
서황은 이현통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서히 목진한테 시선을 돌렸다.
“이번엔 우리가 봐주는 것으로 하지. 그런데 매번 이렇에 운이 좋을 순 없지. 다음번에 나한테 걸리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럼 서황 선배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방긋 웃으며 말하는 목진한테서 두려움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서황은 목진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더는 대꾸하지 않고 취영진을 떠났다. 서청청도 발을 동동 구르며 그 뒤를 따랐다. 오늘 일은 이대로 접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대황회 사람들이 떠나자 주위에 모여들었던 학생들도 점차 흩어졌다. 다들 엄청난 전쟁을 예상했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쉬웠지만 한편으로 천방 2위와 5위를 직접 본 것으로 만족하였다.
“고맙습니다.”
목진은 비록 서황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자신의 비밀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했다.
“낙리만 아니었으면 난 절대 너를 상대하지 않았을 거야.”
목진의 체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현통의 말에 낙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목진의 손을 잡고 떠나려 하였다.
“목진.”
이현통이 서로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에게 준 시간이 곧 끝나가는데 답은 정했나?”
“이현통 선배, 전 모든 걸 받아드릴 준비가 됐습니다.”
이현통은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깊게 숨을 내뱉더니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바라봤다. 그의 두 눈은 점점 매서워졌다.
‘받아드릴 준비가 되었다라…… 네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 내가 시험해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