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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153화 (152/1,000)

153화. 대결

이현통과 서황이 5급 취영진에서 맞선 일은 곧바로 북창령원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 소식에 사람들은 모두 열광했다.

이현통과 서황은 각각 천방 2위와 5위로 화천경에 이르는 실력자들인 데다 북창 대륙에서 봐도 고수였으며 파벌이나 세력에서도 중층이나 고층이 되고도 남았다. 이에 그 누구도 그들과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지만 결국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아 사람들은 모두 아쉬워했다.

한편, 서황은 이현통이 나타나자마자 대황회 회원들을 데리고 떠났는데 그 이유는 이현통이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더 엮여봐야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쉬워하던 찰나,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현통이 목진에게 대결을 청한 것이다. 이 소식은 빠르게 북창령원에 퍼졌는데 다들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천방 2위가 한낱 신생에게 대결을 신청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왜 이현통처럼 엄청난 인물이 북창령원에 들어온 지 몇 개월밖에 안 되는 신생과 싸우려고 하는 걸까? 비록 목진이 실력이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지만 그래도 이현통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설마 이현통이 이토록 해괴망측한 대결을 먼저 제안했을까?

이는 올해 북창령원에서 가장 기이한 일이라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 사람들 앞에 얼굴도 거의 비추지 않던 이현통이 신생을 적수로 삼다니, 사람을 마구 짓밟는 쾌감을 느끼려나 추측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싸우게 된 원인은 궁금했다. 하지만 결국 이현통의 승리로 끝날 뻔한 싸움에 구미가 썩 당기지는 않았다.

그나마 유일한 볼거리는 천방 2위의 실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은 목진이 이현통과 싸운 뒤로 남은 생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그 시각, 소식을 들은 서황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현통이 목진한테 대결을 신청했다니, 그럼 그땐 왜 도와줬을까?”

서청의 말에 그 옆에 앉아있던 서청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아무래도 이현통이 낙리를 좋아하는데 낙리는 목진을 좋아해서 질투가 나서 저러는 것 같아요. 이현통은 어제 낙리 때문에 나섰던 거지 목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여요.”

서황은 동생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낙리는 외모나 성품, 실력마저 훌륭하여 북창령원에서도 손꼽힐 정도였는데 이와 비슷한 여인은 소훤 뿐이었다. 다만 한 사람은 온순하고 부드러운 데 반해 다른 한 사람은 조용하고 차분해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목진이 이번에 큰코다치겠네.”

서황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 대결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이현통의 압승일 것이다. 그러면 자존심이 강한 목진이 큰 타격을 받아 앞으로의 수련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쌤통이야!”

서청청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녀는 이틀 뒤에 있을 대결이 아주 기대되었다. 목진이 이현통한테 한껏 짓밟히고도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럼 구경이나 하러 갈까? 결과는 뻔하겠지만 말이야.”

서황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 * *

“이현통이 너무 하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북창령원의 다른 한쪽 호수 중심에 있는 섬에서 소식을 접한 소령아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한편, 늘씬한 몸매에 검은 머릿결을 가진 여인이 호숫가에서 은은한 빛을 내는 옥구슬을 씻고 있었다. 옥구슬 표면에는 오묘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그 속에서 흐릿한 영력이 스며 나왔다.

“왜 그래?”

소령아의 말에 여인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언니, 이현통이 글쎄 목진한테 대결을 청했대요!”

소령아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두 사람 실력 차이가 상당하니 이는 분명 작정하고 목진을 괴롭히는 거라 여겼다.

“그래? 어쩌다 그런 일이…….”

소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 이현통이 어쩌다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자못 궁금했다.

“이현통이 낙리를 좋아하는데 낙리는 목진을 좋아해서 질투가 나서 그만…….”

소령아가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소훤은 동생의 태도가 왠지 이상했지만,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현통이 아무리 질투가 나도 이런 방법을 택하진 않았을 거야.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작정하고 목진을 괴롭히겠다는 거잖아요. 융천경 초기에 이른지 얼마 되지도 않은 목진이 무슨 수로 화천경인 이현통을 이겨요?”

소훤은 끝내 참지 못하고 웃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진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거야?”

이에 소령아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사람이 괜찮더라고. 지난번을 계기로 친구가 됐는데 걱정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내가 약자인 목진 편을 들어야지 그 반대편에 설 순 없잖아요.”

소훤은 수중의 둥글고 오래된 옥구슬을 거두며 말했다.

“일이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아무리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 일은 목진이 무시하면 되는 일이야. 사람들은 목진이 이현통과 싸우러 나가지 않아도 그러려니 할 거야.”

“목진의 성격상 그러지 않을 거예요.”

소령아는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목진은 온순해 보여도 자존심이 엄청 강해요. 그래서 실패할 걸 알면서도 분명 나갈 거란 말이죠.”

“그럼 별수 없지. 이틀 뒤를 지켜보는 수밖에…….”

소령아는 이내 한숨을 쉬었다. 지금으로서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목진이 싸움에서 지더라도 크게 타격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이 소식에 북창령원의 유명인사들이 모인 곳에서도 이현통이 신생한테 대결을 신청했다는 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여겼으며 이변은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 * *

“이현통이 너무하는 거 아니야? 무시해, 목형. 무시하면 그만이야!”

신생 구역도 떠들썩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주령은 잔뜩 화가나 목진한테 말했다.

“그래, 목형. 목형이 안 나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거야.”

다른 누군가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 서 있던 목진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현통이 잠자코 있지 않을 거란 말에 직접 나설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그 옆에 서 있던 낙리는 안색이 어두워져 이현통을 찾으러 가려 하였는데 목진은 바로 말렸다.

“이 일은 내가 직접 해결할 테니 넌 가만히 있어.”

낙리를 바라보며 나긋나긋 말하는 목진은 더없이 진지하고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이에 낙리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생각했다. 이현통은 절대 양홍처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지만 목진의 표정에서 그 뜻을 절대 꺾을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그럼 이번 일이 끝나면 갈게.”

낙리는 결국 목진의 선택을 존중했다. 다만 계속하여 자기 일에 간섭하는 이현통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악의가 아니라도.

목진은 잔뜩 긴장한 주령한테 눈길을 돌렸다. 그는 손에 흑염이 깃든 영력을 모아 수중의 붉은색 도전장을 재로 만들며 말했다.

“주령, 내가 그 대결에 응하겠다고 전해.”

* * *

이현통이 목진에게 대결을 청한 사실이 북창령원 전체에 들끓었고 다들 목진의 답변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신생 구역에서 또 하나의 소식이 퍼져나갔다.

목진이 이현통의 제안에 동의했다!

이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다들 목진의 용기가 가상하다고 여겼지만, 실력이 한참 뒤처진 녀석이 괜한 오기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목진을 비웃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생 중 으뜸인 목진이 이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북창령원을 들끓게 하는 거사에 취영진이나 뇌역에서 수련하던 학생들마저 수련을 내려놓고 모여들었다. 이는 최근 6개월 사이, 북창령원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결이었다.

그 시각, 목진은 이틀 동안 쉬지 않고 수련하느라 낙신회 사람들마저 만나지 않았다. 역시 이현통과의 싸움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려는 모양이었다.

이에 주령 등은 걱정되었지만 더는 말리지 않았다. 엎지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으니 목진이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도록 방해는 하지 말기로 했다.

이들도 목진이 이현통을 이길 거란 허황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현통은 북창령원에서 여러 해 수련하여 화천경에 이르러 융천경 실력자가 감히 덤빌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목진의 수법이 아무리 현란한들 그사이의 장벽을 깨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일 결과를 봐야 알 수 있었다.

* * *

목진은 신생 구역 중심에 있는 다락방 옥상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것이 긴장감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 쉬지 않았네?”

그윽한 향기와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소녀는 방금 씻고 나온 듯 머리에 물기가 가득한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미모에 달빛마저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낙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목진에게 다가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네가 괜한 일을 당하네.”

이틀간 수련하느라 말수가 적어진 목진을 보며 낙리는 느꼈다, 목진이 이현통 때문에 긴장했다는 것을.

그 말에 목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소녀를 확 끌어안더니 엉덩이를 힘차게 때렸다.

“그딴 말을 한 번만 더 하면 또 맞을 줄 알아.”

이에 낙리는 수줍게 목진을 힐끗 쳐다봤다.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지금 내 품 안에 있는 너는 매우 귀한 몸인데 내가 어찌 손쉽게 얻을 생각을 할까.”

목진은 낙리와 이마를 맞대고 진지하게 말했다.

“낙리, 내가 널 좋아해서 생긴 모든 걱정거리를 미리 없애려는 거야. 이현통과 싸우는 것을 동의한 것도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앞으로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많을 거니까. 그러니 넌 이것만 기억해.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건 뭐든 다 내가 해결할게.”

목진이 뒤에 내뱉은 말에 낙리의 얼굴이 이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좋은 신붓감을 어디서 또 구해? 너와 함께 북령경에 돌아가면 아버지한테 보여줄 거야.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얼마나 좋은지 확실히 알게 될 거야.”

“내가 언제 너와 함께 돌아간다고 했어?”

“과연 네 마음대로 될까?”

목진이 히쭉 웃으며 말하는데 꼭 먹잇감을 확보한 늑대 같았다. 자신의 말에 귀엽게 반응하는 낙리를 넋 놓고 바라보던 목진의 눈길이 점차 뜨거워졌다. 그는 어느덧 소녀를 꽉 껴안더니 볼에 입술을 맞대었다.

목진이 뭘 하려는지 바로 눈치챈 낙리는 조금 부끄러웠지만 서서히 눈을 감았다. 거사를 앞두고 응원하는 셈 치고 넘어가기로 했다.

목진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닿자 순간 경직되었던 낙리는 바로 사르르 녹아 자연스럽게 녀석의 목을 감싸 안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입술을 뗀 목진은 아름다운 소녀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변태야!”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낙리는 자신의 담대한 행동에 얼굴이 화끈거려 주먹으로 목진의 가슴팍을 가볍게 때리고는 영력으로 목진의 팔을 뿌리치고 도망갔다.

이에 목진은 미소를 짓더니 깊게 숨을 내뱉었고 눈빛은 점차 뜨거워졌다.

‘이현통, 어디 한번 붙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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